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서구문화회관에서 하는 전시.
무료 관람이지만 예약을 해야 한다고 해서 오늘 오후 4시로 예약하고 달려갔어요.
빈센트 반 고흐는 영화도 많고 노래도 있지만
이번 전시는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는지 궁금했지요.
인천에 그토록 오래 살았지만, 인천서구문화회관은 처음 가 보았네요.
한적한 곳에 위치하고 있어 조용하고 참 좋았어요.
비 오는 토요일 오후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네요.
서구에는 예로부터 도요지가 있었어요. 서구를 나타내는 상징물이 입구에 있어요.
이번 전시는 빈센트의 색 그리고 향기라는 주제로
반 고흐가 그림에 사용했던 색채와 그 색채의 표현에 사용되는 향기들을 느끼게 해줍니다.
고흐의 주요 작품에 시향지가 놓여 있어 관람객이 직접 향기를 느낄 수 있지요^^
그래서 그런가, 전시회장이 온통 향기로 가득합니다.
* 프루스트 효과
향기/ 후각을 통한 자극으로 기억을 재생해 내는 현상
어떠한 대상을 후각과 함께 인지할 경우 더 오랜 시간 동안 기억에 남으며, 다른 감각에 비해 감정적 느낌 또한 강하다.
과연 그런지는 전시장을 쭉 둘러본 뒤면 알 것 같아요.
고흐의 일생을 한눈에 볼 수 있었어요.
<성경이 있는 정물> 1885
빈센트 반 고흐는 1885년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자, 아버지의 성경 책을 바탕으로 정물화를 그립니다.
개신교의 목사였던 그의 아버지는 빈센트가 품격 있고 성실한 신자로 살아가기를 원했지만, 빈센트의 신앙은 그가 원했던 방향이 아니었지요.
자연과 예술에서 위안을 찾던 빈센트와의 다툼으로 인해서 둘의 사이는 조금씩 멀어졌습니다.
빈센트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직후 아버지의 성경 책과 자신이 가지고 있던 에밀 졸라의 소설 <삶의 기쁨>을 함께 놓고 마치 자신과 아버지의 서로 다른 세계관을 의미하듯 쓸쓸한 작품을 완성합니다.
위: 감자를 심는 여자와 쟁기꾼(1884)
아래: 감자를 심는 농부들(1884)
<감자 먹는 사람들> 1885
많은 사람들에 의해 반 고흐의 최초의 위대한 예술 작품으로 여겨지는 작품입니다.
빈센트 특유의 붓 터치를 익히기 전의 그림이며, 예술가로서 첫 번째 걸작을 만들기 위해서 어색한 것이 아닌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는 것을 주제로 잡았습니다.
정사각형 테이블에 앉아 감자를 나눠먹는 1명의 남성과 4명의 여성으로 구성된 농부 가족을 그렸고, 그들의 얼굴과 배경에 어두움이 겹쳐 있지만 생동감 있는 주인공들의 감정은 오히려 빛나는 느낌을 가집니다.
고흐는 <감자 먹는 사람들>을 미리 계획하고 준비했지만, 아트 딜러인 동생 테오에게 마저도 당시 프랑스의 예술과 동떨어져 판매할 수 없다는 혹평을 듣습니다.
"언젠가는 <감자 먹는 사람들>이 진정한 농촌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을 거야.
나는 그렇게 믿는다."
"나는 램프 불빛 아래서 감자를 먹고 있는 사람들이 접시로 내밀고 있는 손,
자신을 닮은 그 손으로 땅을 팠다는 점을 분명히 보려주려고 했다.
그것은 그들이 정직하게 노력해서 얻은 식사임을 암시하고 있어."
빈센트가 테오에게, 1885
1886년 빈센트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파리에 도착합니다.
파리에 온 그는 전통적인 화가이자, 진보적인 선생 코르몽의 스튜디오에 합류하여 재능있는 젊은 예술과들과 교류하지요.
비록 빈센트는 코르몽과의 견해 차이를 느끼고 혼자 작업하기 시작했지만, 몽마르뜨의 카페와 레스토랑에서 다양한 예술가들과 생각을 나누는 일은 멈추지 않았지요.
