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명- 하나는 외로워 둘이랍니다
저- 임창아 동시집(115)
출- 브로콜리숲
독정-
2023년 12월 20일 베트남 여행에서 돌아온 날 받은 동시집 한 권, 시인의 동시집을 무심코 여니, 두 글자 제목들로만 가득 채워두었다. 소리씨, 모양씨, 감정씨, 어찌시, 이름씨! 이렇게 오로지 글자에 의미를 부여하며 시를 쓰는 분은 문무학 시인이신데 임창아 시인이 학문적으로 고매한 그 분을 닮아 있다. 반가운 마음에 시인의 동시집을 열어 읽어 내려가니 시집이 아니다. 그림 선명한 따스한 그림책이 열린다.
◉ 펄펄- 인적 끊긴 김흔 산속 눈은 펄펄 오고 꼬부랑 며느리 이마는 펄펄 끓고
가슴이 땅에 닿을락 말락한 꼬부랑 할머니표 맑은 흰죽 덩달아 펄펄 끓고 있었어.
◉ 둥둥- 황소야 힘내! 둥둥 떠가는 스티로폼 조각이 응원해요. 보는 사람 마음도 하염없이
소와 함께 둥둥 떠가는 합천에서 밀양까지 80km 겨우 얼굴만 내밀고
◉ 쓸쓸- 만나는 친구 한 명 없고/밥 먹었냐? 묻는 가족도 없어/
※ 동전 모아 소주 사 가는 비닐봉지를 불러와 백수 삼촌 뒷모습의 쓸쓸함을 잘 스케치해 담은 시였다.
◉ <막막>은 ‘막막’ 대로 참 많은 사연과 느낌을 막막 두 글자에 우려 담아 절절한 막막함을 담아내었고 <묵묵>은 묵묵대로 묵그릇 한 그릇에 얼굴 집어넣고 묵밥 먹는 노인의 허기짐을 너무 잘 그려 담은 수채화였다.
이렇듯, 시인의 감성으로 쓴 시는, 동화 작가인 나로서도 미처 깨쳐내지 못한 이야기를 가득 담은 이야기 시였다.
◉ 감감- 감 언제 떨어지나 틈만 나면 달려가. 보다 못한 하느님 비와 바람을 감나무에게 보냈대. 감감무소식이던 감나무 아래 반질반질 감들 여기저기서 어서 주워 가! 다정하게 손짓 하더래
※ 우리 집 감나무의 감이 이래서 떨어졌을까? 그런 줄도 모르고 난 안타까워했지. 조금만 더 익으면 맛난 홍시 되는데 속절없이 떨어져 코 박고 누워있어서. 시인은 동심으로 살고 나는 동심 잃은 지 오래!
◉ 훨훨-초코파이가 떠나고/ 비닐이 되어/ 시름시름 앓는 봉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버스정류장 의자 밑에 엎드려만 있다가. 마지막은 경치 좋은 개울가에서 조용히 맞고 싶어/ 의자 밑을 나왔어요/ 스톱 스톱/ 여기 손님 있어요/ 젖 먹던 힘 다해 훨훨 날아/ 꽁지 빠지게 버스 꽁무니 뒤쫓아 갔어요.
※ 의인화로 비닐봉지에 생명을 불어넣으려면 먼저 비닐봉지에도 생명이 담겼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 알아차림이 이야기로 스며들어 시인의 가슴에 정겹고 따스한 이야기로 살아 나왔다.
◉ 쑥쑥-죽순이 쑥쑥 자라 뱀 지나가며 고갤 불쑥 내미는 것 같아 놀란다. ‘난 그냥 여름이 어디까지 가고 있는지 보려는 것뿐이야.’
※ 죽순의 능청스러움이 웃겨준다.
◉ 긴긴- 마스크 사려는 긴긴 줄이 탯줄처럼 약국으로 이어졌던 기억. 긴 긴 싸움의 후유증
※늘어선 줄을 탯줄로 표현한 말은 생명을 연장하려는 인간 군상을 가장 절묘하게 잘 비유한 단어였다. 단어 하나도 꼭 그 자리에 맞는 단어를 찾아와 쓰는 작가다.
