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치만 니는 20대 중반에 총 3권으로 된 <영에 속한 사람>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이 책에 대한 교계의 평가는 다소 엇갈립니다. 긍정적인 쪽은 이 책을 “전 세계적으로 베스트셀러를 넘어 세기의 고전(古典)”으로 평가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영적 생명에 큰 유익을 얻어” “온전한 영적 노정으로 들어설 수 있었다”라고 말합니다. 일부는 다소 비판적인데, 그 이유는 이 책이 사람을 영과 혼과 몸으로 구분하는 입장에서 쓰였다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은 주로 영과 혼을 같은 것으로 보는 진영에서 관찰됩니다. 참고로 아래 고린도전서 본문은 워치만 니처럼 혼과 영을 각각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혼적인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일들이 그 사람에게는 어리석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
영적인 사람은 모든 것을 판단하지만
그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습니다(고전 2:14-15).
사람을 구분하는 여러 표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위 본문을 쓴 사도 바울처럼 사람을 ‘혼적인 사람’ 혹은 ‘영적인 사람’으로 대비하여 구분하는 경우는 흔치 않습니다. 그나마 ‘영적인 사람’이라는 말은 ‘영적인 사람의 일곱 가지 습관’을 말한 A.W. 토저 등이 사용했지만, ‘혼적인 사람’은 한글 성경 번역본들에서도 발견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러나 자신을 되돌아볼 때, 이 두 개념이 제 안에서 명확하게 구분된 그 무렵부터 저의 신앙생활에 획기적인 전환이 있었음을 간증할 수 있습니다. 아래 내용은 제가 어떤 근거로 이 두 개념을 구분하게 되었고, 그 긍정적인 효과는 무엇이었는지를 간략하게 정리한 것입니다.
“혼적인 사람”(a soulish man): 위 본문에서 쓰인 ‘혼적인’의 원문은 프쉬키코스(5591)인데.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이 단어를 ‘the natural man(person)’으로 번역했습니다. 참고로 개역 성경 계열은 이것을 ‘육에 속한 사람’으로 번역했고, 그 외에는 ‘자연에 속한 사람’(표준새번역), ‘자연인’(한글 킹제임스성경), ‘본성에 속한 사람’(흠정역), ‘현세적인 인간’(가톨릭 성경)이라고 각각 번역했습니다.
관련하여 풀핏 주석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자연인은 전적으로 혼적이다. 그는 오직 몸의 생명으로만 사는 육체에 속한 사람보다는 월등할지 모르나 영적인 사람보다는 훨씬 못하다”(The natural man totally soulish. He may be superior to the fleshly … who lives only the life of the body, but is far below the spiritual man). 그는 이어서 “성 바울은 사람을 몸과 혼과 영(살전 5:23)의 세 부분으로 인식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엘리코트도 이 ‘natural’을 “직역하면 우리가 “생각”이라고 부르는 우리의 본성의 일부”(that is, literally, that part of our natural which we call “mind”)라고 했습니다.
참고로 <회복역 성경> 해당 각주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혼적인 사람은 변화되지 않은 타고난 사람이다. 즉 (생각과 감정과 의지로 된) 혼이 그의 온 존재를 다스리는 사람이고, 혼으로 말미암아 살고, 영을 무시하고, 영을 사용하지 않고, 심지어 영이 없이 행동한다(유 19). 그러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의 일들을 받지 않으며, 그러한 일들을 알 수도 없고, 오히려 그것들을 거절한다. 종교적인 유대인들 철학적인 헬라인들 ...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영의 일들이 어리석은 것이었다”.
영적인 사람(the spiritual aman): 역시 회복역 성경 관련 각주는 “영적인 사람은 자기의 혼을 부인하는 사람이고, 혼에 의해 살지 않고 자신의 영, 즉 하나님의 영으로 점유되어 활력을 얻은 거듭난 영이 자신의 온 존재를 다스리도록 허락하는 사람이다. 더 나아가 그는 그러한 영을 따라 움직이며 행동하면서(롬 8:4) 영의 의해 산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각주 1).
요약하면, 혼적인 사람은 자기 생각, 감정, 의지대로 사는 사람이고, 영적인 사람은 거듭난 영에 의해 자신의 생각, 감정, 의지가 제한받거나 인도를 받는 사람입니다. 이런 이해는 다음과 같은 유익을 주었습니다.
첫째, 주님은 “자기를 부인하고 … 나를 따라오십시오.”라고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마 16:24). 이것은 우리 영 안에 생명으로 들어와 계시는 주님의 음성에 순종하여 우리의 혼의 생각, 느낌, 의도를 내려놓는 것입니다. 솔직히 과거에 영과 혼을 같은 것으로 생각했을 때는 위 말씀을 적용할 길이 없었습니다.
둘째, 깊은 속의 (연합된) 영의 음성을 거절하고, 자신의 원래의 계획대로 밀고 나갔을 때는 교통의 단절, 즉 깊은 어둠 혹은 영적인 죽음의 상태를 체험하곤 했습니다(롬 8:6, 요일 1:6). 그때마다 회개하고 용서를 구하면 다시 영의 흐름과 빛이 내면에 임했습니다.
셋째, 어떤 환경에 처하거나 누가 무엇을 요청하면 재빨리 반응하지 않고, 주님께 가져가서 아뢰고 그분의 인도와 안배를 주목하고 따르고자 했을 때,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의 믿음으로 사는” 실재를 어느 정도는 맛보고 있습니다(빌 4:6, 갈 2:20).
오 주 예수님, 우리는 너무나 천연적인 존재입니다.
긍휼히 여겨 주옵소서.
매 순간 우리의 타고난 생각과 감정과 의지는 부인되게 하시고
당신의 생각과 감정과 의지를 따라서 살고 동역하는 삶을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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