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대 여성수필의 정체성 연구
80년대 여성언술의 특성
독백의 유보성
권대근
문학박사,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독백의 언술 구조가 문학 장르에서 수필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독백 스타일은 전략적 글쓰기 차원에서 여성시나 여성소설에서도 나타난다. 수필의 경우도 예의가 아니라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까지 여성 문학의 연구가 여성시나 여성소설을 중심으로 진행되다 보니, 수필 분야는 여성주의 관점의 전략적 글쓰기가 전무한 것처럼 비쳐졌다. 수필의 특성이 자기를 비추고, 내면을 드러내는 문학적 특성으로 인해 독백의 언술이 잘 안 드러나는 건 사실이다. 수필을 읽는 매력이 작가의 다채로운 내면 풍경을 따라 가면서 느끼는 지적 쾌락이고 보면 수필가는 언제든지 자신의 내면을 보여주게 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 수필에 나타나는 독백의 스타일은 소극적인 방법이지만 일종의 전략적 글쓰기 수단이 된다.
1980년대 여성 수필의 언술 특성에서 독백이 자주 등장하는 것은 특별히 여성적인 언어의 활약이 두드러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언술을 통해 여성들은 남성들로부터 강요된 침묵을 깨트리고, 자신의 무의식적 욕망을 향해 말을 꺼내고, 그 ‘내면’을 발설하고자 하는 것이다. 여성은 흔히 자신이 바라는 이상과 실제로 처해 있는 현실 사이의 엄청난 간극 속에 존재한다. 때문에 애매한 어투를 통해 자신의 생각이나 인식에 자신 없음을 나타내는 것은 이러한 간극을 나타내기에 적절한 기제가 될 수 있다. 흔히 집단에서의 권력 서열은 그들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상대방의 말을 가로막을 수 있는가 하는 횟수에 따라 정해진다. 때문에 여성처럼 하위에 있는 사람들의 언어는 망설임을 통해 자신감의 결여나 자기 비하를 나타내는 내용이 주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맥락에서 망설임의 언어는 심리적 사건에 대한 인식을 표현하는 데에 적합한 양상인 내적 독백이나 의식의 흐름과 자연스럽게 결합될 수 있다. 두 경우 모두 언어화 이전 단계의 비논리적이고 자유 연상적인 생각의 흐름을 그대로 나타내 주므로 여성적인 감수성이나 의식을 표현하는 데 적절하기 때문이다. 즉 여성의 언어는 철학적 주장이나 극적인 사건보다는 심리적 사건에 대한 자각과 관련되므로 그것에 가장 적합한 양식이 내적 독백이나 의식의 흐름이라는 것이다.
수향 선생, 1996년의 가을이 옷자락을 휘날리며 지나가고 있소. 언제나 떠나가는 계절이 새침해서 쓸쓸하게 나이를 헤아리게 되는 요즘 자주 ‘이런들 어떠하리, 저런들 어떠하리’하면서 흔들흔들 살아 보았으면 좋겠다‘라고 이야기하게 되지요?
평생을 이것은 옳고 저것은 틀렸고, 저것은 정의고 요것은 부정이고 하면서 살아온 여유 없고 편협한 삶이 이제 와서 생각하니 웃음이 난다는 수향 당신에게 미소로운 마음으로 이 글을 쓰오.
이런 것이 아닌데...... 언제부터인가 당신은 혼잣말하게 됐어요. 사람! 참으로 복잡하고 정묘한 기계지요. 인생! 참으로 슬프고도 재미나는 연극이지요. 사람마다 삶의 방식이 있고 사람마다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고 사람마다 각자의 인생여로가 있는 것을 이제사 허허로운 마음으로 인정하게 된 늦배기 수향, 당신과 오늘은 어쩐지 마음 편하게 인생의 한 자락을 논하고 싶구려.(굵게 강조 : 인용자)
- 김문숙, 「내가 나에게 쓰는 편지」중에서 -
인용 부분에서 여성수필가는 상대에게 말하고 있는 형식을 빌고 있으나 이 수필에서는 작가가 여성운동을 하면서 느낀 인생의 씁쓸함이 묻어난다. 옳고 그름을 재단해온 삶에 대해 후회하는 것 같기도 하지만, 후회한다고 단정할만한 언술적 특성은 보여주지 않고 있다. 대화라기보다는 툭툭 내던지듯, 스스로에게 묻고 스스로가 답하고 있다. 독자의 틈입을 허용치 않으려는 듯 혼자 묻고 혼자 대답하는 작가의 담론에서는 남성 중심적 사회, 가진 자의 횡포로부터 여성의 권리와 인권을 위해 살아온 삶을 돌아보는 여성수필가의 가슴엔 회한이 가득하다. 이 같은 독백적인 대화는 세계와의 교섭을 향한 여성수필가의 열망과 세계와 결코 교섭할 수 없음의 절망을 동시에 드러낸다.
