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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 도성 트레킹 혜화문~흥인지문~광희문~숭례문
동대문역사문화공원을 지나 광희문으로 향한다. 광희문은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역에서 신당동 쪽으로 가다보면 오른쪽에 버티고 있는 문이다. 빛나고 또 빛나야 할 이름을 얻은 광희문(光熙門)! 그러나 광희문은 서글픈 역사 와 함께했다. 광희문은 1396년(태조 5년) 도성을 쌓을 때 동대문과 남대문 사이인 남동쪽에 세운 것으로 1711년 (숙종37년)에 고쳐 쌓았다. 1719년(숙종45년) 석축위에 문루를 짓고 "광희문(光熙門)이란 현판을 걸었다.
문 부근으로 남산에서 내려오는 물줄기가 지나가는 수로와 물줄기를 조절하는 이간수문이 있어 물이 나간다는 뜻으로 수구문(水口門)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렸다. 조선시대 때 도성 안에서 시신이 나갈 때 서쪽은 소의문으로 나갔고, 동쪽으로는 광희문으로 수습해 나갔다. 특히 이 문으로 많은 주검들이 나가게 되면서 민초들은 이문을 수구문과 발음이 비슷한 시구문(屍口門)이라 하게 되였다.
병자호란 때 인조가 빠르게 남진하던 몽골군에 밀려 미처 숭례문을 통과해 강화도로 피신하지 못하고 어가를 황급히 돌려 남한산성으로 피신하기 위하여 광희문을 빠져나갔다. 1880년 대 후반 한양에 콜레라(돌림병)가 창궐했을 때 전염된 민초들을 산 채로 버려져 마치 생지옥을 연상케 했던 곳도 광희문이다. 고종 때 기해박해와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들이 무참하게 처형을 당해 버려진 곳도 광희문 밖이였다. 1907년8월1일. 일본 제국 주의의 강압으로 조선군 해산 칙소가 내렸다. 이에 불복한 조선군은 항거, 일본군과 큰 싸움을 벌였다. 일본군은 남대문 인근의 큰 접전에서 승리를하고 사망한 한군군 시신 120여구를 모두 광희문 밖에 늘어 놓고는 가족들이 찾아가 묻으라고 했다. 이에 광희문 근처에는 며칠간 통곡소리가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듯 광희문은 처절 한 고난과 역사를 함께 해왔다.
조선시대 광희문 밖 신당동과 금호동 일대는 공동묘지 였다. 특히 신당동 근처에는 장례 치르는 사람들이 많아 무당들이 무리를 지어 영업을 했다. 신당동(新堂洞)이란 이름도 무당들이 많이 살아 원래는 귀신 신(神)자가 들어 간 神堂洞이었다. 옛 지도에도 이곳을 신당동(神堂洞)으로 표기하고 있다.
광희문을 나온 운구는 보통 신당동 화장터에서 화장이 되거나 금호동 공동묘지에 묻히곤 했다.
이런 비참한 주검을 옆에서 몇백년을 지켜보았던 문이 광희문이다. 민초들은 이 때문에 광희문이 원귀(怨鬼)들 과 사귀어 왔을 것이라는 미신을 믿게 되였다. 그래서 이 문의 돌가루라도 취하면 병마를 물리칠 수 있다고 믿었 으며, 광희문의 돌가루를 치료제로 여겨 몰래 긁어 간 풍습은 이렇게 해서 나오게 되었다.
과거 비참한 기억을 가지고 있던 신당동과 금호동도 지금은 주택지로 되면서 많은 아파트가 들어서있다. 옛 흔 적들은 모두다 사라졌다.
이처럼 광희문은 울음을 많이 삼켜온 "눈물의 문"이고, 그 곳의 땅인 신당동과 금호동은 많은 민초들의 한을 움 켜 담은 한숨의 땅이다. 그러나 그러한 민초들의 아프고도 자잘한 흔적은 새 시간의 줄기 속으로 빨려들어가 그 많은 혼들을 몰래 달래고 있다. 눈물과 한숨으로 얼룩진 광희문과 그 일대.. 일본강점기를 거친 조선의 오백년의 역사에서 그 어느곳보다 깊고도 슬픈 사연을 많이 안고 있는 곳이다.
광희문은 일제강점기 때 문을 돌보지 않은 탓에 문루는 스스로 허물어지고 석축으로 된 기단부만 남아 있었다. 지금의 문은 1975년 원래 자리에 도로를 내면서 홍예석축(虹霓石築)을 해체해 남쪽으로 15m 옮겨서 새로 지은 것이다. 그때 120여m 성곽을 복원하였고, 주변의 200여평을 녹지화 했다.
복원된 성곽을 따라 잠시 걸으니 곧 주택가 좁은 골목이 나타난다. 장충체육관이 있는 동호로로 가기 위해서는 주택가 좁은 골목을 따라 신당동 천주교회로 방향을 잡아야 한다. 이 구역은 성곽의 원형이 완전히 사라진 구간 이다. 그러나 골목길을 따라 걷다보면 길 옆 오래된 축대 등에는 옛 한양도성의 성돌로 추정되는 화강암들이 곳곳 에 박힌 것을 볼 수 있다.
