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임진년 2월 (159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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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1일 (임진) [양력 3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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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망궐례를 했다. 가랑비가 잠간 뿌리다가 늦게야 개었다. 선창(여수시 연등동 입구)으로 나가 쓸만한 널빤지를 고르는데, 때마침 방천안에 몽어 떼가 밀려 들어 왔기로, 그물을 쳐서 이천 마리를 잡았다. 참으로 장쾌했다. 그 길로 전선 위에 앉아서 술을 마시며 우후 이몽구(李夢龜)와 함께 새 봄의 경치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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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2일 (계사) 맑다. [양력 3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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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에서 공무를 봤다. 쇠사슬을 건너매는 데 필요한 크고 작은돌 여든 여 개를 실어 왔다. 활 열순을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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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3일 (갑오) 맑다. [양력 3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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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우후가 각 포구의 부정사실을 조사하는 일로 배타고 나갔다. 공무를 마친 뒤 활을 쏘았다. 탐라 사람이 자녀 여섯 식구를 거느리고 도망쳐나와 금오도(여천군 남면)에 머물다가 방답 경비선에 잡혔다고 심부름꾼을 보냈기로 문초를 하고서 승평(순천)으로 압송하고 공문을 써 보냈다. 저녁에 화대석 네 개를 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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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4일 (을미) 맑다. [양력 3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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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북쪽 봉우리의 연대(신호대) 쌓는 곳에 오르니, 쌓은 곳이 매우 좋아 무너질 염려가 없으매 이봉수(李鳳壽)의 애썼음을 알겠다. 종일 구경하다가 저녁에야 내려와 해자 구덩이를 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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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5일 (병신) 맑다. [양력 3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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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 활 열여덟 순을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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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6일 (정유) 종일 바람이 세게불었다. [양력 3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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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순찰사에게서 편지가 두 번이나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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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7일 (무술) 맑다가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양력 3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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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발포만호가 부임했다는 공문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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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8일 (기해) 맑다가 또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양력 3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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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이 날 거북함에 쓸 돛베 스무아홉 필을 받았다. 정오에 활을 쏘는데, 조이립(趙而立)과 변존서(卞存緖)가 자웅을 다투다가 조이립이 이기지 못했다. 우후가 방답에서 돌아와 방답첨사가 방비에 온 정성을 다하더라고 매우 칭찬했다. 동헌 뜰에 돌기둥 화대를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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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9일 (경자) 맑다. [양력 3월 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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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쇠사슬을 꿸 긴 나무를 베는 일로 이원룡 (李元龍)에게 군사를 거느리게 하여 두산도(돌산도)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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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초10일 (신축) 안개비, 개었다가 흐렸다가 했다. [양력 3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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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김인문(金仁問)이 순찰사영에서 돌아왔다. 순찰사의 편지를 보니, 통역관들이 뇌물을 많이 받고 중원(명나라)에 무고하여 군사를 청하기까지 했을 뿐 아니라 중원에서 우리 나라와 일본 사이에 무슨 딴 뜻이 있는가 의심하게까지 했으니, 그 흉칙함을 무엇이라 말할 수 없다. 통역관들이 이미 잡혔다고는 하지만, 해괴하고 분통함을 참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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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1일 (임인) 맑다. [양력 3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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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한 뒤에 나가 배 위에서 새로 뽑은 군사들을 점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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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2일 (계묘) 맑고 바람도 자다. [양력 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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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를 한 뒤에 동헌에 나가 공무를 보고서 해운대 (여수시 동북쪽에 있는 작은 섬)로 자리를 옮겨 활을 쏘았다. 침렵치(沈獵雉)라는 운자(韻字)를 띄워 봤더니 너무 조용했다. 나중에 군관들도 모두 일어나 춤을 추고 조이립(趙而立)이 시를 읊었다. 저녁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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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3일 (갑진) 맑다. [양력 3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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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우수사(李億祺)의 군관이 왔기로 화살대 큰 것 · 중치 백 개와 쇠 쉰근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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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을사) 맑다. [양력 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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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 어머니께 문안차 나장(고을이나 병마사 · 수사의 영문에 있는 使令) 두 명을 내어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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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5일 (병오) 비바람이 매우 세다. [양력 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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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새로 쌓은 해자 구덩이가 많이 무너져 석수(石手)들에게 벌을 주고 다시 쌓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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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6일 (정미) 맑다. [양력 3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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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 활 여섯 순을 쏘았다. 