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힘써 여호와를 알자!
호 6:1~3
우리가 읽는 신약 성경에는 하나님의 이름 즉, ‘여호와’가 나오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신약 성경 기록자들이 여호와를 ‘주’ ‘주님’으로 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신약성경만 읽다보면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인 것을 잘 모릅니다.
목사들은 신약을 주로 설교하는 편입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는 약간 거리감이 있습니다.
온고을교회를 개척했을 무렵 주보 1면에 호세아 6장 1절로 3절 말씀을 적었습니다.
그랬더니 동네에서 “온고을교회는 여호와의 증인 교회냐?”라고 했습니다.
이단으로 알려진 ‘여호와의 증인’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는 것이 예의에 어긋나듯,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것은 하나님 앞에 죄입니다.
십계명에도 있습니다. 세 번째 계명입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신약에서는 ‘여호와’라고 부르는 것을 매우 조심합니다.
우리도 그래야되는 줄 믿습니다.
호세아서 6장은 호세아서의 핵심 장입니다.
6장 3절에서 “힘써 여호와를 알자!” 이것이 호세아서의 핵심 주제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도 그래서 “힘써 여호와를 알자!”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을 아는 만큼 자라갑니다.
주현미를 아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알아야 합니다.
김호중이를 아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알아야 합니다.
‘포켓몬스터 빵’을 아는 것보다 하나님을 더 알아야 합니다!
<교만에 대하여>
호세아 선지자가 왜 “힘써 여호와를 알자!”라고 외칠까요?
☞ 교만에서 벗어나야 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는, 잘난체 하는 것을 교만이라고 합니다.
남들 앞에 뻐기고 남을 무시하는 경우, 교만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교만’의 참 뜻은 ‘그 사람이 하나님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 제 친구 중에 성당에 다니는 친구가 있습니다.
평생 성당을 다니는데,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하나님에 대해서 불만투성이입니다.
왜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었냐?
세상을 만들었으면 좀 편하게 살게 하지, 왜 이렇게 힘들게 하느냐?
이렇게 할 거면 왜 만들었냐?
만나서 헤어질때까지 그 이야기입니다.
이 친구가 저의 책 「붕어빵」을 읽고 감동했습니다.
한동안 만나면 붕어빵 이야기를 했습니다.
참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1~2년 지나고 나니, 되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이 이럴거면 왜 세상을 만들고, 왜 사람을 만들어서 힘들게 살게 하냐?”
참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제가 “뿡어빵 한 번 더 읽어봐!”라고 말합니다.
이 친구의 특성이 있습니다.
감사가 없습니다. 온통 불만뿐입니다.
최소한 좋은 아내가 있으니 감사하다. 두 아들이 있으니 감사하다.
두 아들이 모두 결혼하여 손주를 안겨주었으니 감사하다.
이렇게 감사의 조건이 넘치는데도 감사를 모릅니다.
교만이란 바로 이런 것입니다. “감사를 모릅니다.”
“감사를 모르는 자는 하나님을 모르는 것이고, 하나님을 모르는 자는 감사를 모른다!”
하나님을 안다면, 당연히 감사를 압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셨잖아요! 할렐루야~
호세아 선지자가 “힘써 여호와를 알자!”하는 데에는 바로 감사를 알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알아야 하는지, 오늘 본문에서 3가지를 이야기합니다.
<첫째,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를 알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우리가 살다보면, 세상 사는 일이 바빠서 하나님을 떠나있게 되는 수가 많습니다.
이 생각 저 생각 하다보면 하나님 생각을 하루에 한 번도 안 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저를 목사로 부르신 것은 어쩌면, 제가 늘 하나님을 떠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너는 목사가 되어야겠다. 그래야 늘 내 품에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생각할 때가 더러 있습니다.
(1절)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임이라”
1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 “우리를 치셨으나”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려면 5장 14절을 보면 금새 이해가 됩니다.
호 5:14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바로 내가 움켜갈지라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있는 이스라엘과 유다에게 선포한 말씀입니다.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사자같다는 표현은 바로 사자가 먹이를 잡아 찢는다는 뜻입니다.
