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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사평론 - 정론직필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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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한민족 역사(조선시대 및 그 이전) 스크랩 44. 우리 역사 속 지명에 관하여 2 : 평양(平壤)
회귀자연 추천 3 조회 498 16.08.12 13:4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시와 수다] 44. 우리 역사 속 지명에 관하여 2 : 평양(平壤)

18글자 짧은 시-民調詩-로 읽는 우리 문화와 역사

 

[민조시 44]

평양(平壤)

 

평양은

다스리는

들녁이라지,

 

부도(符都) 태양이지.

 


사진:통일뉴스, 평양 단군릉에서 개천절행사

 

<東國通鑑外記(동국통감외기)>에는 단군조선의 역사를 기록하면서 가장 먼저 언급된 

도읍지가 평양(平壤)이다. 그 다음으로 옮긴 도읍지의 지명이 아사달이라 하였다

전편에서 아사달에 대한 이야기를 하였으므로 이번에는 평양이라는 지명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 살펴보겠다.

 

먼저 음운학적으로 최춘태는 그의 글 <서울의 지명유래>에서 의 초음은 [버러]로 재구되어 

넓은 ‘벌판’, ‘땅’을 의미한다. 의 음은 [다라]로 동일한 시기가 있었으며 

‘나라’ 혹은 ‘땅’, ‘도읍지’를 말한다. 결국 , , 는 음이 같고 의미도 같은 시기가 있었다.

따라서 漢陽平壤은 음이 다를 뿐, 모두 ‘넓은 땅’을 뜻하여 의 기본 요건을 갇추었다.

 

()다스린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다스리는 넓은 벌판, 다스리는 도읍지란 

문자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山祭(산제)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평양이 도읍지로 처음 기록된 청동기, 단군조선 시대는 정치와 종교의 제정일치 시기였다

그러한 시기에 ()이 제사에 관한 의미를 가지고 있음에 주목하자.

 

기록에 평양에서 아사달로 도읍지를 옮겼다고 하는데, 결국은 평양이나 아사달은 같은 

의미를 가진 지명으로 보이며, 아사달은 원래의 소리값이 남아있으면서 언덕에 위치함을 

표현하는 거라면, 평양은 한자로 옮겨진 표현이라 보여진다.

 

제사에 관한 의미가 남아있어, 종교의 중심지이며 정치중심지인 부도의 흔적이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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