신구번의 군사를 점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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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7일 (무신) 맑다. [양력 3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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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 제삿날(世宗의 祭祀)임에도 공무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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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8일 (기유) 흐렸다. [양력 3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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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9일 (경술) 맑다. [양력 4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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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찰하러 떠나 백야곶(여천군 화양면 백야도)의 감독관이 있는 곳에 이르니, 승평부사 권준(權俊)이 그 아우를 데리고 와서 기다렸다. 기생도 왔다. 비가 온 뒤라 산의 꽃이 활짝 피어 경치가 멋져 형언키 어렵다. 저물어서야 이목구미(여천군 화양면 이목리)에 이르러 배를 타고 여도(고흥군 점암면 여호리)에 이르니 영주(고흥) 현감(裵興立)과 여도 권관(黃玉千)이 마중했다. 방비를 검열하는데 흥양현감은 내일 제사가 있다고 먼저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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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0일 (신해) 맑다. [양력 4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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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모든 방비와 전선을 점검해 보니, 모두 새로 만들었고 무기도 웬간히 완비되었다. 늦게야 떠나서 영주(고흥)에 이르니 좌우의 산의 꽃과 들가의 봄풀이 한폭의 그림 같다. 옛날에 영주가 있다더니 역시 이와 같은 경치였던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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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1일 (임자) 맑다. [양력 4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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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를 본 뒤에 주인(감영과 고을의 연락을 취하는 營邸吏)이 자리를 베풀어 활을 쏘았다. 조방장 정걸(丁傑)도 와서 보고 능성현감 황숙도(黃叔度)도 와서 함께 술취했다. 배수립(裵秀立)도 나와 함께 술잔을 나누며 즐기다가 밤이 깊어서야 헤어졌다. 신홍헌(申弘憲)으로 하여금 술을 걸러 지난날에 심부름하던 삼반하인(軍奴·使令·及唱 등)들에게 나누어 먹이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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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2일 (계축) [양력 4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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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공무를 본 뒤에 녹도로 갔다. 황숙도(黃叔度)도 같이 갔다. 먼저 흥양 전선소에 이르러 배와 집기류을 몸소 점검했다. 그 길로 녹도로 가서 곧장 봉우리 위에 새로 쌓은 문다락으로 올라가 보니, 경치의 아름다움이 이 근방에서는 으뜸이다. 만호의 애쓴 흔적이 손닿지 않은 곳이 없다. 흥양현감(裵興立)과 능성현감 황숙도(黃叔度) 및 만호와 함께 취하도록 마시고 겸하여 대포 쏘는 것도 봤다. 촛불을 밝혀 이슥해서야 헤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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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3일 (갑인) 흐렸다. [양력 4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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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야 배를 타고 발포로 가는데, 맞바람(逆風)이 세게 불어 배가 갈 수가 없다. 간신히 성머리에까지 이르러 배에서 내려 말을 탔다. 비가 몹시 쏟아져 일행 모두가 꽃비에 흠뻑 젖은 채로 발포로 들어가니, 해는 벌써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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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4일 (을묘) [양력 4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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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가 온 산에 내려 지척을 헤아리지 못하겠다. 비를 무릅쓰고 길을 떠나 마북산(고흥군 포두면 마복산) 아래의 사량에 이르러 배를 타고 노질을 재촉하여 사도(고흥군 점암면 금사리)에 이르니, 흥양현감이 먼저 와 있다. 전선을 점검하고 나니, 날이 저물므로 그대로 눌러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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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5일 (병진) 흐렸다. [양력 4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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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가지 전쟁 방비에 탈난 곳이 많다. 군관과 색리들에게 벌을 줬다. 첨사를 잡아들이고 교수(고을 수령 아랫 벼슬아치)를 내어 보냈다. 이곳의 방비가 다섯 포구 가운데 최하인데도 순찰사가 포상하라고 장계를 올렸기 때문에 죄상을 조사조차 하지 못했으니 우습다. 맞바람이 세게 불어 출항할 수가 없어서 그대로 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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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6일 (정사) [양력 4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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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출항하여 개이도(여천군 화정면 개도)에 이르니, 여도진의 배와 방답진의 마중하는 배가 나와서 기다렸다. 날이 저물어서야 방답에 이르러 공사례를 마치고서 무기를 점검했다. 장전과 편전은 하나도 쓸만한 것이 없어 고민이다. 전선은 좀 온전한 편이니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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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7일 (무오) 흐렸다. [양력 4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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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점검을 마친 뒤에 북쪽 봉우리에 올라가 지형을 살펴보니, 깎아지른 외딴 섬인지라 사면에서 적의 공격을 받을 수 있고, 성과 해자 또한 매우 엉성하니 무척 근심이 된다. 첨사가 애쓰기는 했으나, 미쳐 시설을 못했으니 어찌하랴. 저녁나절에야 배를 타고 경도(여수시 경호동 대경호도)에 이르니, 여필(汝弼)과 조이립(趙而立)이 군관·우후들이 술을 싣고 마중나왔다. 이들과 함께 마시고 즐기다 해가 넘어간 뒤에야 관청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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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8일 (기미) 흐렸으나 비는 오지 않았다. [양력 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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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에 나가 공무를 본 뒤에 활을 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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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9일 (경신) 맑으나 바람이 세게 불었다. [양력 4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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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에 나가 공무를 봤다. 순찰사의 공문이 왔는데, 중위장을 순천부사로 고쳐 임명했다고 하니 한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