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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1월 22일(화) 출애굽기 35:20~29 '성령의 감동으로 드리는 자‘ 찬송가 50장 내게 있는 모든 것을
오늘은 출애굽기 35:20~29 말씀을 중심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드리는 자 '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스라엘 온 회중이 모세 앞에서 물러가고, 마음에 감동된 자와 자원하는 자가 성막 건축을 위한 각종 예물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립니다. 모세는 백성이 자발적으로 드린 예물의 내역을 밝히고 그들이 이 모든 것을 자원함으로 즐거이 바쳤다고 고백합니다. [요한복음 16:1-24]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 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스스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들 은 것을 말하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미처 가르치지 못하신 새로운 진리를 가르치시는 분이 아니라 그가 가르치신 모든 진리를 바르게 깨닫게 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알건 모르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함께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알건 모르건 성령께서는 우리 가운데 함께하십니다. 우리가 오늘도 이렇게 숨 쉬고 거동하며 사는 것도 다 성령의 역사로 가능한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그의 놀라운 사역과 은혜를 힘입으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우리와 함께하시는 성령의 임재와 그 능력의 역사를 우리가 확실히 깨달아 안다면 우리는 더욱 더 큰 일을 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의 오레곤 주에 살던 한 가난한 농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마을회관에서 영화를 상영한다는 소식을 듣고 부부가 함께 보러갔는데 영화가 나오기 전에 한국 전쟁에 대한 광고가 짧게 나왔습니다. 한국전쟁으로 인해 많은 고아들이 생겼고, 고아들을 돌보는 사람들도 많지만 여전히 턱없이 부족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광고를 본 농부 부부는 마음에 뭔가 울림이 느껴졌습니다. 영화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았고, 집에 와서도 온통 아이들 생각뿐이었습니다. 애써 ‘우리 같은 가난한 농부가 할 일이 아니잖아?’라는 생각으로 무마하려 해도 너무 강렬한 느낌이었습니다. 결국 부부는 함께 기도를 시작했고 며칠 뒤에 확신을 얻었습니다. 그래서 가진 밭의 절반을 팔아 한국에서 8명의 자녀를 입양했는데, 이 사실이 언론에 알려지며 여기저기서 도움의 손길이 찾아오기 시작했습니다. 농부는 농사를 그만두고 이런 도움을 바탕으로 전적으로 아동복지에 매달리게 되었는데, 이렇게 생긴 것이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아동 복지단체 ‘홀트아동복지회’입니다. 성령님이 주시는 감동이라면 두려움과 의심 없이 곧 순종해야 합니다. 주님께 순종할 때 주님이 일하시고, 사람의 생각을 뛰어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기도 중에 응답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반드시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합니다. (누가복음 2:27)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사도행전 21:4) “제자들을 찾아 거기서 이레를 머물더니 그 제자들이 성령의 감동으로 바울더러 예루살렘에 들어가지 말라 하더라” 오늘 읽은 본문 20~21절에도 이스라엘 백성들, 특히 ‘마음에 감동된 자와 자원하는 자’들이 성막을 짓는데 필요한 모든 예물을 여호와께 드립니다. 이 말은 결국 성령의 감동을 받았음을 말해줍니다. 여기서 ‘마음이 감동된 자’와 ‘자원하는 자’는 같은 이스라엘 공동체를 일컫는 것으로 마음이 자원함이 하나님의 감동하심 즉 성령의 감동함의 결과로 나타났음을 의미합니다. 즉 이스라엘 백서이 자원하여 성막 건축을 위한 예물을 드릴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그들이 가진 것을 기꺼이 드릴 수 있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역사하실 때 성도는 성령의 감동으로 자원함으로 예물을 드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여 자원함으로 예물을 드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또한 본문 22~28절에는 더 구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헌신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음에 원하는 이스라엘 남녀가 팔찌와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걸이 등 여러 가지 금품을 하나님께 예물로 드립니다. 출애굽할 때에도 귀금속은 사람들에게 귀하고 값어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고 이처럼 자신에게 귀한 금과 보석과 같은 예물을 하나님께 아낌없이 바쳤습니다. 그 이유는 성막을 아름답게 짓는 일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제일로 알고, 주님의 일에 최고의 가치를 두는 자는 자기가 가진 것 중에서 가장 고귀하고 가치 있는 것을 아낌없이 드립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오라버니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려주심에 감사해 순전한 나드 한 근을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의 머리털로 그 발을 씻어 예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드렸습니다(요12:1-8). 나는 내가 가진 가장 귀한 것을 나를 위해 쌓아두기만 합니까? 아니면 주께 아낌없이 드립니까?
또한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29절 말씀에 개역한글 성경에는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되 ‘즐거이’ 드렸다고 기록합니다. 역대상 29장 14절에 보면, 다윗은 “나와 내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 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했습니다(고후9:7). 주님은 ‘보물을 이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아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6:19~20). 그러므로 성도는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위해 헌신함으로 누리게 되는 영적인 즐거움을 추구해야 합니다. 예배드림이 기쁨이 되고, 하나님께 주의 일을 위하여 예물을 드림이 기쁨이 되고 즐거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라기는 저와 여러분들이 이 땅에서 믿음생활하는 동안 ‘성령의 감동으로’ 자원함과 즐거움으로 하나님 나라와 주의 일을 위해서 나의 가장 귀한 것을 주님께 드릴 수 있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