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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한 발자국 앞을 내다보고 하는 것
- 김 : 그런 관점에서 이명박 정부는 어떻게 보십니까?
= 황 : 그런 것은 모르겠고….
- 공 : 그런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은 제가 오늘 이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은 제 주관보다는 일반 국민들의 관점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에 제가 태어한 이후로 최고의 칭찬을 들었습니다. 어떤 칭찬을 들었느냐? 정당에 부설된 정책연구소에서 오랫동안 일해 왔던 어떤 박사님 말씀으로는 저의 논리는 대학교 1학년들이나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가장 좋아할 만한 논리라는 겁니다. 이 얘기를 듣고 내가 이 정도면 성공한 삶을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웃음) 왜냐? 우리나라 유권자의 평균적 수준은 중3에서 부지런히 발전한 결과로 이제 고등학생 단계에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교수님께서 학문을 하고 계시지만, 저는 정치학 교수를 단순한 학자로만 여기지 않습니다. 저는 정치학 교수는 단지 학교에 몸을 담고 있는 정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 황 : 정치학 교수는 폴리패서를 직업으로 해야 한다는 이야기네. (웃음)
- 공 : 저는 정치학 교수의 현실정치 참여를 절대 부정적으로 보지 않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바라본다면 방금 전에 김용민 선생이 이명박 정권에 대한 평가를 여쭈었을 때 교수님께서 다소 미적지근하게 반응하셨거든요. 저는 그와 같은 미온적 반응이 사회학 교수 정도면 이해되지만, 정치학 교수의 반응으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 황 : 그런데 내가 굳이 그 양반(MB)을 깊이 생각할 이유는 없고….
- 공 : 그런데 그 양반이 대통령 아닙니까? 깊이 생각 안 할 수가 없잖아요.
= 황 : 나한테 질문한 것들 중에서 유치찬란한 것 한 가지를 골라서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주역으로 점을 쳐서 탄핵한 게 아니냐고 묻던데.
- 김ㆍ공 (일제히) : 그건 저희가 주워온 이야기가 아닙니다. 황태연 동국대 교수가 주역 점을 쳐줘서 거기에 고무된 조순형 민주당 대표가 탄핵을 밀어붙였다고 신문들에 나와 있습니다.
= 황 : 무슨 신문입니까?
- 공 : 신문들마나 다 나옵니다.
= 황 : 안 그렇습니다. 저도 압니다. 6대 일간지에는 는 안 나옵니다. 그 말을 만든 자들이 노빠들입니다. 아무래도 공희준 씨가 노빠 신문을 많이 봤나보네. (웃음)
- 김 : 전혀 아닙니까?
= 황 : 정반대입니다. 탄핵을 하면 통과되느냐? 통과됩니다. 그런데 탄핵을 하면 민주당은 어떻게 되느냐? 박살납니다. 주역 결과의 궤는 그거였습니다. 그것처럼 딱 박살나지 않았습니까?
- 공 : 그렇다면 조순형 대표는 노 대통령을 왜 탄핵했습니까?
= 황 : 그분은 그런 것(주역) 안 믿습니다. 참고로 나는 탄핵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문제를 떠나서, 민주당이 지금 잘못하면 공중분해될 수도 있는 위기에 놓여 있다고 조순형 당시 민주당 대표에게 말했습니다.
- 공 : 그렇지만 그 당시의 조순형 대표는 적장의 목을 베어올 상이라고 하면서 의기양양해 하셨습니다.
= 황 : 그 양반이 그러지 않았습니다. 강운태 씨가 그렇게 말했지.
- 공 : 그런데 강운태 전 장관은 지금 광주에서 왕노빠 노릇하고 있거든요.
= 황 : 나중에 정세균 대표가 강운태 씨를 무지하게 미워하는 바람에 공천도 안 주려고 했잖아요. 그런 사람의 말을 내가 한 말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조순형 의원의 운세를 봤더니 뭐가 나왔냐면 적장의 목을 베는 괘가 나왔습니다. 2개월 동안 청와대에 감금해놓았으니까.
- 김 : 그러면 그것을 강운태 씨가 봐줬다는 겁니까?
= 황 : 내가 봤지. 조순형 의원의 한 달 운세가 적장의 목을 베는 운세로 나왔습니다. 강운태 총장한테 그걸 술자리에서 애기해줬더니 그걸 가지고 막 떠들고 그러더라고.
- 공 : 술자리에서 가볍게 애기한 것을 강운태 의원이 언론에 대고 불었다는 말씀이신가요?
= 황 : 조순형 대표는 알지도 못할 걸.
