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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mWaKEVrvP08?si=CsXGxbTnS8qEDxbM
비라도 내려와 줄래 눈물을 감추어 줄래 내 모습이 초라하지 않도록
구멍 난 것처럼 흘러 눈물이 비처럼 흘러 이럴 땐 비라도 내려줘
비라도 내려 주면 눈물을 감춰 주면 멋있게 보내줄 수 있을 텐데
떠나는 널 잡을 수 있을 줄 알았나 봐 그래서 눈물이 나나 봐
비와 눈물 이별할 때 꼭 나오는 두 가지 공식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so sick
참을 수 없는 아픔에 이렇게 탄식 나는 참 한심한 남자니까
아직도 널 잊지 못하고 속으론 다 썩어가고 이미 내 육신은 망가질 때로 망가져
거울 속 한 남자가 내 두 눈에 비춰져 사랑에 다쳐서 부서진 내 모습
오 비야 나를 좀 적셔줘 오 비야 더 많이 내려줘 워워
내 사랑도 추억도 모두 씻어 버리게 비와 같이 널 보낼게
비라도 내려와 줄래 눈물을 감추어 줄래 내 모습이 초라하지 않도록
구멍 난 것처럼 흘러 눈물이 비처럼 흘러 이럴 땐 비라도 내려줘
이렇게 아파하며 힘든 것이 사랑이지 그래도 알면서도 부딪히는게 사랑이지
아무리 닦아 내도 흐르는 게 눈물이지 이토록 쉽게 멈추지 않는 것이 빗물이지
눈앞이 자꾸만 뿌옇게 흐려져 니 모습 점점 멀어져
이게 눈물인지 비가 오는 건지 헛갈려 앞이 보이지 않잖아
너는 멀어져 가잖아 도무지 잡을 수 없잖아 니가 보이지 않잖아
비라도 내려와 구슬프게 이렇게 예예예
비와 눈물과 내 이야기 눈물이 빗속에 가려지게 이렇게 예예예
2025년 9월 6일 어명을 받은 소나무 길
보광리 보현사 입구 주차장에서...이번 구간은 30분 앞 당겨 09:30분에 출발한다... (09:13)
보광리 普光里
동쪽으로는 관음리와 위촌리 및 사천면 사기막리, 서쪽으로는 도암면 횡계리와 사천면 사기막리,
남쪽으로는 어흘리, 북쪽으로는 사천면 사기막리에 접해 있다.
신라 때에 낭원 대사가 세운 보현사(普賢寺)의 ‘보’ 자를 따고
마을이 빛을 내는 곳이란 뜻에서 ‘보광’이란 마을 이름이 생겼다.
보광리(普光里)는 본래 강릉군 성산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보현촌, 보광동, 보갱이라 하다가
1916년 무일동, 삼왕동, 무시골을 합해 보광리라 했다.
1955년 9월 1일 명주 군에 속하였다가,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으로 강릉시에 편입되었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보광리 내의 주요 지명으로는 무시골, 절골, 보겡이, 삼왕동, 송명동 등이 있다.
무시골은 보현사 앞과 보현들 사이에 있는 지역으로 안무시골과 바깥무시골로 나누어진다.
옛날 문수보살이 살던 터가 있어 무시 터라고도 하며,
또한 무시를 무쇠 또는 물괴라 하여 수철동(水鐵洞)이라고도 한다.
절골은 폐교된 보광 초등학교에서 보현사까지의 깊은 계곡으로 보현사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보겡이는 보광 초등학교에서 삼왕(三王) 사이에 있는 내 서쪽 마을이다.
삼왕동(三王洞)은 명주군왕릉 앞에 있는 마을로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이
죽은 다음 아들 둘이 이곳에 머물러서 ‘삼왕(三王)’이라 했다고 한다.
송명동은 삼왕동에서 내 건너 서쪽에 있는 골로 골 안에 기도원이 있으며,
옛날 이곳에 송명암(誦明庵)이란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만나면 이유 없이 반가운 사람들...
출발지로 모여들고 있는 바우님들...
새로 오신 바우님들 반갑게 맞이한다.
국땅님 Opening 인사... (뒤에 밥 아자씨는 고개 숙이고 뭐 하는 거지?) ... (09:30)
어명을 받은 소나무길
강릉 성산면 보현사 인근은 목재가 굵은, 그러니까 연식이 좀 되는 (70년 이상) 금강송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일명 '대공산성 등산로'라고 불러왔지만, 최근엔 바우길 2,3구간으로 새롭게 길 이름이 추가되었다.
