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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iS80fQA8Gig&t=8s
국립서울현충원 후기, 현충일 가볼만한 곳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
🕡운영시간: 매일 06:00~18:00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동작구 현충로 210 (동작동)에 소재한 국립묘지.
1950년 6.25 전쟁 발발로 인해 늘어나는 국군 전사자를 안치하기 위한 육군 국립묘지로 1952년 5월부터 계획되어 1953년 서울 동작동 부지 선정, 1954년 착공, 1956년에 개장, 안장이 시작되었다.
개장 당시의 명칭은 '국군묘지'였다. 1965년 국립시설로 승격되어 '국립묘지'로 불리었다. 1996년 '현충원'(顯忠院)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고 이후 2006년에 국립서울현충원으로 변경되었다.
국립서울현충원
호국영령이시여!
고이 잠드소서!
현충탑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대통령 박정희
중수 박정희 대통령의 친필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충혼
대통령 박정희
아! 역전의 용사들이시여!
“여기는 민족의 얼이 서린 곳
조국과 함께 영원히 가는 이들
해와 달이 이 언덕을 보호하리라”
진혼곡이 울려 퍼지는
국립묘지 충혼탑
숭고한 희생 앞에 머리 숙여
조국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싱그러운 녹음 우거진 숲속
한없이 푸른 6월의 하늘 아래
조국을 위해 목숨 바친 고귀한 희생이
메아리 되어 날아온다
이 땅이 어떤 땅이며
어떻게 지켜 왔는가
저 강물이 어떤 강물이며
여기까지 흘러왔는가
저 산야가 푸른 의미는 무엇인가
빗발치듯 오가던 백 천의 포탄
붉은 피 풀잎에 물들고
젊음 그곳에 멎을 때
거룩하게 눈 감은 조국의 아들
그대 이름은 대한민국 국군
견뎌 낸 슬픔도 지니고
못다 푼 서러움도 안고서
세월은 흘렀는데
역전의 용사들이여!
이제는 편히 쉬소서
고이 잠 드소서.
겨레와 나라 위해 목숨을 바치니
그 정성 영원히 조국을 지키네
조국의 산하여 용사를 잠재우소서
충혼은 영원히 겨레 가슴에
임들은 불변하는 민족혼의 상징
날이 갈수록 아아 그 정성 새로워라
안녕하세요. 오늘은 다음 주 6월 6일 현충일을 미리 기념하여 현충원을 다녀왔어요.
매년 현충일을 기념하여 현충원을 찾고 있는데요.
이번에 방문한 현충원은 우리 국가의 역사와 헌신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재밌고 쉽게 소개해드릴께요.
[4호선 8번출구로 나와주세요]
4호선 지하철 이용시 동작역 하차 후 8번출구로 쭈-욱 계속 걸어나오면!(통로가 엄청 길어요.)
[국립서울현충원 도착]
🕛개방 및 참배시간 06:00~18:00
🕛현충탑 참배시간 09:00~18:00
🕛충혼당 참배시간 09:00~17:30
이곳에 방문하시는 분들은 예의를 갖춘 복장과 경건한 마음으로 오시길 바랍니다.
[충성분수대]
정문으로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충성분수대는
국가의 자유, 평화와 번영을 위하여 밑거름이 된 영령들의 위훈과 정신을 상징합니다.
[셔틀버스 탑승장소]
배차간격은 60분 간격이구요.
공휴일은 미운행합니다.
[수양벚나무길]
현충원은 벚꽃명소로도 유명하자나요.
이곳은 60~70년대에 수양벚나무를 식재하여 매년 4월 많은 방문객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습니다!
國父 이승만 초대 대통령의 동상이 곳곳에 서고 전 국민이 초대 대통령을 숭상해야 한다고 하면
또 다른 이념전쟁이 무력전쟁보다 더 극렬해져서 망국의 단초가 될만큼 치열해지겠지?
이 우려될 현상이 우리들 전 국민의 밑바닥에 깔린 국민심성인데...
박정희 대통령 육영수 영부인 묘
顯나타날 현 忠충성 충 院집 원
일편단심 위국충정 애국애족의 위혼이 잠든 거룩한 묘역
현충 선양관 전경
현충관
현충탑
충렬대 정면
충렬대 측면
충성 분수대
충혼 슬천탑
50년현지임관 추모비
墓묘域역別별 보기
① 大대統통領령 墓묘域역
1965.7.19. 하와이 서거 27. 가족장으로 안장 이승만 대통령
프란체스카 영부인 92.3.19. 서거 가종장 23일 안장
여기 잠드신 이승만 박사는 1945년 고국으로 돌아 왔으나 국내에 지지 기반이 없어서 발판으로 만든 것이
대한청년단(한청)이다.
