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명 수급 중지·삭감 통보… 극단적 선택으로 내몰려
가출한 딸이 '근로능력 있다'라는 이유로 급여 삭감 이어져
기사작성일 : 2011-07-19 18:07:27
▲지난 5월 보건복지부 앞에서 기초법개정공동행동이 1박 2일 농성을 하며 부양의무제 폐지를 촉구하는 모습. |
지난 12일 청주에서 홀로 사는 60대 남성이 부양의무자가 있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제외될 것이라는 지자체의 통보를 받은 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진 가운데, 보건복지부(아래 복지부)가 최근 진행 중인 부양의무자 확인조사가 수급자들의 현실을 도외시한 ‘날림조사’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전주에서 두 딸과 함께 81만 원의 급여를 받아 생활하던 정윤성 씨(뇌병변장애 1급, 여)는 2주 전 주민센터로부터 ‘부양의무가 있는 큰딸이 만 18세가 되어 근로능력이 있다’라는 이유로 다음 달부터 수급비가 깎여 20만 원만 나온다는 통보를 받았다. 하지만 큰딸은 가출 상태이다.
정 씨는 “큰딸이 가출해 충격이 컸는데 수급비가 깎인다는 통보를 받고 나니 더는 살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면서 “법으로는 큰딸이 부양의무가 있다고 하는데, 연락을 끊고 지낼 생각으로 아예 짐을 꾸려 나간 큰딸에게 내가 어떻게 부양을 받을 수 있겠느냐?”라고 한탄했다.
서울 노원구에 사는 최미은(뇌병변장애 2급, 여)·배덕민(뇌병변장애 1급, 남) 부부는 급여 지급일인 20일을 앞둔 지난달 17일 주민센터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최 씨의 아버지가 3월부터 한 구청에서 일을 해 이번 달부터 수급비 14만 원이 깎이고, 급여 조정 관계로 열흘 뒤에나 급여가 나온다는 통보였다.
그동안 이들 부부는 생계급여·주거급여·장애인연금을 합해 106만 원을 받아 빠듯하게 생활해오고 있었다. 당일 주민센터를 찾은 배 씨가 “아내가 출가외인인데 왜 장인어른이 소득이 있다는 이유로 우리의 수급비가 깎이느냐?”라고 묻자, 담당자는 “현행법으로는 어쩔 수 없다”라면서 “정확하게 알고 싶으면 구청에 가서 담당자와 이야기해라”라고 말했다.
배 씨는 “구청에 가서 ‘장모님이 병환이 있기 때문에 장인어른이 돈을 벌더라도 우리를 도와줄 여력이 되지 않는다’라고 말하니 구청 담당자는 진단서 등 관련 서류를 제출하라고 했다”라면서 “그래서 3만 2,800원을 들여 관련 서류를 제출했더니 29일 구청에서 전화가 와서 ‘기존대로 수급비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라고 전했다. 배 씨는 이 자리에서 구청 담당자로부터 '노원구에서만 수급자 20%가 탈락했다'는 소리도 들었다.
하지만 배 씨가 관련 서류를 제출해 급여가 원상복구된 것이 아니었다. 배 씨는 “구청에서는 ‘한 번 더 조사해보니 장인어른이 부양해야 할 딸과 손주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라면서 “결국 헛돈만 들이고 급여를 늦게 받은 셈”이라고 성토했다.
서울 동대문구에 사는 지영(지체장애 1급, 여)·박정혁(뇌병변장애 1급, 남) 부부는 지난달 20일 이전보다 수급비가 30만 원 덜 나온 통장을 보고 경악했다. 아무런 통보 없이 박 씨 아버지의 소득 중 30만 원을 부양비로 간주해 그만큼 수급비가 깎인 것이었다.
다음 날 구청 담당자를 찾아간 박 씨는 아버지의 퇴사증명서를 보내준다면 다음 달부터 기존대로 수급비가 나올 것이라는 답을 듣고 온 상황이다.
박 씨는 “아버지가 그동안의 빚을 간신히 청산하고 일자를 구하셨는데 내 수급액이 깎인다는 이유로 일자리를 그만두시라고 이야기하는 불효를 왜 저질러야 하느냐?”라면서 “아니면 마흔이 넘은 나이에 환갑이 넘으신 아버지에게 부양비를 구걸해야 하느냐?”라고 성토했다.
▲부양의무자 확인조사가 진행 중이던 지난 6월, 종로 보신각 앞에서 기초법개정공동행동 주최로 열린 부양의무제 폐지를 촉구하는 결의대회. |
이에 대해 기초법개정공동행동(아래 공동행동)은 지난 13일 성명서에서 “이번 부양의무자 재조사로 발생한 수급탈락, 수급비 삭감 사례의 규모는 어마어마할 것으로 보인다”라면서 “이에 대한 파악을 위해 정보공개청구를 신청하였지만, 복지부에서 돌아온 답변은 자료를 공개할 수 없으니, 2009년 수급자 현황 보고서를 참조하라는 것”이라고 전했다.
공동행동은 “이러한 복지 행정이 가난한 이들을 절망의 빈곤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내몰고 있다”라면서 “기초생활 수급 이외에는 아무런 생계수단도 갖지 못한 이들이 실제로 부양받지 못하는 부양의무자의 소득, 재산을 이유로 수급권을 박탈당하는 상황은 이들에게 삶을 포기하라는 통보”라고 지적했다.
한편 복지부는 부양의무자 확인조사가 ‘날림조사’라는 지적이 일자, 지난 15일 오전 예정에 없던 브리핑을 열어 “이번 부양의무자 소득 재산 조사는 법적 근거에 의해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확인조사로서 기초생활보장제도 도입 이래 정기적으로 이루어진 조사”라면서 “다만, 이번 확인 조사의 경우 2010년 사회복지통합관리망이 구축되어 파악된 부양의무자 수, 소득재산 정보가 폭넓게, 정확하게 파악된 측면이 있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복지부는 “앞으로 추진될 부양의무자 소득기준 완화 수준을 고려해 현재 소득기준을 초과하는 것으로 소득자료가 갱신된 대상 일부에 대해서는 소득 재산 정비를 보류했다”라면서 “결국, 현재 탈락하거나 탈락할 예정인 수급자는 부양의무자가 중위 소득 이상의 소득을 가진 수급자”라고 덧붙였다.
이날 브리핑에서 복지부 담당자는 지난 5월에서 6월까지 부양의무자 확인조사를 마친 뒤 수급자 8만 5천여 명에게는 급여중지·삭감·유지 결정을 내리고, 1만 5천여 명은 아직 소명 작업을 마치지 못했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