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는 따뜻하게 줄기는 온화하게 꽃은 단출하게 한 야생화를 보면서 삶을 이렇게 하면 되겠다. 온몸의 기본은 발이다. 지금까지 걸어 온 나의 역사는 발에서 시작했다. 어린 날에 돌부리에 자주 넘어지면서 온몸이 힘들어했다. 세월이 가면서 넘어지는 형태가 다르게 변한다. 땅 위를 딛고 일어나면 될 줄 알았다. 그러나 삶은 여러 갈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오히려 여러 갈래의 뿌리가 삶을 굳건히 서게 하는지도 모른다.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해선 잔뿌리가 많아야 한다. 산 넘어 물을 건너고 비탈진 산길을 걸어오면서 고뇌와 슬픔 그리고 기쁨이 내 삶의 뿌리가 되었다. 낡은 사진첩에서 지난날 모습을 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어느 것 하나라도 다 소중하다. 현재의 결과는 살아있음이다. 좋은 일 나쁜 일 지나고 나면 모두가 소중함으로 변한다. 산속 어느 곳에서 외로워하는 사람이 아름답다. 그 적막함 속에서 하늘을 보면서 기도하는 사람이 거룩하다. 한 야생화가 눈물에 젖어도 가장 깨끗한 머리가 있다. 발끝이 물에 젖어도 가장 뜨거운 열정이 그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가슴은 온기를 조절한다. 온화하면서 굳세게 나아가는 정열이다. 그는 많은 흉터가 있으나 가슴 깊은 곳에선 따뜻한 정이 있다. 장맛비에 달이 보이지 않아도 달맞이꽃이 열고 닫는다. 궂진 날씨에도 항상 피어있는 산해박은 구름 뒤에 달빛을 더 그리워한다. 산해박은 박주가리과 백미꽃속의 여러해살이 풀이다. 주로 산에서 사는 산해박은 끈으로 묶여있는 것을 풀어준다는 어원이다. 뿌리가 실타래처럼 생겨서 끈으로 보이기도 한다. 한약재로 효능이 좋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염증을 없애준다. 발끝의 온기는 온몸을 따뜻하게 한다. 실타래처럼 엉켜있는 뿌리는 따뜻한 온기를 퍼 올린다. 줄기와 잎 그리고 꽃까지 올리기 위해선 많은 뿌리가 필요하다. 지금까지 걸어오는 길을 뒤 돌아보면 서툰 데가 많이 보인다. 소나무 옹이는 뼈속 깊이 상처를 받는다. 하지만 죽어서는 은은한 송진 향기로 남는다. 조용한 산언덕에서 읽던 책을 덮고 은은한 향기를 맡는다. 냉철한 머리로 불의를 따지기보다 따뜻한 가슴으로 받아들이기를 매일 처음인 것처럼 한다. 지상에서 모든 꽃들은 별모양이다. 지상에 빛나는 아주 작은 별은 산해박이다. 단출한 별모양을 하고 구름 뒤에 별을 보고 있다. 인생은 예행연습이 없다. 매일 실전에 응해야 한다. 지혜를 모아도 실수투성이다. 그래서 인생은 외로운 것이다. 스스로 오늘 삶 자체가 상처를 받을 수 있다. 그 많은 뿌리에서 퍼 올린 온기를 말끝까지 지키라. 나의 상처가 타인에게 은은한 향기로 퍼져 나가기를 바란다. 그 많은 흉터가 뼈속 깊게 아름다운 기억으로 자리를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