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는 아르헨티나의 수도로 부에노스아이레스(Buenos Aires)라는 말은 그대로 직역하면 좋은 공기라는 뜻인데 그 의미는 순풍(順風)이라고 한다.
이 도시는 1530년대에 최초로 건설되었다고 하며 인구는 1,300만 정도라고 한다.
유럽의 역사와 왕조(王朝)가 얽히고설킨 것처럼 남미의 여러 나라들도 페루와 스페인과 얽혀 있으며 남미의 여러 나라들이 스페인으로 독립하여 다른나라들과의 전쟁 등 우여곡절을 거쳐 독립한 것처럼 아르헨티나도 그런 과정을 거쳐서 독립이 되었으며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수도가 되는 과정도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수도가 되었다고 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에서 도심으로 들어오는 길은 우리를 너무 실망시켰었다. 길에는 비닐봉지들이 날리고 깨끗하지 않아서 도시가 명성에 걸맞지 않게 이렇게 지저분하다니 하였는데 버스터미널에 내려서 택시를 타고 숙소를 가면서 보는 도심은 유럽의 어느 거리 못지않게 화려한 중세(中世)식 건물과 현대식 건물이 어울려 있다.
숙소를 잡고 나서 저녁을 먹고 가까운 거리에 있는 플로리다 거리에 환전을 하기 위해서 갔더니 공신력 있는 환전소는 문을 닫았고 길거리에서 호객을 하는 환전상들만 있어서 거리 구경만 간단하게 하고 돌아왔다.
플로리다 거리로 가는 길에
리퍼브리카 광장의 오벨리스크가 조명에 빛난다.
참고로 아르헨티나는 환율이 도시에 따라 심지어는 배정도 차이가 나기도 하는 나라이다.
이곳의 환율이 우수아이아의 배에 가까워서 여기서 환전을 하면 우수아이아보다 두 배를 더 받는다는 의미가 된다.
예를 들어서 백 유에스 달라를 페소로 바꾸면 두 배의 페소를 받는데 우리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길거리의 소위 환전삐끼들에게 물어보았더니 부자들이 고액달러를 매입한다는 것이다.
앞으로 페소화의 가치가 더 떨어질 것이라고 판단하기 때문에 여행자들의 고액권 달라를 사 들이기 때문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 잘살던 나라가 어찌 이런 나라가 되었는지.....
그 이튿날 플로리다 거리에 가서 환전을 하고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오월 광장(Plaza de Mayo)과 대통령궁(Casa Rosada)과 메트로 폴리타나 대성당(Catedral Metropolitana)을 둘러보았다.
숙소에서 가깝기 때문에 걸어서 주변을 관광하기로 했는데 그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리퍼부리카라는 광장이 있고( Plaza de la República) 그 광장에는 1946년에 세운 스페인으로부터 독립 400주년을 기념하는 오벨리스크(Obelisco)가 있다.
그 주변에는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에 속한다는 콜론 극장이 있어서 지나가는 길에 보았는데 물론 건물만 보았다.
어제 밤에 보았던 오벨리스크와 주변 거리
이 광장은 길게 뻗어 있는 공원 같은 곳에 있는데 이 거리가 문화의 중심거리같다.
오월광장을 경계로 하여 대통령궁과 대성상이 있으며 오월광장 중앙에는 오월의 탑이 있는데 그 탑 안에는 아르헨티나 전역에서 가지고 온 흙이 담겨 있다고 하며 광장 옆에는 아르헨티나 국기를 창안한 마누엘 벨그라노(General Manuel Belgrano) 장군의 기마상이 있으며 이 광장은 관광객들과 집회를 하는 사람들로 항상 붐빈다.
오월광장과 오월탑
마누엘 벨그라노 기마상...아르헨티나 화폐에도 이 분의 얼굴이 있다.
대통령궁은 장미의 집이라는 이름처럼 분홍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궁 앞까지는 개방되어 있다.
분홍색이라서 장미의 집으로 부른다고...
오월광장 주변의 거리...거리도 아름답지만 가로수가 오래된 것을 말해준다. 새싹이 아주 아름답다.
성당에는 남미를 스페인으로부터 해방시키는데 공헌을 한 호세 데 산 마르틴(José Francisco de San Martín Matorras) 이라는 장군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으며 성당 벽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평화의 불이 켜져 있다.
이 마르틴이라는 사람의 이름은 딴 거리나 공원이 아르핸티나의 거위 모든 도시마다 있으며 중심가의 도로는 거의가 마르틴이다.
성당의 기둥열두개는 12 사도를 상징한다고...
