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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천 스님은 … 승복보다 주방장 옷이 잘 어울리는 스님이다. 스님은 어려운 이웃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짜장면을 뚝딱 만든다. 1998년 37살의 나이에 출가해, 중앙승가대와 절강사범대를 나온 후 2009년부터 짜장면 봉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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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25만 그릇 보시 넘어 남원서 전국 누빈 거리 10만km 선원사서 농사지어 재료비 조달 “짜장면 먹고 감동받는 이 많아”
천주교 집안, 늦깍기 출가 인연 집안 모두 개종, 십시일반 도움줘 ‘착한 가게’ 등 생산불교 서원 노인·외국인 위한 무료식당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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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는 현지의 자원봉사자들과 협동하여 짜장면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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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남원에 위차한 선원사는 신라시대 고찰이다. 이곳에서는 일주일에 한두 번 씩 대형 트럭이 절 문을 나선다. 트럭 한편에는 ‘사랑 실은 스님짜장’이라는 로고가 붙어 있다. 이렇게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봉사를 하는 스님은 다름 아닌 선원사 주지 운천 스님이다.
스님이 찾아가는 곳은 무료급식소, 군부대, 노인복지관, 장애우복지관 등 소외되고 고통 받는 이웃이 있는 곳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만큼 행복할 때가 또 있겠습니까. 지금은 흔해진 듯하지만 아직도 이 짜장면 한 그릇을 못 먹는 이들이 많습니다. 이런 이들에게 갓 나온 따듯한 짜장면 한 그릇 대접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
5월 7일 어버이날을 맞아 서울 종로노인종합복지관에서 열린 ‘당당한 신노인 바운스 바운스’에서는 주방 한켠에서 1000여 인분의 짜장면을 열심히 만들고 있는 운천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스님은 어르신이 맛있게 짜장면을 먹고 있는 표정을 봐도 행복해진다며 연신 솥에 주걱을 휘저었다. 천년고찰에서 수행에 매진하는 대신 스님이 택한 것은 음식 포교다. 스님이 베풀고 있는 ‘착한 스님짜장’은 이름처럼 우리사회 소외계층에게 무료 보시된다. 2009년 11월부터 시작해 최근까지 스님의 짜장 봉사활동은 200여회를 훌쩍 넘겼다.
짜장 한 그릇으로 맺어지는 인연법
짜장면은 전국 어디서나 배달을 시켜서 간편히 먹을 수 있는 편리함 때문에 많은 사람이 즐겨 먹는 음식. 그러나 짜장면은 우리들의 아버지 세대와 중년에게는 가난한 시절의 추억이 담겨있는 한 끼 식사 이상의 의미가 있다. 운천 스님은 표고버섯과 멸치, 북어 등을 넣어 육수를 우려내고, 밀가루 반죽은 하루 동안 숙성을 시키며, 야채는 육수를 이용해 쪄낸다. 그동안 스님이 보시한 짜장면만 25만 명분에 달하며 트럭을 타고 찾은 거리만도 100,000km가 넘는다.
한 번에 많게는 2천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스님짜장을 만들어 급식한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봉사를 하면서 늘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기도 하지만, 주변의 작은 손길들이 도움을 주어 그나마 나아진 듯도 하다.
스님은 “특히 교정시설이나 군부대에 갈 때 마음이 많이 쓰인다”며 “아직 그 곳에서는 가장 먹고 싶어 하는 음식 중 하나가 짜장면”이라고 말했다.
“어느 무기수형자는 평생 생이별한 줄 알았던 짜장면을 먹으면서 삶의 희망을 찾기도 하고, 짜장면 한 그릇에 감동하여 자신의 잘못을 되돌아보며 반성하고 ‘출소 후 남을 대접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하는 수용자도 있었습니다. 짜장면 파티가 열리면 군부대 안에서는 흥겨운 탄성이 나오고, 맛있는 포만감에 행복한 웃음이 메아리칩니다. 이렇듯 짜장면의 위력은 대단합니다. 이들을 보며 보시의 길에 의지와 힘이 솟습니다.”
스님은 그렇게 봉사를 하다가 곤혹을 치루기도 했다. 면뽑는 기계에 손가락이 끼어 15일간 병원에 입원했기 때문이다.
고통 속에서도 매주 찾아가는 이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스님의 봉사는 남들이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열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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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 선원사 철불과 함께 보물로 일컬어지는 양파 등 짜장면 재료들
| 직접 선원사에서 돼지감자 키워 비용 마련
스님은 짜장면 재료를 직접 재배한다. 선원사 일대에서 돼지감자를 키운다. 감자로 국우차를 생산해 판매하고 수익금 전액을 보시에 쏟는다. 부족한 비용은 소규모로 건축자재 납품업을 하는 운천 스님의 친형인 김승윤(56) 씨와 친구인 직장인 박정운(53) 씨가 돕고 있었다. 직접 생산현장에서 있다 보니 스님은 시주받은 돈을 귀하게 여기면서도 두려워한다.