- 공 : 비유하면 이거네요. 교수님께서는 한 달 운세를 봐준 건데, 조순형 대표는 평생운세로 착각했다는….
= 황 : 두 분 다 아직은 젊은 사람들이니까 드리는 이야기입니다. 공자조차 가죽 끈이 세 번이 끊어질 정도로 푹 빠졌던 책이 주역입니다. 친노들이 이야기하는 것처럼 주역은 그렇게 허무맹랑한 얘기를 담은 책이 아닙니다. 민주당이 망해서 90석이 10석으로, 60석이 6석으로 줄어드는, 바꿔 말하면 당세가 10분의 1로 폭삭 망하는 괘가 나왔습니다. 그것을 알았다고 해서 막을 수 있습니까? 또 설령 그것을 알았다고 해도 가야 하는 길이 옳은 길이라면, 무릎을 꿇고 살기보다는 서서 죽기를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한두 사람이 움직이는 정당도 아닌데 민주당이 주역대로 움직였다는 말이 가능한 소리입니까? 그걸 알고도 한 분은 픽 비웃고.
- 김 : 조순형 대표가?
= 황 : 강운태 씨는 신경도 안 썼습니다. 그냥 적장의 목을 벤다는 것에만 목을 매는 거였습니다. 혈안이 됐죠.
- 김 : 강운태 당시 사무총장이?
= 황 : 그런데 문제는 정치는 그래도 한 족장은 내다보고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리고 그것만 설명한 것이 아닙니다. 탄핵을 하면 좋다는 여론이 지금은 좀 나오지만, 우리 국민들은 변덕스럽기 때문에 막상 탄핵을 하고 나면 오히려 우리가 당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여러 가지 좋은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그리니 신중해야 된다고도 말했습니다. 그 분위기로 나중에 거의 정서 조절이 됐는데, 그런데 사실 탄핵은 자민련이 찬성하지 않으면 절대 통과가 안 됩니다. 자민련은 계속 반대하고 있었거든요. 수도가 충청도로 온다는데 그걸 왜 자릅니까. 그런데 거기서 남상국 사장 자살하고, 국민들한테는 내가 뭐를 잘못했냐는 식으로 막 하고 그러니까 탄핵을 찬성하는 국민이 60~70퍼센트나 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일시적으로 나왔습니다.
- 공 : 그때는 여론이 실시간으로 롤러코스터를 타고 있었습니다.
= 황 : 나는 그걸 뭐라고 해석해서 전달한줄 아십니까? “지금은 이렇게 되지마는, 막상 탄핵이 되고 나면 국민은 또 변덕을 부립니다. 그런 일상적인 여론변화를 먹고 정치는 매일 진행됩니다. 우리가 역사적인 정치를 하고 있는 상황도 아닌데 조심해야 합니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내가 얘기하지도 않았을 뿐더러, 또 주역의 괘도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아주 불행한 괘들이었습니다.
- 공 : 지금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일반적인 통념의 범위 안에서 질문을 드리는 거니까 저를 원망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웃음)
= 황 : 매일 노빠 근처에서 노는가봐. 내 근처에서 놀면 그런 소리 듣지도 못해. (웃음)
- 공 : 탄핵정국이 끝나면서, 학계에서 헤게모니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이 황태연 교수님과 강준만 전북대 교수, 이 두 분이 급격히 힘을 잃은 사실입니다. 심지어 저널에서까지도 힘을 잃으셨습니다.
= 황 : 학계요? 아니면 정계에서?
- 공 : 모든 측면에서 그랬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보통 신문칼럼에 잘 안 나오면 이 사람들이 힘이 떨어지니까 언론에서도 안 불러주는 모양이라고 해석하시 마련이니까요. 강준만 교수는 탄핵국면에서 여러 가지로 자기주장이 관철되지 않으면서 제가 생각하기로는 주된 전공이 정치학에서 인간학으로 바뀌었습니다. 요즘에는 현대 인류학자처럼 되셨고요. 다음에 황태연 교수님 같은 경우에는 갑자기 동양학을 열심히 발표하시더라고요. 사람들이 보기에는 속된말로 이 양반 맛이 같다고 느끼기 쉬웠습니다. 우리나라의 통상적 관념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어려운 환경에 직면하거나, 사방이 적이라고 느낄 때는 주역 같은 동양학에 치우치는 경향이 많기 때문입니다.