신당동 천주교회를 지나 조금만 앞으로 나아가니 왕복 8차로의 큰길인 동호로 건널목에 도착한다. 건널목을 건너 성곽이 보이는 쪽으로 곧장 직진한다. 잘 복원된 성곽이 퍽이나 정겹다. 성곽을 따라 30여 분 따르니 2층 팔각정자 가 어서오라 미소를 짖는다. 팔각정자에 올라 잠시 배낭을 내려놓고 남산을 바라본다. 우거진 숲 가운데 N타워 가 한가운데 솟아있다. 이곳에서 잠시 피곤을 씻은 후 팔각정자 오르는 사거리로 다시 내려선다. 사거리에서 왼 쪽으로 꺽으면 반얀트리클럽 골프연습장 외각을 도는 목제테크를 따라 걷게 된다. 이 골프연습장 위로 성곽이 지나 갔을 테지만 지금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다.
반얀트리클럽 구간을 지나면 남산산책로가 시작되는 해오름극장(舊 국립극장)사거리에 닿는다. 해오름극장사거리 를 건너 서울타워(N타워)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200m정도 정도 올라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 길은 남산으 로 오르는 케이블카 방향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직진해서 약 50여m 올라가면 성곽탐방로라 표시된 팻말을 만나게 된다. 이 표시를 따라 오른쪽으로 시선을 돌리면 성곽을 따라 놓인 목제계단을 만날 수 있다. 가파른 계단이 한동안 계속된다. 그러나 중간에 쉴만한 곳들이 있어 특별한 어려움은 없다. 계단 가장 상층부는 성곽 전망대로 이곳에서 보 는 신당동 쪽 서울 풍경도 꽤 볼 만하다.
이후로 편안한 길을 따라 그대로 이으면 서울의 랜드마크인 남산의 서울타워(N타워)에 다다른다. N타워 옆으로는 종로에 있는 탑골공원의 정자를 본떠 만든 팔각정이 자리잡고 있다. N타워와 팔각정 주변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사진기를 들고 기념사진들을 찍고 있다. 자세히 살펴보니 한국인 관광객은 별로 눈에 띄지 않고 거의 외국인 관 광객들이다. 글러벌(Global) 도시 서울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남산(南山)은 해발 262m인 산이다. 남산의 옛 이름은 목멱산(木覓山),인경산, 마뫼 등으로 불렸다. 조선 때 한양 을 감싸고 있는 산. 동쪽의 낙산,서쪽의 인왕산, 북쪽의 북악산과 함께 한양의 중심부를 둘러싸고 있는데, 남쪽에 위치한 산이라 남산이라 불린 것이다. 남산의 속살은 화강암이다. 조선 태조 때에 이 산들의 능선을 따라 도성을 축성 했으나 현재는 성곽의 일부만 남아있다. 그나마 성곽복원 사업으로 성곽들이 본 모습을 찾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수도 서울의 중앙에 위치하여 남산의 산정에 서면 사방으로 펼쳐진 서울의 시가지를 둘러볼 수 있다. 특히 N타워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일품이다. 한강이 유유하게 흐르는 가운데 강에 놓여있는 다리들 이 한눈에 들어오질 않나, 강 너머 강남 일대 시가지가 파노라마 처럼 조망이 된다. 그뿐이랴? 관악산, 삼정산, 수리산, 우면산, 광교산, 백운산, 청계산, 검단산 등이 한바퀴 큰 원을 그리며 서울과 경기도 일대를 감싸고 있다.
N타워에서 한참동안 조망을 즐기며 시원한 생맥주 한잔 들이킨다. 목으로들어가는 생맥주 감촉이 시원할 수 없다. 충분한 휴식과 조망을 즐긴 후 팔각정으로 향한다. 팔각정 옆에는 복원해 놓은 봉수대가 있다. 이 봉수대는 조선시대 5대 봉수로 중에 평안도 강계를 출발한 3봉수를 수신하던 봉수대이다. 봉수대에 올라 바라보는 서울의 시가지도 명품이다.
봉수대 옆으로 성곽이 아래로 길게 이어진다. 성곽을 따라 목재테크 계단길도 부드럽게 이어져 있다. 계단길을 잠시 내려가니 잠두봉포토아일랜드 전망대에 닿는다. 누에고치의 머리를 닮았다고 하여 잠두봉이란 이름을 얻었는데, 이곳에서 보는 서울 시내의 모습이 자못 근사하다. 북악산 아래 경복궁을 중심으로 우뚝 솟은 빌딩들이 서울의 고도성장을 상징하는 듯 하다.
