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2년반전 수락산내에 있는 서울시립요양원을 방문하여
병들고 나이든 노인들에게 의료기기 전달과 위문을 하고 왔다는
글을 올렸을 때 알밤(이위지)께서 그런 선행은 천사같은 마음을
가지지 않고서는 힘든 일이라는 댓글을 읽은 기억이 생각난다.
나는 그 말을 가슴속 깊이 간직하면서 살아오고 있다.
지금까지 사이 사랑방에서 소식을 전하지 못하게 된 것은 봉사의
길을 가기 위해 2년반(5학기)동안 면학의 길을 걸은 관계이다.
친구야! 반갑다 ....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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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월 모대학 대학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 봉사의 길을 걷기로 하고,
63세의 나이로 책과 씨름을 하기 시작하였는데 매주 숙제, 시험, 발표 등으로
시달리다 보니 석사과정이 그렇게 만만치 않다는 것을 다녀 보니까 알겠드라.
수학중에도 사회복지관 등에 실습을 나가 현장 체험을 해 보니 내가 노인 복지의
혜택을 받아야 할 나이인데도 남을 돌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가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러던중 봉사와 신앙은 불가분의 관계가 있다는것을 느끼고 5학기가
시작되는 시점인 금년 2월에 6개월간의 교리 공부를 거쳐 8월에 베드로(집사람은 마리아)
라는 세례명과 11월에는 견진 세례를 받은 뒤 아름다운 재단에서 운영하고 있는
``아름다운 가게``에 봉사 근무도 신청 하였다. (근무를 하기 위해 안국동에 있는
재단 본부에 가서 3일간 봉사 교육을 받았다.)
그리고 성당내에서 행하고 있는 각종 봉사행사 중 가장 큰 보람으로 여기는 연령회
(죽은 사람들 염도 하고 장례행사를 총괄하는 업무)에 가입하여 활동토록 하였다.
그외 동사무소에 근무하는 사회복지사가 업무의 과중으로 소홀해지기 쉬운
생활 빈곤노인 중 기초생활 수급 대상자 발굴 보조 업무 와 지역사회 복지 업무를 도울
생각이며 자연보호 중앙연맹지도위원으로 위촉을 받아 매주 토요일 인근산(분당 맹산)
과 탄천에 쓰레기 줍기 등 자연보호 활동 등에 쫓아 다니다 보니 하루 하루가 물살같이
지나가 벌써 66세로 지공도사(지하철 공짜타고 돌아 다니는 사람)가 되어 버렸다.
하루의 모든 일과는 기도로서 시작하여 기도로서 끝이 날 수 있도록 살아가려고
노력하는데 요새는 이런 생각이 들곤한다. ``자녀들에게 물려 줄 수 있는 제일 큰 재산은
``봉사와 신앙``뿐이 라는 것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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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주먹을 불끈 쥐기 보다 두손을 모으고 기도하는자가 더 강합니다.
주먹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도 아픔을 겪지만, 기도는 모든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
(지가 언제부터 성당 다녔다고 시부렁 거리노? 라고 생각 한다면 할말없데이.)
끝.
첫댓글 [인간은 항시 변화한다, 고로 존재한다]--/알밤 어록 中에서
늙어수록 추해지는 사람도 주위에 많은데 형은 점점 아름다워 지는구나
'깨어 있어라, 집주인이 언제올지 그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라는 구절이 생각나며 다시 두천을 바라보게 됩니다.....
박수 보냅니다.! 하느님의 가호 함께 하시길.....
어메 두천이 사회 복지학과 석사를 했다고...나만 만나면 '니 내보다 공부 잘했나아?' . 이젠 '학실하게' 나보다 공부 잘한거 맞네. 참 삶을 사는 두천이 부럽네. 우리 대학에 왔다면 더 '억세게' 공부시켜 졸업 시킬 것인데.. 만시지탄이네.
동화가친의 계절에 등하불명을 체감하네-----. 사실은 등하불명이 아니고 두천의 평생 궤적이 시의적절, 최선의 궤도를 그려나가고 있음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면서 게으른 소제는 항상 자괴감을 느끼고 있소이다. 큰 박수 보내며---.
