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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 영화까지 탐낸 CJ · CGV CGV의 ‘은혜’에 흔들리는 독립 영화의 독립 |
평소 압구정 CGV 아트하우스를 찾는다는 강 모(27) 씨는 대규모 상업 영화보다 ‘독립 영화’를 즐겨 본다고 했다. 다양한 형식미와 신인 배우들의 신선함을 독립 영화의 매력으로 꼽았다. 강 씨는 이날 <4등>을 보기 위해 압구정 CGV 아트하우스를 찾았다. 대학로 CGV에서 만난 대학생 박 모(22) 씨도 독립 영화를 즐겨 본다고 말했다. <비틀즈: 하드 데이즈 나이트>를 보기 위해 대학로 CGV 아트하우스를 찾은 박 씨는 “아트하우스에서 개봉하는 독립 영화들은 거의 빼먹지 않고 챙겨 본다”고 말했다.
CGV 아트하우스는 2004년 ‘인디영화관’이란 이름으로 시작했다. 규모는 작지만 웰메이드 영화를 발굴하고 상영 기회를 확대하겠다는 것이 당시 CGV가 발표한 목표였다. 이후 ‘인디영화관’은 ‘무비꼴라주’라는 이름을 거쳐 지금의 ‘아트하우스’ 22개 관으로 자리 잡았다. 강 씨와 박 씨 모두 아트하우스를 대표적인 ‘독립 영화관’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CJ의 위력
문화적 다양성을 확보하고 저예산 독립 영화들에 상영의 기회를 확대하겠다는 아트하우스의 주장과는 달리 정작 독립 영화계는 CGV 아트하우스가 독립 영화의 다양성을 저해한다고 주장한다. CJ는 CJ E&M이라는 콘텐츠 제작 회사와 CGV라는 국내 최대 극장 체인을 소유하고 있다. CGV는 아트하우스라는 다양성 영화 전용관을 갖고 있고, 같은 이름으로 다양성 영화를 수입하고 배급하는 배급사도 운영 중이다. CJ라는 거대 자본이 일반적인 상업 영화뿐 아니라 독립 저예산 영화의 제작·배급·상영을 망라하는 모든 창구를 보유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독립 저예산 영화를 찾는 관객 대부분은 CGV 아트하우스를 독립 영화를 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창구로 인식하고 있다. 거기에 인디스페이스 등 독립 영화 전용관에 대한 정부 지원이 줄어들며 예술 영화 전용관들이 줄줄이 폐관하는 상황에서 CGV 아트하우스에서 영화를 상영하지 못하면 저예산 독립 영화들은 아예 관객들을 만날 수 없는 실정이다. 독립 영화 진영의 이 같은 불만은 최근 독립 영화 흥행 판도를 보면 이해할 수 있다.
2014년 개봉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독립 영화로선 유례없는 흥행을 기록했다. 2014년에만 380만 관객을 동원한 이 영화는 2014년 다양성 영화 부문 관객 동원 1위를 차지했다. 이 영화가 2015년 연초에 동원한 95만 관객도 2015년의 다양성 영화 중 가장 많은 관객 수다. 2014년 다양성 영화 중 두 번째로 많은 42만 관객을 동원한 <신이 보낸 사람>의 10배가 넘는 수치다. 이같이 압도적인 전력 차는 개봉 스크린 수에서도 드러난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스크린 수는 806개. <신이 보낸 사람>의 배급사인 씨타마운틴픽쳐스가 확보한 스크린 286개의 세 배에 달한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의 배급사는 CGV 아트하우스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저예산으로 제작된 독립 영화지만 아트하우스가 배급을 맡으면서 어지간한 상업 영화들 이상의 스크린을 얻어 냈다. CGV는 아트하우스뿐 아니라 일반 상영관에서도 영화를 틀었다. 마케팅에서도 CGV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 그 결과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독립 영화 사상 역대 최다 관객 동원이라는 영예를 얻을 수 있었다. 문제는 CGV 아트하우스의 ‘은혜’를 받지 못한 수백 편의 독립 영화들이다.
2015년에 개봉한 독립 영화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의배급사 리틀빅픽쳐스의 대표는 흥행 실패의 책임을 지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김혜자와 최민수 등 유명 배우들이 출연했고 그에 힘입어 미디어에서도 자주 소개됐다. 평단의 반응도 나쁘지 않았다. 개봉 초기 객석 점유율도 매우 높았다. 그럼에도 상영관 수는 계속 줄어 갔다. 미디어를 통해 영화를 알게 된 관객들이 극장을 찾아도 영화를 볼 수 없는 경우가 많아졌다. 예매 시스템 역시 흥행에 도움을 주지 못했다. 보통 2주 전이면 열리는 예매 창구가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은 개봉 하루 전날에야 열렸다. 결국 영화는 기대에 못 미치는 흥행 성적을 거뒀다. 모두 CGV 아트하우스가 배급한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는 겪지 않은 일들이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와 비슷한 시기에 개봉한 <거인>도 아트하우스의 은혜를 입지 못해 흥행에 실패했다. <거인>은 평단의 호평을 받으며 국내외 영화제에서 작품상과 배우상 등을 수상했지만 관객 2만 명을 동원하는 데 그쳤다. 배급사인 필라멘트픽쳐스는 전국 77개의 스크린으로 거둔 흥행 성적이다.