계몽주의는 공자철학으로 서양사상을 일신시킨 결과물
= 황 : 무슨 이야기인지 대충 알겠습니다. 그런데 여기 한번 봅시다. 공희준 씨가 써놓은 질문지를 보면 탄핵은 2004년이고 패배감에 휩싸인 건 2005년일 텐데 ‘사상체질과 리더십’은 2003년에 출간됐습니다. 2년 전입니다. ‘사상체질과 리더십’은 10년 동안 쓴 책입니다. 그리고 내가 독일로 갈 때 이제마의 사상체질에 관한 책을 가져갔습니다. 한국 서적으로 가져간 건 이 사상체질론이 유일합니다. 그런데 공자의 주역관은 여기 논문들을 쓰면 대체로 1년 내지 2년 뒤에 출판됩니다. 그것을 뺀다면 논문 자체는 2003년도에 쓰인 것입니다. 몇 번 수정하느니 마느니 왔다 갔다 한 겁니다. 2008년 7월에 펴낸 ‘실증주역’도 20년 가까이 논문 원고를 가지고 있던 것입니다. 단지 이때 출판되었을 뿐입니다. 동양사상 연구는 정치철학을 하는 사람에겐 설령 서양 것들을 전공했더라도 필연적 일입니다. 해야만 하는 의무입니다. 내가 갑자기 동양에 빠졌다는 시각은 나를 모르는 공희준 씨 같은 사람들의 먼 관찰일 따름입니다. 실제로 나는 동서양을 다 공부하고 있었고, 한문도 서양철학 전공자들 중에서는 내가 지금까지 제일 열심히 탐구한 사람입니다. 외교학과에서 국제정치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전쟁과 평화를 다 다루는 작업입니다. 외교사를 연구할 때 한문을 모르면 연구 자체가 아예 안 됩니다. 구한말 외교사를 한문을 모르면서도 연구할 수 있습니까? 나는 계속 한문을 가르쳐왔습니다. 사비를 들여가면서까지 한문을 배웠습니다. 동양에 관한 공부와 연구는 나한테는 원래부터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 공 : 하지만 문제는 교수님 입장에서는 이 자연스러웠을 과정에서 우리나라 현실 정치에 관련된 집필은 거의 안 하셨다는 점입니다.
= 황 : 내가 엄청 큰 패러다임에 관한 연구를 시작하면서 방송이든, 신문이든 완전히 다 끊었습니다. 한 번도 토론하러 나가지 않았습니다. 기자들이 부탁하는 짧은 코멘트마저 잘 안 했습니다.
- 공 : 그게 일종의 충격 때문인가요?
= 황 : 무슨 충격은…. 민주당 공천 심사위원까지 하고서 그만뒀는데.
- 공 : 2008년에?
= 황 : 2008년 3월 30일의 마감작업까지 다 해줬습니다. 지금 현재 당선된 민주당 국회의원들 중에서 내 덕을 본 사람이 많습니다. 지금도 (현실정치를) 시작하려면 언제든지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해야 할 역할은 거의 끝난 느낌입니다. 내가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일은 DJ를 대통령에 당선시킴으로써 민주화운동을 마감하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정치에 개입을 안 해도 공희준씨를 비롯해서 정치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잖아요. 지금 공희준씨는 내 책에는 거의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는 거 같은데, 옛날에 내가 수행했던 헤겔과 마르크스를 주제로 한국사회의 진보상을 연구하는 것만큼이나 지금의 연구 역시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나라의 운명은 물론이고 동아시아의 미래를 위해서도 중대한 일입니다. 그런데 공희준 씨는 그건 인정하지 않는 것 같아. 그냥 내가 정치에서 재미가 없어지니까 이쪽으로 와서 딴 가게를 얻은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웃음)
- 공 : 저뿐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교수님께서 업종을 전환한 걸로 인식하거든요. 교수님 책을 읽고 제가 의아했던 부분은….
= 황 : 아니, 세계적 석학이시라면서. (웃음)
- 공 : 저도 동양학 전공은 아니기 때문에. (웃음)
= 황 : 동양에서 정치하면서 동양학을 모르면 곤란합니다.
- 공 : 동양에서 정치하는 사람이 동양학을 연구하면 출세를 못하더라고요. 농담입니다. 제가 특별히 궁금했던 대목은 교수님께서 서양의 합리주의에 대해서 특히, 대륙의 합리주의에 대해서 굉장한 적개심을 드러내셨다는 겁니다.
= 황 : 칸트, 헤겔, 칼 마르크스 등을 말하죠?