그리고 한청의 지지 발판을 받고 대한민국은 대부분이 친일파가
국정에 참여하여 위기일발의 건국 대한민국 제일인자였다.
박정희 대통령 1979.10.26. 김재규 흉탄에 서거 11.3. 국장
육영수 영부인 74.8.15.
문세광 저격 흉탄으로 서거 국민장으로 안장
② 臨임時시政정府부要요人인 墓묘域역
상해 임시정부 요인 묘소
③ 愛애國국志지士사 墓묘域역
애국지사 묘역(1)
애국지사 묘역(2)
스코필드 박사 묘소
④ 將장軍군墓묘域역
장군묘역(☆☆☆☆들의 묘지)
⑤ 將장軍군墓묘地지와 將장兵병墓묘域역
정군↓ 장 병↓
장군과 장교묘역 오른편 위가 병사들의 묘역↗
장병등의 묘소(졸병들의 쉼터)
서을 顯현忠충院원 造조成성經경過과
★ 1953년 9월 29일 국립묘지 부지 결정
★ 1974년~57년 장병묘욕 30~54조성 26까지 조성
★ 1965년 6월 30일 국군묘지가 국립묘지로 승격
★ 1966년 장군묘지 200평 조성
★ 1968년도 학도병 묘역 150평 조성
★ 1971년~3년 월남전 전사자의 지속적인 증가로 확장
★ 1974년 육영수 묘소 조성
★ 1975년도 장군묘역 증설
★ 1981년 장군묘역 재 증설
★ 1993년 임시정부요안 묘역 국가유공자묘역 조성
1953년 9월~2007년 7월 31일 현재
★서울현충원 안장자 태통령과 영부인 愛國愛族護國
★서울현충원 165,891기 임시정부요인 永遠無窮繁榮
★대전현충원 79,502기 국가유공자 子孫萬代保全
★합계 245,393기 국군장병, 국무원, 애국지사 平和統一成就
[묘역]
장병묘역 - 54,000여 위가 56개 묘역에 모셔져 있습니다.
이 수많은 주검이 오직 김일성의 불법남침 때문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경찰충혼탑 올라가는 길]
경찰충혼탑까지의 길이 얼마나 길던지 그 길 양 옆으로 얼마나 많은 묘역들이 있었을까요...
여기에 잠들어 계신 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경찰충혼탑]
탑 중앙으로부터 양쪽으로 두 팔을 벌린듯한 날개는 민주 경찰의 따스한 보호를 나타내고요.
탑신 하단에는 경찰 활동의 상징인 신,의,용의 3인상을 세워 경찰의 충성과 봉사 정신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대한독립군 무명용사 위령탑]
경찰 충혼탑 바로 옆에 위치한 이 탑은
일제강점기에 나라를 되찾기 위해 만주와 연해주 지역에서 끊임없이 독립투쟁을 한 이름도 알 수 없는 수많은 무명독립군의 넋을 위로하고 추모하는 탑입니다.
[장군묘역]
군 장성 355위가 모셔져있습니다.
참배를 하며 감사의 마음을 표합니다.
[현충지]
현충지는 현충원 내에서 가장 수려하고 안락한 휴식공간입니다.
생명과 죽음이 공존하는 이 공간에서, 그들의 희생을 통해 우리가 누리는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 한번 더깨닫게 되었습니다.
[만남의 집]
휴게, 편의시설로 꽃집, 매점, 식당, 카페 등이 위치해있어요.
근데 가격이 넘나 쪼꼼 나가더라구요.
저는 근처 맛집에서 점심을 먹을 거라서 여기선 먹진 않았어요.
[현충천]
현충원을 가로지르는 현충천은 공작봉에서 시작하여 공작지, 현충지를 흘러 한강으로 유입되며 방문유가족과 참배객들에게 아늑함을 주는 휴식공간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c2QNISKxmM
현충원 전쟁기념관
[호국전시관]
서울 현충원에 안장되어 계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과 나라 사랑 정신을 기리기 위한 추모실과 전시실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조국 수호의 불꽃]
서울 현충원에 안장되어 계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과 나라 사랑 정신을 기리기 위한 추모실과 전시실로 구성되어있습니다.
[조국 수호의 불꽃]
입구에 들어가면 바로 보이는 이 구조물은 감사와 경건한 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2층 전시실]
1. 나라를 되찾기 위한 민족의 투쟁,
2. 나라를 지키기 위해 힘써 싸운 영웅들,
3. 당신의 나라사랑 정신을 주제로 우리 민족의 이야기를 순차적으로 담은 전시실입니다.
[현충관]
중학교에서 학생들이 현장체험을 왔더라구요. 저때는 없었는데, 무튼 부러웠습니다.
이 곳은 각종 추모 행사와 호국 교육 관련 문화행사 개최 및 호국 교육 영화를 상영하고 있습니다.