◉봄봄-노란 앞치마/ 노란 모자 쓴 언니/ 갓 블랜딩한 봄 주르륵 내려요// 신장개업 카페 봄봄이/ 지나는 사람들 코끝 자꾸 간질여요// 봄이 왔다고/ 봄이 여기 있다고
※봄봄 카페집 앞을 지날 때마다 ‘봄봄’이라는 간판에 마음이 자꾸 끌렸다. 저 간판 이름을 누가 지었을까? 자꾸 마음 끌리게 했던 ‘봅봄’을 시인은 시로 옮겨왔네.
-시심을 들셔 감각을 깨우쳐주는 배움을 주는 시들이라 <스승>을 품듯 임창아 선생님 동시집 『하나는 외로워 둘이랍니다』 시집을 품는다. 경애와 존경으로 두고두고 읽고 싶어서…….
<더 간추려 적어 본 것들>
◉벌벌- 길도 벌벌 떨고 달도 벌벌 떨며 내 뒤를 따라와 같이 가/ 전기 배달하던 전깃줄도 벌벌 떨며 내 뒤를 쫓아와
※ 시인은 눈이 밝다. 전깃줄이 전기 배달하는 걸 언제 보았지? 난 한번도 그렇게 보지 못했는데. 시인이 위대할수록 나는 내가 부끄럽다.
◉ 풀풀- 푸른 깃대 잡은 바랭이 뒤/ 까마중과 쇠비름과 강아지풀이 조폭들처럼 서 있어//
※ 시골 우리 텃밭에 풀들이 좀 많나? 그래도 조폭 같은 기세 한 번 눈치채지 못했고, 샤워 한 번만 했으면 하는 간절함-몽골 갔을 때 물 없어 샤워 못 해 아쉬웠던 내 모습이었는데 동상이몽으로 느껴보지 못했네.
◉ 쓸쓸- 만나는 친구 한 명 없고/밥 먹었냐? 묻는 가족도 없어/
※ 동전 모아 소주 사 가는 비닐봉지를 불러와 백수 삼촌 뒷모습의 쓸쓸함을 잘 스케치해 담은 시였다.
◉ 꽁꽁- 물은 돌덩이를, 돌덩이는 물을 꼭 껴안고 서로서로 마음 다독이며 추위 견디다 잠들었나 봐. 봄이 와 흔들어도 꿈쩍 않는 잠으로 꽁꽁 싸매고 물속으로 첨벙 들어가는 하루
◉ 살살- 함께 해서 행복했어/지붕 위 흰 눈/살살 녹으며/ 눈물 주르륵 흘립니다/ 흰색 사라지고 물이 되어도/ 너는 나를 / 나는 너를 닮은 /멋있는 고드름으로/ 녹을지언정 부러지지
않는 우리 되어 다시 만나자./ 큰 바다로 나가는 강물 되어 만나자
◉ 풀풀- 푸른 깃대 잡은 바랭이 뒤/ 까마중과 쇠비름과 강아지풀이 조폭들처럼 서 있어//
금방이라도/주말농장 텃밭 한입에 삼킬 듯/ 기세등등했지만//비 오지 않아/ 먼지 흠뻑 뒤집어쓰고/ 풀 죽어있었어// 물 한 모금 먹었으면/ 샤워 한 번만 했으면/ 주먹 한 번 휘두른 적 없는데 하느님은? 툭 두두두둑// 풀 죽은 풀들 소나기로 다시 일어나/
초심으로 돌아가려고 싱싱해지는 중!
※‘한입’은 합성어라서 붙여 써야 됨.
◉ 활활- 봄이 불 질러 /비슬산 등성이가 발갛게 타올라요// 불난 집 부채질하는/사람들// 세상에 저 꽃불 봐!// 저 봄 좀 보아요.
