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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존봉(世尊峰, 1,161m), 저기를 오르려고 한다
해는 산 너머 지고 白日依山盡
황하는 바다로 흘러 들어가는데 黃河入海流
천리 밖 먼 곳까지 더 보려고 欲窮千里目
다시 한 층 더 누각을 올라가노라 更上一層樓
―― 왕지환(王之渙, 688~742, 당나라 시인), 「관작루에 올라(登鸛雀樓)」
▶ 산행일시 : 2016년 6월 26일(일), 맑음
▶ 산행인원 : 5명
▶ 산행코스 : 설악동 주차장→설원교,와선대,초막태골,세존봉,세존봉 아래 북쪽 골짜기,
저항령계곡,설원교→설악동 주차장
▶ 산행거리 : GPS 거리 11.0km
▶ 산행시간 : 12시간 43분
▶ 교 통 편 : 높은산 님 승용차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3 : 37 - 천호대교 남단 출발
06 : 10 - 설악동 주차장, 산행시작
06 : 50 - 초막태골 진입
07 : 07 - 지능선
07 : 12 ~ 07 : 55 - 전망바위, 아침식사
08 : 20 - 설원교 쪽에서 올라오는 능선과 합류
08 : 25 - 세존봉 동릉 750m봉
09 : 45 - 마등령 오가는 주등로
10 : 06 - 산모퉁이 ┣자 갈림길
10 : 50 - 세존봉 밑
11 : 12 - 세존봉 중턱
12 : 06 - 세존봉 밑 복귀
12 : 43 - 세존봉 아래 북쪽 골짜기
13 : 40 ~ 14 : 28 - 첫 번째 폭포 위, 점심식사
15 : 10 - 두 번째 폭포
15 : 24 - 세 번째 폭포
15 : 45 - 네 번째 폭포
16 : 45 - 저항령계곡
18 : 20 - 설원교
18 : 53 - 설악동 주차장, 산행종료
23 : 28 - 천호대교 남단
2. 장군봉(미륵봉)의 뒷모습
▶ 초막태골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설악산을 간다. 오늘은 지난주 일요일에 미시령을 넘을 때와 날씨가
정반대다. 서울춘천고속도로 가평부터 내내 안개 속을 달리다 미시령을 넘자 전혀 딴 세상이
펼쳐진다. 청명하다. 울산바위의 아침 모습을 본다. 눈부시게 빛난다. 아! 합창하고 전망하기
좋은 곳에 차를 세우고 잠시 감상한다. 동틀 무렵에는 더욱 장관이었으리라.
목우재 넘고 몰려드는 차량으로 서행한다. 설악동 주차장은 이른 아침부터 탐방객들로 북적
인다. 주차료는 1일 5,000원 선불 현찰이다. 주차안내원이 우리를 얼른 훑어보더니 늦도록
산행할 것을 알고 후미진 곳으로 안내한다. 문화재관람료 역시 현찰로 내야 한다.
1인당 3,500원이다. 국립공원입장료라면 아무 불만이 없지만 문화재관람료라고 신흥사에
돈을 내야 하는 것은 영 못마땅하고 억울하기 짝이 없다. 꼭 승려들 고스톱 도박판에 돈을 대
는 것 같아서다.
나침반을 목에 걸려다 호주머니에 넣는다. 이정표가 특히 잘 정비된 설악산에서 나침반을 목
에 걸고 다닌다는 것은 누가 보더라도 수상할뿐더러 비법정탐방로를 출입하려는 의도로 읽
혀 공단직원에게 시비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나침반은 이제 나에게 부적이 되어버
렸다. 서울 근교 산을 물론하고 어느 산을 가든 별로 들여다볼 일이 생기지 않으면서도 나침
반이 없으면 길을 잃지나 않을까 괜히 불안해진다.
새아침을 맞는 노적봉, 소토왕골, 권금성, 집선봉, 세존봉을 차례로 열람하며 설악동 소공원
을 지난다. 하필이면 잠시이겠지만 공단직원과 동행한다. 그들이 사복 차림이라 알아보기 쉽
지 않다. 설원교(雪源橋)를 건너자마자 세존봉 동릉에 붙으려던 계획을 약간 수정한다. 군량
터를 지나고 와선대도 지나고 발걸음을 미적거리며 공단직원이 멀리 앞서가게 하고 우리는
얕은 골인 초막태골로 들어간다.
