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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4월 8일 수요일
[(백) 부활 팔일 축제 수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베드로 사도가 자선을 청하는 불구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쳐 준다(제1독서).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 나누어 주시자 마침내 눈이 열려 그분을 알아본다(복음).
제1독서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 사도행전의 말씀입니다. 3,1-10
그 무렵 1 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세 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는데,
2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였던 사람 하나가 들려 왔다.
성전에 들어가는 이들에게 자선을 청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그를 날마다 ‘아름다운 문’이라고 하는 성전 문 곁에
들어다 놓았던 것이다.
3 그가 성전에 들어가려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자선을 청하였다.
4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나서,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
5 그가 무엇인가를 얻으리라고 기대하며 그들을 쳐다보는데,
6 베드로가 말하였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7 그러면서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켰다.
그러자 그가 즉시 발과 발목이 튼튼해져서
8 벌떡 일어나 걸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였다.
9 온 백성은 그가 걷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는 것을 보고,
10 또 그가 성전의 ‘아름다운 문’ 곁에 앉아 자선을 청하던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경탄하고 경악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빵을 떼실 때에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4,13-35
주간 첫날 바로 그날 예수님의 13 제자들 가운데 두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순 스타디온 떨어진 엠마오라는 마을로 가고 있었다.
14 그들은 그동안 일어난 모든 일에 관하여 서로 이야기하였다.
15 그렇게 이야기하고 토론하는데,
바로 예수님께서 가까이 가시어 그들과 함께 걸으셨다.
16 그들은 눈이 가리어 그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17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걸어가면서 무슨 말을 서로 주고받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은 침통한 표정을 한 채 멈추어 섰다.
18 그들 가운데 한 사람, 클레오파스라는 이가 예수님께,
“예루살렘에 머물렀으면서 이 며칠 동안 그곳에서 일어난 일을
혼자만 모른다는 말입니까?” 하고 말하였다.
19 예수님께서 “무슨 일이냐?” 하시자 그들이 그분께 말하였다.
“나자렛 사람 예수님에 관한 일입니다.
그분은 하느님과 온 백성 앞에서,
행동과 말씀에 힘이 있는 예언자셨습니다.
20 그런데 우리의 수석 사제들과 지도자들이 그분을 넘겨,
사형 선고를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시게 하였습니다.
21 우리는 그분이야말로 이스라엘을 해방하실 분이라고 기대하였습니다.
그 일이 일어난 지도 벌써 사흘째가 됩니다.
22 그런데 우리 가운데 몇몇 여자가 우리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그들이 새벽에 무덤으로 갔다가,
23 그분의 시신을 찾지 못하고 돌아와서 하는 말이,
천사들의 발현까지 보았는데
그분께서 살아 계시다고 천사들이 일러 주더랍니다.
24 그래서 우리 동료 몇 사람이 무덤에 가서 보니
그 여자들이 말한 그대로였고, 그분은 보지 못하였습니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26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27 그리고 이어서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다.
28 그들이 찾아가던 마을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예수님께서는 더 멀리 가려고 하시는 듯하였다.
29 그러자 그들은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
저녁때가 되어 가고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하며 그분을 붙들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묵으시려고 그 집에 들어가셨다.
30 그들과 함께 식탁에 앉으셨을 때,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31 그러자 그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에게서 사라지셨다.
32 그들은 서로 말하였다.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경을 풀이해 주실 때
속에서 우리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
33 그들이 곧바로 일어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보니 열한 제자와 동료들이 모여,
34 “정녕 주님께서 되살아나시어 시몬에게 나타나셨다.” 하고 말하고 있었다.
