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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브로드웨이에서 공연됐던 연극 ‘치킨 앤 비스킷’이 이곳 남부에 왔다.
오랜 시간 떨어져 살던 가족이 서로 다른 환경과 문화의 차이로 충돌하지만, 치킨과 비스킷이라는 소울푸드를 통해 다시 화해의 실마리를 찾는다는 이야기다. 자칫 무거울 수 있는 주제를 남부 특유의 경쾌함과 익살로 풀어내어 기분 좋은 웃음과 뭉클한 감동을 동시에 느끼게 한 작품이었다. 극장을 나오면서 연극의 여운 때문인지 굴곡진 삶을 통과해온 그들의 오늘이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했다.
다음 날, 남부 토박이 친구와 점심을 했다. 전날 연극 속 배우의 과장된 몸짓이 아직도 생생했던 나는 자연스럽게 “너도 치킨 좋아하지?” 라고 물었다. 답을 알면서도 건넨 질문이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어릴 때부터 늘 먹어왔지만 튀긴 음식이라 이제는 건강상 잘 먹지 않는다고, 사실 지금은 옛날만큼 좋아하지도 않는다고 했다.
순간 나는 당황했다. 그녀에게 그 음식은 나에게 김치나 된장찌개처럼 정겹고도 그리운 맛일 거라 짐작했었다. 소울푸드라고 여겨지는 음식이 삶을 지탱하는 익숙한 맛이 아닌, 피하고 싶은 음식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 또한 선뜻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때 문득, 시집간 딸의 말이 떠올랐다.
“엄마, 우린 김치 없어도 잘 먹어요” 그때는 어린 손주들의 입맛 때문이겠거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 말은 단순한 식습관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 김치와 된장찌개는 단순한 음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엄마의 손길과 가족의 기억이 차곡히 쌓여 만들어진 시간의 결정체였다. 잘 익은 김치의 새콤한 냄새는 없던 입맛을 돌게 했고, 뜨끈한 김치 국 한 그릇이면 몸과 마음이 노곤하게 풀어지곤 했다. 구수한 된장찌개 냄새는 엄마의 품처럼 정겨워서 마음 속 뭉친 응어리를 풀어주는 치료제였다. 그렇게 너무도 소중하고 당연한 것들이 다른 문화 속에서 자란 딸에게는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나는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한국어보다 영어가 편하고 김치보다 아보카도와 올리브를 자연스럽게 찾는 아이, 그릿츠(grits)와 에그 베네딕트를 일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면서 어딘가 낯설고 불편하면서도, 김치가 그 아이의 소울푸드가 아닐 수도 있다는 사실은 미처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당황한 내 표정을 눈치챈 친구가 웃으며 자신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할머니가 만들었던 프라이드 치킨이 얼마나 고소했는지, 집안 고유의 레시피로 끓인 그레이비 소스를 얹은 비스킷의 눅진하면서도 바삭한 맛은 아직도 기억이 생생하다고 했다. 뉴욕에서 변호사로 일하던 시절, 그 맛이 그리워지면 일부러 남부 음식점을 찾아다녔다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그녀는 눈앞의 상큼한 샐러드를 포크 가득 담아 입으로 가져갔다. 과거의 그리움을 간직한 채, 현재의 건강한 일상을 살아가는 그 모습은 전통과 변화, 취향과 선택 등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어쩌면 소울푸드는 특정한 음식 하나로 고정되는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정해진 레시피나 재료로 요리된 음식이 아니라, 앞으로 펼쳐질 시간을 헤쳐 나가게 하는 내면의 자리를 나타내는 말일 수도 있다. 그것은 치킨 한 조각일 수도, 굴뚝에서 피어오르는 저녁밥 냄새일 수도 있다. 노을에 젖어 흔들리는 빨래, 바람에 일렁이는 목화밭의 하얀 물결, 그 사이를 지나던 공기의 온도와 눈부신 햇살, 그런 기억들이 겹겹이 쌓여 저마다의 마음자리를 만든다. 그 안에서 들리던 정겨운 목소리와 울고 웃던 얼굴들. 그곳에는 같은 시간을 건너온 보이지 않는 연대를 가진 사람들이 있다. 지금은 비록 다른 음식을 먹고 다른 말을 쓰더라도, 함께 나누었던 시간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 공동의 마음자리를 가진 사람들이다.
여전히 딸의 식탁에는 아보카도와 올리브, 낯선 이름의 음식들이 올라갈 것이다. 하지만 때때로 물에 씻은 김치와 담백한 된장국이 놓일 것이고 이유도 없이 문득 옛 맛이 생각나 한식당을 찾기도 할 것임을 나는 안다. 새로운 시간을 쌓아가고 아이의 오늘을 단단히 지탱해내는 힘이 바로 우리가 함께 한 마음자리이기 때문이다. ‘김치 없어도 괜찮다’ 는 말은 우리가 보냈던 시간을 잊었다는 뜻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현재의 시간을 잘 살아가고 있다는 조용한 표현인 것이다.
우리 모두는 혈연이라는 끈으로 묶여 있다. 동시에 저마다의 궤적을 그리며 살아가는 독립된 여행자들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쌓인 시간들이 서로 다른 맛과 기억을 만들겠지만 우리의 삶이 반드시 같은 방식으로 이어져야 할 필요는 없다. 서로 다른 음식들이 한 식탁 위에 놓일 때. 비록 같은 것을 먹지 않아도 우리는 충분히 연결되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훗날 손주들의 식탁이 또 다른 낯선 음식으로 채워진다 해도 나는 그들의 새로운 세계를 기쁘게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를 이어주는 것은 단지 같은 음식을 나누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서로의 시간이 녹아든 마음의 자리를 함께 하고 있다는 유대감에 있다. 각각의 시간을 인정하며, 따로 또 같이, 그렇게 시간이 녹아든 자리에서 우리는 더욱 단단해 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