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73 성경 통독 길잡이] 말라키서
말라키 예언서는 12 소예언서의 마지막 예언서이면서 동시에 46권으로 이루어진 구약 성경 전체의 마지막 권에 해당합니다. ‘나의 사자(使者)’라는 뜻을 지닌 말라키 예언자는 말라키서를 비롯해서 성경 어디에서도 행적에 대해서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말라키 본문 자체에서 연대를 특정할 수 있는 구절이 없습니다. 그런 점에서 말라키 예언자가 활동했던 시대가 언제인지 정확하게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전과 성전에서 바치는 경신례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들과 혼종혼과 이혼을 강력하게 금지하고 있는 것들을 생각해본다면 바빌론 유배를 마치고 돌아와서 성전 재건과 관련하여 하느님 말씀을 전하던 하까이, 즈카르야 시대 이후 그리고 BC440년경 사제이며 율법학자인 에즈라와 열심한 하느님 백성인 느혜미야에 의해서 추진되었던 강력한 개혁 이전으로 추정해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조금 더 살펴보면, BC 538년 바빌론 유배를 마치고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기 위해서 노력했습니다. 그 결과 성전을 완전히 복구하게 됩니다. 하지만 성전 복구와 함께 가졌던 다윗 왕국의 가시적 재건 등의 희망과 기대가 시간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이루어지지 않자 이스라엘 백성들의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사제들은 제사와 관련된 규정을 엄밀하게 지키지 않았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 민족과 결혼함으로써 하느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에 혼란을 야기시켰습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사회적 약자들의 고통은 커져만 갔습니다. 이런 가운데 BC 440년경에 에즈라와 느헤미야에 의해서 대개혁이 실시됩니다. 정확한 경신례를 준수하고, 하느님의 몫에 대한 십일조 규정과 혼종혼 금지, 가난한 이들을 향한 착취 금지 등이 시행됩니다. 말라키 예언서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작성되었습니다.
3개의 장으로 이루어져 있는 말라키 예언서는 머리말인 1장 1절과 부록인 3장 22-24절을 제외하고 총 6개의 신탁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신탁은 ‘하느님의 말씀-이스라엘 백성들의 반박-예언자의 변론’이라는 질의응답과 같은 형태를 지니고 있습니다. 먼저 ① 1장 2-5절에서는 동생인 야곱을 에사우보다 위에 두셨다는 말씀과 함께 이스라엘에 대한 하느님의 무조건적이고 절대적인 사랑이 선포됩니다. ② 1장 6절-2장 9절에서는 그릇된 경신례를 바치는 거짓 사제들에 대한 이야기가 진해집니다. 당시 사제들은 성전 재건 이후 성전과 관련된 모든 권한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들은 안일한 마음으로 하느님께 제사를 바치면서 봉헌 예물로 예로부터 지켜온 거룩한 제물이 아닌 눈먼 짐승, 절름거리거나 병든 짐승을 바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말라키 예언자의 입을 빌어 당신께서 레위 지파와 맺은 계약은 생명과 평화의 계약이며, 하느님을 경외하기 위한 계약이었다는 것을 상기시킨 후 이를 소홀히 여긴 거짓된 사제들의 잘못을 질타하십니다. ③ 2장 10-16절은 혼종혼과 이혼에 대한 하느님의 경고를 선포하고 있습니다. 이방 민족과 결혼하는 것은 이방 신을 섬기는 사람들과 결혼하는 것을 뜻하며, 이는 한 분이신 하느님을 섬기는 사람으로서 잘못된 행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이혼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동반자로 맺어주신 아내를 저버리는 것이기에 이 또한 하느님을 저버리는 것과 같습니다. ④ 2장 17절-3장 5절은 주님의 정의를 알려줍니다. 정의는 하느님의 가장 중요한 속성 중 하나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비로운 분이시지만 동시에 정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악을 싫어하십니다. 따라서 주술사나 간음하는 자, 품팔이꾼의 품삯을 떼어먹는 사람이나 과부와 고아를 억압하는 자, 이방인을 밀쳐내고 하느님을 경외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반드시 하느님의 심판이 주어질 것이라고 말라키 예언자는 선언합니다. ⑤ 3장 6-12절은 올바른 십일조와 예물 봉헌에 대한 하느님의 가르침이 선포됩니다. 말라키 예언자는 십일조를 바치지 않는 것은 하느님을 저버리는 것이며 하느님을 약탈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느님은 변함없는 당신의 사랑을 전하시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당신을 향한 마음을 저버렸다고 꾸짖으십니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돌아갈 수 있느냐’는 이스라엘 백성의 물음에 십일조와 예물을 올바르게 봉헌하라고 가르치십니다. ⑥ 3장 13-21절은 마지막 신탁으로서 최후의 심판(주님의 날)과 이때 드러나게 되는 하느님의 정의를 전해줍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헛된 일이라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성전을 재건했지만 희망은 드러나지 않고, 악을 저지르는 자들이 편안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하느님의 정의와 공정에 대해서 회의감이 들었으며 믿음은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여기에 대해서 주님의 날, 마지막 심판의 날에 악인을 향한 분명한 심판이 주어질 것이며, 의인들은 하느님의 백성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로써 하느님을 섬기는 것은 헛된 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분명하게 선포됩니다.
3장 22-24절은 말라키 예언서의 부록에 해당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마지막으로 모세에게 내린 규정과 법규들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날에 앞서 엘리야 예언자를 보낼 것이며, 그가 사람들의 마음을 돌려 하느님 보시기에 합당한 모습으로 이끌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하시면서 그의 이야기를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주님의 날이 심판의 날이 아니라 의인에게 내리는 축복의 날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이미 그들이 알고 있는 계명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에 충실할 것이 요구될 뿐입니다. 또한 신약 성경에서 율법학자들과 제자들은 말라키의 이 구절에 근거하여 예수님을 두고서 당신이 메시아라면 당신에 앞서서 엘리야가 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당신에 앞서 엘리야가 이미 왔다고 말씀하시면서 이 구절에서 등장하는 엘리야를 당신에 앞서 길을 마련하신 세례자 요한과 연결시키십니다. 이를 통해 구약의 전망이 신약으로 그대로 이어지며, 예수님을 통해서 구약의 말씀들이 성취되어감을 바라보게 됩니다.
[소공동체와 영적 성장을 위한 길잡이, 2024년 9월호, 노현기 신부(사목국 행정지원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