내부
마르틴 장군의 이름과 꺼지지 않는 횃불
택시를 타고 탱고의 시발점이라고 하는 보카거리로 갔는데 택시가 보카주니어 축구경기장 앞에 내려준다. 축구장 앞에는 탱고를 추는 남녀가 탱고를 추다가 관광객들이 오면 여자에게는 남자 댄서가 여자에게는 남자 댄서가 탱고 포즈를 잡고는 돈을 받는다.
정문 앞 건너편에는 보카주니어 팀의 유명선수들의 인형을 만들어 놓고 관광객들에게 사진을 찍게 하는데 돈은 받지 않는다.
보카주니어 소속의 전절적 축구 선수...마라토나 밖에 모르겠다.
세계 각국의 언어로 환영인사를 하는데 한국어로 할 때 찰칵
사진을 찍으면서 기뻐하는 친구녀석
거기서 조금만 더 걸어가면 탱고거리가 나오는데 방송에서 본 것처럼 벽에 그려진 그림들이나 집들이 원색적으로 그려져 있다.
골목으로 들어가면 탱고 춤을 추는 사람들을 그리는 사람들과 그들이 그린 그림을 벽에 걸어놓고 파는 곳이 나오고 조금 더 걸어 들어가면 레스토랑들이 양 옆으로 늘어서 있는 길이 나오는데 대부분의 레스토랑에서는 남녀 탱고 댄서들이 탱고 춤을 추고 있다.
탱고거리로 들어가는 길에 있는 고기굽는 집
집들이 이렇게 원색으로 생겼고 벽화도 그려저 있으나 용량의 한계 때문에....
탱고를 그리는 구족화가
관광객들이 테이블에 앉아서 맥주나 음식을 시키면 마찬가지로 관광객들을 불러내서 포즈를 잡고 사진을 찍어 준다.
이번에 간 일행 중에 고등학교 동창이 한 사람이 있는데 이 친구가 스포츠댄스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는 친구라서 댄서와 폼을 잡는데 역시 전문가다운 자세가 나온다.
관광객들로 넘쳐 난다
이런 레스토랑이 양 옆에 늘어서 있고 댄서들이 탱고를 춘다.
레스토랑의 이층의 모습들
유럽관광객을 붙들고 사진을 찍어 주고
그 찍은 사진을 확인하는데 남편은 여자와 찍은 자신의 사진을 부인 또한 자신의 사진을 확인하는 중이다.
그런데 아쉬운 것은 한 낮에 오는 바람에 탱고가 가득 찬 거리를 보지 못했다는 것이다.
저녁 때 쯤에 왔어야 오리지널 길거리의 탱고를 볼 수 있었을 것인데 시간을 잘못 선택한 것은 우리의 무지(無知) 때문이다.
점심은 탱고거리로 걸어 들어올 때 길가에서 고기를 먹음직스럽게 굽는 집을 보아서 그리로 가서 주문을 했는데 낮은 가격에 푸짐하게 나오기는 하는데 역시 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다시 한 번 실감하게 한다.
질기다 질긴 고기가 식으면 더욱 맛이 없는데 옆에서 먹던 아가씨들도 남기도 나간다.
길거리에서 자신이 만든 인형을 파는 아가씨
어린이들이 귀엽기는 하나 여기에 무엇이 볼 것이 있나....
골목길에서 포즈를 잡아 가면서 사진을 찍는다.
아까 보았던 그집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별로였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아르헨티나의 탱고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유명한 배우 겸 가수인 가르델 기념관에 가 보자고 하여 거기에 들렀는데 그 기념관은 그 사람의 이름을 딴 전철역 옆에 있다.
이 사람의 이름을 붙인 전철역이 있다는 것은 이 사람이 얼마나 유명하고 아르헨티나 국민들로부터 사람을 많이 받았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전철역 안에는 그 사람에 대한 사진들과 그의 기록물들이 그려져 있고 돈을 내고 들어가는 기념관에는 그 사람에 대한 사진들과 기록들이 보관되어 있으며 설명을 하는 사람도 있는데 여자들은 관심이 많으나 남자들은 별로 관심이 없다.
가르델 역 벽에 그려져 있는 가르델의 그림
가르델 동상
가르델 기념관 안에서 한 컷
저녁에는 저녁식사도 할 수 있고 탱고를 구경할 수도 있는 극장식 식당을 갔는데 식사만 나오고 공연은 하지 않아서 물어 보았더니 식사가 끝나고 나면 한다고 한다.