또 내가 탈취하여 갈지라도
잘못한 범죄에 대하여 하나님이 심판하고 ‘치셨다’는 뜻입니다.
5장 14절에서 이렇게 말씀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도로 낫게 해 주시고 싸매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잘못했을지라도 범죄했을지라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말자!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하나님은 우리를 도로 낫게 해 주시고 싸매어 주십니다.
첫째,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이어서 둘째는 “둘째, 그 앞에서 살자”입니다.
<둘째, 그 앞에서 살자!>
하나님이 찢었으나 낫게 해 주시는 분이고, 치셨으나 싸매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입니다. 인자하심, 인애, 히브리어로 ‘헤세드’
하나님의 헤세드는 바로 이런 것입니다.
예수병원 넘어가는 길에 ‘헤세드’라는 커피 숍이 있습니다.
그 앞을 지나칠 때마다 여호와 하나님의 헤세드를 묵상하게 됩니다.
감사할 일입니다.
우리가 사는 길목 요소요소에 이렇게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끌어주는 표지가 있습니다.
이런 사인을 잘 보고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품 안에 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2절)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그의 앞에서 살리라
“여호와 앞에서 살자!” “여호와 앞에서 살자!” “여호와 앞에서 살자!”
첫째는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둘째는 여호와 앞에서 살자!
주일예배, 수요예배 잘 드리면,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 품에 거하는 줄 믿습니다.
2절 말씀에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이 말씀은 한동안 오해를 했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한다고 해석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리니
그러나 이 말씀은 그뜻은 아닙니다.
공동번역으로 2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2절) “이틀이 멀다 하고 다시 살려주시며 사흘이 멀다 하고 다시 일으켜주시리니, 우리 다 그분 앞에서 복되게 살리라.”
하나님의 헤세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 살지 않는 이들, 도대체 누구 품에 안기어 살고 있습니까?
늘, 불평 불만, 지지고 볶고, 감사는 없고, 불평만 하는 인생이어서는 안 됩니다.
그렇지요?
<셋째, 여호와를 알자>
첫째,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둘째, 여호와 앞에 살자, 이어서 세 번째가 있습니다.
(3절)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 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
3절은 그러므로 로 시작합니다.
저는 얼마전 주현미 콘서트를 보고나서 주현미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주현미는 화교입니다. 아버지가 중국사람입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밖으로만 나돌았대요,
주현미가 4남매 장녀인데, 어머니와 4남매를 팽개치듯 놔두고 늘 집에 없었답니다.
간혹 한번씩 들르면, 어머니가 모아놓은 돈을 다 가지고 나간답니다.
심지어 학비까지 싹쓸이해서 나갔답니다.
그렇게 살다보니 아버지와 깊은 대화를 한 번도 못 해봤대요!
주현미가 결혼하고 첫 아이를 낳았는데, 아버지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대요,
아버지가 한국에 들어왔는데, 딸고 손주를 보고싶다고 한다.
이때 주현미가 거절했대요, “아버지 만날 생각 없습니다.”
그 일이 있고 얼마 안 되어 아버지가 일본에서 돌아가셨다는 연락이 왔대요!
그 일이 지금도 후회가 된답니다. 왜 아니겠어요! 막심한 불효를 저질렀으니,
지금도 그 일은, 자기가 자기를 용서하지 못하는 일이라고 눈물을 흘립니다.
노래하는 사람들은 어떤 한의 정서가 있어야, 정한이 노래에 서려 나옵니다.
주현미에 대해서 그렇게 알고 노래를 들으니 더 가슴이 절절합니다.
주현미 얘기를 들으면서, 나는 하나님을 주현미보다 더 많이 알고 있는가?
“힘써 여호와를 알자!”
주현미를 잘 알고 노래를 들으니 노래가 더욱 간절해짐처럼,
하나님을 잘 알고 하나님께 찬송, 기도, 예배 할 때, 더 큰 은혜를 받는 줄 믿습니다!
세상 그 무엇보다 하나님을 더 잘아는 성도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