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안에도 전쟁이 끝나지 않을 경우, 내년(2025년)에도 전쟁 수행에 막대한 돈을 쏟아부어야 하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정부가 최근 새해 예산 편성을 마무리하고 의회에 승인을 요청했다.
rbc 등 러시아 언론에 따르면 러시아는 2025년부터 2027년까지 3년치 예산안을 편성해 지난달(9월) 30일 국가두마(하원)로 넘겼다. 내년(2025년) 국방예산은 13조5,000억 루블(약 1,450억 달러)로 올해 국방비 지출 10조8,000억 루블(약 1,160억 달러)에서 23% 이상 늘어난 규모라고 로이터 통신은 평가했다.
러시아의 2024년 국방 예산은 당초 전체 예산의 3분의 1(29.5%) 가량인 10조 7,750억 루블(당시 환율로 약 1,200억 달러, GDP의 6%)였다. 하지만 실제 지출은 계획보다 좀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AFP 통신이 러시아의 새해 국방 예산은 30% 가까이 증가했다고 전했지만, 그 기준으로 삼은 올해 국방비 지출 규모를 구체적으로 밝히지 못한 이유다.
러시아 재무부/사진출처:재무부 홈페이지
미국 블룸버그 통신은 러시아의 새해 국방비는 10조4,000억 루블(약 1,120억 달러)에서 13조2,000억 루블(약 1,420억 달러)로, 27% 늘어날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나 국방예산이 GDP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2024년 6.2%에서 2026년 5.6%, 2027년 5.1%로 감소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크라이나 매체 스트라나.ua에 따르면 우크라이나의 2025년 국방예산은 2조2,200억 흐리브냐(약 550억 달러)로, 전년도(2024년)에 비해 거의 늘어나지 않았다. 우크라이나 올해 국방 예산은 당초 예산 전체의 절반인 1조6,900억 흐리브냐(당시 환율로 약 470억 달러, GDP의 약 22%)였으나, 부족한 군 급여 지급을 위해 5,000억 흐리브냐를 추가로 배정(9월 18일)한 바 있다. 따라서 올해 국방비 지출은 2조2,000억 흐리브냐 안팎으로 추정된다.
우크라이나 재무부/사진출처:dpchas.com.ua
◇러시아 국방비가 아직 특정되지 못했다?
러시아 정부는 새해 재정 수입(세수)을 2024년의 36조1,000억 루블(실제로는 40조2,900억 루블로 추정)에서 40조2,900조 루블(약 4,332억 달러), 2026년 41조8,000억 루블, 2027년 43조2,000억 루블로 높여 잡았다. 또 재정 지출(세출)은 2024년의 41조5,000억 루블에서 2025년 41조5,000억 루블(약 4,462억 달러), 2026년 44조 루블, 2027년 45조9,000억 루블로 늘렸다.
눈에 띄는 것은 올해 세수가 당초보다 4조2,000억 루블 늘어난 40조2,900억 루블에 달할 것이라는 점. 새해에도 재정 수입이 비슷할 것으로 보고 예산을 짠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세출 규모도 당초 39조4,000억 루블에서 41조4,600억 루블로 2조 루블 이상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세입이 늘었다고 해도, 전쟁 중이라는 점을 감안할 때 재정적자는 불가피하다. 2025년에는 재정적자가 GDP 대비 0.5%, 2026년 0.9%, 2027년 1.1%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러시아는 재정적자를 통상 석유와 가스 등 에너지 수출자금으로 확충해둔 국부자금에서 충당해왔다.
또 하나 주목되는 것은 rbc 등 현지 언론들이 내년 국방비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러시아 언론들은 (우크라이나 점령 지역을 포함한) 사회 보장 확충과 교육, 국방, 의료, 교통 등 19개 국가 프로젝트에 대한 집중 투자 계획을 밝히면서도, 국방비가 정확히 얼마가 될 것인지는 밝히지 않았다.
rbc는 “예산안은 특수 군사작전(우크라이나 전쟁) 임무를 지원하고, 국방 능력을 확충하는데 상당한 자금을 제공한다"면서 "필요한 군사 장비의 확보와 인건비 지급, 방위 산업 지원에 예산이 투입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방 지출의 약 10%는 군인 인건비로 사용된다. 러시아 국방예산은 하원의 심의 과정에서 각 부문별로 하나씩 확인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국가두마(하원)의 표결 장면/사진출처:국가두마 홈페이지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은 '우크라이나점령지역에 대한 사회 보장과 군사작전의 목표 달성에 필요한 자금이 충분한가'라는 언론 질의에 "2025~2027년 예산안에는 푸틴 대통령이 지시한 내용이 모두 반영됐다"면서 "특히 군사작전 임무 수행을 위한 사회적 영역과 국방력을 강화하는 데 상당한 자금이 편성됐다"고 답변했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예산안을 의회에 제출하기 전, "군사비 지출 증가와 함께 각 분야 투자를 확대하고 사회 복지 예산을 늘리겠다"고 말했다.
