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모 대학에서 총망 받는 우리 말 연구 국문학도 학생이
졸업 논문 준비 차 16세기 우리 언어가 가장 잘 보존되고 있다는 안동지방으로 언어 연구 여행을 내려갔습니다.
안동사람은 양반 체통으로 당체 서울에 수 십 년 살아도 서울 말 사용을 낮 부끄럽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이 존재 합니다.
더욱이 경북 북부지방은 아직도 태어나 열차 구경 한번 하지 못한 할머니가 존재 할 정도로 낙후 된 지역으로서 타지방 사람들의 왕림이 매우 적은 지방입니다.
그러한 연유로 16세기경 순수한 우리 언어들이 오염되지 아니하고 잘 보존된 지방으로 알려진 곳이기도 합니다.
국문과 학생이 녹음기와 노트북을 들고 학가산 아래 산골 마을로 헉헉 올라가는데 때 마침 골짜기 삿갓배미 작은 논에서 누렇게 익은 나락을 베던 허리 굽은 ㄱ자 늙으신 할아버지 한분을 만났습니다.
올 커니! 저 할아버지에게 순수 우리 사투리를 몇 마디 물어 보아야겠다 하고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하고 학생이 소리치자
ㄱ자 굽은 허리를 더 굽혀 나락을 베시던 할아버지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지보고 뭐라 캐닛껴?“
"예 할아버지 저는 대학에서 우리말을 연구하는 학생입니다.“
“근데요?”
“우리 언어 연구차 산골에 왔습니다.
"대핵교에서 말도 연구하시닛껴?“
"그럼요 세종대왕님이 발명한 위대한 한글을 우리 젊은이들이 잘 연구 보존해야지요,
할아버지 질문이 있습니다만 이 지방에서는
갑자기
-----
라는 말을 어떻게 표현 합니까?"
국문과 학생은 나락 논에 ㄱ자 할아버지를 보고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자
할아버지는 날이 퍼렇게 선 조선낫을 ㄴ자로 논바닥에 놓고는 한참을 생각하시더니 이렇게 대답 하셨다.
"곽-악제 물으니 몰씨더..!"
"생각이 안 나세요?"
"논에 나락 베는 늙은이 보고 그래 곽-악제 물으니 몰씨더만... "
할아버지는 미안스럽다는 듯이 낡은 밀 집 모자를 벗어 툭툭 털고 다시 쓰셨다.
“그럼 할아버지
빨리
---
라는 말은 이곳에서는 뭐라 합니까?"
"빨리요?...그것도 퍼-득 생각이 안 나니더“
“빨리도 모르십니까?..예를 들어서 그럼 할아버지가 손자보고 햄버거 하나 빨리 사 오노라!
하 실 때 상황을 생각하시면 떠오르실 것입니다.
“그전에 막걸리 심부름은 많이 했니더만 햄버거는 뭔지 몰라도 여긴 없니더 그카고 손자들은 다 객지에서 살고...아무튼 퍼-득 생각이 안 나니더”
마이크를 할아버지 입에 가깝게 되고 녹음까지 했지만 국문과 학생과 할아버지는 당체 질문이 서로 통하지를 아니했다.
“그럼 할아버지
괜히
---
라는 말도 이 지방 사투리나 방언으로 뭐라고 하시는지 모르십니까?“
“글세요...맹엥 학생이 이 깊은 산골 마을에 맥지 돌아다니면서 녹음까지 하겠습니까마는
그 말도 당체 생각이 안 떠 오르니더!“
그때다 학생 핸드폰 벨 소리가 울렸다.
“할아버지 잠깐만요..핸드폰 쫌 받을 게요”
“게 안니더 얼른 받으소”
“여보세요...아 밍키 누나?.
“응...쁘티꼬송에서 디너하고 지금 고모 집에 간다고?”