- 공 : 그러니까 예전에 칼 포퍼가 ‘열린사회와 그 적들’에서 표명한 논조와 비슷한 유형의 적개심을 표출하셨습니다. 심지어 플라톤까지 증오하시는 듯했습니다. 제 생각으로는 두 사람 다 대륙의 합리주의를 비슷한 관점에서 비판하는 걸로 보이는데 황태연과 포퍼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 황 : 포퍼는 합리주의로 합리주의를 비판한 인물입니다. 나와는 분명 다르죠. 나는 경험론을 새롭게 개척하고 연구하는 사람입니다. 포퍼는 비판적 합리주의자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로 플라톤을 비판한 사람입니다. 결국은 합리주의자로 합리주의자를 비판한 셈입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역시도 합리주의자들이 합리주의의 절망을 표현한 것입니다. 전부 Rationalist들입니다. 그 안에서는 동종요법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납니다. 그 때문에 하버마스조차 도로 Communicative Rationality, 즉 소통적 합리성으로 합리성의 결함을 극복하려고 시도합니다. 그러기에 극복이 안 되는 겁니다. 이것은 내가 임의로 지어낸 결론이 아닙니다. 그들이 합리주의 정통세력 안에서 빠진 미증유의 자중지란입니다. 반면 서양의 다른 세력은, 즉 영미(英美)의 경험주의적 사조는 지금도 아무런 문제없이 계속 항진하고 있습니다. 서양의 합리주의가 무너지면 서양이 무너지느냐? 안 무너집니다. 경험주의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경험과학 이론들은 그 결론이 오히려 공자와 맹자의 그것들과 비슷해지고 있습니다. 뇌과학이든, 심리학이든, 동물학이든, 지금의 무슨 문명이론이든 맹자를 자주 인용합니다. 측은지심과 수오지심은 Empathy와 Sympathy, 곧 공감을 말하는 것입니다. 가령 리프킨 같은 경우도 ‘공감의 시대’를 써냈고요. 심리학이든 사회학이든 최신의 사회과학 이론들은 공감을 향해 흘러가고 있습니다. 동물학자인 프란스 드발 또한 맹자를 인용합니다. 수십 년에 걸친 동물에 대한 경험적 연구의 결과로, 모든 도덕의 출발은 공감적 감정이라고 보는 겁니다. 맹자와 같아진 거죠. 그러한 전체적 흐름을 통해 우리는 공맹(孔孟)이 2천여 년 전에 주장한 사상이 여전히 타당성을 가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경험론적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나라 학계에서 경험론적 패러다임으로의 전환이 아직 안 이루어지고 있는 이유는 서양학계의 잔재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합리주의 비판은 내가 공자를 연구하는 데 배경으로 깔고 가는 것입니다. 사실 그렇게까지 중요한 테마는 아닙니다.
= 공 : 교수님은 공자를 굉장히 민주적 캐릭터로 분석해 내놓으셨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는 물론이고 우리나라 사람들도 아시아적 전제성을 비판하면서 그 원흉으로 공자를 지목하고 있습니다.
= 황 : 그들이 아시아의 전제성을 이야기할 때는 이미 19세기로 들어왔을 시점입니다. 18세기까지도 그들은 공자를 그들의 수호성인으로 숭배하면서도 계몽주의를 전개했습니다. 공자철학으로 서양사상을 일신시킨 사상이 한마디로 계몽주의입니다. 그러니까 공자사상으로 희랍 철학을 다 몰아냅니다. 유수한 철학자들 모두가 그래요. 피에르 벨에서부터 아담 스미스에 이르는 철학의 전반적 흐름이 다 그렇습니다. 볼테르, 데이비드 흄이 전부 다 그리스 철학을 몰아내고, 공자의 인이나 관용 정신으로 그들의 종교적 똘레랑스 개념을 정립시켰습니다. 서구 민주주의의 핵심 개념인 관용은 공자의 인(仁)의 개념을 인용해 가지고 만들어진 것입니다.
공자 사상 안에 들어있는 비민주성이라는 이야기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내 우려가 옳다면 성리학에 의해서 굴절되고 변조된 공자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공자의 대동사회나, 백성은 귀중하고 임금은 가볍다는 명제나, 민심을 잃은 임금은 죽여도 된다는 것 같은 혁명이론들을 대단히 부러워합니다. 그것은 왕을 시해한다는 뜻을 띨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민심을 가지고 정치를 한다는 생각을 그들은 오랫동안 못했습니다.
- 공 : 그들이라고 하는 것은 서양을 말하시는 것입니까?
