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도소아버지학교가 더 뜨거운 스무가지 이유!"
0622 / 수 / 맑음
초여름의 밝은 아침, 난초 푸른 잎사귀가 거실에 가득 찼다.
아무래도 난초는 그 가녀린 꽃을 기다림보다야 사철 치렁한 잎사귀를 즐기는 것이 나을 성싶다. 도무지 화초를 가꾸고 건사하는 일에 서툴기만 하고, 몇 그루 아니 되는 관상수는 그래도 집안의 유일한 ‘푸름’이니 나름 신경을 쏟지 않을 수 없다. 하나 있던 우리 집 난초는 지난겨울에 죽고 말았다. 주인의 무신경으로 난초는 그렇게 쓸쓸히 죽어갔던 것이다. 이즈음 우리 집에 다시금 난(蘭) 화분이 하나 생겼다.
ㅅ형제의 선물이었다. 몇 년 동안 소식이 없더니, 지난주일 오후 참 반가운 소식을 들었다. 예의 힘 있는 말투로 그 형제가 전화를 걸어 왔고 “죽지 않고 살아 있었죠. 중국에도 다녀 왔구요... 가까운 교회에 나가면서 어려운 노인 두 분과 함께 살고 있죠.”
ㅅ형제는 참 무던한 사람이다. 20~30대 젊었을 때 징역살이를 했어도 굳은 결심을 했던 터라 남을 돕는 성숙한 믿음 생활로 유혹과 생활고를 극복할 수 있었다. 그가 즐겨했던 선행은 버스운전과 화원을 꾸려가면서 자비로 청송감호소에서 공부하는 형제들에게 필기구와 학습 도서를 10년 넘게 알게 모르게 지원했던 일이었다. 나와의 인연은 묘하게도 그 형제가 출소 후 잠시 자활 시설에 머물고 있을 때 건강이 나빠 우리는 약값 얼마를 주님의 사랑으로 지원해준 것뿐인데, 그는 때마다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한다고 하면서 소식을 전해오니 오히려 민망할 정도였다. 몇 년 전에도 천리향이란 관상수를 선물해주더니, 이번엔 잎사귀 청청한 난을 보내온 것이 아닌가.
"난(蘭)을 보며 기도해 주시면 되잖아요.”
그렇다. 꽃을 기다리며 난을 키우지는 않을 테다. 그 푸른 잎사귀 자체가 생명이요 꿈이요 사랑인 까닭이다.
잎사귀가 꽃잎보다 아름답다면 역설인가?
0623 / 목 / 맑음
비번 날 몸은 천근 무게였지만, 공주(公州)에 다녀왔다. 아직도 운전에 서툰 나였기에 핸들을 잡고 떼를 쓰듯 기도했다.
“주님, 아시지요? 저 공주에 갑니다. 갈 적 올 적 지켜주십시오.”
공주는 내게 있어서 꿈의 고을이다. 충청 서부지방에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은 중학교를 졸업하면 으레 유학길에 올랐다. 그래서 나도 공주로 유학 가고 싶었다. 결국 그 꿈은 이루지 못했고 대신 세 아우는 어려운 농촌 살림이었지만 부모님을 설득하여 공주에서 내리 유학을 마치게 하였다.
공주를 감싸고도는 금강(錦江)은 그렇게 드나드는 모든 이들에게 넉넉한 마음의 평화와 꿈을 심어주었으니, 그 뿐 아니었다.
공주교도소에서 지난주부터 목요일마다 4주 동안 아버지학교가 열리고 있었다. 사실 나는 크리스천 교도관으로서 은근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다. 암울했던 81년 초여름, 격동기 군복무를 마치고(그 때 소명(召命)을 체험했다) 처음 선택한 직업이 교도관이라는 제복 공무원이었다.
그 시절은 권위주의 시대였다. 수용자의 인권도 중요하였지만 수용 질서가 우선이었기에 교도관들의 엄정한 관리 작용이 통하던 때였다. 그 시절, 내 가슴에 품은 뜻은 복음에 대한 열정이었다. 틈나는 대로 ‘사영리(四靈理)’라는 소책자를 가지고 전도하였고 그 보람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철창을 사이에 두고 손을 잡고 기도할 적, 밀려오는 그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었다. 그렇게 시작된 교정현장 선교는 ‘황금어장의 유능한 어부’를 꿈꾸게 만들었다. 뜻있는 동지들로 하여금 신우회(信友會)를 결성하여 더욱 힘을 얻게 되었는데 확실히 복음은 살아 있고 운동력 있는 말씀으로 역사하였다.
그 긍지를 가지고 오늘에 이르렀다. 그렇지만 점차 타성(惰性)에 젖은 내 모습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수용자를 대하는 태도는 한결 친근해졌지만 직업적인 매너에 불과하였다. 때로 큰 소리치고 마음에 품은 감정을 드러내기도 하였다. 초심을 잃어가는 것이었다.
지난 5월 마침내 나는 아버지학교(구로광명5기)를 수료하였다. 그 때 배운 허깅(hugging)이라는 인사법은 단순한 애정표현을 넘어서 본질적인 태도변화를 요구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뜨거운 가슴으로 사랑하기! 였다.
공주교도소에 와서 비로소 나는 저들을 가슴으로 안아 주었다. 사실 이전에도 수많은 수용자 형제들과 악수와 등을 감싸주는 일이 빈번하였지만 얼굴 마주보는 친숙한 관계에서였지 정녕 예수 안에서 이뤄지는 열정으로 안아주는 관계는 아니었다. 그러면서 유독 나만이 저들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는 듯 자랑삼은 일이 얼마나 부끄러운지!
