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갤러리 번 원문보기 글쓴이: 세석평전
아직, 땅을 그리며 |
이종구 |
'오지리 사람들' 과 '땅의 사람들'의 이름으로 전시회를 가진 지 6년과 4년의 세월이 흘렀다. 나에게 있어 지나간 그 시간들은 짧은 것이기도 했고, 또 아주 긴 것이기도 했다. 나의 그림 그리기가 점점 힘에 부쳐, 잘 풀리지 않는 억지 그림 그리기로 지속되는 동안의 시간은 참으로 빠르게 지나간 반면, 한편 그사이 그간 내 작업 세계의 모태였던 우리의 농촌현실은 많은 변화를 겪으면서 벌써 오랜 세월 전의 이야기처럼 되어가고 있다. 불과 10년도 채 안 되는 짧은 세월 동안 겪은 농촌의 모습이 과거의 몇 백년보다도 더 급격하게 변화한 듯하다.
그 분들과 같은 열정과 애정으로 농사를 지속하며 땅과 더불어 살아가라!
1996. 10. |
그 분들과 같은 열정과 애정으로 농사를 지속하며 땅과 더불어 살아가라!
나의 고향에서는 이미 잡초가 무성한 논밭을 보기가 그리 어렵지 않게 되었다. 중년의 젊은이들은 물론 환갑 된 노인조차 일당 노동의 현장으로 차 타고 출퇴근하는 농부 아닌 노동자가 되었고, 그나마 들의 논밭 일들은 가사 노동과 함께 여성의 몫이 되었다. 금방 스러질 것만 같은 할머니와 아내들이 농약 치고 고추 따는 일은 이제 일반화되었다. 그러다 보니 논의 곳곳이 병들고 잡초 무성하여 허술해진 농사를 한눈에 알아 볼 수 있게 하고 있다.
적어도 우리 아버지나 이웃 어른들이 살아 계실 때라면 어림없는 풍경들이다. 이제 어쩌다 고향엘 가면 꼭 무엇을 잃어버린 것처럼 허전하고 쓸쓸하여, 또 심란하고 착잡한 심경으로 있다가 돌아오곤 한다. 어두운 그림자가 고향의 들을 서서히 덮어 가고 있는 것이다. 나의 고향은 나만의 특정한 공간이 아니라, 우리 시대 모두의 고향이자 농촌일 것이다. 그 우리들의 고향이 어두운 절망의 땅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 동안 내 고향으로부터, 우리의 농촌으로부터 행복한 그림 그리기를 계속해 왔다. 고통스러운 현실이 오히려 역설적으로 작가에게는 행복한 창작의 현장이었던 것을 무엇으로 설명해야 하나. 희망의 땅이 사라지는 지금, 나는 아직 땅을 그리되 노동의 현장이 아닌, 노동을 기다리는 땅, 노동이 있어야 할 땅을 대신 그리고 있다. 그것이 언제까지 계속될지 이젠 나도 알 수가 없다.
이번 전시회를 하게 된 동기의 가나미술상, 그 수상 소감에 적었던 글 한 토막을 다시 적으며 새로운 그림 그리기에 더욱 열중할 것을 다짐해 본다.
“내가 농촌을 그리기 시작했던 10년 전의 그 때보다도 지금의 농촌은 한층 열악해졌고 급기야 쌀 시장 개방에까지 이르러 더욱 황폐화되고 있다. 궁극적으로 내 그림의 꿈이 농촌의 희망을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면 현실은 오히려 그 반대로 되어 버렸다. 미술의 사회적 기능과 힘의 한계를 인정하면서도 내가 작업해 온 결과가 오직 문화적 가치로서 밖에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에 새삼 무력감을 느낀다. 그러나 그나마 내가 아직까지 그려 왔고 또 앞으로도 그려 갈 세계란 오직 땅의 힘에 대한 믿음과 희망일 수밖에 없다.”
1996. 10.
출처 : http://www.kcaf.or.kr/art500/leejongg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