35 그들도 길에서 겪은 일과 빵을 떼실 때에
그분을 알아보게 된 일을 이야기해 주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랑하는 이가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되고 위로가 됩니다. 특별한 말이나 행동보다 그저 함께 있어 주는 것이 가장 큰 위로일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런 위로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만 우리가 그분을 알아 뵙지 못할 뿐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스승을 잃고 모든 희망이 무너진 제자들은 무거운 발걸음으로 엠마오로 향합니다. 무덤이 비었다는 소식조차 그들에게는 더 큰 혼란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슬픔에 빠져 있는 제자들에게 다가가셔서 성경을 설명해 주시고, 식탁에서 빵을 떼어 주셨습니다. 그때 비로소 제자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되풀이되는 중요한 낱말은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루카 24,25)라고 하시고, 제자들은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 마음이 타오르지 않았던가!”(24,32)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마음’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깨닫고 이해하는 능력을 뜻합니다. 곧 부활은 말씀과 성체 안에서 그분의 현존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 또한 삶의 무게와 슬픔 때문에 주님을 알아 뵙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곁에서 ‘함께 걸으시는 분’이십니다. 고통을 없애 주시기보다는 함께 지시고, 평화를 위하여 우리와 함께 일하시며, 세상의 어둠 속에서 헤매는 우리에게 빛이 되어 주십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자세는 제자들처럼 “저희와 함께 묵으십시오.”(24,29) 하고 주님을 붙잡는 것입니다. 주님의 현존을 체험할 때, 우리의 마음은 다시 뜨거워지고 삶은 새로운 의미로 채워집니다. 언제나 당신 백성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를 구해 주리라”(예레 1,8).(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말씀과 성체를 통해 우리 안에 머무시는 부활하신 주님!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참으로 은혜롭고 감동적인 성삼일과 부활절 축제를 만끽했습니다. 주님 부활은 연중 가장 큰 축제이므로 한 번 만 경축하지 않습니다. 8일간 축제를 이어갑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우리 교회 전례는 장장 한 달 이상 부활의 기쁨과 환희를 즐깁니다.
어제는 공동체 엠마오 소풍을 다녀왔습니다. 호젓한 산책로를 걷는데, 때맞춘 바람에 꽃비가 내렸습니다. 그렇게 꽃길을 걸으면서 이천 년 전 엠마오를 향해 길을 가던 두 제자가 만난 예수님의 얼굴을 떠올렸습니다.
스승님의 부재로 인해 실망과 낙담에 빠진 두 제자에게 친절하고 자상하게 말씀을 나눠주신 주님을 기억합니다. 계속되는 부활 시기, 말씀 안에 살아 숨 쉬고 계시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 거듭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날이 저물자 어느 집에 들어가신 예수님께서는 식탁에 앉으셔서, 제자들에게 빵을 들어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나누어주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최후의 만찬에 이어 다시 한번 성찬례를 거행하신 것입니다. 기쁨 충만한 부활 시기, 성체 안에 살아계시며, 성체를 통해 매일 우리에게 오시는 주님을 만나 뵈야 하겠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우리의 부활하신 주님은 아니 계신 곳이 없는 분이십니다. 파릇파릇 피어오르는 여린 새싹과 초목의 부드러움 안에 생명의 주님께서 현존하십니다. 우리가 매일 마주치는 동료 인간들 안에서 굳건히 현존하시는 주님이십니다.
엠마오 길의 제자들과 오늘 우리에게는 성경과 성찬례! 두 가지가 다 필요합니다. 성경은 그들의 무뎌진 마음에 불을 지폈으며, 성찬례는 그들의 이해하지 못하는 무능력을 없애 주었습니다.
성경 말씀들이 부활 사건에 비추어 풀이되고, 성찬의 식사가 거행될 때, 오늘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의 현존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활활 불타오르게 될 때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이 특별한 장면은 이천 년 세월이 흐른 지금도 지구촌 방방곡곡에서 매일의 성체성사 안에서 쉼 없이 재현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예수님의 고귀한 몸인 성체는 오늘도 나눠지고 쪼개어져 우리 손으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그 옛날 엠마오 길의 제자들에게 하신 똑같은 모습으로 친히 빵을 떼어 나눠주신다 생각하고, 지극히 정성스러운 몸과 마음으로 영성체에 임해야겠습니다.
무관심하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다양한 분심이나 불신 속에 성체를 영한다면, 지극히 거룩하신 성체는 그야말로 돼지 발의 진주로 전락할 것입니다. 그저 한 조각 밋밋하고 영양가없는 빵 한조각뿐일 것입니다.
