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나노지식이 없는 육적 나노지식은 자멸의 지식.
사람은 영(靈)과 육신(育身)이라는 두 종류의 생명체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시시때때로 영 위주로 살고자 하는 영의 생각과 육신 위주로 살고자 하는 육신의 생각이 대립해 싸웁니다. 영과 육신의 이런 내면적인 대결을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고민이라고 합니다. 영은 영의 근본이신 창조주 하나님께로 태어나 하나님의 뜻대로 육신을 작동시키려 하나, 육신은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이 육신의 형체이기 때문에 육신의 뜻대로 영(심령)이 따라야 한다고 우깁니다. 그럴 때에 사람의 영은, 육감(肉感)으로 감지되는 육신은 흙으로 조성되어서 엄밀히 따지면 영이신 하나님과 소통할 수 없는 도구 같은 존재들이기 때문에 반드시 영의 생각을 믿고 따라야만 안전하다고 합니다.
그러면 흙으로 조성된 인간 육신은, 자신도 하나님의 영처럼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는 생명의 생기, 곧 혼(생명력)을 갖고 있으니 이런 생기의 능력으로 종북 반역 세력들처럼 만물의 상전된 창조주 하나님과 그와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의 영을 얼마든지 거역하고 제 임의대로 행동할 수 있다고 우깁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과 사람의 영을 거역하는 인간 육신의 죄악된 생각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로마서 8:5~7) 하였습니다.
육신의 생각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은, 육신 자체가 추구하는 일이 자신의 친정집과 같은 흙의 본성, 즉 아무 것도 없는 죽음의 무(無)의 상태로 되돌아가려는 습성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아무 것도 없는 죽음의 무(無)의 상태에서 천지 곧 공간과 물질을 창조하셨고, 또 물질의 본질인 흙으로 생물들의 육체를 만드셨기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원수시하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만물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배려하에 나름대로의 사명을 갖고 세상에 태어나 꽃피고 열매 맺을 수 있는 생명에 반열에 서게 된 것을 영광으로 생각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육신을 입은 모든 생물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들을 내정 간섭으로 생각해 원수 취급합니다.
육신을 입은 생물들의 태생적 습성이 아무런 형질을 갖추지 않은 무(無)의 상태에서 어느 누구로부터도 위협을 받지 않고 지시도 받지 않고 간섭도 받지 않는 죽음의 무(無)의 상태를 극락 세계로 취급해 사모합니다. 그래서 인간 육신도 자신의 현재 상태(위치)보다 낮고 천한 단계로 미끄러져 내려갈 땐 즐거워 하고, 현재 상태(위치)보다 높고 거룩한 단계로 올라갈 땐 고통스러워 합니다. 즉 죽음의 게으른 습성이 현재의 생존 상태보다 낮고 천한 내리막 길은 즐거워 해도, 현재의 생존 상태보다 천만 배 높고 거룩한 영생을 험악한 십자가의 고통으로만 취급해 올라가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영의 생각(뜻)을 철천지 원수로 취급합니다.
사람의 육신도 하나님의 영과 같은 자유로운 생기를 갖게 되자 하나님의 창조 세계를 최초로 반역해 혁명을 일으킨 사단의 유혹을 받아 자신들에게 주어진 자유로운 생기로 하나님의 뜻(말씀)을 반역해 거역하는 쪽으로만 영원히 쾌락하고자 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처럼 영원히 희락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하나님의 뜻과 지혜인 말씀으로만 가능할 뿐, 죽음의 내리막 길을 즐거움으로 삼은 인간 육신의 뜻과 지혜로는 오직 흙으로만 되돌아 갑니다. 예수님이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 14:6) 하셨건만, 오늘날의 사람들은 자신의 본향된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자기 육신의 고향된 죽음으로만 치닫습니다.
인간 육신의 내리막 길(죽음)은 이제 절벽 끝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이런 시대에 예수님의 언행을 믿는 영의 생각은, 육신의 육감(肉感)에 감지되는 모양이 아무리 화려하고 귀중하여도 하나님의 뜻(말씀)에 조금이라도 어긋났을 때에는 그것들을 쓰레기 취급하여야 합니다. 아무리 육신의 육감(肉感)으로는 분명한 팩트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났을 경우에는 그것들을 죽음의 덫으로 취급하여야 합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영의 생각을 좇아 하나님의 거룩함에 이르려 하지 않고, 흙으로 빚어 만든 인간 육신의 육감(肉感)으로 확인되는 팩트만 좇습니다. 그래서 1차 산업혁명, 2차 산업혁명, 3차 산업혁명을 거쳐 이제는 마지막 산업혁명이라는 4차 산업혁명에 이르렀습니다. 4차 산업혁명은 마치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능력과 같아 보입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사람들에게 내린 형벌은 땀흘려 수고하여야만 간신히 먹고 생존할 수 있는데, 이제는 생각과 손가락짓만으로도 생존할 수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은 나노(Nano)기술입니다. 사전에는 나노의 뜻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였습니다. "`나노(Nano)'는 10억분의 1을 뜻하는 접두사로 나노기술은 이러한 크기인 원자나 분자 단위를 다루는 기술을 통틀어 일컫는다. 이처럼 지극히 작은 크기가 주는 엄청난 가능성 때문에 나노기술은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다. 그렇기에 각종 상품, 광고, 마케팅에 '나노'란 말이 유행처럼 붙혀지고있다." 즉 어떤 물질의 구성요소가 되는 최소 단위를 찾아 발견해 그것의 이합집산을 새롭게 하여 신소재를 만들거나 또는 다른 힘든 분야에 투입하여 용이하게 일을 진행시키는 로봇들로써 사람들이 하여야 할 어려운 일들을 대신해 일하게 하는 동력체들입니다.