= 황 : 아니, 합리주의자들을 지칭합니다. 그들은 철인통치자가 정치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이게 김일성 수령 동지까지 오게 된 겁니다. 백성들의 자발적인 뜻은 다 외부적 지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거지요. 철인혁명가, 철인치자 따위가 그 표현들입니다. 철인혁명가는 마르크스로부터 시작하는 개념입니다. 데카르트와 루소 모두 철인입법자가 백성의 뜻보다 위에 있는 존재라고 믿었습니다. 사회계약론을 정확히도 아니고 얼추만 읽어도 철인 입법자가 사회계약보다 중요함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서 인민독재론이 비롯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이 서양의 민주주의의 허약성입니다.
또 백성의 지지만 받으면 되느냐? 히틀러도 90%의 지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공자와 맹자는 백성의 지지만을 받아서는 부족하다고 했습니다. 덕이 있어야 한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그렇다면 덕이 있는 자면 다 통치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덕이 있으면서 그 덕으로 백성의 지지를 받은 자만이 나라를 다스를 수 있다는 까다로운 이중조건을 붙여놨습니다. 물론 데이비드 흄은 민심이 모든 통치기반의 기초라고 얘기하는데, 거기까지는 공맹과 일치합니다. 그런데 그 민심을 얻은 자가 꼭 히틀러 같지 않으라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서양 민주주의 이론은 지금까지도 완결되지 않는 거예요. 치자를 어떻게 형성하느냐의 문제가 없으니까. 머리 좋은 사람이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한 건 플라톤에서부터 데카르트, 칸트, 공산주의자에 이르기까지 다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니 반드시 머리 좋은 사람이 아니더라도 측은지심이 있고, 인자하고 덕이 있는 자가 백성의 지지를 받아서 집권해야 한다는 덕치주의 사상이 어떻게 서양의 민주주의 철학보다 열등할 수가 있겠습니까?
북한, 철인수령에서 군자수령으로 넘어가
- 공 : 그런데 맹점은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객관적 상황이 교수님의 말씀과는 확연히 다르다는 데 있습니다. 공자에 대해서 별로 모르는 서양이 어려서부터 유교적 교육을 많이 받아온 우리들보다 사회가 민주화되어 있으며, 다양성이 보장되어 있고, 관용정신이 풍부한 것은 사실이 아닙니까? 이러한 점들은 2011년 6월 중순의 상황들만을 봤을 때도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 황 : 누가 그렇게 말을 합니까? 누가 그들이 자유롭다고 합니까? 다들 서양을 막연히 엄청나게 동경하는 일에 빠져 있습니다. 내가 독일에서 10년을 살아본 사람입니다. 그들이 무슨 자유가 있어? 시위할 자유도 우리보다 없습니다. 미국 가서 데모해 보세요. 개한테 물려. 그들 나라 경찰병력의 폭력성이라는 것은 상상이 안 가는 거예요. 한국에서는 경찰도 잘못하면 우리한테 뺨맞고 얻어터집니다. 그런데 그런 것을 유럽에서는 상상하면 안 됩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서로 붙어서 싸움하는 상황입니다. 그러다보니 서로 무기를 듭니다. 서양 자체가 무슨 언론의 자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숀 코너리 같은 사람조차 맘대로 삐라를 뿌리지 못합니다. 스코틀랜드의 독립을 위해서 발언하지 못한다는 겁니다. 그 숀 코너리가 유명인사 자격으로 발언하면 그 자막을 다 지워버립니다. 언론 탄압입니다. 그럼 한국에서는 난리가 날 겁니다. 그런데 영국에서는 난리 안 납니다. 당연히 그런 줄 압니다. 실제로 그들의 엄청난 언론 탄압이 다른 언론을 가능케 만들기 때문입니다. 다른 데서는 자유롭게 떠들 수 있기에 그게 상쇄되는 것입니다. 그곳 유력 신문들이 탄압하는 것 안 봐서 그렇습니다. 독일은 어떤지 아세요? 독일 바이에른 지역에서 이런 소리 같은 것 할 수 있을 거 같아요? 그럼 감옥 갑니다, 감옥 가. 거꾸로 바이에른 지방의 북쪽 지역으로 가면 더 탄압을 받겠지, 지역 단위로 자신들의 아성으로 장악하고서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다 요리합니다. 무슨 자유로운 소리 하고 싶으면 딴 데 가라면서 그냥 아웃시켜, 아웃. 나는 아웃 안 뒤고 한국처럼 떠들겠다? 거기서는 안 통합니다. 우리를 불편하게 하려면 네가 사라지면 된다고, 왜 네가 안 가냐고 합니다.