“뭐라구? 고모네 다음 주에 비바페밀리 아파트 한 채하고 힐스테이트 아파트 한 채 팔고 타워 패빌스로 이사 간다구?..고모부 앞으로 로데오거리 바로 앞에 이자녹스 쟈이도 있잖아!”
“팔았어? 응 알았어. 그런대 누나 넥스위크에 스타퍽스 모임에 나 갈 거야?”
“왓? 네츄럴 라이프 퓨젼 식당으로 장소 체인지했다구?..그래? 나 인폼 못 받았지!”
“그게 뱅뱅 거리 어디쯤이냐?”
“월스트리트 이스트르트 학원 백사이드에 있다구?”
“거긴 갠터키 후라이드 치킨 있는 곳이잖아 ....뭐라구? 그 치킨 샵 돌아서 가면 썸레스트 원룸이 보이고 바로 프론트사이드에 있다구?”
“응 알었어 그런대 밍키 누나 그날 모임 때 내 걸 프랜드 인바이트 해도 돼? 같이 쪼인하고 싶대”
“이쁘냐구?..그럼! 베리 푸리티 하고 소 Q 냐! 에스 라인이 판타스틱하지”
“지금 어디냐고?”
“안동인데... 순 깡 촌이냐..”
“뭐라구? 얼굴 탄 다구?..돈 워리 어바우릿 벌써 라네즈옴 썬불럭 로션 발랐지”
“참 밍키누나 내 원룸 일렉 도아키 체인지한 거 알아? 퍼팩트 세뀨리티 회사 제품으로 바꾸었어 시그릿 넘버는 트리풀 세분이야 럭키하지?”
“인 아웃 때 메모리하기 싶도록 그냥 트리풀 세분으로 해두었어”
“뭐?..오늘 코스닥 나스닥 다 올랐어?..그럼 지난 달 펀드 인베이스맨트 한 것 짱이네!”
“그럼 이베르 오기 전에 나에게 준머 스타딕 한 대 사 줄꺼야?”
“쇼 핸드폰 사준다고? 지난번 애니콜로 바꾸었잖아”
“뭐? 또 체인지 하라구?..”
“비보이들이 사용하는 뉴모델 있다구?”
“뭐? 컬러홀릭하는 모델이라구?”
“멀티 콤뮤니게이션 되는 거야?”
“와우! 찍인다!.”
대학생이 핸드폰으로 이야기가 길어지자 할아버지는 가만 가만 벼 이삭에 붙은 메뚜기 한 마리를 잡았고...그러자 건너 편 산 쪽에서 한 무리 가을 고추잠자리가 편대를 이루면서 날러왔다.
산 아래 쪽에서 컹컹 똥개 우는 소리가 밤나무 숲으로 건너가서 후다닥 메아리를 타고 다시 돌아오기도 했다.
가을 하늘에는 조선시대나 지금이나 높고 푸르고 얇은 새털구름이 나란히 줄로 떠 있었다.
우리말을 연구하러 내려 온 대학생은 핸드폰으로 계속 이야기를 이어갔다.
“오께이 밍키누나 서울 올라가서 봐”
“아니 내일 까지만...촌마을 한두 곳 라운딩하구 레포트는 낵스먼스야”
“뭐? 아이쇼핑하러 이게부꾸로 다시 간다구?”
“비즈니스 탈꺼야? 이코노믹 탈꺼야?
“마일레이지로 인업프 하다구?”
“짱이네”
“오게이”
“바바이!“
핸드폰으로 한참을 속삭이는 국문학도를 할아버지는 덤덤히 듣고 계셨다.
이윽고 국문학도생이 핸드폰을 접자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국문학도생에게 궁금한 듯이 이렇게 물었다.
“방금 미국사람하고 통화했닛껴?...젊은 분이 꼬부랑말을 언간이 잘 하시니더”
“네에??”
“근데 시장 듣고 보이 맹엥 코쟁이 말도 어떤 것은 우리 말 비스므리하이더만!”