너덜계곡이다. 계류는 바싹 말랐고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 헤치자니 먼지가 풀풀 인다.
암릉 타듯 이 바위 저 바위 기어오르며 간다. 곧 지능선 공제선이 보이자 가파른 생사면을 갈
지자 대자로 그리며 그리로 오른다. 땅에 코 박아 후끈한 지열까지 쐬니 얼굴이 금방 벌게진
다. 지능선에는 인적이 분명하고 뚜렷하다. 아침식사 자리 물색하던 중 명당을 만난다.
절벽 위 전망바위다. 바위 위에는 조그만 돌탑이 세워져 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지만 먼
저 건너편의 장군봉(‘미륵봉’이 원래 이름라고 한다)의 뒷모습을 본다. 비선대 무지개다리에
서 우러러 보던, 선이 굵은 우람한 모습과는 다르게 섬세하다. 낯선 모습이다. 장군의 숨겨진
내면일까? 비경이다. 그 경치가 아침식사의 건 한 반찬 한다.
동축케이블과 함께 간다. 아마 예전에 와선대 주변의 가게에서 텔레비전을 시청하기 위해 설
치한 케이블일 것이다. 하늘 가린 숲속 길 가파른 오르막이다. 가쁜 숨, 굵은 비지땀이 설악
산에서이니 제값으로 여겨진다. 이따금 볼만한 경치를 만든다. 나뭇가지 성긴 틈을 타서 뒤
돌아 천불동계곡 건너편의 봉화대, 망군대를 위시한 침봉들을 살핀다.
오늘 산행목표는 세존봉 등정이다. 작년 가을엔가? 높은산 님 일행 6명이 세존봉을 오르려다
점심 때 독버섯인 화경버섯을 느타리버섯 또는 참부채버섯으로 잘못 알고 먹었다가 떼로 구
토하고 설사하는 된 고역을 치르는 통에 포기하였다. 먹을 때는 식감과 향기가 그렇게 좋더
라나. 라면에 넣어서도 먹었는데 라면국물만 조금 마신 사람도 혼쭐이 났다고 한다.
3. 아침의 울산바위
4. 울산바위 부분
5. 아침의 소토왕골, 왼쪽은 노적봉
6. 세존봉과 마등령(1326.7m)
7. 초막태골 오르면서 뒤돌아본 망군대(왼쪽)
8. 초막태골 위 지능선 전망바위에서 남서쪽 전망
9. 장군봉의 뒷모습
10. 세존봉 동릉 750m봉에서 남쪽 조망
11. 저항령, 저항령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시원했다
12. 달마봉
13. 장군봉의 뒷모습
14. 공룡능선의 1,275m봉
▶ 세존봉(世尊峰, 1,161m)
설원교 쪽에서 올라오는 세존봉 동릉과 만나고 가파름은 수그러진다. 바윗길을 만난다.
바윗길 올라 암봉인 750m이 드문 경점이다. 울산바위가 머리를 삐죽하니 내밀고 달마봉은
그 위엄을 한껏 자랑한다. 여태 당당하던 봉화대, 망군대는 다수의 뭇 침봉군에 묻히고 범봉
은 날카로운 어금니를 드러낸다. 저봉릿지, 염주골, 천당릿지는 바라만 보아도 손바닥에 땀
이 밴다.
이 가경에 무에 바쁠 게 있느냐 하고 탁주 음미하며 들이킨다. 바윗길이 계속 이어진다. 걸음
마다 경점이다. 손과 발걸음과 눈이 바쁘다. 여러 얼굴을 가진 침봉들이다. 공룡능선의 보석
인 1,275m봉이 저렇게 푸짐하였다니 쉬이 믿기지 않는다. 오르막 숲속 길에 들었다가 암봉
을 왼쪽 밑으로 돌아내려 마등령을 오르는 주등로에 든다. 대로의 자갈길이다.
벌써 마등령을 넘어 비선대로 하산하는 등산객들과 심심찮게 마주친다. 수인사만은 씩씩하
게 나눈다. 세존봉 동릉을 벗어나 사면 도는 주등로를 따라간다. 너덜지대 지나고 지능선이
남진하는 산모퉁이 암봉 아래 ┣자 갈림길에서 일행 모두 모이도록 휴식한다. 세존봉이 가까
운 오른쪽 길은 비법정탐방로인데 아주 잘 났다.