- 공 : 사실은 이거 아닐까요? 가까운 사례로 북한을 봤을 때 북한에서 3대 세습이 가능한 이유는 유교적 가르침에 충실한 효의 개념에 인민들이 어느 정도 동의해주기 때문이 아닐까요?
= 황 : 그것은 억지해석입니다. 그것까지 내가 다 답변해줘야 합니까? 왜 그런 줄 알아요? 정확히 보쇼. 조선왕조가 왕조였죠? 그러다가 일제에 의해서 강점됐습니다. 천황제죠? 그 다음에 남한처럼 (민주주의를 위해) 한 번씩 싸워본 시기를 거치지 않고 북한은 바로 김일성으로 넘어갔습니다. 김일성을 왕인 줄 아는 겁니다. 그것은 효와는 관계가 없습니다. 효는 나중에야 붙습니다. 10년 전부터 인덕정치 하면서 어떻게 공자적인 요소가 들어가서 지금은 철인수령 대신 군자수령 흉내를 내고 있는데 그것은 잘하는 것입니다. 못하는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효의 개념에서 그들의 3대 세습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 해석한 겁니다. 우리는 인민들이 일체의 경쟁적 민주주의를 겪지 않은 그들의 특이한 역사를 안타깝게 바라보고 해석해줘야 합니다. 그것을 단순히 유교의 산물이라고 해석하면 안 됩니다. 보는 시각을 달리합시다. 특별히 우리민족이니까 더 미워하는 어리석음을 발휘하지 말자는 뜻입니다. 다른 나라는 전부 북한에 쌀 주는데, 같은 민족이기에 더 미워서 쌀이 많은데도 오랜 세월 우리만 북한에 안 준 경우도 많습니다. 적대적인 형제가 더 문제라면서요. 우리는 그들이 민주주의를 훈련할, 또는 체험할 기회를 얻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여겨야 합니다.
- 공 : 제가 오늘의 중요한 개념을 여쭐 때가 되었습니다. 북한이 철인수령에서 군자수령으로 10여 년 전부터 변화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북한 정권 수뇌부도 이제 물론 정확히는 아니지만 교수님이 말씀하신 ‘패치워크(Patchwork) 개념’을 어느 정도는 조금씩 알아간다는 증거가 될까요?
= 황 : 아니, 난 그렇게 안 봅니다. 우리 토속문화도 있지만, 공자의 생활문화가 우리 민족에 끼친 영향이 강하기 때문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하면서 부모를 생각하는 사랑이나, 주변 어른들을 공경하는 관습이나 이런 것들을 다 정면에서 때려 부수니까 우리가 윤리적인 공황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그 상태에서 조금씩 차츰차츰 회복하다 보니까 결국은 중국도 공자의 예전 전통적 사상과 문화를 긍정적으로 재확인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공산당 안에서도 유교적으로 서로 선후배 관계를 맺으니까요. 형님, 아우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짜 가족에게 형님, 아우 해야 하는 겁니다. 선배를 형님이라고 하고, 후배를 아우라고 부르는 것 자체가 유교적 생활문화입니다. 그런 유교적 생활문화 자체가 사람들 간의 정을 돈독히 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쓰다가 보니까 그 옛날의 전통에 굴복한 것으로 봐야 합니다. 그러니 패치워킹을 한 것은 아닙니다. 공산주의적 문화는 들어와서 하나도 패치워킹이 안 됩니다. 진퇴를 반복하겠지만 결국은 조금씩, 조금씩 다 퇴출될 겁니다. 계급투쟁을 기초로 해서 만들어진 정치관과 생활문화와, 인에 기초해서 만들어진 정치관과 생활문화는 상당히 상반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천안문에 세워졌던 공자상이 치워졌다면서요?
- 공 : 조용히 퇴출됐다고 합니다.
= 황 : 모택동과 마주보고 있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공산당이 흔들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겠지. 처음부터 세울 때 위치를 잘못 골랐습니다. 조금 구석으로 감춰놓았다가 나중에 살살 나오던지 해야 했습니다. 또는 공산주의의 사람에 대한 휴머니즘적 사랑 부분을 강조해가면서 접합시키려고 하던지. 계급투쟁 부분을, 지금은 계급투쟁은 할 필요가 없다고, 예전에 그 중요성이 90이였다면 지금은 10도 안 된다고, 뭔가 기술적인 자극을 가하면서 이것을 공자의 사상과 결합하려고 애써야 되는데 딱 대립시켜놓으니까 그럼 공산당이 해체되거나 없어지는 게 아니냐면서 의심하는 사람이 있는 겁니다. 그래서 (북경 천안문의) 공자상이 사라진 겁니다. 처음부터 위치선정이 잘못된 탓입니다.
