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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을 꾼 모양이다. 당직실에서 잠깐 눈을 붙이고 새우잠을 잤나 보다. 식은땀이 이마와 목덜미를 적시어 수술복 등짝까지 젖어있다. 꿈은 언제나 같은 곳으로 나를 데려간다.
가족이 없었던 열한 살 나에게는 공사장의 얼기설기 세워놓은 목재 기둥 사이에 있는 작은 구석배기 공간이 익숙한 집이었다. 공사장에는 눈여겨 찾아보면 조그만 방을 만들만한 구석이 꼭 있었다. 나는 그런 구석을 찾아 방을 만들고, 박스 종이를 깔고 덮고 잤다. 나에게는 찾아갈 집이 없었다.
다시 내가 보인다. 초라하고 좁은 어깨, 더벅머리, 버짐으로 얼룩진 얼굴이다. 첫눈이 내린 초겨울 어둑어둑한 새벽에 나는 아저씨들 뒤에서 다섯 장의 벽돌을 가슴에 안고 공사장 층계를 올라가고 있다. 나는 집을 짓는 아저씨들 옆에서 심부름하면서 살고 있었다. 내가 몰래 숨어서 잠자는 옆 빌딩의 프레임이 눈에 들어온다.
층계가 미끄럽다.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조심조심 걸음마를 떼고 있다. 발걸음이 쉬이 이어지지 않는다. 벽돌 다섯 장이 갑자기 천근처럼 무겁다. 세상이 피~잉 돈다.
“이젠 정신이 좀 드니?” 하얀 가운을 입은 꺽다리 아저씨가 허리를 굽히고, 가만가만 물었다. 아저씨의 숨길이 내 귀를 간지럽힌다. 창밖에서 병실 창문으로 햇살이 비켜 들어온다. 키다리 의사 선생님은 보이는 듯 마는듯하게 내 얼굴 가까이에서 미소 짓고 있다.
“여기가 어디예요?” “기억이 나지 않는 모양이구나” “네가 빌딩에서 떨어져 어른들이 응급실로 업어 왔단다” “어른들이요? 누구요?” “너랑 가까이 계신다고 하셨어. 그냥 가야 한다고 가버리셨는데, 음 부모님 연락처를 줄 수 있겠니? 네가 아픈 상태를 의논해야 한단다. 네가 잠든 사이에 아픈 곳을 고쳐 놓았어”
나는 키다리 아저씨 선생님 말씀을 들으면서, 다시 잠에 빠져들고 있었다. 오른쪽 어깨랑 오른쪽 다리를 마치 망치로 두드리는 것처럼, 너무 아파서 다시 잠에서 깨었다. 나는 큰 소리로 울었다. 그날까지 나는 큰 소리로 운 적이 없었다. 몸을 움직일 수 없다. 열한 살쯤이었을 때의 나는 깁스가 무엇인지 몰랐다. 단단한 석회 터널 속에 오른쪽 팔과 오른쪽 종아리가 갇혀 있었다. 아무리 꺼내려고 해도 꼼짝도 하지 않았다.
흰 가운을 입은 키다리 아저씨는 의사였다. 그때 나는 재활이라는 어려운 말을 쓰면서 내가 몇 달 동안 병원에 있어야 한다고 했던 키다리 아저씨가 왠지 무서워 보이지 않았다. 나는 자신들을 ‘노가다’라고 부르는 어른들을 따라다니면서 잔심부름하고, 남은 밥이랑 반찬을 얻어먹고 살았는데 그 어른들은 나에게 꽥꽥 소리를 지르고, 때로는 야단치곤 해서 무서웠다. 가끔, 일을 빨리빨리 못한다고 손찌검도 했다.
병원 5층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나는 병원이 그렇게 좋은 곳인지 처음 알았다. 매일 맛있는 따뜻한 밥, 국, 반찬을 가져다줘 끼니를 거르지 않았다. 겨울인데도 병원은 따뜻했다. 침대는 푹신푹신했다. 이불을 덮어 본지도, 요를 깔고 자본 적이 없던 나는 왕자들이 그렇게 살 것이라 상상하고, 왕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공사장 아저씨들이 잠시 나를 보러 오시곤 했다. 나한테 무섭게 굴던 왕초 아저씨도 어느 날 다녀가셨다. 왕초 아저씨는 깁스한 내 팔과 다리를 어루만지시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으셨다. 여느 때처럼, 큰 소리로 욕도 하지 않고 야단도 치지 않으셨다. 왕초 아저씨가 그러는 것을 처음 보았다.
절뚝거리지만 혼자 걸을 수 있게 될 때까지 석 달 정도 걸렸다. 봄이 오려면 석 달은 더 있어야 했던 어느 날 왕초 아저씨와 키다리 아저씨는 뭔가 수군수군 의논하고 계셨다. 내가 퇴원해도 된다는 것과 그 동안 밀린 병원비, 수술비를 원무과에 지급해야 한다는 이야기인 것 같았다. 왕초 아저씨는 나의 아버지도, 삼촌도 아니었다. 어찌어찌 병원에서 나가게 되더라도, 나는 다시 길거리로 돌아가야 했다. 어떻든 병원비를 내고, 퇴원하는 것이 첫 절차이었고 과제이었다.
며칠 후에, 키다리 아저씨는 조용히 내 침대로 오셨다. 모두 잠든 밤이었다. 우리 두 사람은
병실에서 나와 복도를 천천히 함께 걸었다. 병실들이 거의 끝난 곳부터 키다리 아저씨는 내 손을 꼭 잡고,층계 입구를 향해 날쌔게 뛰었다. 우리는 다섯 층계를 달려 내려와 건물 밖으로 튀어 나갔다. 병원 밖은 몹시 추웠다. 거기에서 나는 왕초 아저씨를 보았다. 키다리 아저씨는 왕초 아저씨에게 내 손을 건네주고 “잘 가거라”고 하셨다. 나는 그냥 왕초 아저씨에게 손을 잡힌 채, 아저씨를 따라서 뛰었다. 환자복 가슴 단추 사이로 살을 에는 얼음장 같은 바람이 비집고 들어왔다. 나는 다시 길거리의 외로운 긴 그림자의 아이가 돼 겨울을 가슴으로 안아야 했다.
얼마 후, 나는 키다리 아저씨와 왕초 아저씨의 도움으로 보육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키다리 아저씨는 내가 보육원에 들어간 이후 두어 번 찾아왔다. 그 이후 우리는 다시 만나지 못했다. 나는 키다리 의사 아저씨의 이름도 왕초 아저씨의 이름도 몰랐고 지금도 모른다. 한동안 다시 허기지고 외롭고 아팠던 나는 왕자가 되는 것을 포기했다. 가난한 고아 환자를 병원에서 탈출시켰던 키다리 아저씨처럼 나는 의사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