정문에 들어서자마자 이제는 내 모습이 제복을 입은 관리가 아니었다. 얼무티(얼룩무늬티셔츠, 아버지학교는 웬 농구심판이 많으냐고? 어느 수용자가 짓궂게 질문을 하더란다) 아버지로 저들 형제들을 섬기는 스텝이었다. 찬양이 울려 퍼지고, 나는 교회당에 들어서자마자 간절히 기도하였다.
- 주님, 아버지학교가 열리는 이 곳에 / 주님의 감동이 넘치게 하소서/ 주님의 눈물이 넘치게 하소서 / 주님의 기쁨이 넘치게 하소서 / 하여, 주님의 뜻 이루소서. 아멘!
2주차, 아버지의 남성에 대한 강의와 발표는 교도소라고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아버지학교를 등록한 수용자 형제들은 대부분, 이미 아버지의 권위와 역할을 상실한 형제들이 많았음에도 어떤 형제는 담담히 간증하였다. 15년 넘게 장기수로 수형생활을 했으니 지난 번 가석방에서 나갈 줄 알았는데 탈락되어 서운했지만, 오히려 아버지학교를 통해 새로운 아버지로 변화되어 나가게 되었으니 다행이라고. 이어서 자신은 불교신자지만 이번에 아버지학교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으며 하나님을 믿겠다고 하면서 또한 출소 후에는 교도소아버지학교 스텝으로 봉사할 것이라고 하여서 큰 박수를 받았다.
천국에 계신 아버지께 편지를 쓴 형제는 위암말기 고통 중에서도 아들의 손을 놓지 않으셨던 아버지를 추억하며 그 사랑을 이제서야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하는데 듣는 이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다. 그 형제가 외쳤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이다음에 천국에서 만나요!”
나이가 지긋한 어떤 형제는 서른 살 아들에게 속 깊은 편지를 썼다. 징역살이를 하며 아버지의 남성에 대해서 회한이 밀려오는지, ‘무거운 짐을 지는 것보다 무거운 생각으로 지내온 지난날들이 더 고통스러웠다’고 하면서 이제는 믿음으로 그 짐을 벗게 되었다고 고백하였다. 하기야 70명 모두 절절한 사연과 감동의 주인공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붉은 하트종이에 허물과 죄로 얼룩진 부끄러운 과거의 사실을 기록하여 간절한 기도 속에 태우기 예식을 통해서 저들 형제들이 평안해지는 표정을 엿볼 수 있었다. 순간순간 나는 간절히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무엇보다 나를 더욱 뜨겁게 한 것은 거기 아버지학교를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달려와 열심히 봉사하는 스텝들의 아름다운 섬김이었다. 나는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매너로 엉거주춤하는데 다가와 친절하게 알려주는 모습이 자상한 형님 같았다. 더욱이 나를 심히 부끄럽게 만든 신체장애를 가진 그 형제는 불편한 몸으로 땀을 흘리며 종의 모습으로 섬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꽃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돌아오는 길, 초여름 붉은 해가 시나브로 마른 내 가슴에 지고 내내 뜨거움으로 공주교도소아버지학교가 펼쳐지고 있었다.
- 주님, 제가 아버지입니다.
- 전국 46개 교도소(구치소)에서 아버지의 꿈을 이루소서.
※ 교도소아버지학교가 더 뜨거운 스무 가지 이유!
. 막을 수 없는 강력한 성령 사역이기 때문이다.
. 죄가 더한 곳에 은혜와 사랑이 넘치기 때문이다.
. 갇힌 자들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특별한 섭리이기 때문이다.
. 저들을 형제라 부르며 주인공으로 정성을 다해 섬기기 때문이다.
. 그 사명으로 무장된 섬김이들이 나서기 때문이다.
. 그 사명자들이 가슴을 열고 기쁨으로 섬기기 때문이다.
. 일말의 거리낌과 주저함을 주님의 사랑으로 녹였기 때문이다.
. 그리하여 상한 심령이 치유되고 회복되는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 절망을 소망으로 인도하는 예수 십자가 꿈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 그 장(場)을 통하여 아름다운 만남으로 복 주시기 때문이다.
. 높은 담과 철창이 있기 때문이다. 한 눈을 팔수 없음으로.
. 인권을 존중하는 시대적 흐름에 적절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 비 크리스천도 호응할 수 있는 유익한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 얼룩무늬티셔츠 유니폼의 소탈한 탈 권위성 때문이다.
. 늙수그레한 섬김이들, 그 아버지들의 환한 웃음 때문이다.
. 형님처럼, 삼촌처럼... 덥석덥석 가슴으로 안아주기 때문이다.
. 장미 한 송이가 외롭게 핀 응접실 같은 따뜻한 분위기 때문이다.
. 끊임없이 아름다운 정성으로 간식을 제공하는 정성 때문이다.
. 아버지학교개설을 허락한 교도관들의 적극적인 지원 때문이다.
. 뒤에서 보이지 않게 중보기도용사들의 용광로 같은 후원 때문이다.
첫댓글 할렐루야..!!
아/학교를 사랑하며 많은 형제들을 섬기시는 형제님의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어려운 여건과 환경에 굴하지 않고 오직예수님의 사랑으로 헌신하시는 형제님에게 주님 평안이 함께 하시길 기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