- 공 : 2008년 북경올림픽 개막식에서 중국이 공자가 말한 논어의 구절을 따왔는데 혹시 보셨나요?
= 황 : 예, 봤습니다.
- 공 : 그때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 황 : 국가브랜드만 바꾸고 있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 공 : 완전히 흡족하셨던 것은 아니었다는 대답처럼 들립니다.
= 황 : 시작은 시작인데 당장은 세계적 행사를 치러야 하니까 공산주의를 국가브랜드로 내세워서는 안 되겠다고 느꼈겠죠. 모택동 주석을 내세워서도 안 될 것 같고. 그래서 자기들 나름대로 예의를 차리겠다면서 “예의 효용은 화(和)에 있고, 서로 화합하는 것이 가장 귀중한 것”이라는 뜻을 가진 ‘예지용 화위귀(禮之用 和爲貴)’란 논어 구절에서 ‘화’를 따와 가지고 한 시간 내내 카드섹션을 했습니다. 세계를 향해서 평화의 메시지를 보낸 거죠. 화합하겠다는 메시지도 보내면서 그것과 겸해 우리 중국은 공산주의를 앞으로는 마음속으로만 지키고, 브랜드로는 공자를 활용하겠다는 메시지 역시 전한 겁니다. 세계를 향해 일단은 타협의 제스처를 보인 셈이죠. 그런데 과연 이게 제스처에만 그칠지, 그 사상을 심화시켜서 공산주의, 즉 마르크스와 레닌과, 그리고 공자 사이에 같은 것은 강조하는 식으로 타협을 해나가려는 시작일지 주시해왔는데 그 뒤에는 후자의 방향으로 더 세게 진행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공자 학원, 공자 아카데미 같은 것들을 전 세계에 약 700여 개 세웠다고 하던데 그 흐름이 지난번 공자상을 치움으로써 주춤한 겁니다.
- 공 : 교수님께서 보시기에는 잠시 주춤한 건가요? 아니면 완전히 유턴한 건가요?
= 황 : 나는 더 전진할 것이라고 전망하는데, 중국 정부 입장에서는 국민들에게 너무 급격한 전환을 강요하다가 갑자기 겁이 났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핵심 지도부는 제가 예견하는 방향으로 또다시 나아갈 거라고 봅니다. 왜냐하면 일본도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자고 하토야마 전 총리가 주장했고, 중국은 오래전부터 동아시아판 EU를 만들어야 된다고 계속 이야기하는 상황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학자들, 이를테면 역사학자들, 정치학자들, 기타 인문학자들조차 동아시아 공동체가 외교적으로 올바른 해법이라고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교적 생활문화를 가진 동아시아 여덟 개 국가들, 위로 북쪽에서부터 말하면 몽골, 중국, 북한, 남한, 일본, 대만, 월남, 싱가포르, 이 8개 국가가 모이자는 주장입니다. 그런데 제일 센 놈인 중국이 모이자고 하니까 왠지 불안한 겁니다. 일본이 주장하면 과거 대동아공영권을 앞세웠던 전력 때문에 망설여지고. 우리는 나라가 크지도 않고, 다른 나라를 침략한 전과도 없으니 한국이 제안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는 것이 우리나라 현자들의 생각입니다. 그 관점에서 바라보면 지금처럼 중국이 과거와 같은 헤게모니를 추구하면 오히려 냉전적 대립상황이 복원되고 맙니다. 중국이 힘의 헤게모니를 추구하면 미중 대결구도가 아주 골치 아프게 만들어지는 거죠. 차라리 동아시아 안에 공통된 생활기반을 찾아서, 유럽이 과거에 서로 싸웠지만 지역적 공동가치를 모색해 EC를 만들었듯이, 그걸 만드는 것이 좋다고 봅니다. 따라서 중국 측 입장에서는 궁극적으로는 공산주의적 브랜드보다 공자철학의 브랜드가 동아시아의 평화와 그들의 이익을 위해서 더 건설적일 거라고 판단될 것이기 때문에, 비록 중간과정에서 우여곡절은 있을지언정 중장기적으로는 아마 제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순리대로 갈 것이라고 봅니다.
관용정신의 뿌리는 동아시아에 있다
- 공 : 제가 좀 전에 질문한 패치워크를 우리말로 옮기면 보통은 절충이나 짜깁기로 번역됩니다. 이것들은 우리가 흔히 안 좋은 표현으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럼에도 교수님께서는 이걸 좋은 취지로 사용하셨습니다.