금강송은 송진이 가득 차 비를 맞아도 잘 썩지 않고 단단해서 목재로 널리 쓰인다.
특히 동해안 금강송은 예로부터 궁궐 목재로 많이 쓰여졌는데,
2007년도 광화문 복원에 이곳 금강송이 일부 벌채가 되었다 한다.
강원도민일보 최동열 본부장의 기사에 따르면,
궁궐용 소나무를 벌채할 때는 소나무를 벤다는 고유제를 지내고,
벌채 대상목 옆 나무에 북어와 창호지를 실타래로 묶는 소매지기, 벌채목 밑동의 껍질을 벗기는 근부박피,
검인 도장 낙인 등의 까다로운 절차를 거친 이후에 대목수가 도끼질하는 본격적인 벌채작업이 진행된다.
대목수 한사람이 벌채할 소나무 밑동을 도끼로 세 번 내리치면서
'어명이요'라고 크게 소리치는 것은 큰 나무를 벨때의 전통의례인데,
그 연유는 100년 이상을 산 소나무는 영물로 보기 때문에 나무를 베는 것을 목수들이 한편으로는 두려워하고,
꺼리게 되므로 임금의 명에 의해 어쩔 수없이 베게 되었다는 것을 알리는 차원에서 어명이라는 것을 강조해 외쳤다고 한다.
세번 도끼질이 끝나면 톱을 든 목수가 나서는데, 톱을 들고 나무를 베어 넘기는 목수야말로 정말 기가 센 사람이라고 한다.
나무를 다루는 목수가 '이 큰나무를 어떻게 베어 넘기나'하는 식으로 처음부터 주눅이 들어 버리면 산판의 큰 벌목행사,
특히 궁궐용 목재 벌채는 진행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정말 기가센 목수가 톱을 들고
큰 나무를 완전히 제압해 베어 넘기는 방식으로 벌목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어명정은 광화문 복원용 소나무가 벌채된 자리에 세운 정자다.
정자 한가운데에 벌채한 소나무 그루터기를 전시해 놓았다.
그리고 당시 지냈던 위령제 사진과 시인 엄창섭 교수의 기념시가 기둥 위편에 걸려 있다.
3 구간지기 하비님과 인디언 캡님.
테라씨, 산두꺼비 탐사대장님, 지영 팀장님.
멀리서 오신 두 분...(바우길을 완주하시겠다는 의욕(意慾) 만땅이다)
가뭄과 무더위에도 불구하고 많은 바우님들이 참석...
오랜만에 반가운 염팀장 얼굴도 보이고...
어명정길 하비님의 리딩으로 힘차게 출발한다...(09:38)
보현사 정문을 스쳐 지나간다.
보현사 普賢寺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 소속 사찰.
건립초기에는 보현산사 지장선원(普賢山寺 地藏禪院)이다.
일반적으로 산명을 사명으로 쓰면서 또 다른 사명을 쓰기도 한다.
즉, 산의 이름이 보현산이므로 보현산사라하고 사명은 지장선원이라 하였다.
굴산문의 개산조인 범일국사(梵日國師)의 법(法)을 이은 낭원대사(朗圓大師)에 의해 개산 된 사찰이다.
굴산산문의 개산조이고 낭원대사의 스승인 범일국사가 889년에 입적하자
부도와 비석을 세우고는 민규 알천의 지원 아래 보현사에 주석하게 되었다.
보현사의 창건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적어도
범일국사가 입적하는 889년에서 924년 사이에는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2005년 강원문화재연구소에서 사찰 동측의 식당선원 예정부지를 발굴조사한 결과
10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해무리굽 청자 편과 금동풍탁 11점,
그리고 조선시대의 분청사기와 백자편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사찰 입구에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부도 20기가 있다.
보현사는 강릉 지역에 현존하는 최고의 사찰로서 굴산산문의 법맥을 잇는 사찰이다.
어명정길은 출발부터 술잔 바위까지 제법 경사가 있는 된비알의 연속이다 (허벅지와 엉덩이 근육 만들기에는 그만이다)
힘겹게 올라 첫 번째 쉼터 도착... 시원한 바람이 고맙게 불어오고 있었다...(09:56)
백두대간 마루금...
