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만의 창조 신화
게르만 신화는 우리에게 무척 낯설다. 그만큼 우리가 접해볼 기회가 적었다. 그래서 소개하는 기분으로 옮겨 보겠다.
기원후 5세기 이전까지 게르만족은 독자적인 문자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이 문자는 기원후 3세기 경부터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긴 문장을 적기에는 불편하여 주로 짤막한 비문이나 장신구, 칼의 명문에만 쓰였다. 그러다가 로마에 편입되면서 로마 문자를 사용했다. 로마자로, 게르만 신화를 적은 게 아니라 성경과 기도서를 적었다.
오늘날 유럽 대륙 본토의 게르만족이 남긴 신화, 전설 기록은 극소수이다. 영국도 마찬가지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라고 할까? 유럽 대륙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섬, 9세기에 비로소 게르만족의 정착이 시작된 아이슬란드가 바로 게르만 신화의 보물 창고가 되었다. 서기 1000년에야 크리스트교로 개종한 아이슬란드 인들은, 대륙의 게르만족과는 달리 자신들의 이교 전통을 없애려 하지 않았다. 기록의 절대량이 부족한 게르만 신화에 있어서 중세 아이슬란드의 기록은 양이 많다. 놀라울 뿐이다.
창조신화를 보자.
처음에 아무 것도 없는 공허함만이 있었다. 그 공허함을 기눙가가프라고 했다. 그 북쪽에는 서리의 나라 니플헤임이, 그 남쪽에는 불꽃의 나라 무스펠헤임이 있었다(이러한 지리 관념은 노르웨이를 중심으로 한 것이다. 노르웨이에서 보면 동쪽에는 험준한 산맥이 있어서 그곳에 거인의 나라가 있고, 그 북쪽에는 핀 족이 사는 얼음의 땅 북극권이, 바다 건너 남쪽에는 온대 지방이, 서쪽에는 끝없는 바다가 있다). 니플헤임의 한가운데 있는 흐베르겔미르 샘에서 열 한줄기의 강이 넘쳐흘러 나온다. 그 강물 속에 있는 독액에 의해 얼음이 강위에 얼고, 그 위에 내리는 비가 다시 얼어붙어 기눙가가프안에 층층이 얼음의 층을 이룬다.
무스펠헤임에서 날아가는 불덩이들이 얼음을 녹이면 물방울이 생긴다. 어느 날인가 그 방울중 하나가 생명을 띠게 되었으니, 그것이 태초의 거인 위미르이다. 위미르와 함께 암소 아우드흐물라도 생겨났다. 위미르는 아우드흐물라에게서 흘러나오는 네줄기 우유의 강물을 마셨고, 암소는 얼음 덩어리에 붙은 소금기를 핥아먹었다. 위미르가 자는 동안 땀이 흘러 서리거인족이 태어났다.
아우드흐물라가 핥던 얼음 덩어리에서, 사흘만에 신이 나타났다. 부리라는 그 신에게는 보르라는 아들이 있었고, 보르는 여자 거인 베스틀라와 결혼하여 세 아들을 낳았다. 그들은 오딘, 빌리, 베, 또는 오딘, 회니르, 로두르라고 한다. 그들은 거인 위미르를 죽였다. 위미르의 상처에서 흘러나온 피는 홍수가 되어 모든 서리거인족을 익사시켰다. 그러나 베르겔미르라는 거인은 배를 만들어 아내와 함께 살아남아 동쪽으로 도망갔다. 험준한 산 속에서 그들은 새로운 거인 족의 조상이 되었다. 그 땅을 외툰헤임이라 하고, 그곳의 거인 족은 신족을 증오한다(이것은 홍수 신화의 북유럽 판이다).
세명의 신은 위미르의 시체를 기눙가가프에 놓아 틈을 메우고, 그 시체 위에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했다. 피는 바다와 호수, 뼈는 산맥, 이빨과 부서진 뼈는 바위와 자갈, 뇌수는 구름이 되었다. 위미르의 몸은 육지가 되어, 이것을 미드가르드 또는 마나헤임이라고 한다. 미드가르드의 해안에는 위미르의 눈썹을 꽂아 거인의 공격을 막았다. 그의 시체가 썩어서 태어난 구더기가 땅속으로 기어 들어가 난장이족이 되었다. 위미르의 해골이 하늘이 되었는데 네명의 난장이(`동', `서', `남', `북')가 세상의 사방 끝에서 해골을 받치고 있다. 시체 처리가 끝나자, 이번에는 무스펠헤임에서 날아오는 불덩어리들을 붙잡아, 그 중에 커다란 것으로 해와 달을 삼고, 작은 것들로 별을 삼았다.
이와 같이 창조가 끝나자 세명의 신은 바닷가를 거닐었다. 바닷가에는 물푸레나무와 느릅나무 두토막이 떠내려와 있었다. 신들은 물푸레나무로 남자 아스크를, 느릅나무로 여자 엠블라를 만들었다. 그들이 인간의 조상이다.
* 신화학에서 말하는 신화의 여러 요소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 공허함에서 창조를 하였다는 것은 기독교의 창세기를 비롯하여 신화의 공통점이다. 그뿐 아니고, 시체에서 우주가 탄생하였다는 것도 수메르의 마루둑 찬가나, 인도의 브라마흐트가 우주의 용을 죽이는 이야기와 유사하다. 거인족과 싸움은 그리스 신화에서 너무나 익숙하게 보와왔다.
에덴 동산의 분위기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