굳센 신앙으로, 확고한 믿음의 마음으로, 이 성체가 그분 현존의 표지이자 그분 자체임을 굳게 믿으며, 이 성체가 나를 거룩한 영적 존재로 변화시키고 성장시켜줄 영약으로 여기며, 정성껏 영성체에 임할 때, 2천년전 엠마오 길의 제자들이 체험했던, 그 뜨거움이 오늘 우리의 것이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 눈이 활짝 열려 우리 인생 여정 가까이 항상 현존하시고 동반하시는 주님의 존재를 알아보게 될 것입니다. 동료 이웃들 안에 항상 숨쉬고 살아계시는 주님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부활 신앙에 이르는 성경 읽기 방법
전삼용 요셉 신부님
성경 제대로 읽는 법: 부활 신앙에 이르게 하라! "아, 어리석은 자들아! 예언자들이 말한 모든 것을 믿는 데에 마음이 어찌 이리 굼뜨냐? 그리스도는 그러한 고난을 겪고서 자기의 영광 속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니냐?" (루카 24,25-26)
부활하신 주님을 찬미합니다! 오늘 우리는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와 함께 걷고 있습니다. 그들은 부활의 소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절망에 빠져 고향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왜 그들은 주님의 제자들이었으면서도, 그리고 빈 무덤의 소식을 들었으면서도 믿지 못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성경을 '나의 눈'으로만 읽었기 때문입니다.
왜 성경을 읽으면서도 주님을 몰라보는가: 자기중심적 해석의 늪 유다인들은 성경을 사랑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성경의 주인공이신 예수님이 오셨을 때 그분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났을까요? 이 모든 오류의 공통점은 '자기 위주로 성경을 해석하려 한 것'입니다.
한 철학적인 우화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어두운 밤에 가로등 밑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던 행인이 물었습니다. "무엇을 찾으십니까?" "열쇠를 잃어버렸습니다." 행인이 함께 찾아주었지만 열쇠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행인이 다시 물었습니다. "정확히 어디서 잃어버리셨나요?" 그러자 그 사람이 어두컴컴한 골목 끝, 십자가가 서 있는 쪽을 가리키며 말했습니다. "저기 구석진 곳입니다." 행인이 황당해서 물었죠. "그런데 왜 여기서 찾고 계십니까?" 그 사람이 대답했습니다. "거기는 너무 어둡고, 여기는 가로등이 있어 밝으니까요."
유다인들이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성경은 하느님이 '낮고 천한 곳', '고통받는 십자가'에서 일하신다고 예언했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자신들이 보기에 밝고 화려한 곳, 즉 승리와 번영이라는 '나의 욕망'의 가로등 밑에서만 메시아를 찾았습니다. 내가 보고 싶은 하느님만 찾으려 할 때, 성경은 진리가 아니라 나를 정당화하는 '잔소리'가 되고 맙니다.
성경은 예언의 성취이며 가슴을 뜨겁게 하는 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엠마오로 가던 제자들에게 "모세와 모든 예언자로부터 시작하여 성경 전체에 걸쳐 당신에 관한 기록들을 그들에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루카 24,27). 성경을 읽는 올바른 방식은 '나의 욕망'을 버리고 '예언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었는가'를 보는 것입니다. 구약은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되는 예언이고, 신약은 교회를 통해 우리 삶에서 성취되는 사건입니다. 예언의 성취가 우리 가슴을 뜨겁게 합니다.
2세기 교회 학자인 성 유스티노(St. Justin Martyr)는 진리를 찾아 헤매던 철학자였습니다. 그는 플라톤 철학에 심취했지만 가슴은 늘 공허했습니다. 어느 날 해변을 걷다 한 노인을 만났는데, 그 노인은 유스티노에게 이렇게 일갈했습니다. "철학자들은 진리를 추측할 뿐이지만, 예언자들은 성령에 사로잡혀 진리를 직접 보고 기록했소. 그들의 말이 어떻게 성취되었는지 보시오."