올라야 할 아름다운 숲길...
금, 은, 동메달 시상대 같은 바위 ...
뚝갈?...
잠시 휴식....(10:37)
아~ 저 나뭇가지가 절세미인 생쥐님 얼구리를 가려 버렸네...
어명정 도착...(11:04)
강릉의 둘레길인 ‘바우길’ 구간 중에 ‘어명을 받은 소나무길’이라는 별난 이름을 가진 코스가 있다.
대관령 아래 성산면 보광리에서 명주군왕릉까지 12.5㎞ 산길이다.
이 길이 특별한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광화문 복원과 관계가 깊다.
지난 2007년 광화문 복원 때 기둥으로 쓸 소나무를 여기서 벌채했다.
길 중간에 있는 ‘어명정(御命亭)’은 그 사실을 알려주는 상징적 시설이다.
아름드리 금강소나무를 베어내면서 옛 예법에 따라 ‘어명을 받아 벌채한다’는 것을 알리는
고유제를 지내고, 베어낸 그루터기에 정자를 세워 벌채의 뜻을 기렸다.
한국인에게 소나무는 인생목(木)이면서 민족의 나무이다.
태어나면 소나무 가지로 금줄을 쳐 액운을 막고, 소나무 집에서 살다가 죽으면
소나무로 만든 관에 육신을 담아 솔숲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희로애락, 생로병사를 함께해 온 소나무 이야기로 말하자면 강릉은 화수분 같은 곳이다.
해풍과 왜적의 침입을 막아 줬다는 바닷가 송정의 울창한 해송림에서부터
신라 화랑들이 심고 가꿨다는 한송정 송림, 오죽헌의 율곡송(松) 등등.
소나무 이야기는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도처에 즐비하다.
오대산 자락 첩첩산중, 부연동 마을에는 호랑이 전설을 간직한 ‘제왕솔’이 위용을 뽐내고,
100년 전에 뿌린 씨가 400㏊ 국내 대표 소나무 군락지를 이룬 대관령 솔숲은
산림청에서 아예 ‘문화재 복원용 목재 생산림’으로 지정해놓고 있을 정도다.
율곡은 동시대 강릉 향리의 어른이었던 임경당(臨鏡堂) 당주 김열(金說)이
집 주변에 선친이 심고 가꾼 솔숲이 후대에 모두 베어 지지 않을까 걱정하자
“선대에 손수 심은 소나무에 잠깐만 눈길이 스쳐도 어버이 생각이 불현듯 솟구칠 텐데, 어찌 함부로 범하겠냐”며
저 유명한 호송설(護松說)을 남겼다.
그런 강릉 소나무가 서울 광화문 광장 산책로에 조경수로 심어졌다.
산책로 사이로 광화문과 북악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묘한 배치다.
광화문 기둥에 먼저 사용된 어명정 소나무와 짝을 이뤄 대한민국 심장에서
다시 천년을 살 강릉 소나무가 더없이 귀하고 자랑스럽다.
30분 일찍 출발했더니...시간이 남아 어명정을 지나 술잔바위에서 점심 식사를 하기로 한다.
술잔 바위와 대공산성 갈림길...(11:28)
강릉대공산성 江陵大公山城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와 사천면 사기막리에 걸쳐 있는 고대 산성.
백제의 시조 온조왕(溫祚王)이 도읍지로 정하고 군사를 훈련시키기 위하여 축조하였다는 전설과
발해의 대씨(大氏)가 쌓았다 하여 대공산성(大公山城)이라 불린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가까운 곳에 보현사가 있어 보현산성(普賢山城)으로도 불린다.
전설로 전해 오는 백제의 온조왕이나 발해의 대씨가 쌓았다는 설은 민간에 전하는 이야기 거나 오류인 것으로 보인다.
5세기 이전에 이 지역은 고구려 영역이었고 백제는 이곳까지 힘이 미칠 수 없었으며,
5세기부터 시작된 신라와 말갈의 접경 지역은 니 하성(泥河城)으로 판단하는 견해도 있으나
발해의 대씨가 축조한 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9세기 말엽까지 신라와 말갈이 대치한 곳이 이하였을 것이라는
견해를 인정한다고 해도 이 성과 발해 대씨와의 관계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조선시대 지리지들이 보여 주는 보현사의 존재와 관련한 명칭으로 보현산성이 더 타당성 있어 보인다.