목소리 숨소리 발소리 죽여 가며 오른쪽 소로로 든다. 세존봉 동릉은 전후좌우로 가경이 연
신 펼쳐진다. 점점 크게 보이는 세존봉의 곧추선 모습에 때 이르게 주눅 든다. 바윗길 피해
사면을 들락날락하며 오른다. 이윽고 돌부리 나무뿌리 움켜쥐며 협곡 한 피치 오르니 세존봉
등정의 전초기지다. 휴식하며 긴장을 푸려고 했는데 도리어 긴장을 키운다.
왕지환(王之渙)은 천리 밖 먼 곳까지 더 보려고 다시 한 층 더 누각을 올라갔다(欲窮千里目/
更上一層樓). 우리는 천리 밖 먼 곳까지 더 보려고, 다시 위의 세존봉을 오르려고 한다(更上
世尊峰).
상록수 님은 일치감치 등정포기를 선언했다. 어제 늦도록 일하느라 잠을 자지 못했다고 잠이
자겠단다. 아사비 님이 자일 30m와 슬링을 준비했다. 다른 사람은 배낭과 스틱을 놓고 카메
라만 갖고 간다. 등정시작! 인적이 나 있지만 험로를 감출 수는 없다. 짧은 슬랩의 연속이다.
지그재그로 오른다. 오르막이라 돌부리 잡고 기어가지만 내려올 때는 쉽지 않겠다.
선등은 높은산 님, 그 뒤는 아사비 님, 그리고 나, 내 뒤에 캐이 님이 붙었다.
살짝 돌아가는 슬랩에 슬링을 걸었다. 그렇지만 몸의 무게 중심이 조금만 오른쪽으로 쏠려도
그만 절벽에 대롱대롱 매달릴 것 같다. 그러다 팔심 다하면 추락하리라. 돌연 캐이 님이 더
오르지 못하겠다며 뒤돌아서 내려 가버린다. 내가 캐이 님보다 몇 발자국 더 올라왔다. 내 뒤
가 썰렁해진다.
천하의 캐이 님이 저럴진대 나라고 별 수 있겠는가. 더 오르고 싶은 욕심이 싹 달아난다.
앞에 오르는 높은산 님이 이 짧은 고비만 넘기면 수월하다고 수차 달래지만 이미 등정을 포
기한 마음이라 내키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어서 올라
갔다 오시라, 그리고 자일 깔아주시라 당부하고 바위틈에 꼭 박혀 있기로 했다.
전후좌우 탁 트인 수직의 절벽 바위틈에 박혀 한그루 노간주나무를 부둥켜안고 기다렸다.
도대체 눈 둘 데가 없었다. 고개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흐르는 뭉게구름이라 어지럽고,
오른쪽과 왼쪽과 아래를 내려다보자니 까마득한 골짜기에 빨려 들어갈 것만 같고, 속초와
청초호 그 앞바다도 고공에서 내려다보는 경치라 현기증이 나고, 저 아래 캐이 님과 상록수
님의 도란거리는 말소리는 아득하게 들리고, 개미떼는 털어내도 자꾸 성가시게 목덜미에 달
라붙었다.
33분을 그렇게 조마조마하며 있었다. 쪽팔리는 노릇이다. 내 능력이니 별 수 없다. 등산화도
릿지화가 아닌 목이 긴 중등산화 비브람창이 아닌가. 자일을 깔지 않았지만 조심하여 혼자서
내려가 볼까 하는 생각이 수없이 일었다. 경솔한 짓이라고 가까스로 추슬렀다. 나중에는 다
리에 쥐가 나기 시작하여 주무르고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는 게 일이었다.
15. 화채봉
16. 유선대(遊仙臺)
17. 장군봉의 뒷모습
18. 왼쪽부터 범봉, 노인봉, 1,275m봉
19. 오른쪽은 범봉과 천화대 릿지
20. 세존봉 동릉에서 남서쪽 조망, 암벽꾼들은 가운데 골짜기로 난 절벽을 오른다고 한다
21. 울산바위
22. 가운데 왼쪽이 범봉
23. 세존봉, 저기를 오른다
24. 오른쪽은 1,275m봉, 왼쪽은 범봉, 멀리 왼쪽이 대청봉
25. 범봉과 설악좌골
26. 울산바위
27. 달마봉
▶ 저항령계곡
아사비 님이 자일 깔고 높은산 님의 안내로 무사히 하강(?)한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기에
는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당초에는 세존봉을 왼쪽 사면으로 돌아 마등령(고개가 아닌 산봉
우리다)을 오르고 그 너머 범잔바위골로 내리려고 했으나 마등령 오르는 길이 암릉의 연속
이어서 시간이 너무 늦을 것을 염려하여 세존봉 아래 북쪽 무명골을 내리기로 한다.