빈센트는 그곳에서 에밀 베르나르 등 많은 예술가들과 친구가 되었고,
파리에서 카미유 피사로, 조르주 쇠라의 작품 등으로 인상주의를 접하며 빠른 속도로 화풍과 색채를 흡수해 자신의 작품에 녹여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이렇게 갑자기 파리로 와버렸다고 화내지 않길 바란다.
많이 생각해 봤는데 이게 시간을 절약할 수 있는 방법 같았어.
괜찮으면 정오부터 루브르에서 기다릴게."
빈센트가 테오에게, 1886
<해바라기가 있는 헛간> 1887
<테오 아파트에서 바라본 풍경> 1887
<물랭 드 라 갈레트> 1886
<몽마르트가 내려다보이는 벨베데레> 1886
<7월 14맇 기념 행사, 파리> 1886
<생 피에르 광장 정원의 연인> 1887
<회색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 1887
추수 풍경
빈센트는 아를에서 마주한 밝은 색채의 자연과 모든 것들을 행운으로 여기며,
이곳에서 자신의 건강과 평온을 되찾을 것이라 굳게 믿었습니다.
그가 아를에 도착한 후, 추운 겨울과 봄이 지난 아를에는 황금 물결의 밀밭과 푸른색의 하늘이 펼쳐지며 고흐의 예술성을 자극했죠.
당시 노란 색조에 강한 매력을 느끼던 그는 황금색으로 변한 평원과 바쁘게 움직이는 농들을 생동감 있게 그려 넣으
넓은 공간을 나무와 울타리, 길로 명확하게 구분했습니다. 그의 스타일은 더욱 느슨해짐과 동시에 표현은 더 풍부해집니다.
따뜻한 태양과 찬란한 자연에 매료된 고흐는 수차례에 걸쳐 추수를 주제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추수 기간 동안 나의 작업도 농부들의 일만큼이나 쉽지 않았다.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예술가의 삶에서 이런 순간을 맞을 때
내가 가장 행복을 느낀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빈센트가 테오에게, 1888
<추수 풍경>, 1888
<밤의 카페테라스>, 1888
<반 고흐의 침실>, 1888
빈센트는 행복하고 희망적인 기분으로 노란 집에 정착했습니다.
그는 침실을 평온한 곳으로 표현하기 위해 세심하게 색을 선택했습니다.
차분한 색과 선명한 라인, 단순한 구성과 그림자의 부재 등 일본 회화의 성격으로 그림을 그렸으며,
작품에 사용한 색을 라일락과 바이올렛이라며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서 정확하게 설명합니다.
이 그림은 고흐가 병원에 있는 동안 훼손되고, 이후 고흐는 같은 그림으로 2점을 더 완성했습니다.
2점 중 하나는 테오를 위해, 나머지 한 점은 누이와 어머니를 위해 그립니다.
침실 그림은 고흐에게 가장 행복했던 시기를 떠올려주는 그림이었습니다.
그림 속에는 아를에서 만난 친구 외젠 보흐와 빈센트의 친구가 된 군인 폴 외젠 밀러의 초상화가 있습니다.
"그냥 내 집이다. 그림을 보면 마을의 휴식 혹은
상상력의 휴식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
빈센트가 테오에게, 1888
<노란 집>, 1888
<꽃이 피는 복숭아 나무>, 1888
<해바라기>, 1888
빈센트는 하나의 꿈이었던 예술가 공동체 결성과 예술가들의 교류를 위해 준비합니다.
많은 예술가들을 초대하려고 했지만 생각처럼 잘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 평소 테오와 친분이 있던 고갱이 응답합니다.
고갱은 당시 고흐와 마찬가지로 작품이 잘 판매되지 않는 힘겨운 상황에 있었으며 화상인 테오에게 도움을 받았습니다.
테오의 도움 뒤에는 고흐의 고갱을 행한 열렬한 지지가 있었습니다.
마침내 고갱이 아를로 와서 함께 지내는 것으로 결정되자,
고흐는 해바라기 연작을 그려서 그의 걸어주기로 마음 먹습니다.
