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몰랐던 북한-46] 북한 김씨 일가의 남다른 벤츠 사랑은 여러 매체들을 통해 익히 접해 왔다. 최근 평양을 방문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이용한 차량도 벤츠다. 북한 차량번호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전문가들은 흥미로운 점 하나를 발견했다. 바로 폼페이오 장관을 맞이한 차량의 붉은 별 번호판이다. 붉은 별 번호판은 김일성 주석 때(1970년대 즈음) 처음 생긴 호위사령부 행사 차량에 사용하는 표시로서, 붉은 별은 사회주의 진영에 속한 나라들에서 온 대표단 혹은 방문단임을 암묵적으로 나타낸다.
파란 별을 단 번호판도 있었는데 이는 당시 내각 정무원 대외봉사관리국의 행사 차량에 사용했던 것으로 자본주의 진영에 속한 국가에서 오는 인사들을 태우는 차량번호였다. 외국 인사라고 해도 붉은 별은 사회주의, 파란 별은 자본주의로 나눠서 관리했다. 그런데 폼페이오 장관이 붉은 별 번호판을 단 차량을 이용했으니 흥미롭지 않을 수 없었다. 알고 보니 파란 별은 이미 사라졌다고 한다.
정확한 연도는 파악하기 어렵지만 대략 김정은 정권 들어선 후 파란 별 번호판이 사라졌고, 동시에 내각 소속 대외행사 차량 부서도 없어졌다고 한다. 김정은 정권에서 없어진 것은 파란 별뿐만이 아니다. 중앙차선도 사라졌다. 중앙차선은 좌우 1·2·3차선을 제외한 정중앙에 만들어진 것으로 김 부자만 이용 가능한 차선이었다. 현재 도로 중심부에 만들어진 서울시의 중앙버스차로와 비슷한 위치에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같은 숫자가 나열된 번호를 좋아해 자신의 행사차에 사용했는데, 예를 들면 2·16-3333, 5555, 7777, 9999 같은 식이다. 앞 번호인 2·16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로 중앙당 차량번호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2·16에 같은 숫자를 단 차량번호를 보면 대략 최고지도자가 탑승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차량 이동 시 반드시 여러 대의 차량과 함께 움직였다. 중앙차선으로 2·16-3333, 2·16-5555와 같이 똑같은 네 개 숫자의 차량번호를 단 같은 차종(보통 벤츠)의 차량 6~7대가 달리기 시작하면, 예상 이동 경로의 모든 차로상에서 자동 교통신호가 수신호로 바뀌었다. 미모의 여성 교통보안원으로 세간의 눈길을 끌었던 평양시 교통보안원들(남성도 있음)에 의해 이 차량들은 신호의 제약도, 교통체증의 제약도 받지 않고 달렸다.
이 차량들은 나란히 달리는 것이 아니라 수시로 자리를 바꾸면서 달렸다. 북한식 호위체계로 이 때문에 최고 수뇌부(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지칭하는 말)가 어느 차량에 탔는지 육안으로 봐서는 확인하기 어려웠다. 또 호위체계 덕분에 평양시 교통지휘대 소속 교통보안원들은 월급에 '호위가급금'이라는 항목의 보너스를 받았다. 중앙차선이 사라지면서 이 보너스 항목도 사라졌는지 궁금하다.
중앙당 번호로 알려진(구체적으로는 노동당 정치국 후보위원 이상의 직급) 2·16번호도 새로운 지도자와 함께 7·27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 번호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북한의 최고 령도자로 전면에 나서기 전인 2008년부터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옆에서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고위급 간부들 앞에서 7·27(정전협정날짜, 북한에서는 전쟁승리기념일로 국가적 명절이다)을 반드시 제2의 전승일로 만들겠다고 다짐하며, 북한 미래 지도자로서의 자신감을 드러내 보였다. 이때부터 차량번호도 7·27로 바뀌었다. 요즘 중국 관광객들 속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애용하는 담배로 알려져 인기 있는 '7·27'이라는 담배 브랜드도 아마 이즈음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차량번호는 대체로 옛날과 같다. 평양 01~09는 중앙당 차량, 인민보안성은 평양 15~17을, 국가보위성은 평양 18~20을 사용한다. 그런데 이 번호들은 단순한 차량번호가 아니라 권력이다. 예를 들어 평양과 원산 사이에는 무지개 동굴이라는 터널이 있다. 환기시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보안서, 인민군 등 여러 부서에서 관리 명목으로 이 터널의 진입을 통제한다. 이 터널을 이용하지 않으면 험한 산길로 돌아가야 해서 시간이 더 들고 위험하다. 그래서 일반 주민들은 돈과 담배, 기름 등의 뇌물을 찔러주고 터널을 이용했고, 뇌물을 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은 어쩔 수 없이 위험한 산길을 이용했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한 차량번호를 달고 다니면 아무도 세우지 않는다. 최고위층과 같이 중앙차로와 전담 교통보안원의 수신호까지는 받지 못해도 최소한 도로에 설치된 각종 검열초소(지방경계나 주요 길목, 터널에 보안 등의 명목으로 상설 혹은 임시로 만들어 놓은 것으로 차량이나 사람들의 이동을 승인하는 서류, 물건 등을 검사한다)를 아무런 제약 없이 다닐 수 있다. 이래저래 살기 힘든 것은 일반 주민들이고, 누릴 수 있는 특권은 권력의 우선순위와 비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