[유품전시관]
서울현충원에 안장되어 계신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유품과 전리품 등을 전시하고 있습니다.
전시된 유물들과 기록들을 보면서, 그들의 희생과 노력에 다시 한 번 깊은 존경을 느꼈습니다. 기념관을 나서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 평화를 지키는 것임을 마음속에 새겼습니다.
[이 나라를 지켜나가겠습니다]
내 뜻을 다 이루었으니 지금 죽어도 아무 한이 없다. - 박재혁의 옥중 진술
한 치 흔들림 없이 빼앗긴 내 나라 위해 오직 이 한 목숨 던지노라 - 이중언
과연 나도 저분들처럼 나라를 위해 저의 목숨을 바칠 수 있었을까요...
[충혼승천상]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충의와 위훈을 기리고 영령들의 숭고한 희생이 유한한 인생을 무한한 영광과 안식에 이르게 하고 있음을 상징합니다.
매년 방문 할 때마다 생각이 참 많아지는 곳입니다.
현충원의 정문을 들어서면 과거의 그 시절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요.
푸르른 잔디와 잘 정돈된 묘비들 사이를 걸으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그들의 용기와 희생에 대해 고개가 절로
숙여지더라구요.
만약 그들이 삶을 계속 이어갔다면 어떤 꿈을 꾸며 인생을 살아갔을지 상상을 하게돼요.
나라의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영웅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그들의 희생을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대한민국 만세!
1990년경에 여의도에서 1호선 대방역으로 가 전철을 타고 노량진역에서 내려 동작동 국립묘지로 가다가 우연히
사육신묘 간판을 보고 사육신묘에 올라갔다. 위병이 보초를 서고있는 국립묘지에 들어가서 무수한 병사의 묘를 보고 장군묘도 보고 거의 꼭지까지 올라가니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영부인 묘를 보았는데 잔디가 덤성덤성 있고 흙도 보였다. 국립묘지 중앙으로 내려 왔는데 사람도 없고 조용했다.
그후 거북산우회에서 4호선 동작역에서 만나 현충원에 가서 병사 묘역과 장군 묘역을 거쳐 다시 박정희 대통령
내외분의 묘를 보고 능선을 타고 하산하여 다시 사육신묘에 올라갔다.
서달산 숲길
사육신묘에서 서울현충원까지
서울 동작구
사육신묘 - 노들역 - 노량진 근린공원(고구동산) - 중앙대 후문 - 서달산 자연생태 탐방로 - 정자(동작대) -
서울현충원 상도문 - 서울현충원 정문
서달산: 해발 179m
서달산은 서울현충원 뒤에 있는 작은 산이다. 서달산 숲길을 걷기 위해 노들역에서 내렸다. 노들은 백로가 놀던
들이요 수양버들이 많아서 부르던 이름으로 지금 한강인도교 부근이다. 그 앞 강은 노들강이고, 나루는
노들나루였다. 노들나루는 한자로 옮기면서 노량진(鷺梁津)이라 하였다. 예전에 용산에서 수원으로 가는 나루는
현재 동작역 부근이다. 그곳은 구리처럼 검붉은 돌이 많아 동재기라 불렀고, 동재기나루라 했다. 한자로는
동작진(銅雀津)이라 옮겼다. 참새 작(雀)은 '재기'를 표현한 음차이다. 중국 위나라 조조가 구리로 만든 주작을
만들어 세운 동작대(銅雀臺)를 떠올려 동작이라 이름 지었다는 얘기도 있다.
사육신묘를 돌아보았다. 수양대군이 왕위를 찬탈한 후 뜻있는 신하들이 단종복위를 도모하였다. 그러나 동지였던
김질이 밀고하여 발각되었다. 가족, 친척까지 70여 명이 참혹한 죽음을 당하거나 처벌을 받았다. 수십 년 뒤
남효온은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여섯 명(성삼문, 박팽년,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의 행적을 기려 육신전(六臣傳)을 짓고 사육신이라 하였다. 사육신이 핵심이긴 하지만 그런 사람이 더 있었다. 나중에 김문기를 추가하여 사육신묘에서는 일곱 분을 모시고 있다. 사육신 사후 326년(1782년), 효종이 그들의 충성심과 의기를 인정하여
서원을 세웠다. 정조는 신도비를 세웠으며, 공원으로 조성한 것은 1978년이다. 네 분은 실묘이고, 세 분은 허묘로
조성하였다. 역사가 의(義)를 바로 세운 것이다. 사육신의 정신을 물려받아 관직을 버리고 초야에 묻혔던 생육신
(김시습, 남효온 등)도 후세는 기억하고 있다.