자기 만족적이고 득의양양하며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는 듯한 전지적인 언어는 남성적 언어에 가깝다. 남성적 언어는 고매하고 오만하며 확신감에 차있고 잘난 척하는 태도를 은연 중에 드러낸다. 이와는 달리 여성적 언어는 가부장적인 권위에 대한 두려움이나 여성이 만들어 낸 것의 부적절성에 대한 불안감을 나타낸다. ‘사람마다 삶의 방식이 있고 사람마다 나름대로의 철학을 가지고 사람마다 각자의 인생여로가 있는 것을 이제사 허허로운 마음으로 인정하게 된 늦배기 수향’이라고 말함으로써 편향적 시각으로 살아온 자신의 삶을 부정하려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모든 열등성에 관계된 인식이 여성수필가들로 하여금 망설임의 언어를 선택하게 하는 것이다.
가슴에 와 닿는 적막감을 누를 수 없어 이 글을 씁니다. 처서도 지나고 며칠 후면 백로이니 계절은 가을을 향하여 치닫고 있는 듯합니다. 창밖에 와 부딪히는 바람소리에도 가을이 묻어오고 있습니다. 밤을 새워 울어대는 가련한 풀벌레의 울음소리가 가슴에 와 닿는 순간마다 차라리 그들의 신세가 부럽기까지 합니다. (1)누구에게 못다 한 한을 울고 있는진 모르지만 세상 사람이 다 들을 수 있도록 소리 내어 슬픔을 호소할 수 있는 용기와 처지가 부러운 것입니다.
남의 이목을 두려워하고, 자신의 체면을 생각하여 슬픔을 내색하거나 울음을 터뜨릴 수 없는 못난 성격을 가진 자신이 밉기만 합니다. 어쩌면 하찮은 미물보다 못한 인간의 모습인 듯하여 한심스럽게 생각되기까지 합니다. (굵게 강조 : 인용자)
- 오승희, 「어느 날의 독백」 중에서 -
「어느 날의 독백」에서 여성수필가는 남의 이목이나 체면 때문에 슬픔을 내색하거나 울음을 터뜨릴 수 없다. 그런데 그녀의 고통을 더욱 가중시키는 것은 세상 사람들이 다 들을 수 있도록 소리 내어 울 수 있는 풀벌레들과 같은 용기를 가질 수 없는 자신의 내성적 성격이라는 것이다. 여성으로 태어난 자신의 진솔한 내면세계를 남성 중심주의 세상이 받아들여줄까 하는 데 대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여성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독백’의 언어인 것이다.
때문에 망설임의 언어는 여성들이 처한 딜레마와 그것을 초월하려는 노력을 동시에 보여준다. 여성들은 자신의 고유한 목소리를 통해서 자신의 견해를 공적으로 표명하는 데에 어려움을 느끼기에 자신의 견해에 단서를 붙이거나 어떤 대상에 대해서 상호 모순된 평가를 하면서 분열된 판단을 내리기도 한다. 또한 여성들이 이처럼 망설임의 언어를 사용하는 이유는 그들이 복종적이고 산만하며 혼돈스럽기 때문일 뿐만 아니라 인간관계와 의무에 대해 지대한 관심을 보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즉 여성들이 즉각적인 판단을 내리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중시하면서 타인 지향적인 의식을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페미니스트 의식을 가지고 여성 운동과 관계된 일을 하거나 사회운동을 하는 경우에는 자신의 의식에 대한 과격성을 모르는데, 여성운동이나 여권에 대한 인식이 부족한 이웃 사람들과의 대면에서 또는 한 가정 속에서 한 남자의 아내로 손자의 할머니로 돌아오면, 전투적이기까지 했던 자신의 모습이 꼬리를 감추게 되는 수가 있다. 여성들은 오랜 기간 동안 자신보다도 타인을 위해 살아야 하는 헌신적 삶의 가치에 쉽게 빠져들기 쉽다. 확고한 페미니스트 의식이 없는 한 여성수필가의 내부 속 그림자 형상은 언제나 독백으로 전달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신이 내린 눈부신 설원, 삶의 희열을 입김으로 뿜으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주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걸으며 또 걸으며 나는 허공에 독백한다. 당신은 아십니까. 눈 내리는 겨울 들판 나그네 되어 떠나는 여인의 가슴 속을 꽃피던 봄의 찬란했던 기억도 긴 여름 날의 기다림에 사라지고 그렇게도 스산했던 가을에 낙엽을 밟던 아픔만이 남아 나를 울립니다. 한마디 말도 없이 견디어 낸 세월도 이대로 미련 없이 떠나보내렵니다. 다만 한 마리 새가 되어 겨울 들판을 날고 싶습니다. 난무하는 눈송이의 조용한 입맞춤 아, 당신은 아십니까. 눈보다 희게 바랜 여인의 가슴 속을.......... (굵게 강조 : 인용자)