유스티노는 즉시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수백 년 전 예언자들이 말한 '고통받는 종'의 모습이 나자렛 예수의 십자가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성취된 것을 목격하는 순간, 그의 가슴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는 『유다인 트리폰과의 대화』에서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그 노인의 말을 듣자마자 내 영혼에는 즉시 불이 타올랐습니다. 예언자들과 그리스도의 친구들에 대한 사랑이 나를 사로잡았습니다. 나는 비로소 이 철학만이 안전하고 유익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는 성경의 예언이 실재임을 깨닫고, 그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기쁘게 목숨을 바쳤습니다. (출처: 성 유스티노, 『유다인 트리폰과의 대화』 제8장)
현대에도 이런 일이 계속 일어납니다. 미국의 유명한 신학자 스콧 한은 원래 가톨릭을 싫어하던 개신교 목사였습니다. 그는 성경을 누구보다 열심히 공부했고 '오직 성경'만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서학을 깊이 파고들수록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탈출기의 '파스카 어린양'의 예언과 요한 묵시록의 '천상 잔치'가 역사 속 어디에서 성취되고 있는지 찾을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호기심에 가톨릭 미사에 참석했습니다. 사제가 빵을 들어 올리며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라고 선포하는 순간, 그는 벼락을 맞은 듯 전율했습니다. 수천 년 전 구약의 제사와 예언이 지금 이 제대 위에서 빵의 형상으로 실재(Real Presence)가 되어 성취되고 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는 고백했습니다. "나는 성경을 읽어왔지만, 미사 안에서 성경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처음 보았습니다. 예언은 글자가 아니라 성체라는 살점이 되어 내 앞에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명예와 직업을 버리고 가톨릭으로 회심했습니다. 그에게 성경은 더 이상 연구 대상이 아니라, 미사를 통해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 '살아있는 잔치'가 되었습니다. (출처: 스콧 한, 『어린양의 제사』 1999)
이번 부활 시기, 우리도 엠마오의 길을 걸읍시다. 성경을 펴서 예언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시다. 내 자존심과 욕망의 안경을 벗고, 예언의 성취라는 사랑의 렌즈로 성경을 보십시오. 구약은 예수님에 의해 완성되지만, 신약은 교회, 곧 우리에 의해 완성됩니다. 성경의 가장 완벽한 해석은 우리 ‘부활에 대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목숨을 내어놓을 수 있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직책을 맡아서 참석하는 모임이 있습니다. 북미주 사목 사제 협의회 대표를 맡아서 5월에는 샌프란시스코로 가야 합니다. 올해는 북미주 사목 사제 협의회 설립 60주년이 되는 뜻깊은 해입니다. 서울 대교구 사제 모임 대표를 맡아서 6월에는 콜롬비아 보고타에 가야 합니다. 미국을 떠나서 하는 첫 번째 사제 모임입니다. 주님께서 이끌어 주시고, 보고타에 있는 신부님이 열정과 헌신을 다해 준비하니 잘될 겁니다. 10월에는 중남부 사제 모임이 있어서 피닉스로 가야 합니다. 중남부는 텍사스, 콜로라도, 애리조나, 캔자스, 미주리, 멕시코 시티까지 아우르는 지역입니다. 먼 길을 기쁜 마음으로 참석하는 것은 이 모임이 좋기 때문입니다. 형제 사제들이 모여서 정을 나누기 때문입니다. 강의 부탁을 받아서 가는 모임도 있습니다. 지난 대림에는 멤피스 한인 성당엘 다녀왔습니다. 이번 사순에는 타코마 한인 성당엘 다녀왔습니다. 저를 필요로 하는 공동체가 있으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다녀왔습니다.
올해는 ‘특별한 만남’도 있었습니다. 지난 2월 23일에 엘파소엘 다녀왔습니다. 작년까지는 서울 대교구 신부님이 있었는데 사정이 생겨서 한국으로 가야 했습니다. 평균 연령이 76세인 공동체는 한국말 미사와 고백성사를 원했습니다. 서울 대교구 신부님이 있을 때 저는 두 번 방문했었습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 제게 미사와 고백성사를 부탁했습니다. 어르신들은 저를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던 길에 제자들이 주님을 모시고 맛있는 식사를 했던 것처럼 저도 어르신들이 정성껏 준비해 주신 음식을 맛있게 먹었습니다. 베드로 사도가 걷지 못하는 사람에게 ‘나는 금도 없고, 은도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십시오.’라고 말했을 때 걷지 못하던 사람은 걸을 수 있었습니다. 저도 큰 능력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르신들을 위해서 고백성사와 성체성사를 할 수 있어서 감사했고, 행복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5월에도 찾아뵙기로 했습니다. 마리아가 엘리사벳을 방문했던 그 마음처럼 저도 기쁜 마음으로 방문하려고 합니다.
지난 3월 9일에는 오스틴엘 다녀왔습니다. 한국인 사제가 없는 성당입니다. 그동안 한국인 부제님이 있어서 강론을 해 주었다고 합니다. 부제님이 사정이 생겨서 다른 곳으로 가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번 사순 시기를 지내면서 제게 고백성사, 특강, 미사를 부탁했습니다. 저와 특별한 인연이 있는 공동체는 아니었습니다. 공동체에 있는 한 자매님이 예전에 한국에서 저를 보았다고 합니다. 당시 제가 복음화 학교 담당 사제였을 때 학생으로 보았다고 합니다. 자매님은 제가 달라스에 있는 걸 알았고, 이렇게 부탁하였습니다. 오스틴은 자동차로 3시간만 가면 되는 비교적 가까운 거리여서 기쁜 마음으로 가겠다고 했습니다. 오스틴 공동체도 저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1986년에 시작된 오스틴 공동체는 올해로 40년이 되었습니다. 복음을 전하시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부족하구나, 일꾼을 청하여라. 다른 마을에도 복음을 전하러 가야 한다.’ 직책 때문에 모임을 다녀오기도 했고, 성지순례를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엘파소와 오스틴의 모임은 특별히 저를 필요로 했던 모임이기에 더욱 감사했고, 보람 있었습니다.