잠두봉을 떠나 조금 더 내려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향하면 남산 분수대로 내려갈 수 있다. 분수대를 지 나 직진하면 곧 안중근의사기념관이 나타난다. 기념관 앞 그분의 동상 앞에서 잠시 커피 한잔을 마신다. 잠시 휴식 을 취하면서 앞을 바라본다. 옛 어린이회관이 눈에 들어온다. 소년 시절 이곳을 한번 관람하기 위하여 아침 일찍 불광동에서 버스를 타고 왔던 기억이 새롭다. 그때가 엊그제 같았는데 벌써 나이줄 50을 넘었으니, 세월 한번 빠름 을 느껴본다.
안중근의사기념관 앞으로 몇달 전 2012년6월에 공사를 끝내고 개통한 백범광장과 이어지는 생태다리를 건너게 된다. 과거 이곳에는 지루한 계단이 놓여 있었는데 연인들이 이곳을 오를 때마다 가위.바위.보를 하며 올랐던 곳이다.
백범광장은 아름다은 잔디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잔디공원을 둘러보니 왼편 저만치 하얀 화강암으로 축성된 성곽 이 눈에 띈다. 2012년6월에 복원된 길이 240m구간의 새로운 성곽이다. 이 길을 따라 물 흐르듯 따르니 도동삼거 리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3여 분 더 걸으면 숭례문에 도달한다. 숭례문은 2008년 화재로 인해 지금은 커다란 가림 막을 둘러친체 공사를 하고 있다. 얼마전 뉴스에서 숭례문 공사가 마무리 단계라 하던데 그 모습이 자꾸만 기다려 진다.
갑자기 허기진다. 남대문시장으로 들어선다. 시장안 국밥집에 가기 위함이다. 시장 안에도 역시 글러벌이다. 많은 외국인들이 시장안을 가득 메웠다. 그들이 흥정하며 물건사는 모습이 흥미롭다.
서울 성곽길은 도심에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 외에도 600년 서울의 역사속 시간속에 켜켜히 쌓 여있는 흔적을 발견할 수 있는 트레킹 코스이다. 서울에서는 보기드물게 옹기종기 모여있는 오래된 집들과 정겨운 풍경들을 만날 수 있어서 가족, 연인,친구와 함께 트레킹하기에는 딱 안성마춤이다..
^ 광희문(光熙門)은 빛나는 이름과 달리 시신이 나가는 곳이라 하여 시구문(屍口門)이라고 많이 불렸다.
^ 숙정45년(1719년)에 광희문이라 현판을 걸었다 그 후 언제 무너졋는지 알 수 없으며, 석축으로 된 기단부 만 남아잇었는데 1975년 홍예석축을 헤체해 기존에 있던 곳 에서 남쪽으로 15m 옮기고 새롭게 복원하였다. 부근의 200여평을 새롭게 녹지화 했다.
^ 왕복 8차로의 큰길인 동호로 건널목을 건너 완벽하게 복원된 성곽을 따라갈 수 있다.
^ 성곽에서 바라본 신라호텔.
반얀트리클럽 골프연습장으로 향하던 중 뒤 돌아본 서울 조망.. 눈 바로 앞에 보이는 산이 북악산과 뒤로 삼각산과 도봉산이 운무에 덮혔있다.
^ 반얀트리클럽 골프연습장 갈림목에 잇는 팔각정자..
^ 팔각정에서 바라본 한남동과 신사동,잠원동 일대.. 저 멀리 관악산이 운무에 가려있다..
^ 팔각정에서 바라본 남산.
^ 팔각정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등산객들.
^ 반얀트리클럽 골프연습장 외곽을 도는 나무테크 길.
해오름극장의 조각공원. 뒤로 신라호텔이 보인다.
^ 남산 N타워로 올라가는 남산 성곽길 삼거리이다.
^N타워로 올라가는 길은 한동안 가파르지만 중간에 쉴만한 곳 들이 있으므로 특별히 어려움은 없다.
^ 이끼낀 성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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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우~~~ 자네 정말 멋진 트레킹을 했구먼!!!
어릴적부터...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가 성벽으로 어떻게 도성밖 도성안으로 구별되 있었을까? 동대문옆에 있으면 언제나 정말 무척 유난히!!!^^ 궁금했더랬지~~~ㅎㅎ
7,8년전인가 서울시에서 궁궐을 있는 공원 사업을 시작한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기다려졌던 길인데, 자네가 먼저 다녀왔네 그려!!!
서울에 태여나 살면서 한양 도성의 문은 남대문과 동대문만 알고 있었지.. 서울 성곽은 봤어도
무심코 지나쳤을 뿐..
그러나 이번 성곽길을 걸으면서 도성의 門과 거기에 얽힌 사연들을 들여다 보면서
왠지 가슴이 짠 했다네.. 과거 민초들의 고충을 조금이나마 이해하고 가슴 아파했으니..
그것을 느꼈으니 성곽길 트레킹의 값진 수확이였다고 생각하네....다음에 같이 동행 하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