◉ 쓸쓸- 만나는 친구 한 명 없고/밥 먹었냐? 묻는 가족도 없어/
※ 동전 모아 소주 사 가는 비닐봉지를 불러와 백수 삼촌 뒷모습의 쓸쓸함을 잘 스케치해 담은 시였다.
◉ <막막>
감나무 그늘은
대문 밖
막다른 골목까지 끌려갔지
속수무책
바라볼 수밖에 없는 막막한 감나무
끌려가는 그늘 보면서도
용감하게 나서서 싸워주지 못했어
무엇이든 해야 하는데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
그저 막막해서
그늘 바짓가랑이만 꼭 붙들고 있었어
발만 동동 구를 순 없잖아
엉엉 울기만 하면 안 되잖아
※ 참 많은 사연을 담고 있는 막막함! 그 막막함을 절실하게 너무 잘 우려 담은 시!
◉ 묵묵- 그릇 속에 빠지겠다고 작정한 듯/ 얼굴 집어넣고 묵밥을 먹어요// 천천히 드세요/ 상냥한 사장님 말에도/ 바닥 보일 때까지/ 대꾸도 없이/ 등 한 번 펴지 않고/ 묵묵하게/ 묵받을 먹어요.
◉ 심심-걸핏하면 관심 꺼 달래/ 관심은 스위치처럼 꼈다 켤 수 있는 거야? 상심은 심심과 얼마만큼 먼 거리에 있을까?
※ 말 속뜻을 음미하며 살아오는 시인의 귀에만 들리는 물음이 상큼하다.
◉ 캄캄- 캄캄한 겨울새들/ 나뭇가지에 나뭇잎처럼 앉고//
캄캄한 개울, 새들/ 바위틈에 돌멩이처럼 앉아//물과 바람만 소곤소곤 조곤조곤
◉ 똑똑- 선녀가 미소 날리면 온 산의 바위들 하품하며 깨어나/바위들 재잘거리면 선녀 뒤따라 하늘로 날 것 같아. 선녀바위 똑똑 두드리지 마세요. 바위 사라진 백화산 엉엉 울걸?
◉구구- 계속 구구 물으면 어떡해. 고개만 끄덕이지 말고 제발 좀 까먹지 마. 그렇게 해서 구구단 언제 뗄레. 구구는 81이야
◉ 엄마 찾는 붕붕. 어쩌다 엄마를 놓쳤을까? 벚나무에서 왔는지 장미꽃에서 왔는지
◉ 박박- 황실 어린이음악대 천사 나팔이 나팔 불어 눈 동그란 고양이 달빛 박박 긁어요
◉ 돌돌- 한 돌멩이가 한 돌멩이에게-안 듣는 척해도 듣는 거 다 알아. 자존심 돌돌 뭉쳐 버려
◉ 맴맴- 매미도 아닌 말이 입가 맴맴 돌 때
◉ 빵빵-개미 두 마리 빵빵한 선물을 놀이터 의자 밑에 사는 친구 생일파티에 가져 가요. 사랑 나누면 마음이 빵빵하고 마음 나누며 기쁨 빵빵
◉ 점점- 유채꽃밭에서 노랗게 웃는 할머니 사진 속 모습이 점점 잊힐 것을 생각한다.
◉속속- 속속들이 다 몰라도/ 그러려니 하면서/ 서로서로 속고 속이며 사는 거지.
여행에서 가이드의 수고에 응원을 보태고 싶어 감사 헌시를 써 편지로 드렸는데 표정에 감사가 묻어나지 않아 섭섭했다. 관광 쇼핑 몰에 들릴 때마다 바라보기만 했지.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살 게 없어서. 그런 우릴 내심 뱅뱅이로 보았을 지도. 그러면 감사 편지인들 반가울까?
◉ 영영- 익지 않은 수박은/ 익히지 않은 수박이라는 오해 받지 않기 위해/ 과일가게 진열장에서 열심히 익는 중//익는 동안은/ 잊으라고 했지만/ 잊어달라 했지만// 영영 잊혀지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익는 중
※나훈아 가수의 <영영> 노랫말을 가져와 재미있게 연결한 능수능란한 창작 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