이 같은 CGV 아트하우스의 ‘자사 영화 밀어주기’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차이나타운>, <무뢰한>, <소셜포비아>, <우아한 거짓말> 등 2014~2015년 CGV 아트하우스에서 상영된 다양성 영화들 중 흥행작은 대부분 아트하우스가 배급한 영화들이다. 아트하우스가 배급하지 않는 영화는 아트하우스 영화관에서 상영하더라도 관객 동원이 안 된다며 금세 내려지거나, 하루에 한 번 밤늦은 시간에 겨우 상영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독립 영화를 볼 수 있는 창구가 아트하우스 외엔 마땅치 않은 현실도 아트하우스의 위력을 키워 준다. 아트하우스에서 보이지 않으면 관객 눈에 보이지 않는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독립 영화 진영은 제작을 독립적으로 해도 배급은 아트하우스에 맡겨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아트하우스의 ‘은혜’를 입지 않으면 영화를 관객들에게 소개하지도 못한 채 막을 내릴 상황인 것이다. 한 독립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영화에 대한 기획이 나오면 일단 아트하우스에 의사를 타진하고 논의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아트하우스에서 배급에 열의를 보이지 않는다면 영화는 흥행은커녕 개봉도 어려워지기 십상인 탓이다.
독립 영화 전용관인 인디스페이스의 원승환 부관장은 “아트하우스가 배급하는 영화들이 CGV 아트하우스 스크린을 비롯해 독립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창구를 가로막고 있다”고 말했다. “CGV가 수직 계열화를 이루면서 자사가 배급하는 영화들만 스크린을 몰아주는 불공정 거래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직 계열화란 영화 산업에서 제작과 배급, 상영의 모든 분야를 한 업체가 망라하는 것을 의미한다. 미국에서는 이를 독과점으로 규정해 1940년 이래로 금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공정거래위원회가 수직 계열화는 불공정 거래라며 CGV와 롯데시네마에 각각 32억, 23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도 했다. 원 부관장은 CGV가 자사 영화에 스크린을 몰아주면서 다른 독립 영화들이 스크린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을 지적하며 “독립 영화에 관심을 보이는 관객들도 보고 싶은 영화를 볼 수 있는 극장이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저변의 확대는 관심이 있는 관객들에게 관람 기회를 보장하는 것부터 시작한다는 것이다. 원 부관장은 “국내 전체 스크린의 40% 이상을 차지한 CGV가 배급까지 관여하는 불공정 거래를 규제해야 한다”며 CGV가 영화 배급 사업에서 손을 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CGV 측은 수직 계열화 비판에 대해 오히려 이 같은 시스템으로 한국 영화 생태계 조성에 앞장서고 있다고 주장한다. 상업 영화가 중심인 한국 영화 생태계에서 신인 감독 발굴을 통한 저예산 영화의 투자 배급 마케팅을 강화해 영화 시장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것이다. CGV 관계자는 “아트하우스 사업은 수익을 내기 위한 게 아니라 사실상 사회 공헌에 가까운 사업”이라며 “수익을 도외시하고 관객들에게 접근하기 어려운 저예산 독립 영화들을 발굴해 소개하는 아트하우스에 왜 모든 독립 영화를 소개하지 않느냐고 따지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CJ가 줄 세우는 영화계
CJ 아트하우스의 수직 계열화는 영화의 배급에서 그치지 않는다. 독립 영화계를 비롯한 영화계 전체가 제작 단계부터 배급과 상영을 좌지우지하는 CGV 밑으로 수직 계열화되고 있는 모양새다. 상업 영화뿐 아니라 독립 영화마저도 CGV의 구미에 맞지 않으면 제대로 스크린을 확보할 수 없는 현실이 영화 기획 단계에서부터 자기 검열을 강요하는 셈이다. 익명을 요구한 독립 영화 제작사 관계자는 “CGV의 배급을 받지 못하면 제작비 손익도 맞추지 못하니 애초에 영화를 만들 때부터 이를 고민할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자본으로부터 독립한 영화라고는 하지만 극영화의 경우는 적지 않은 제작비가 들어갈 수밖에 없고 제작비 회수도 안 되면 계속 영화를 만들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원승환 부관장도 독립 영화의 흥행 여부가 CGV 아트하우스의 배급에 달린 현실이 계속되면 향후엔 독립 영화 제작 편수 자체가 감소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더 큰 우려는 CJ와 CGV의 영향력이 영화인을 지망하는 학생들에게까지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CJ E&M은 2011년부터 한국 영화 아카데미와 산학 협력 업무 제휴를 맺고 있다. CJ가 돈을 대 영화 아카데미 졸업생 작품의 개봉과 홍보를 지원한다.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이후에는 CGV 아트하우스가 영화 아카데미에서 만든 영화들을 배급하고 있다. 영화 아카데미는 영진위 직영인데 자신들이 만든 영화를 독과점 비판을 받는 대기업에 맡긴 상황이다. 신진 감독들의 영화 제작과 개봉을 지원하는 ‘버터플라이 프로젝트’도 CGV가 진행하는 대표적인 프로젝트다.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도 CJ E&M은 시나리오 공모 및 영화 제작 공동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3년 개봉한 영화 <도희야>가 이 공동 개발 사업을 통한 결과물이다. 이 영화도 CGV 아트하우스를 통해 배급됐다. 문제는 기존의 독립 영화 제작 배급 방식으로는 제작과 개봉이 어려운 현실에서 영화학도들도 CGV의 구미에 맞는 영화를 만드는 데 치중한다는 지점이다. 영화계 진출의 시작부터 ‘CGV용 영화’만 만들어지면서 영화계 전체의 폭이 좁아지고 있는 셈이다.