존경합니다. 말로가 아니라 실천하는 형을 존경합니다.
ㅎㅎㅎ, 신의 가호가 함께 하시길 ....역시 세월은 약이네요.
박중남군을 내가 기억하는 것은 중학교시절에 그때도 큰얼굴이었던 탓이인데, 아마도 늘 옆반이었던 것같애 (나는 1-5,2-7,3-4). 삼덕국민학교출신이라고까지 (혹시 틀렸나?) 기억하는 것은 유재영때문인 것 같고. 인생황혼기에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관심하고 영원한 전능자를 향해 기도까지하는 모습이 정말 멋이 있어서 뉴욕에서 축하한다. 성백문(옛이름, 성춘웅). 아름다운 봉사로 여생이 기쁨으로 보람으로 가득하길.
많은 답글에 부끄러버서 고개를 못들겠다.(대가리가 무거버서 고개를 못드는것도 포함된다) 뉴욕에 있는 쟌쟌(성백문)의 글 고맙다. 언제 미국갔노? 나이가 드니 이제 고국 생각, 옛날 생각 많이 나제? 중학교때 내가 1-5반이다. 니는 다른반이었는 모양이다. 삼덕국민학교는 맞다. 이국 생활에 건강 조심하시고,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인사 하기에는 빠르고 ``미리 크리스마스``라고 인사 한다, 춘웅아 고맙...............................다.
두천님께서는 우째 그리도 애럽은 노래를 구사장님께 부탁을 하셨능교....그 노래 찾느라 제가요 하루종일 인터넷을 휘젖고 다녔다는것 아입니꺼....구사장님께서 몇곡찾으셨는데 아마 CD로 구워서 드릴겁니다 기다려보이소~~~~~
역시 중남은 重男이구나. 값지고 보배같은 사나이-- 그 나이에 어떻게 공부할 생각을 다 하다니-- '기도는 모든 사람을 다 살릴 수 있다"는 말 마음에 와 닫는구려-- 화이팅!!
구사장님 오랫만에 들리셨네요 건강하시죠?오사장님도 잘 계시구요?....
주먹은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고 자신도 아픔을 겪지만, 기도는 모든사람을 살릴 수 있습니다.....좋은생각 아름다움 마음에 본받아 살겠습니다 건강하세요^*^
봉사와 신앙 아무나 할수 없는일이죠.참 신앙이란 희생을 목적으로하죠. 존경합니다. 선생님!
쟌쟌의 기억력은 가히 신동의 경지로서 년전에 독일에 있는 와운 김경욱 인형에 버금간다고 하면 섭섭할까---. 하여간 대단하네. 아울러 와운의 근황이 궁금해지는구만---. 두천 박중남 인형이 불을 지른 만남의 광장, 불꽃은 마침내 시공을 초월하여 활활 붙타오르고 있으니 아침부터 내리는 겨울비의 스산함을 다 녹이네---. 쟌쟌! 이번 겨울에는 뉴저지의 김탁원 인형과도 연결하여 세사람이 뉴욕에서 회포를 풀자구---.
오랫동안 적조했는데 개과천선(?)된 두천 반갑소.삼덕국민학교 자랑이 대단하더니, 나팔바지에 그 큰머리에 창이 짭은 모자를 칼로 직직그어서 얹고 다니던 개구쟁이 형이 어제 같은데 정말 세월이 많이 흘렀네요.제2의 인생이 빛이 납니다.감탄이오.계속 건강하시길...
석사학위 영득과 천주교 귀의에 존경과 축하를 드리오. 나도 대학원을 늦게 해보았다만 정말 수고했오. 두천. 베드로는 중3때 7반 이을기 선생님이 담임하시다 경북여고로 전근되시고 후임 배학보 선생님이 맡은셨지. 그때부터 두천은 기율부(?)도하고 내가 볼때 크면 큰넘이 되리라고 생각했지...학창시절도 멋있었지만 또 더큰발전과 변신은 했다니 주님의 은총이 충만할겁니다. 다시 한번 추카 추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