엠마오로 가는 길은 우리가 하느님 나라를 향해 가는 길과 비슷합니다.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에게 엠마오는 더 이상 의미도 가치도 없어졌습니다. 그들에게는 이제 예수님께서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과 함께라면 그곳이 언제 어디서이든지 엠마오가 되는 것입니다. 본당 신부로 있어도, 학교 교수 신부로 있어도, 교구청에 있어도, 병원의 원목으로 있어도, 교포 사목을 해도, 선교 사제로 있어도 예수님과 함께하지 않는다면 그곳은 엠마오가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듣고 변화된 삶을 살아간다면 그곳은 바로 엠마오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추구하는 하느님 나라도 어쩌면 그와 같을 것입니다. 돈으로, 명예로, 권력으로 가는 곳이 아닙니다. 오늘 내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변화된 삶을 산다면 내가 있는 이곳이 바로 하느님 나라입니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오늘의 성인
성녀 율리아 빌리아르(Julia Billiart)
활동년도 : 1751-1816년
신분 : 설립자
지역 : 나무르(Namur)
같은 이름 : 줄리아, 쥴리아
부유한 농가 태생인 성녀 율리아 빌리아르는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Picardie) 지방의 보베(Beauvais) 교구에 속한 퀴비이(Cuvilly)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 마리아 로사 율리아(Maria Rosa Julia)로 세례를 받았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늘 신앙생활에 특별한 관심을 보여 왔는데, 특히 병자와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에 열심이었다. 그녀는 신비스런 병으로 마비되어 걷지 못하였고, 혁명 정부에 선서한 사제들을 반대하고 또 도망을 다니는 사제들을 숨겨준 일들이 정부 당국에 알려지자 자신도 몸을 숨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얼마동안 몇몇 친구들과 더불어 아미앵(Amiens)에 머물렀다. 후일 그 친구들이 그녀가 수도회를 설립하였을 때 초기 회원들이 되었다. 그녀는 여기서 '신앙의 사제회' 원장 신부인 바랭(R. P. Varin) 신부를 만났다.
1804년 성녀 율리아는 자작 부인 프랑수아즈(후에 수도명을 요셉이라 함)와 함께 아미앵 교구장의 후원과 바랭 신부의 지도하에 노트르담 수녀회를 설립하였다. 이 수녀회는 가난한 어린이들의 종교교육과 신앙교사들의 훈련 및 여성들의 그리스도교 교육에 헌신하려는 목표로 설립되었다. 그들은 고아원도 개설하였다. 그리고 수녀원이 설립된 해에 성녀 율리아는 아미앵 선교 도중 앙팡탱 신부가 9일 기도를 바친 후 자신에게 걷도록 명했을 때 기적적으로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실로 22년 만에 걸음을 걷게 된 것이었다. 그러나 바랭 신부가 떠나고 그의 후계자로 노트르담 수녀회의 고해사제로 임명된 신부가 이 수녀회에 대하여 반목하는 처지로 돌변하자, 아미앵의 주교는 1809년 내에 성녀 율리아로 하여금 아미앵 교구를 떠나도록 명하였다.
그래서 성녀 율리아는 수녀회 모원을 벨기에 남부, 프랑스와 국경을 이루는 나무르로 이동하였다. 물론 그 사건은 나중에 무마되었지만 그녀는 모원을 그곳에 그냥 두었다. 그녀는 여생을 수녀회의 확장을 위하여 동분서주하였으며 15개의 수녀원이 세워지던 1816년 4월 8일 과로와 노환으로 나무르에서 운명하였다. 그녀는 1906년 5월 13일 교황 비오 10세(Pius X)에 의해 시복되었고, 1969년 6월 22일 교황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 디오니시오(Dionysius)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코린토스(Corinthos)
활동연도 : +180년
같은이름 : 데니스, 드니, 디오니시우스, 디오니씨오, 디오니씨우스
코린토스의 성 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 주교는 2세기의 감동적인 설교가이자 뛰어난 교회의 지도자였다. 오늘날 그는 가르치고 훈계하며 위로를 주려했던 교회작가로 부각되어 기려진다. 여러 교회에 보냈던 몇 개의 편지가 현재 전해지고 있는데, 그 중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로마에서 발생한 사도 베드로(Petrus)와 바오로(Paulus)의 순교 기록이다. 코린토스에 신앙을 퍼뜨린 후 두 사도들은 이탈리아로 갔고 그곳에서 그들의 증언을 피로써 보증했다.