= 황 : 리포트를 짜깁기로 쓰면 안 좋은 거지요. (웃음)
- 공 : 제가 질문하고픈 문제는 바로 이 지점입니다. 북한은 일단 차치하고, 지금의 남한사회야말로 교수님께서 말씀하신 공자의 인에 바탕한 짜깁기가 가장 성공적으로 이루어진 곳이라고 ‘공자와 세계’에서 평가를 해놓으셨거든요. 저도 비스마르크가 제창한 리얼폴리티크에 충실한 사람이긴 합니다만, 작금의 동아시아의 정세를 조망해보면 방금 언급하신 동아시아 통합의 흐름에 가장 역행하는 나라가 다름 아닌 대한민국니다. 북한을 빼면 현재는 거의 왕따 아닙니까? 물론 그건 이명박 정부의 잘못이기는 하지마는.
= 황 : 한국 정부가 어떻게 한다고 해서 우리니라가 갈 길이 단절되거나 근본적으로 변화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대통령 혼자서 하는 것도 아니고.
- 공 : 이명박 대통령은 독실한 기독교도입니다. 아참, 독실하다고 하면 진짜 기독교인들은 싫어하겠구나.
= 황 : 독실하지요. 자칫하다가는 대한민국을 하늘에 바칠 테니까. (웃음)
- 공 : 교수님께서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하신 공자의 덕성이나 가치관이 지금의 이명박 대통령의 국정운영 방향과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보시는지요? 저는 예컨대 지금 정부는 문명의 패치워크와는 도저히 공존할 수 없다고 여기는데.
= 황 : 이명박 대통령은 유학자가 아니고 기독교인입니다. 그 자체로 우리나라로 패치워크 해서 들어온 천 조각 같은 존재입니다. 우리가 용인할 수 있는 거지요. 그런데 그건 공자적 정신에서 용인되는 것입니다. 우리 빼고 어느 나라에서 이렇게 여러 종교가 서로 싸우지 않으면서 공존합니까? 우리가 다른 종교들 사이에서 물론 기분 나쁜 일은 가끔씩 겪지만, 우리나라처럼 평화롭게 종교들이 공존하는 경우는 세계에 그리 많지 않습니다. 동아시아에서만 이게 가능합니다. 나머지 지역에서는 다른 종교들끼리 서로 죽이려고 하거든요. 옛날 유학을 국학으로 내세웠던 한나라 때부터 2000년 이래로 우리 동양은 모든 종교를 관용했습니다. 한나라 때는 불교가 들어와서 불교를 포교했고, 당나라 때는 여러 가지 다른 종교, 특히 기독교가 전래됐습니다.
- 공 : 경교라고 하는 종교 말씀인가요?
= 황 : 당나라에 전파된 경교가 신라까지 들어옵니다. 훗날 볼테르는 동양에 이미 기독교가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안 믿습니다. 그래서 중국의 대진경교유행중국비(大秦景敎流行中國碑)라는 비석이 조작된 가짜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지금 모든 사학자들은 이걸 100% 확실한 걸로 인정합니다.
- 공 : ‘대진’은 로마제국을 지칭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 황 : 예. 거기에 비문으로 150년간에 걸친 자신들의 활동상과 종교적 번영을 기록해놨습니다. 또 그 이외에도 볼테르는 신부들이 써놓은 라틴어 텍스트도 인용하면서 이런 말을 합니다. 옹정제가 신부들을 추방하는데, 정작 황제 자신은 그들을 추방시키고 싶지 않았지만….
= 공 : 옹졸한 분이. (웃음)
= 황 : 강희제가 그리스도교 포교를 많이 도와줍니다. 그런데 신부들이 농민들을 선동해서 여기저기서 반란을 많이 일으킵니다. 이걸 싫어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항의해서 그들을 추방해야만 하는 상황에까지 이른 것이죠. 그래서 북경에 추방당할 신물을 집결시킨 다음에 파랜니라는 신부를 비롯한 두 명의 그리스도교 성직자에게 황제를 알현하라고 명령합니다. 자기들이 추방당하는 이유는 알아야 한다면서요. 그러면서 추방되는 첫째 이유는 너희들은 종교의 자유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일러줍니다. 너희들은 우리나라에서 허용된 13번째 종교인데 너희들 것만 믿으라고 하고, 다른 것들은 전부 배격한다고 말입니다.
- 공 : 관용 없는 것들은 관용할 수 없다는 의도에서였을까요?
[다음에 계속…]
첫댓글 여기도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