할아버지는 조금 전까지 대학생이 영어로 이야기한 줄 알고는 진심으로 탄복하시고 있었다.
“할아버지 영어도 아세요?”
”지는 영어 모르지요..아직 태어나서 코쟁이는 한 번도 못 봤니더..태어나서 학생 덕분에 오늘 코쟁이 말은 처음 듣니더만!“
“할아버지 ...저 방금 우리말로 이야기 했는데요?”
“그게 우리 말잇껴? 전부 셀라셀라하니 내사 코쟁이 말인 줄 알았는데....”
“아니지요..우리 누나하고 통화했거던요..”
“이상타!..가는 귀가 살짝 먹어선지... 내 귀에는 전부 꼬부랑말로 듣기던데...”
그때다
삿갓배미 나락 논 아래쪽에서 뜸부기가
“뜸북뜸북”
울기 시작했다.
“할아버지 저 새는 무슨 새 입니까? 참 신기하게 우네요”
“논 뚜베이에서 우는 뜸부기씨더”
‘뜸부기?...우리 집에는 외국서 비싸게 사 온 앵무새가 있는데...그런대 할아버지 뚜베이는 무슨 말이세요?.“
“뚜베이도 모르닛껴?..논 뚜베이 밭 뚜베이..”
고개를 갸우뚱 하면서 다시 국문학도생의 질문이 시작되었다.
"할아버지 그럼 이 지방에서
"바보스런 사람“
을 뭐라고 합니까?”
"바보요? 바보는 그냥 바보라카니더만..“
“사투리로요..”
“죄송하이더.. 보다 싶이 멧골에서 나락농사만 짓다보이...당체 배운 게 없고....
우리 메이는 눈으로 보면 영판 사람이지만 머리는 마카 쪼데기나 마찬가지씨더. 그렇타보이 대학에서 많이 배운 학생 분이 이렇게 산골까정 찾아다니면서 나 같은 다 늙은이 잡고 질문을 해도 뭐 아는 게 있닛껴? 아는 게 없니더! 순 터구지요!“
할아버지는 어려운 외국어로 유창하게 핸드폰으로 대화를 하던 대학생 질문에 단 한 가지도 답을 못하는 자신을 진심으로 부끄럽게 생각하셨다.
"할아버지는 우리 말을 너무 모르시네요...할 수 없지요 그럼 할아버지 끝으로 한 가지만 더 물어 보겠습니다. 이 너머 산 마을 이름을 뭐라 합니까?"
"저 너머 마실 이름요? 너리티라 카니더"
"너리티?"
"왜 너리티라고 합니까?"
"옛날부터 너리티랏꼬 했니더"
"그래요?..'너리티" 라는 말이 무슨 말에서 연유 된지 모르십니까?"
"잘 몰씨더만..맹 먹고살기 힘들 때 이 산골짜기에 넓은 터가 있어서 사람들이 들어와서
------
땅 파먹고 안 살았을실껴?"
"그렇겠지요..넓은 터가 있으니 마을이 형성 되었겠지요 그래도 마을 이름을 "너리티"라고 부르게 된 최초의 유래가 있을 것 같은데 모르시겠습니까? 너리티가 한자어에서 유래 되었다던가..."
"내사 그건 몰씨더 왜 너리티라카는지..."
국문학도생은 할 수 없이 나락 논에서 일하시는 할아버지와 대화를 포기하고
“할아버지 너리티 마을은 어디로 가야 합니까?”
그러자 할아버지는 손으로 서편 산 고개 쪽으로 보시면서
‘저짝에 산 뚜베이로 올라가는 길보이지요?“
“예...등 굽은 소나무 있는 저 쪽 말이지요?”
“예..그 산 만데이를 넘어서면 너리티 마을이 보이니더..거기 가봐야 할매들 뿐이씨더”
“왜요?”