물질을 구성하고 있는 최소 단위를 찾아 발견해 그것들의 이합집산을 새롭게 구성하여 신소재를 만드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일례를 들어, 사람이 어떤 음식을 먹었는데 그 음식이 갖고 있는 영양분의 크기가 위장이 섭취할 수 없을만큼 덩치가 크면, 먹은 음식의 영양분들은 모두 배설물들이 되어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이런 때에 영양분을 물리적이나 화학적 방법으로 최소화시켜 능히 위장이 흡수 가능하게 만드는 기술들을 통털어 나노기술이라고 합니다. 덩치가 큰 영양분의 원자나 분자를 더욱 세분화하여 가장 작게 만들어 환자들에게 주입시키면, 웬만한 난치병도 치료가 가능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땐, 나노기술은 인간 육신에게는 심히 선합니다.
그런데 육신 위주의 사람들은 육에 속한 영양분의 최소 단위를 찾아 발견해 나약한 육신 요처요처에 공급하여 건강한 육체를 만드는데, 영 위주의 사람들은 어찌하여 영에 속한 영양분의 최소 단위를 찾아 발견해 병든 영 요처요처에 공급하여 건강한 영을 만드는 일에 전념치 않는지 한심스럽습니다. 인간의 육신은 날로 평안의 길로 치닫는데, 영만은 날로 쇠약하여 죄악의 길로 치닫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남북한의 실정을 알게 되면 목숨 걸고 탈북을 시도하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천국과 지옥의 실정을 훤히 알면서도 목숨 걸고 탈죄악(출죄악)을 시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4차 산업혁명이 이루어지면 예수님이 재림치 않아도 온 세상이 천국이 될 줄 믿기 때문입니다.
육신 위주의 사람들이 나노기술을 앞세우고 4차 산업혁명을 시작하기 이전에 영 위주의 사람이 영적 나노지식으로 예수님의 언행을 더욱 확신해 지켜야 합니다. 사람이 겉보기에는 형체적인 육신이 전부인 것 같으나 그 실은 형체적인 육신을 정복해 다스리는 심령, 곧 영혼이 육신 안에 건재하여야만 육신도 온전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물질의 구성 요소를 파헤쳐 육신의 평안만 누리게 되면, 반드시 소돔·고모라와 같은 음행이 세상에 만연하여 반드시 하나님의 유황불 세례를 받고 온 인류가 멸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이 인간 육신의 적대 행위를 에덴 동산에서부터 예견하셨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비책으로 영력을 강화시켰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육적인 나노기술로만 천국 같은 신세계를 펼치려 할 뿐, 이를 정복해 다스릴 수 있는 영적인 나노지식을 하나님께 구하지 않습니다.
모세의 십계명은 인간의 영적 소화기능으로는 세상을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창출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이 오셔서 하나님의 뜻을 세분화하여 사람들이 쉽게 그 뜻을 새겨들어 세상의 그 무슨 세력이든 이길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시대의 신앙인들은 예수님의 언행을 세상 사람들이 쉽게 이해(소화)할 수 있는 영양분으로 개선시키지 않습니다. 마귀는 인간 육신의 지식으로 고도의 산업혁명을 일으켜 지상천국을 추구케 하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예수님의 언행을 더욱 세분화시켜 사람들의 영력을 더욱 강화시키려 하지 않습니다. 즉 영적인 나노지식으로 신앙인들의 믿음을 더욱 강화시켜야만, 비로소 세상에서 만연되는 육적인 나노지식들의 교만무례를 정복해 다스릴 수 있습니다. 성경 말씀 속에는 아직도 발견되지 않는 영적인 나노지식들이 태산처럼 쌓여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인식할 수 있는 영력이 없으면, 그가 어떤 상태의 유명 지식인이 되든 간에 반드시 반인간, 반생명, 반국가, 반사회적인 짐승들이 되어 종북 반역 세력들처럼 날뛰게 됩니다. 사람이 비록 육적인 지식과 지혜로 지상 낙원을 이룩하여도 예수님과 함께 동행할 수 있는 영적 지식이 없을 떼에는 반드시 잔꾀에 능한 마귀에게 짓밟히게 됩니다. 예수님이 수십 여년 전부터 이 민족에게 세상을 이기는 일기당세(一騎當世)의 믿음을 전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신 까닭은, 고도로 발달된 육적인 지식과 지혜는 반드시 예수님께로부터 생성된 영적인 믿음으로 지배받아 사람의 본분을 지켜야 합니다. 사림이 비록 지구를 반쪽 낼 수 있는 무기를 개발하였더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영적인 지식과 지혜로 그것들을 선용할 수 없게 되면, 반드시 그 무기에 의해 자멸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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