“남원 선원사 신도분들은 대부분 어르신들입니다. 이분들은 자식들이 보내준 용돈을 모아 자식들 잘되라고 기도비로 조금씩 내시죠. 여기에는 많은 사연이 있어요. 먹고 싶은 것 안 먹고 아낀 돈과 어렵게 번 돈 그리고 눈물로 만들어진 돈 들이죠. 이런 보시금을 함부로 써서는 안 됩니다. 귀한 돈은 좋은 곳에 잘 썼을 때 보시한 분에게 복이 돌아간다고 믿습니다.”
사실 처음 스님이 짜장면 보시를 시작하고 나서는 선원사 신도들이 많이 나섰다. 하지만 여러 명이 함께 움직이다보니 과정이 복잡했다. 처음 대형버스로 이동하던데서 이제는 실장을 맡은 거사님 한분과 트럭을 직접 몰고 현장을 찾아간다.
“요즘에는 원재료 등을 사찰에서 다듬어서 나르기도 하고, 현지에서 취사반 등의 협조를 얻습니다. 처음에는 재료만 다듬고 했어요. 그러다가 조리하시는 분이 떠나고 이후에는 사찰에서 하는 식으로 고기와 조미료를 줄여서 직접하고 있습니다.”
스님은 현재 기부마라톤으로 유명한 진오 스님과 함께 6월 1일 경에는 베트남에서 보시를 하려고 한다. 진오 스님은 현재 베트남 초등학교에 화장실을 건립을 위해 발원한 2400km 중 1200km를 뛴 상태다. 이를 더욱 알리고 교민사회에서 모금도 진행하기 위해 초등학교에서 카레밥도 보시할 계획이다.
“불교가 중국 인도를 거쳤는데 좋은 음식은 아니지만 음식을 매개체로 힘이 되는데까지 돕고 싶습니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계속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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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님짜장을 배식받는 교도소 재소자들
| 소년 ‘베드로’, 늦깎이 출가 하다
스님이 처음 짜장면 봉사에 나서게 된 것은 2006년 중국 유학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앙승가대와 율원을 졸업하고 절강사범대학에 다니던 스님은 한국유학생들을 초청해 한 달에 한 번씩 음식공양을 베풀었다.
“절강성 숙소에서 김치찌개, 된장 등으로 공양을 하니 찾아온 학생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생각했어요. 포교를 하게 되면 음식으로 해야겠다구요. 귀국 후 2009년 12월부터 그렇게 짜장면 공양을 하게 됐습니다.”
스님은 보시의 기쁨을 어머니에게서 배웠다고 털어놨다. 수원이 고향인 스님은 어렸을 때 수원역 인근에 살았다. 역 근처에서 갈 곳이 없는 행인들을 어머니가 집에서 재우고 먹이고 하는 것을 보며 자랐다.
“집안이 천주교 집안이었어요. 5살 때 세례를 받아 세례명이 ‘베드로’입니다. 중학교 때는 검정고시를 봤는데 교회에도 다녔어요. 고등학교는 미션 스쿨이었지요.”
스님이 출가를 결심한 것은 서른이 훌쩍 넘어서였다. 나이가 들고 우연히 스님들과 인연이 닿은 운천 스님은 인생상담을 하게 된다.
“지금은 맏사형이 된 운강 스님이 물어봤습니다. ‘어떤 일을 했을 때 행복한지 고민해보라’구요. 한 달 정도 고민하고 결정을 내렸습니다. 어릴 때부터 저는 산에서 사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일반인이 산에 사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잖습니까. 그래서 출가를 결정했습니다.”
스님은 1998년에 37세의 나이로 출가했다. 은사 스님은 어린이포교와 문화포교로 유명한 봉화 청량사 주지 지현 스님이다. 스님은 포교에 있어 은사 스님으로부터의 영향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스님의 속가 가족들도 그 영향으로 모두 불자가 됐다. 스님의 형님은 수원의 팔달사에 나가며 부산에 사는 누나는 범어사 등으로 활발히 다닌다.