“젊은이는 마카 객지로 갓삣꼬.. 영감쟁이들은 벌써 다 죽었뿟고..빈집 투성있시더”
그래도 학생은 너리티 마을로 들어가서 더 조사를 할 작정으로 가파른 너리티 산 고개를 넘어갔다.
헉헉 이마에 땀을 솥아 내면서 고개를 넘어 선 학생은 저 만치
“너리티” 마을이 보이자 혼자
"아 그 할아버지 우리 랭귀지 센스가 전혀 없네.. 저러니 이 산골에서 땅 파먹고 살지! 어서 너리티 할머니들에게 가서 물어보자!“
혼자 중얼거렸다.
사실 답답한 사람은 산골에서 고추농사 짓고 사는 할아버지가 아니고
바로 큰 돈 들여서 국문학을 연구하는 학생이다.
왜야하면 할아버지는 이미 학생들 질문에 답을 다 하셨기 때문이다.
다시 뜸부기가 할아버지 작은 삿갓배미 논에서 뜸북뜸북 울기 시작했다.
한 무리 새털구름은 변함없이 학가산 정상 하늘 위쪽에
“ㄱ, ㄴ, ㄷ, ㄹ.....을 그리면서 질서정연하게 둥둥 떠가고
어디선가 세종대왕님 통곡소리가 구슬피 들리기 시작했다.
긑.
꼬랑지
구름아 그름아 하는 넘이 한글날을 맞아서 페러디를 하나 만들어 보았다.
세종대왕님은 어려운 한자 언어에 고생하는 우리 민족을 위하여 참으로 아름답고 위대한 한글을 만들어 최초로 문자 사대주의를 탈각시킨 지혜로운 임금님이시다.
한글이 겨우 꽃 피우는가 하더니 다시 서양 문물이 경제바람을 타고 건너오자 우리는
줏대나 주변머리도 없이 아름다운 우리말을 버리고 너도나도 서양 사대주의 언어에 물이 들어 이제 우리 언어는 하나 둘 잊혀 가는 세월이다.
요즈음 서울 시내 간판을 처다 보면 당체 우리말이 얼마나 심각하게 오염 되었는지 이해가 금방 가는 세월이다.
국영 방송도 그렇고 신문 언론들도 만찬가지다.
어려운 영어 단어를 나열한 논문은 점수도 많이 받고 언론도 밤낮으로 생 꼴값을 떨었다.
우리말을 가장 갈고 빛내야할 문인들도 그저 우리말로 토착한 어려운 중국어 문맥을 허세로 사용하고 심사하는 이들은 한 술 더 무지몽매로 그런 문장에 점수를 더 주고 문학이네 거들 먹을 떨었다.
전반적으로 학력이 낮은 층 보다 높은 층이 우리 말 천시에 더 야단들인 세월이다.
필자는 오랜 외국 생활로 국어/영어/일어/불어를 할 줄 알고 서울에서도 제법 살아 온지 오래지만 일반 생활 대화에는 고향사투리를 그대로 사용하는 사람이다.
아들이 초등학교 시절 학교에서
“외국서 살다가 온 아이가 우리말도 제 되로 못하면서 경상도 사투리를 사용하니 큰일”
이라면서 선생님이 학부형인 나를 호출 하신 적이 있다.
외국어를 마구 썩어 쓰는 아이들은 선생님이 탓 하지 아니하시고
순수한 사투리를 썩어 쓰면 호통 치고 부모 호출이 이루어지는 참 어이없는 세상이다.
우리말은 그렇게 천대를 받는 세월이다.
이제 그나마 깊은 산골 노인들이 다 돌아가시면 오염되지 않은 순수한 우리말도 점점 외래어에 밀려서 사라질 것 같다.
젊은 이들이 많이 모이는 명동을 나가 보았다.
간판이 요란하다.
한 마디로 영어 간판만 존재하고 우리 말 간판은 어디로 갔는지 안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