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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필자는 치매로 인해 평생 모은 재산을 잃는 이른바 '치매머니' 문제를 다루며 일본의 사례와 우리 지역에서 실제 발생했던 사례를 소개한 바 있다. 치매는 단순히 기억을 잃는 병이 아니라 자신의 재산을 스스로 지키기 어려운 상태가 되는 질환이다. 그 틈을 노린 경제적 학대와 사기 피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가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다행히 정부는 올해 4월부터 국민연금공단을 통해 '치매안심 재산관리 서비스', 즉 치매 머니 공공신탁 제도를 시범 운영하고 있다. 늦었지만 매우 환영할 만한 정책이다. 그러나 아직도 많은 국민들은 '신탁'이라는 말조차 낯설게 느낀다.
치매머니 공공신탁은 쉽게 말해 치매환자가 자신의 재산을 국가에 맡기고 필요한 생활비와 용돈을 매달 지급받으며 생활하는 제도다. 연금이나 예금 등 본인의 재산은 국민연금공단이 안전하게 관리하고, 병원비와 공과금은 대신 납부하거나 생활비와 용돈은 매달 정해진 금액을 지급한다. 다시 말해 자녀들에게 매달 생활비를 의존하지 않고 자신의 재산으로 자신의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돕는 제도인 것이다. 재산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것이며 남은 재산은 훗날 상속인에게 돌아간다. 무엇보다 이 제도의 가장 큰 의미는 돈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치매에 걸렸더라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유지하며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도록 돕는 데 있다.
하지만 현재 제도는 분명한 한계를 안고 있다. 현재 공공신탁 대상은 예금과 연금 등 현금성 자산으로 제한되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고령층 재산의 대부분은 부동산이다. 예금은 국가가 관리해 주지만 정작 수억 원, 수십억 원의 부동산은 관리 대상이 아니라면 치매환자의 재산 보호는 반쪽짜리에 머물 수밖에 없다.
실제 치매환자를 노리는 범죄도 단순한 현금 인출보다 부동산 명의 이전, 헐값 매매, 증여 강요, 담보대출 등 부동산을 둘러싸고 발생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전문가들이 앞으로는 부동산까지 공공신탁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고 제안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부동산까지 포함하는 문제는 신중해야 한다. 따라서 환자가 정신적으로 건강할 때 자신의 의사를 미리 밝히고, 중요한 처분행위는 가족과 사전에 지정한 후견인, 그리고 공공기관이 함께 협의하는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필자는 오히려 치매가 상당히 진행된 이후보다 경도인지장애 단계나 판단 능력이 충분할 때 미리 공공신탁을 신청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재산을 어떻게 관리하고 사용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자기결정권이기 때문이다.
후견인 제도 역시 더욱 엄격해질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치매환자의 경제적 학대는 낯선 사람보다 가족이나 친척, 가까운 지인에 의해 발생하는 사례도 적지 않다. 그래서 치매환자의 재산을 관리하는 사람일수록 더욱 철저한 검증과 공적 감독을 받아야 한다. 치매환자의 주변 모든 사람을 무조건 의심하자는 뜻이 아니라, 누구도 예외 없이 제도적 감시와 견제를 받도록 하는 것이 오히려 환자를 가장 안전하게 보호하는 길이다.
우리나라는 이제 초고령사회에 들어섰다. 치매는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미래이며, 치매머니 역시 우리 사회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다. 정부가 공공신탁이라는 첫걸음을 내디딘 것은 높이 평가한다. 이제는 여기서 멈추지 말고 현금성 자산 중심의 제도를 부동산까지 단계적으로 확대하고, 사전 신탁제도를 활성화하며, 후견인 관리체계를 더욱 촘촘하게 보완해야 한다.
치매환자의 재산을 지키는 일은 단순히 돈을 지키는 일이 아니다. 한 사람의 평생 노력과 삶의 가치, 그리고 마지막까지 인간다운 존엄을 지켜주는 일이다. 그것이 치매머니 공공신탁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