“젊어서 다른 종교를 배워서 인지 굳이 불교가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 원불교 등 요청만 있으면 다 가요. 신부님이 5월 17일에는 성당에서 짜장면 공양을 해줄 수 있냐고 해서 가기로 했습니다. 천주교에서 운영하는 복지관, 광주 사랑의 식당 등 어디든 갑니다. 일반인들도 불자봉사자를 만나면 불교의 정신을 알게 되고 차츰 불교를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도 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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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천 스님의 스님짜장 5t 트럭. 스님은 여기에 대형 솥 등을 싣고 전국을 누빈다.
| 필리핀에 우물 40개 파기도… 이젠 해외봉사
스님은 그동안 소년소녀가장에게 장학금을 주기도 하고 국내뿐만이 아니라 해외에서도 봉사를 계속했다. 선원사는 남원 시내에 자리하고 있지만 부유한 절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구촌공생회를 통해 필리핀에 40개의 우물을 파서 식수난으로 고생하는 사람들을 돕기도 했다. 2013년 12월에는 네팔에 ‘선원사 초등학교’를 준공했다. 스님의 지론은 간단하다.
“종교가 먼저 제 할 일을 해야 하지요. 불교도 꼭 절에서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법문을 하고 기도하고 해야 구제하는 게 아니란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고 있습니다. 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나눌 수 있는 것이 종교죠. 사찰에 앉아 혼자 평안하다면 어려운 이들을 언제 구제할 수 있나요.”
태안 기름유출사고 때도, 세월호 사태 때도, 구미 가스누출사고 때도 어김없이 현장에 나가 이재민 등에게 짜장면 보시를 했다.
“어려운 이웃을 보면 정말 몸 하나 건강한 것에도 감사함을 느낍니다. 한 달에 한번 진행하는 부산 구서역 봉사에서의 일이에요. 혜일암 우신 스님의 후원으로 매주 수요일 급식을 하는데 하루는 짜장면을 드신 노보살님이 우시는 겁니다. 왜 그러시냐고 하니 ‘할아버지가 이 짜장면을 참 좋아하는데 몸이 아파 거동을 못하는 게 슬퍼서’라고 하셨어요. 안타까우면서도, 이렇게 몸이 건강해 봉사할 수 있어 기쁘다고도 생각했습니다.”
스님은 스님들이 너무 받는 것에 익숙해 있다고 말했다. 또 스님들이 받는 것의 일부를 사회에 환원하면 불교의 위상이 한층 달라질 것이라 힘줘 말했다.
“말로만 ‘보시, 보시’하지 말고 실천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남들에게 강요하지 말고 차라리 내가 하는 선에서는 내가 하는 것이 낫습니다.”
사찰을 생산불교의 현장으로 가꿀 터
스님의 꿈은 결국 사찰을 중심으로 생산불교를 꾸미는 것이다. 직접 농산물을 재배해 도시에 내다팔고, 그 재원으로 다양한 포교를 병행하는 것이다.
사찰에서 재료를 만들고 지금하고 있는 짜장면 보시를 활용해 사회적기업인 짜장면 가게를 도시에 내어, 외국인과 고령자들에게 무료음식점을 하는 것이 목표다.
“전주 한옥마을에 갔을 때였어요. 정말 한식이 비싸더군요. 사회적 기업형태로 외국인이나 고령자, 유아는 공짜로 먹고, 보시함에 능력이 되는 만큼 기부하는 음식점을 했으면 합니다. 어려서 수녀님들이 해준 밥을 기억해요. 그 맛에 어릴 때 천주교에 호감이 갔죠. 저 외에도 전국에는 이렇게 봉사하는 스님들이 많습니다. 스님이 직접 음식을 가져다주면 저절로 포교가 될 것 같아요.”
스님은 순수하게 불자들뿐만 아니라 나눔을 통해 행복한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바람을 밝혔다. 스님이 착한 가게를 내고 싶은 이유는 또 있었다. 매주 두 차례씩 봉사를 나가다 보니 예전과 달리 농사를 병행하기가 힘들어서다. 파종 등은 때가 있는데 놓치는 경우가 많다. 남원지역을 넘어 지역별 구심점이 있다면 자원봉사자도 좀 더 모이지 않을까하는 것이 스님의 생각이다.
스님은 수도권 지역에서 거점을 먼저 마련하고 싶다고 말했다. 스님은 “남원에서 전주만 하더라도 한시간이 걸리는 거리”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스님은 끝으로 불교계가 짜장면 처럼 다양한 모습을 하나로 회통해 국민들에게 사랑받는 종교로 거듭나길 바랬다.
“율장에는 ‘소욕지족’이 나옵니다. 그런데 작금의 불교계에는 작은 것에 만족하고 사는 사람들이 없는 것 같아요. 60~70년대만 해도 못살아도 마음은 넉넉했습니다. 스님들도 객으로 가면 재워주고 했는데...요즘에는 절집 안에도 그런 풍토가 많이 사라졌어요. 이제는 문중 등의 굴레에서 벗어나 불교 발전을 위해 힘을 모았으면 합니다. 마치 다양한 재료들이 짜장으로 하나가 되듯이요.”
짜장면을 기다리는 어르신들을 뒤로 스님은 다시금 솥을 힘차게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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