한편, 산성에 대한 옛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처음 보이며 ‘파암산석성(把巖山石城)’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 후의 지리지 기록에서는 모두 ‘보현산성(普賢山城)’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에서는 ‘대공산성(大公山城)’으로 기록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에서 이 성을 ‘대공산성(大公山城)’으로 칭한 것은 오류라고 생각된다.
이를 인정하고 비판 없이 문화재지정 명칭으로 삼은 것도 잘못이며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보현사(普賢寺)가 신라 말 굴산사의 말사로 개창된 후 본 산성이 위치한 산의 명칭이 보현산으로 불렸으며,
이에 따라 모든 지리지들이 ‘보현산성’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보현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성곽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렇게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대공산성(大公山城)은 강릉시에서 서쪽으로 약 20㎞ 지점에 위치한 높이 2m, 둘레 3㎞ 정도의 석성(石城)이다.
보현사에서 서북 방향 약 2㎞지점, 해발 1,131m의 곤신봉(坤申峰)에서 동북 방향으로 약 1.5㎞ 지점에 위치해 있다.
노인봉에서 곤신봉, 능경봉으로 이어지는 태백산맥에서 동쪽으로 돌출된 944m의 보현산에 타원형으로 축조되어 있다.
이 성은 남쪽의 제왕산성, 동남 방향의 칠봉산성, 명주성 등에 둘러싸인 고대산성의 거점 성으로 판단된다.
성의 중심에서 북쪽지역 저지로 내려간 곳에 우물 2곳이 있고,
남쪽의 우물물이 북서쪽으로 흘러내리고 그 위 북쪽에 건물지로 추정되는 곳이 있다.
성의 정문으로 생각되는 동문 근처에 석원(石垣)을 갖춘 우물이 있으며,
성안의 수원은 풍부하며 우물 근처에 일부 늪지대가 있다.
성 안에는 건물지로 보이는 평탄지가 곳곳에 있으며,
평탄지에서는 고려~조선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많은 양의 토기 편과 와편, 백자 편, 그리고 청자편도 일부 산재해 있다.
[의의와 평가]
자세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여 고대사 속에서 이 성곽의 비밀을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강릉 지역의 가장 오랜 산성이며 영동과 영서를 잇는 대관령 지역에 축조되었던 고대 산성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1979년 5월 30일 강원도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강원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아름다운 소나무 군락지(群落地)
각자 흩어져 맛있는 점심 식사를 한다...(11:40)
식사 후... 바위에 앉아 '사랑의 작대기'를 하고 있는 이상한 사람들...(12:14)
술잔바위... 가뭄인데도 술잔에는 술이 가득 차 있었다.
술잔 바위에 앉아 비를 내려 달라고 간절히 기도 하고 있는 지영씨...
조용하던 술잔바위가 이상한 사람들이 몰려와 북새통이다...
봄꽃님과 하곤 형님의 은밀한 대화...
'우리 집에 물이 상구도 안 나와...니네 집에 가서 샤워 좀 해도 되나?'... 하는 것 같다
다이어트에 성공해 나타난 미네르바님... 그 미모에 놀란 표정의 지영씨..
형부(두멩이님)와 처제(미수기님)
아니 이 사람들은 아직도 '사랑의 작대기' 놀이를 하고 있나?
맛있는 스펀지 케익
산불 감시 초소 도착...(13:00)
먹이를 기다리고 있던 하이에나...
레이니어님 & 틸리초님
뒷 모습이 자신있는 주니정님과 약간 비튼(?) 45도 옆 모습이 자신있는 테라님...
엄마와 사이좋게 걷고 있는 착한 아들..
카메라를 보더니 흡~하고 호흡을 멈추는 짱돌님...(와~ 배가 쏙 들어갔네)
미수기 & 칭런 할부지
어명정길 종착지 스탬프 찍는 곳에 도착...(14:07)
홍살문(紅─門)
홍살문(紅살門), 홍전문(紅箭門), 홍문(紅門), 정문(旌門)은 대한민국의 전통 대문(大門)으로,
설치한 지역이 신성한 곳이거나 구격(具格, 주 격식이나 예절을 갖춤)이 맞는 장소임을 나타내기 위해 표지로 세우던 문이다.
이름을 직역하면 '붉은 화살 문(Gate with Red Arrows)'이라는 뜻이다.