빈센트는 이러한 장식으로 환영와 우정을 상징하고 고갱에게 자신의 독창적이고 새로운 그림을 보여주고 싶은 강한 열망을 느낍니다.
그런데...
둘은 사이가 좋지 않았고,
폴 고갱은 이 그림을 고흐에게 선물했습니다.
빈센트는 이 그림을 보고 큰 충격을 받습니다.
당시 초상화에서는 인물을 중앙에 그리거나 집중될 수 있도록 효과를 주는 것에 비해
<해바라기를 그리는 빈센트 반 고흐>는 마치 술에 취한 사람처럼 초점 없는 눈의 빈센트가 오른쪽 끝에 걸려 있으며,
해바라기는 잎이 떨어진 채로 시들시들하고, 빈센트는 지나치게 얇은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결국 이 그림은 고흐에게 상처를 주었고, 둘의 감정은 더욱 악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를의 붉은 포도밭>, 1889
결국에는 고갱이 떠나고, 고흐는 귀를 자릅니다.
귀를 자른 후 병원에 갔던 빈센트는 2주간의 치료 끝에 퇴원하여 돌아옵니다.
돌아온 그는 안정된 모습을 보이며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또 다시 심각한 증세를 보이자 주민들은 시장에게 진정서를 보내기 시작했고,
가까이 지냈다고 생각한 주민들까지 서명한 것을 본 빈센트는 충격에 빠집니다.
결국 그는 1889년 5월 생레미의 요양원에 스스로 입원합니다.
그림을 계속 그릴 수 있게 허락하기로 약속했지만 종종 발작과 함께 물감과 램프 오일 같은 위험 물질을 먹으려고 해서
재료를 뺏기도 하였습니다.
이곳에서 빈센트는 좋은 상태일 때만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허락받고 열정적으로 그림을 그렸으며
1년 동안 약 150점의 작품을 완성합니다.
그런 빈센트를 위해 테오는 물감과 캔버스를 보내주었고, 병원비 전부를 지불하며 형을 위해 헌신합니다.
"내가 정신병이 있지만, 그렇다고 화가로서의 작업을 못하게 되는 건 아니라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내 자기 자신에게 말해준다."
빈센트가 테오에게, 1888
<아이리스>
<론강 위 별이 빛나는 밤>, 1888~9
<별이 빛나는 밤>, 1889
이 작품은 고흐가 생 레미 정신요양원에 있을 당시 그린 그림입니다.
밤하늘은 고흐에게 무한함과 애정의 대상이었으며,
그림 속 하늘은 마치 당시 빈센트의 심리 상태를 그림에 표현한 것처럼 소용돌이 치고 있습니다.
그림의 왼쪽에는 그가 즐겨 그렸던 사이프러스 나무가 하늘을 향해 길게 뻗어있고,
강렬한 흐름의 하늘과 정반대로 집이 모여 있는 마을은 평온한 느낌으로 가득합니다.
<도비니의 정원>, 1890
정신요양원에서 지내던 빈센트는 치료에 진전이 없자,
파리에서 조금 떨어진 오베르 쉬르 우아즈로 떠납니다.
오베르에 도착한 그는 새벽에 일어나 하루 종일 작업하며 두 달 동안 약 70여점의 그림과 드로잉을 그립니다.
<까마귀가 있는 밀밭>, 1890
많은 사람들에게 고흐의 마지막 작품으로 여겨지던 그림입니다.
<나무뿌리>, 1890
이 작품이 바로 빈센트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합니다.
오늘, 비오는 토요일...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해 다시 자세히 살펴본 시간이었습니다.
눈호강 실컷 한 날^^
첫댓글 제가 한때 그림을 그리려고 집에서 끄적일 때 저 반 고흐의 침실과 마티스의 어항 그림을 몇 번 따라 그린 적이 있지요.
네델란드의 고흐 박물관 가서 눈에 제일 들어온 작품은 꽃이 피는 복숭아 나무였고요.
복숭아나무, 태어날 조카를 위해 그린 아몬드나무 보았어요. 다 좋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