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메이커
김 성 문
변성현 감독의 영화 「킹메이커」를 보았다. 이 작품은 전 김대중 대통령과 그의 책사 엄창록을 모티브로 한 영화로 알려져 있다.
킹메이커(Kingmaker)는 말 그대로 왕을 만드는 사람이다. 킹메이커들은 어떤 전략으로 킹을 만들었고 어떠한 정신이 필요한가.
킹메이커라는 타이틀의 최초의 인물은 영국의 워릭 백작 리처드 네빌(Richard Neville)이다. 그는 헨리 6세를 몰아내고 에드워드 4세를 즉위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했다. 이후 에드워드 4세와의 불화로 그를 쫓아내고 다시 헨리 6세를 왕으로 즉위시켰다. 그러나 그는 결국 에드워드 4세 측의 반격으로 전사했다. 워릭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킹메이커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우리나라의 킹메이커 중에는 한명회가 먼저 떠오른다. 그는 조선 세조 때부터 성종 때까지 최강의 권력자로 군림했던 인물이다. 수양대군으로부터 “나의 장량(張良)이다.”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유명하다. 장량은 한나라 고조 유방의 책사로 활약하여 천하를 통일하는데 크게 공을 세워 유후(留侯)에 봉해졌다. 장량은 처세술이 뛰어나서 권력에 욕심이 없음을 드러내어 계속 유방에게 신임을 받았다고 한다.
한명회는 칠삭둥이로 태어나 기적적으로 건강하게 컸다고 한다. 과거에 여러 번 낙방하였으나 조선 문종 때 관직에 들어가 단종이 즉위하자 그의 인생이 바뀌었다. 수양대군의 휘하에 들어가 참모가 되어 능력을 발휘했다. 많은 깡패를 포섭하여 수양대군의 정적인 김종서와 안평대군을 제거하는 데 공을 세웠다. 나중에는 정승의 자리까지 올랐다. 그런데 갑자사화가 일어나자 한명회는 죄인으로 지목된다. 무덤이 파헤쳐지고 목이 잘리는 부관참시를 당했다.
영화 「킹메이커」에서 김운범은 세 번이나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낙선한다. 그때 김운범 앞에 선거 전략가 서창대가 찾아온다. 서창대는 함경북도 출신으로 6∙25당시 북한군 고급 하사관 출신이다.
서창대는 선거에 이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는 김운범을 강원도 인제 국회의원 보궐선거부터 전남 국회의원 선거까지 연이어 세 번이나 당선시킨다
서창대는 ‘흑색선전의 귀재’ 혹은 ‘선거판의 여우라’ 불렸다. 1971년 신민당 대통령 후보 보좌역까지 10년간 김운범의 참모로 선거를 도왔다. 공은 세우면서도 늘 그림자처럼 숨어 살아야만 했다고 한다.
“수단이 방법을 먹어버리면 안 된다.”
라고 말하는 김운범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이는 시대를 떠나 누구나 부닥칠 수 있는 만인의 딜레마다.
그림자들은 대의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지만, 그로 인해 그림자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수혜자인 킹들에 의해 암살당하는 일도 있다고 한다. 킹들의 욕망 때문이기도 하고 그림자들의 욕망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서창대는 그림자로서 김운범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또한 스스로 빛이 되기 위해 최선을 다한 것으로 보인다. 그의 욕망은 무엇이었을까.
김운범을 대통령으로 당선시키기 위해 동분서주하던 어느 날 김운범 자택에 폭발물이 터진다. 그런데 용의자로 서창대가 지목되어 수감된다. 야당 대통령 후보 집에 테러가 일어나면 여당 측은 민심이 떨어지고 야당 측은 동정표를 얻어 인기가 높아짐을 노렸다는 혐의를 받았다.
김운범은 이 시기를 서창대와의 결별의 기회로 삼았다. 그는 서창대에게 말한다.
“우리가 헤어질 때가 온 것 같군.”
서창대가 다가오는 대통령 선거에 부담으로 작용할 거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김운범이 자기를 위해 최선을 다한 서창대를 버린 것은 또 다른 욕망을 위한 포석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김운범 또한 선거에서 낙선한다.
김운범에게 용도 폐기된 서창대는 여당 쪽 킹메이커인 이 실장을 만난다. 이는 김운범의 배신에 맞서 싸울 수밖에 없는 현실의 결과이다. 서창대에게도 자기 보호를 위한 차선의 카드가 필요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 속 이 실장은 이후락을 추측하게 했다. 5공화국의 실세인 그의 역할은 대단했다. 민간인 신분으로 5·16군사정변에 가담하여 제갈량과 조조를 합친 제갈조조(諸葛曹操)로 불렸다. 제5대 대통령이 선출되자 비서실장이 되었고, 제6대 중앙정보부 부장으로 취임하여 막강한 권력을 휘둘렀다.
중앙정보부장 재임 중 밀사로 북한의 평양을 방문하여 당시 주석 김일성과 비밀회담을 하여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부정 축재자로 몰렸을 때는 정치자금을 떡에 비유하여,
“떡을 만지다 보면 손에 떡고물이 묻게 마련이다.”
라고 재산 형성을 합리화하여 이른바 '떡고물'이 회자하기도 하였다. 이 실장은 정치 활동을 규제당한 후 사망할 때까지 은거 생활을 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영화 속의 인물은 모두 사라지고, 제20대 대통령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다. 현재의 후보자들과 킹메이커들을 생각하니 옛날이나 현재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킹메이커는 오직 주군이 성공할 수 있도록 올바른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도와야 한다. 그런데 주군과 본인의 과욕으로 선거판은 가짜뉴스와 마타도어가 판을 치고 있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영화 속에서 킹메이커들은 대의를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나 킹 후보자는 “어떻게 이기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왜 이겨야 하느냐가 중요하다.”라고 말한다. 그렇다. 왜 이겨야 하는지에서 출발하면 좋겠다.
첫댓글 김성문 선생님,
킹 후보자의 왜 이겨야 하는가!
가 마음에 와 닿네요.
박 선생님! 그래요, 모두가 무엇이 본질인가를 생각하면 정의로운
사회가 될 텐데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감사합니다. ~♡
누가 대통령이 될지 관심도가 점점 떨어지네요.
그나물에 그밥이란 생각이 드니까.
열심히 작품 활동 하시니 보기 좋아요.
조 선생님! 읽어 주셔서 댕큐~♡
설 명절 잘 보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