큰 향나무와 백목련이 호위하는 사육신묘에서 내려왔다. 노들역을 거쳐 서달산 방향으로 발길을 옮겼다. 어제 밤늦게 눈이 오더니 기온이 올라 눈은 거의 다 녹았다. 노량진 근린공원(노구동산)에서 중앙대 후문을 지나 서달산으로 갔다. 도로로 산길이 잠시 끊겼지만 길은 이어서 걸을 수 있다. 검은 돌이 있어 유래한 흑석동이 산 아래에 있다. 노구동산에서는 갈라지는 길에 눈길을 주지 않고 바로 가면 서달산 가는 길이다. 산 이름 유래는 달마사가 서쪽에 있어 서달산이라 지었다고도 하고, 달마가 서쪽으로 왔다는 불교의 화두에서 이름을 정했다고도 한다. 달마사를 세운 것이 1931년이니 그것을 유래로 삼았다면 최근에 지은 이름이라 사람들이 모를 수 있다. 산 능선이 병풍을 펼치듯 둘러 있고, 앞으로는 한강이 흐르고 있어 포근하다.
서달산 정상에 있는 정자 동작대(銅雀臺)를 지나면 이내 현충원으로 들어서는 상도문이다. 호국지장사를 지나니
묘역이 보인다. 호국지장사 터는 이승만 대통령이 절이 아니었다면 묻히고 싶은 땅이라 했던 곳이다. 대통령 묘들은 창빈 안 씨 묘 가까이 모여 있다. 현충원에서 명당은 창빈 안 씨 묘라 한다. 이곳 지형을 풍수가들은 금계포란형
(金鷄抱卵形)이라 말하고 있다. 알을 품고 있다는 말은 훌륭한 후손을 볼 자리라는 말인 모양이다. 중종의 아들
명종이 후손이 없이 병사하였다. 명종의 이복형인 덕흥군의 셋째 아들인 하성군을 왕위로 삼았으니 선조이다.
중종의 후궁인 숙용 안 씨 아들이 덕흥군이니, 선조는 손자이다. 손자가 왕이 되고, 할머니는 정1품인 창빈으로 추증되었다. 왕이 되기 전 지관이 덕흥군에게 와서 왕을 볼 자리라 한 명당이다. 그 뒤 등극한 조선의 왕들은 창빈 안 씨의 후손들이다. 왕을 보았을지 모르지만 왜란을 겪는 등 풍파가 많았다. 더구나 나라 일을 아들 광해군에 맡기고
난리 중에 도망 다녔고, 이순신을 모함하는 등 자질이 부족한 왕이었다. 명당은 그저 왕이 되는 자리가 아니라 나라와 백성을 위한 성군이 나는 자리라야 명당일 것이다.
현충원에는 수형(樹形)이 아름다운 나무가 눈에 자주 들어온다. 꽃나무가 많아서 꽃이 피면 꽃대궐로 장관을 이룰 곳이다. 백목련 겨울눈이 가지 마다 가득 달려서 금방이라도 꽃을 피울 듯 기다린다. 장군묘역에 큰 소나무 자리는 조망이 좋은 곳인데, 날이 흐려 동작대교가 흐릿하게 보일 뿐이다. 현충원은 6.25 전쟁 후 국군전사자를 안장하며 국군묘지라 불렀다. 이제는 순국 애국지사, 독립유공자 등을 모시고 범위를 넓히며 공간이 거의 차게 되었다. 이곳에 안장된 분들의 노고와 희생으로 전쟁 폐허에서도 경제발전을 이루고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요즈음 정치인들이 무슨 결심을 할 때 찾아오기도 하지만, 순국선열과 호국영령들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오늘 걸었던 곳은 사육신묘에서 서울현충원까지 의(義)를 위해 희생을 한 선열의 길이었다. 의(義)롭게 사는 것이 영원히 사는 길이다.
※ 교통편 (갈 때) 노들역 1번 출구 (올 때) 동작역
※ 길 안내
① 노들역 1번 출구에서 직진하여 300여 m 가면 사육신묘이고, 다시 노들역 방향으로 되돌아온다..
② 노들역 4번 출구 옆 경찰지구대에서 길 옆으로 쌍용아파트 입구를 지나면 고구동산길 오르는 층계
③ 노량진 근린공원을 지나 중앙대 후문 부근에서 건널목을 건너서 직진하면 서달산 오르는 길이 보인다
④ 호국지장사에서 내려가서 오른쪽 길이 대통령 묘와 정문으로 가는 길이다.
사육신묘 사당 의절사
사육신묘에 묻힌 사람들
사육신묘
백목련 겨울눈은 금방이라도 움이 틀 듯하다.
노구동산길
노구동산길
서달산 오르는 길
서달산 사랑나무
박정희 대통령 내외 묘
장군묘역
창빈 안 씨 묘. 이 묘 부근에 여러 대통령 묘소가 모여 있다.
국립묘지, 국립서울현충원
옮겨온 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