기록상 삼국시대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며, 현재 남아있는 홍살문들보다 과거의 홍살문들은 그 크기가 매우 컸다.
종로거리에도 거대한 홍살문이 있었다.
주로 왕릉과 같은 묘지나 향교. 서원, 궁궐 및 관아 등의 정문으로 설치하였으며
드물게 용주사처럼 절에 있는 것도 있고 대구 약령시처럼 거리에 설치한 경우도 있다.
형태를 보면 나무로 만든 기둥과 살에 붉은색을 칠하고 문의 상단에도 붉은 화살(홍살)들이 붙었고
가운데에 한국식 태극무늬를 새겨 붙인다. 태극무늬를 지나는 홍살들은 서로 꼬여 당파 모양을 하였다.
붉은색으로 칠함은 동짓날 팥과 같이 붉은색이 양기를 띠어 귀신과 액운을 물리친다는 뜻이고,
윗부분을 화살로 장식함은 잡귀를 화살로 쏘아 없애버린다는 뜻을 담는다.
일반 문과 달리 문짝이 없고 '문 문(門)'자 모습을 하였다.
용도도 일반 문과는 다르게 장소의 안팎을 구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지점으로 도달했음을 명시하는 것이다.
또 홍살문 옆에는 신성함을 위하여 하마비(下馬碑),
즉 통행인의 신분과 상관없이 '타고 있던 말에서 내려걸어 지나가라'라고 지시하는 내용을 새긴 비석을 세우는 곳도 있다.
이곳에서는 귀천과 상관없이 왕이나 황제조차도 말에서 내려야 한다.
명주군왕릉 주차장에 도착... 오늘 발걸음을 마무리한다...(14:14)
무덥고 메마른 가뭄으로 발걸음이 그리 가볍지는 않았지만...
간간이 불어오던 시원한 바람에 위로를 받으셨으리라.
가뭄으로 힘겨운 나날이지만 슬기롭게 이겨 내시길 바라면서..
함께 한 바우님들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P.S
오늘 바우길 걷고 집에 가셔 빨래하고 샤워 하신 분들... '배신~배반' 입니다.
(참고로 저는 물 티슈 석장으로 해결했습니다...믿거나 말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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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선두의 모습을
저렇게 멀리서 담으셨다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이셨을까
걷자님의 체력에 부럽고
깜짝 놀라요~
요리 새고 저리 새느라
오늘은 님들의 모습을 많이 담지 못해 죄송한 마음과 아쉬움이
많았는데
역시나 부지런하신 걷자님의 다양한 사진에 위안을 받습니다~
술잔바위에서의
점심 시간은
아~그랬구나~~^^
저도 이젠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절실히 느낀답니다.
힘들어 하면서도 참석해 함께 하는 테라씨가 그저 고맙다는...
그동안 바라는 것 없이 열정 하나 만으로
바우길에서 열심히 사진을 찍어왔는데...뭐가 죄송한지 모르겠습니다.
있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그대가 아름답고 멋지기만 합니다.
술잔바위에서 생각했습니다.
산불 초소에서 외롭게 식사하고 기다리느라 지루하고 심심했을 거라고...
오늘도 함께 여서 즐거웠고 참 좋았습니다....
고맙고 수고 하셨다고 ... 화이팅을 외쳐 봅니다...^^
@걷자(서울/강릉) 어~
외롭지 않았는데~
키키님이랑 어명정에서 이른 점심을 하고
둘이 사부작 사부작 걸으며
뱀도 보고 ㅋ 두꺼비도 보고
꽃도 보고 시원한 바람 맞으며
또 서울에서 오신
산악자전거 팀을 만나
이야기도 하구요~
즐거웠답니다~^^
함께 걸어서 즐거운 하루 되었네요.
멋진 작품사진들 즐감했습니다. 오늘하루 너무나 수고많이 하셨습니다 ~^^
조금은 습하고 무더웠지만....
간간이 불어 오는 고마운 바람 덕분에 걷기 좋은 어명정길이였습니다.
앞에서 안전과 배려로 적절하게 리딩해 주신 하비님에게 고마움을 전 합니다.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돌이켜보면 저역시도 여름 바우길에선 땀으로 목욕을 했던적이 많았었는데,
지나고나니 푸른 숲길에 피어있던 예쁜 야생화들을 많이 놓쳤던 것 같습니다.