교회 역사가인 에우세비우스(Eusebius)는 다른 교회에 보낸 교훈적인 편지들을 언급하고 있다. 하나는 교황 성 소테르(Soter, 4월 22일)의 재임 기간 중 로마 교회에서 받은 전통적 지원금에 대해 로마 교회에 쓴 감사 편지이다. 그 편지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시초부터 모든 곳에 지원금을 주어 많은 교회들이 존재할 수 있는 윤택함을 주는 것이 로마 교회의 관습이었습니다. 로마 교회는 교부들의 예를 따라 광산에서 일하는 이들의 필요에 적절한 위안을 주었습니다. 로마 교회의 복된 주교 소테르는 그런 점에서 조상들의 전통으로부터 멀어지지 않고 그 이상으로 나아가, 위로와 조언을 차치하고라도 자녀들을 향한 아버지의 부드러운 음식의 보고를 주시며 모든 이가 그에게 다가오도록 해 주십니다. 오늘 주님의 날을 함께 경축하며 클레멘스(Clemens)가 우리에게 보내셨던 편지를 읽었던 것과 동일하게 교황님의 편지를 읽었습니다.”
다른 곳에서 성 디오니시우스는 오히려 성서의 잘못에서 기인하는 그릇된 학설보다 이교도적 철학 원리를 수용하면서 생기는 과격한 이론(異論)에 대해 불만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이교적 오류의 근원과 철학적 분파에서 생기는 각각의 오류들을 지적해내고 있다.
그리스인들은 성 디오니시우스가 평화롭게 선종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위해 많은 싸움을 했기에 순교자로 섬기고 있다. 라틴 교회는 그를 증거자로서 공경한다.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III)는 그의 유해를 파리 근처에 있는 생드니(Saint-Denis) 대수도원으로 옮겼고, 그곳의 수도자들은 그를 아레오파고(Areopagos)의 성 디오니시우스(10월 9일)로 믿었었다. 그리스 정교회에서는 그의 축일을 11월 20일이나 29일에 지낸다.
성 헤로디온 (Herodion)
활동년도 : +1세기
신분 : 사도들의제자, 주교, 순교자
지역 : 파트라스(Patras)
같은 이름 : 헤로디언
사도 바오로(Paulus)의 친척으로 파트라스의 주교였던 성 헤로디온(로마 16,11)은 마라톤(Marathon)의 주교인 성 아신크리투스(Asyncritus, 로마 16,14)와 히르카니아(Hyrcania)의 주교인 플레곤(Phlegon, 로마 16,14)과 함께 순교하였다. 사도들은 그들이 유대인들의 선동에 의해 순교했다고 언급했다.
복자 클레멘스 (Clement)
활동년도 : +1291년
신분 : 은수자
지역 : 오시모(Osimo)
같은 이름 : 글레멘스, 끌레멘스, 클레멘쓰, 클레멘트
클레멘스(Clemens)는 이탈리아의 산텔피디오(Sant'Elpidio)에서 출생하였고, 그의 이름으로 보아서 그가 머문 적이 있는 오시모와 관계가 있는 듯하나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1270년 성 아우구스티누스 은수자회의 총장으로 선출되었고, 재임 중에 회헌을 입안하여 1287년에 승인을 받았다.
그래서 그는 이 수도회의 제2의 설립자로서 높은 공경을 받아왔다.
또한 그의 덕행이 출중하였으므로 후일 교황 보니파티우스 8세(Bonifatius VIII)가 된 베네딕투스 가예타니(Benedictus Caetani) 추기경의 고해신부로 활약했고, 후일의 교황은 이미 그를 성인으로 간주하였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수를 다하고 운명하였다. 그의 사후 70년 후에 교황 니콜라우스 4세(Nicolaus IV)가 경당을 짓도록 명하였는데, 그곳에서 연일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는 은수자 중의 은수자였다고 흔히들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