- 고임순, 「낮은 목소리로 오소서」 중에서 -
인용 수필은 ‘흰 눈을 밟으며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내면을 드러낸다. 흰 눈이 펑펑 쏟아지며 순식간에 은세계가 펼쳐지면, 나는 어디론지 한없이 걷고만 싶어진다. 아무도 몰래 훌쩍 떠나버리고 싶다.’는 여성수필가의 방랑벽을 발단에 깔고, 위의 독백으로 결말을 장식한 수필이다. ‘한 번도 실행해 보지 못한 물거품 같은 충동이지만, 만약 눈이 녹지 않고 그대로 은세계가 계속되었다면 나는 지금의 생활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보는 여성수필가에게 이런 독백의 언술은 통합과 사이, 그것들간의 행복한 모순 안에 통합을 열망하는 여성의 내면을 표출하는 것이다. ‘당신은 아십니까.’와 같은 말건넴이나 ‘-렵니다’와 같은 고백체, 말줄임표가 즐겨 사용되면서 현재시제로 쓰여진다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이런 특징들은 파편화된 문장으로 공적인 의미를 무력화시킴으로써 수필 텍스트에 여성적 에너지와 자발성을 제공한다. 결코 확정적이지 않은, 불안하게 흘러내리고 흔들리는 액체성을 띠는, 끊임없이 변신하여 수많은 가능성을 가진 복수적인 존재성과 부랑하는 존재의 여성 내면을 현재화하려는 언술 전략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망설임의 언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여성인물들이 지니고 있는 언어화되기 이전 단계의 의식이다. 합리적인 언어로 표현되기 이전의 혼미한 의식을 정돈하기에 적합한 양식이 내적 독백이나 의식의 흐름이고, 이 때 사용되는 이성의 검열이나 통제를 받지 않는 언어, 논리적인 배열이 무시된 언어가 바로 망설임의 언어인 것이다. 때문에 망설임의 언어는 한 생각이 다른 생각에 의해 번번이 차단되면서 나타나는 무질서와 변이의 요소를 강조한다.
이렇게 볼 때 페미니스트 언어이론이란 언어와 성을 두 가지 방법으로 관계 맺게 하는 이론이다. 즉 한편으로는 언어와 성 정체성의 관계를, 다른 한편으로는 언어와 여성 억압의 관계를 설명하는 것이다. 때문에 페미니스트언어이론은 다음의 4가지 기본적인 문제에 관해서 관심을 갖게 된다. 첫째 언어에 관해서 말할 경우에 우리는 무엇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가, 둘째 여성의 언어라는 말로 우리는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가, 즉 언어와 젠더와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 셋째 언어와 현실의 관계는 무엇인가, 넷째 언어와 화자가 놓여있는 불리한 입장, 특히 여성의 경우에서의 관계는 무엇인가 등이 그것이다.
망설임의 언어를 통해 여성들의 내면 풍경을 들여다보는 일은 삶의 고통이나 진실이 외적으로 측정될 수 있는 외부적인 사건에 있지 않다는 인식 때문에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외부 세계에서 증명할 길이 없었던 여성들에게 내면적 갈등의 표출은 필수불가결한 생존의 조건이다. 여성인물들은 이러한 갈등을 드러냄으로써 ‘투명한 마음’ 이나 ‘마음의 분위기’를 보여주게 된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 대해 해결책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불확실함을 망설임의 언어로 드러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