걷자님의 후기를 보니 여전히 씩씩한 모습으로 바우길에 참여하시는 바우님들이 너무 반갑고 보고싶네요.
오늘 밤에는 강릉에 비 좀 많이 내려서 가뭄 해갈에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저도 비에대한 노래 한 곡 올리겠습니다.
부활 - 비와 당신의 이야기 (1986年) - https://youtube.com/watch?v=DxyMf2jvLLw&si=NMMOtXllSUTSheQG
PLAY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마저 멀어 진 다지만...
바우길에 참석하면 가끔 구름님이 생각나곤 했습니다.
'요즘은 구름님이 왜 안 올까?'...하고...댓글이 반갑기만 합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가끔 이라도 불쑥 나타나 함께 할 시간..기다려 봅니다
오늘 걷는 길에서는 소나무도 소나무이지만 바닥의 돌들이 심상치 않았습니다. 이것은 돌도끼였을까, 토기였을까 싶은, 박물관에서 많이 보던 듯한 파편들.... 소나무 사이로 쏴~하는 바람소리, 나즈막하게 들리는 바우님들 목소리들.... 가뭄만 아니었다면 너무 행복한 3구간이었습니다~^^ 사진과 글들 감사합니다~
보현사가 자리 잡고 있는 보광리는 지리적으로 상당히 괜찮은 지형 이였던 것 같습니다.
보현사와 대공산성(보현산성), 명주군왕릉..등등 많은 유적들이 있는 걸로 봐서는
그 전 선조들이 살기에 좋았던 지역 이였던 것 같습니다...그러다 보니 많은 유사한 흔적들이...
간간이 불어 오는 바람에 가뭄도 잠시 잊고 잠시 행복했었습니다.
지영 팀장님 수고하셨습니다
힘들때 마다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끝까지 즐겁게 잘 걸었어요. 바람이 불어도 더운 날씨에 언덕길은 힘든 법인데, 멋진 사진 찍으시느라 정말 수고 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새치미님을 보고 있으면...'외유내강'이 보이곤 합니다
힘들어 하면서도 끝내 굴하지 않고 극복해 내는 의지력...
건강 잘 챙기시고 쉬지 말고 체력 잘 키우시길...
화이팅을 외쳐 봅니다....^^
땀을 흘려도 즐겁게 만드는, 마치 요술 같은 바우길입니다.
역시나 늘 따뜻한 마음과 풍성한 주말 후기!
함께해 주셔서 언제나 감사드리고, 늘 고맙습니다~ ^^
볼매 국땅님 같은 사람이 있어...
언제나 요술 같은 바우길이지 싶습니다.
항상 수고해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걷자님 덕분에 이렇게 바우님들을 만나니 반갑기 그지 없습니다 ^^
저희는 방금 전에 도착했습니다
덕분에 잘 다녀왔습니다~^^
바우길에서 뵐께요~^^
좋은 추억 많이 쌓고 건강하게 무사히 돌아 오심을 반깁니다.
사진을 보면서 잠시 옛 추억에 잠겨 보았습니다.
잠시의 일탈 시간~ 잘 정리하시고 편하게 일상으로 돌아 오시길....
수고하셨고 길에서 뵙겠습니다.
코룰디 호수?
제가 갔을 때는 눈이 많고 길이 질퍽해 무척 고생했었는데...
눈 없는 풍경을 보니 마냥 평화로워 보입니다.
@걷자(서울/강릉) 날이 너무 좋았습니다 ^^
덕분에 즐감했네요 즐건한주되시구요^^~~
항상 궂은 일에 앞장서서 봉사하시는 덕분에
바우길이 더 건강하고 아름답지 싶습니다
이번 구간도 후미에서 대단히 수고하셨습니다.
힘겹게 올라가서
정신없이 밥먹느라
술잔바위도
제대로 못보고 내려왔는데
다행히
걷자님의 후기 사진 속
술이 가득 찬 술잔바위를 보면서(정말로 눈이 번쩍 뜨임)
명상을 하며 저도 함께 기도를 해봅니다.
비야, 비야, 어서 내려라~
함께하신 바우님들 수고 많으셨구요~
오르락 내리락
걷자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바우길에서 보리사랑, 보리님 두 사람과 함께 걷다 보면
괜시리 기분이 좋아지고 미소가 지어 진다는 거...
함께 여서 즐겁고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