저녁 8시부터 식사를 하고 10시가 돼서야 공연을 시작하는데 12시까지 한다.
우리가 갔던 공연장은 공연장으로 아사도(소고기 구운 스테이크)에다 술과 음료는 무한 리필 되는 소규모 공연장으로 아주 가까이에서 탱고를 추는 사람들을 볼 수 있고 숨소리도 들을 수 있다.
숙소에서 아주머니에게 저녁 관람에 대해서 안내를 받고 있다.
극장 앞에 붙어 있는 포스터
식사를 기다리는 중
낮에 고기를 먹었음에도 입에서 살살 녹는다는 말을 실감한다.
드디어 막이 오르고
거기에서 먹은 아사도는 지금까지 살면서 먹어 보았던 어느 소고기 스테이크보다 맛이 있었다.
그리고 직접 연주자들이 연주를 하는 스토리가 구성되어 있는 과거의 탱고와 현재의 탱고를 보았는데 탱고의 문외한이지만 정말 멋이 있었다.
공연을 보러 갈 때도 데리러 오고 공연이 끝나고 나서도 호텔까지 데려다 준다.
남자들만 먼저 추다가 여자들이 나오는 식이다.
연주를 하는 사람들...오케스트라 같이 직접 연주를 한다.
누구라도 언제 부에노스아이레스에 간다면 탱고거리는 오후 늦게 가서 밤의 거리를 구경하라고 권하고 싶고 그래야 한다.
국장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기는 했지만 탱고거리의 그 분위기를 느낄 수는 없기 때문이다.
첫댓글 사진 . 참 좋습니다. 뭔가 짜릿한 그림이구요.
Paraiso 가 천국 Paradise 인 듯 합니다.
이것 두요.
탱고 배워야겠습니다. 멋집니다.
이 사진도 참 멋집니다.
이사진 진짜 멋집니다. 동감
부에노스 아이레스 남쪽 지역에 있는 탱고의 산실 "보카지구"
형형색색의 양철집들이 비록 허술하고 볼품은 없었지만 그들의 기상만은 남아 있는 듯,
공원이나 사람이 모인곳엔 여지없이 춤을 출수있는 카펫을 깔아놓고 추는 탱고춤은 아주 멋졌습니다
이민자들의 애환이 서린 보카지구 다시 기억해봅니다~ㅎㅎ
원색의 페인트,상점과 주택 그들만의 순수함도 있는듯했구요
시내에 있는 보카지구 입니다. ㅋ
브에이노스아리레스가 이리 변햇군요.
60년대 중반 이민붐이 시작때엿습니다.
고모가 한국에서 잘 살앗는데 이북사람남편이라 그 집안이 몽땅 알젠틴으로 이민을 갓습니다.
한국이민공사?를 통해서요. 그 때 거기에 땅을 사놓고 갓답니다.
부산에서 배를 타고 홍콩에 들러 오토바이도 하나 사고
막상 가보니 숲속 울창한 나무 숲인데 사람이 살 수 없는곳.
그레서 브웨이노스 아리레스로 나와 가져간 돈으로 살다가 몇년 안가서
미국으로 밀입국해서 미국에서 한 10년 살고 영주권을 받아
받자마자 한국에 왓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미국에서 아주 잘 살고 잇고요 이민사 1세대이야기입니다.
전쟁나면 죽는다고 이북에서 온 분들. 이민 많이 갔지요. 일단 가면 줄줄이 불러 들이요. ~~
@우하 우하님 상식이 아주 많으십니다.
저는 서울사람으로 미국 몇년빼고 서울에서만 살아서 서울 상식에 마니 밝습니다.
부에노스 아에레스의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 포도주를 곁들인 어린양고기 스테이크를 먹은후 탱고의 정수를 보았지요. 탱고는 아름답지만 슬픈 춤이었어요
맞아요
탱고 춤은 슬펐어요
푸른비님도 이 영행에 동참하신분인가요?
이런 기회를 갖는다는건 행운입니다.
@시니 아닙니다.
따로 다녀 오셨나 봅니다.
@뿅망치 글쿤요. 참 좋은 여행 하셧습니다.
저도 남미만 빼고 애지간히 여행다녓습니다.
구경보다는 세일즈하러 다녓습니다.
젊어서요.세일즈하다가 주말이면 한군데 다녀오고 이런 식으로요.
@시니 시니님. 저는 2015년 10월부터 43일간 5개국 여행하였습니다.
제 여행기도 게시하였습니다.
@푸른비3 그래요?
찾아 보아야겟습니다.
@푸른비3 브로그 관리를 아주 잘 해놓으셧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