러시아의 3개년 예산은 상·하원 승인과 푸틴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확정된다.
◇늘리지 못한 우크라이나 국방비
우크라이나는 새해 예산안에서 국방비(2조2,200억 흐리브냐)를 거의 늘리지 않았다. 이 중 거의 절반인 1조1,000억 흐리브냐는 군 인건비로, 5,750억 흐리브냐는 군사 장비의 생산, 구매, 수리에 사용된다.
단순 비교하면 우크라이나 군사비 지출은 러시아의 3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그러나 큰 의미를 부여할 수는 없다. 미국 등이 우크라이나에 수백억 달러 어치의 군수 물자를 지원해왔기 때문이다. 미국은 올해에도 우크라이나의 무기 지원 및 군사 훈련 등에 약 600억 달러를 할당했다. 물론, 이 돈이 전부 우크라이나로 전달되는 것은 아니다. 일부는 올해 중에 키예프(키이우)에 도착하지 않을 수도 있는 무기및 탄약 생산에 사용될 수 있다.
문제는 우크라이나가 새해(2025년)에는 올해와 같은 규모의 지원을 받을 가능성이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미국 하원/사진출처:유튜브
스트라나.ua에 따르면 미 블룸버그 통신은 G7 국가가 동결된 러시아 해외 자산(약 3천억 달러)을 담보로 우크라이나에 500억 달러의 대출을 제공하기로 하더라도, 키예프에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난(9월) 27일 보도했다.
우크라이나는 GDP의 19%로 추정되는 재정 적자를 메우려면 약 350억 달러가 필요하다. 여기에 무기 및 군수품 지원이 추가로 이뤄져야 한다.
우크라이나 정부가 확정한 2025년 예산안에 따르면 세수 2조흐리브냐 (2024년의 1조7,680억 흐리브냐에 비해 2,300억 흐리브냐 증가), 세출 3조6,000억 흐리브냐(2024년의 3조 3,500억 흐리브냐에 비해 2,500억 흐리브냐 증가)로, 재정 적자 규모는 1조6,000억 흐리브냐에 달한다. 내년 인플레이션은 9.5%, GDP 성장률은 2.7%, 흐리브냐 환율은 달러당 45흐리브냐로 설정했다.
블룸버그 통신은 "독일은 이미 키예프에 대한 자금 지원을 줄이기로 했고, 프랑스는 총선 이후 구성된 새 정부가 유럽연합(EU)로부터 재정 적자를 줄이라는 압력을 받고 있다"며 "이탈리아의 멜로니 총리 연립정부도 지출 줄이기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EU의 군사 예산 확충도 2025년 가을로 전망되는 독일 총선까지 기다려야 할 가능성이 높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첨단 무기 제공에 앞장선 영국도 최근 지원을 줄였다고 고위 소식통이 블룸버그 측에 말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군인의 인건비는 자체 자금으로 지급해야 한다. 국방비가 크게 늘어나지 않는 이상, 2025년에도 군 병력을 급격하게 늘릴 수가 없다. 현상 유지에 만족할 것이라는 의미다.
반면, 러시아는 국방비를 25% 안팎으로 늘려 군 장비 생산및 병력 규모를 확충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어떤 부분을 어느 정도 늘릴지는 아직 미지수다.
국방비 규모로만 보면, 우크라이나군이 새해에도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공세에 나서기 힘들어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는 일찌감치 우크라이나 측에 재정적자 축소를 위해 세금을 인상할 것으로 촉구했다. 우크라이나 정부도 소비세 등 각종 세금을 인상하고, 군동원 대상에서 제외해주는 것을 조건으로 대기업들로부터 출연금을 받기로 했지만, 역부족으로 보인다. IMF는 2025년 이후에도 계속 세수를 늘려 재정적인 안정을 도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크라이나 의회(최고 라다)는 조만간 전체 회의를 열어 내년 예산안 심의에 들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