경기도 소재 한 대학에서 영화 연출을 전공하는 한 학생은 “영화과에서 한 기수가 졸업하면 절반은 영화와 관계없는 일을 하고, 남은 절반의 대부분은 영화계의 기술직이 되고, (감독으로) 입봉하는 경우는 기수에 한 명이 나올까 말까인 상황”이라면서 “어쩔 수 없는 일 아니겠냐”고 말했다. 그는 이어 “교수들도 영화제에 출품해서 상 받을 영화를 만들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말했다. 독립 영화를 제작하고 배급하는 인디스토리의 김화범 이사는 “학생들 입장에선 입봉의 기회가 주어지니까 좋은 일일 수 있지만 일종의 밀월 관계가 형성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영화들을 CGV가 선점해 가면 다양한 영화를 공급하고 싶은 다른 독립 배급사들이 곤란한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제작 현장뿐 아니라 뿌리까지 CJ와 CGV의 영향력 아래에서 ‘CGV용’ 영화를 만들도록 통제되고 있는 셈이다.
CGV는 정말 독립 영화를 지원하는가
CGV 아트하우스 측은 저예산 독립 영화를 지원하기 위한 노력을 색안경 없이 봐 달라는 입장이다. 매년 수십 억 원씩 적자를 보면서도 아트하우스 운영을 지속하고 있는 건 다양한 영화를 발굴하고 지원하겠다는 사회 공헌 노력이라는 주장이다. CGV 관계자는 “기계적으로 모든 독립 영화를 상영하는 것과 관객이 들 수 있는 영화들에 상영의 기회를 좀 더 주는 방식 중에 선택할 문제”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다양성 영화는 어렵다는 관객들의 선입견을 깨고 상업적으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사례를 만드는 일을 아트하우스가 하고 있다”며 아트하우스의 사회적 역할을 강조했다. 그는 “극장 수익의 3%를 진흥 기금으로 가져가는 영진위에서 해야 할 일을 아트하우스가 대신하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아트하우스가 독립 영화 상영과 배급을 시작한 이후 관객 동원 총량이 증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독립 영화의 파이 자체는 커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원승환 부관장은 이 ‘커진 파이’가 “독립 영화 진영 전체의 것은 아니”라고 반박한다. “우리나라 영화 시장에 없었던 중급 규모 영화 시장을 틈새시장으로 판단한 CJ의 진출에 따른 것일 뿐”이란 주장이다. 원 부관장은 그 근거로 ‘인디영화관’ 시절부터 독립 영화의 상영관 수를 좀 더 늘리고 관객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요청했을 때는 모른 척하다 자사가 배급 사업에 뛰어들자 영화관 규모를 점차 확대하고 있는 행태를 들었다. 아트하우스의 독립 영화 배급과 지원은 자사의 이익 창출을 위한 새로운 시장 진출일 뿐 CGV 측 주장처럼 영화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사회 공헌 사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압구정 CGV 아트하우스 관객 강 씨가 관람한 <4등> 역시 CGV 아트하우스가 배급하는 영화다. 독립 영화로 볼 수 없는 영화들을 아트하우스 상영관에서 틀면서 생색을 내는 경우도 있다. 민규동 감독의 <끝과 시작>, 이재용 감독의 <뒷담화> 같은 영화들은 독립 영화가 아니지만 아트하우스에서 상영됐다. 흥행이 어느 정도 보장된 상업 영화들을 독립 영화로 포장해 상영 편수를 채우고 생색만 내려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원승환 부관장은 독립 영화의 기준을 “영화 제작과 배급에 투여되는 자본의 출처와는 별개로 영화를 만드는 사람이 자본에 고용된 것인지 자발적인 것인지 여부로 삼는다”고 말했다. 그 기준에서라면 지금과 같은 현실이 지속돼 CGV의 영향력이 더욱 커진다면 독립 영화는 사라지게 된다. 김화범 인디스토리 이사는 현재 독립 영화 진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영화를 만든다기보다는 운동의 입장에 더 가깝다고 말했다. 독립 영화의 생존 방식 자체가 획기적인 방향으로 개선되지 않으면 거대 기업의 입김에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워커스10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