잡목 숲 너덜이 으르렁대며 구른다. 낙석! 외침보다 돌 구르는 소리가 더 빠르고 크다. 낙석
에 다칠라 서로 엇갈리게 내린다. 그냥 내리기가 섭섭하여 옆 지능선에 암봉이 보이기에 굳
이 들린다. 세존봉(세존은 석가모니 세존의 줄인 말로 세상에 가장 높다는 뜻이다)의 뒷모습
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경점이다. 너덜은 계류에 이르도록 이어진다.
계류 주변은 숫제 곰취 밭이다. 노란 꽃이 탐스럽게 피기 시작한다. 가파름이 잠시 멎은 대슬
랩(건폭이다) 위쪽의 계류 졸졸 흐르는 실폭 옆에서 늦은 점심자리 편다. 입맛이 없어 물에
말아 넘긴다. 첫 번째 건폭 하강. 자일을 건다. 암벽이 미끄러워 자일을 손에 감고 내린다.
30m 자일이 빠듯하다. 집채만 한 바위를 넘고 넘는다.
두 번째 폭포도 짜릿하다. 자일을 걸고 내린다. 지계곡 합수하고 세 번째 폭포를 만난다.
암벽이 젖어 있어 되게 미끄럽다. 아사비 님이 우아한 자세로 먼저 내리고 발 디딜 곳을 안내
한다. 높은산 님과 상록수 님은 자일 잡고 내리기가 위험하다고 멀리 우회한다. 위에서 보면
수직으로 내리꽂는 절벽인데 밑에서 올려다보면 그냥 내려와도 될 법한 완만한 슬랩이다.
네 번째 폭포. 오버행이다. 오른쪽 덤불숲 사면으로 비켜 내린다. 수량이 많다면 가경일 폭포
다. 이제 폭포는 끝났다. 아울러 험로도 끝났다. 완만한 너덜계곡 잠깐 내리고 평원인 사면
으로 간다. 산죽 스러진 대평원이다. 저항령계곡 가까워서 모듬터 지나고 성터(?)가 나온다.
무너진 석축과 평평하고 드넓은 개활지가 옛적 성터나 군영지를 의심케 한다. 저 아래 군량
터도 있지 않은가.
옥계반석의 알탕하기 좋은 저항령 주계곡을 가려면 지계곡 건너야 하는데 주계곡과 나란히
가는 지계곡을 주계곡으로 잘못 알고 하염없이 너덜을 내린다. 지계곡은 저항령계곡의 삼각
주 섬이 나오고 주계곡과 합류한다. 어쩌다 물웅덩이가 나온다. 기껏 세면탁족 한다. 마지막
남은 망고바나나탁주 마시며 높은산 님과 아사비 님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들은 해끔한 얼굴로 나타나서 전망까지 좋은 옥계반석을 들렸다 오는 길이라 하니 나로서
는 세존봉을 오르지 못한 것보다 더 아프다. 너덜 굵은 바위를 돌아 넘고 혹은 타고 넘으며
내리다 설원교가 보이자 건너편 숲속으로 들어간다. 인적 희미한 소로가 나 있다. 예의 말소
리 발소리 죽이며 속보하여 금줄을 넘는다.
고즈넉한 숲속 대로다. 통일대불은 조는 듯 참선하는 듯 일렁이는 촛불 앞에 부동이다. 설악
동 소공원이 조용하다. 권금성 오가는 케이블카는 영업을 마쳤다. 주차장매표원도 퇴근했다.
해거름의 세존봉을 다시 한 번 바라본다.
28. 세존봉과 마등령(1,326.7m)으로 가는 능선
29. 첫 번째 폭포, 상록수 님
30. 두 번째 폭포, 아사비 님의 멋진 자세
31. 하산 중인 골짜기 주변
32. 하산 중인 골짜기 주변
33. 네 번째 폭포에서
34. 저항령계곡 주변, 무너진 석축으로 보인다
35. 저항령계곡
36. 큰까치수염
37. 와선대계곡
38. 권금성
39. 설악동에서 뒤돌아본 세존봉과 마등령(1,326.7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