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6 바깥
집에 가기 싫어 여관에 간다.
집을 1백미터 앞두고 무슨 일인지 나는 발길을 돌려
1백미터를 걸어내려와 여관에 든다.
집에 누가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집에 없어 쓸쓸한 것도 아닌데
오늘도 난 여관 신세를 지기로 한다.
집이 주는 안락함은 두렵고, 생활의 냄새는 더 두렵다.
해야 할 일들이 오래 중단된 채 어질러진 책상과
며칠째 설거지를 하지 않아 접근하기조차 무서워진 부엌 주변과
이불이나 옷가지에서 내뿜는 익숙한 냄새 모두가 어느 한순간
역하다는 사실이 나를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여관은 유난히 푸석푸석한 아침을 선사해주고
익숙하지 않은 욕실의 낯선 비린내를 맡게 하고
창문으로 새들어오는 햇빛에 속을 쓰리게 만든다.
하지만 그 순간 불쑥 이상한 위로가 방문한다.
순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과, 혼자가 아니어서
아무튼 괜찮다는 사실에 문득 내 자신은 근사해진다.
창문을 열어도 옆 건물의 벽만 보이는 곳이
뭐 그리 엄청난 위안을 줄까마는 아무것도 없기에 동시에
모든 확률이 존재하는 여관, 방,
그 낯선 곳에서 나는 잠시 어딘가로부터
멀리 떠나온 기분에 젖어보는 것이다. 사치하는 것이다.
[아줌마, 저 있던 방, 1박 더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고 한다. 그러면서 밖으로 나가는 내게
어딜 나갔다 오겠냐고 묻는다.
[네, 집에 좀 다녀오려구요.]
travel notes라는 부제를 달고 있는 이병률 시인의 산문집입니다.
세계 많은 나라를 여행하면서 찍은 사진과 에세이들을 책으로 엮어 놨다는데 읽다가 책을 끌어안고 슬쩍 웃어보기도 하고, 동생이 주변에서 떠들다 날아가는 페브리지 병에 옆통수를 얻어 맞기도 했습니다. 방해하지 마라는 경고였죠.
자칫 본의아니게 동생을 살해 할 수도 있었지만, 그 만큼 집중하고 싶었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책이었습니다.
책도 많이 읽고 영어 공부도 열심히 해서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나와 아직 가보지 못한 세상을 두루 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첫댓글 내가 보지 못한 다른 세상, 내가 가보지 못한 다른 도시, 내가 만나지 못한 다른 나라 사람들, 그리고 내가 느끼지 못했던 다른 느낌들......잔잔함이 많이 남는 산문집이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