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7.10 水/ 연중 제 14주간 수요일.
-평일 미사.
① 호세 10,1-3.7-8.12 ㉥ 마태 10,1-7
* 오늘의 성인('24.07.10)
다니엘 순교자 남, 루피나 동정/순교 여, 세쿤다 동정/순교 여, 실바노 순교자 남, 아멜베르가 수절 여, 파스카시오 주교 남.
* 정보보호의 날.
ㅡㅡTㅡ묵 상ㅡTㅡㅡ
♧ 연중 제 14주간 수요일- 성소와 소명, 영광일까? 부담일까? ♧
ㅁ
성소(聖召)와 소명(召命)
오늘 복음에서 제자들은 제자에서 사도가 됩니다.
제자가 자기가 스승을 선택한 측면이 있다면
사도는 주님께서 제자들을 사도로 선택하신 겁니다.
그러므로 제가 결론처럼 말씀드리면 우리도 제자에서 사도가 되어야 하고,
성소를 받아 소명을 살아가는 사도가 돼야 한다는 것이 오늘 저의 주제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얘기합니까?
왜 이것을 강조하여 얘기합니까?
제가 이러지 않았기 때문이고,
여전히 이러지 않기 때문입니다.
소명을 잘 살려면 성소부터 잘 받아야 합니다.
부르심을 잘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이고,
소명을 잘살지 못한다면 이 첫걸음을 잘못 떼기 때문입니다.
저의 경우 머리에서 성소를 받아들이고,
중요한 때 성소로 받아들인 것은 오래되었지만
마음으로부터 그리고 늘 성소로 받아들이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고 아직도 완성을 향해 현재진행 중입니다.
저의 경우 처음엔 내가 주님을 스승으로 선택했다가
스승을 포기한 뒤에 주님을 주님으로 모시게 되었고,
내가 주님을 선택했다가 오랜 시간이 지난 다음에야
내가 아니라 주님께서 나를 선택하셨음을 깨닫고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주님이 우리를 부르실 때 그 부르심에 응답해야
그때 주님은 진정 나의 주님이시고 나는 그분의 진정한 종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진정 나의 주님이라면,
다시 말해서 내가 주님의 종이라면
성소 의식뿐 아니라 소명 의식도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어떤 주인이 종을 옆에 끼고 살려고 부릅니까? 일을 시키려고 부르지!
옆에 끼고 사는 것은 제자이거나 애인이지 종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이 우리를 당신께 가까이 부르신 것은
왕비처럼 애지중지하기 위해 부르신 것이 아니라
일을 시키기 위해 곧 소명을 주기 위해 부르신 것이고,
가까이 두고 가르치신 것도 사도로 키우기 위해서입니다.
어쨌거나 이렇게 주님께 가르침도 받고
소명까지 받은 종을 일컬어 사도라고 하는데
받은 소명이 뭐냐 하면 길 잃은 주님의 양들을 한데 모으는 것이고,
여기저기 흩어진 주님의 양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 여기저기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제자와 달리 사도란 이런 존재입니다.
주님께 갔다가 이웃에게 가는 존재이고,
주님께 받아서 이웃에게 주는 존재이며,
주님께 받은 가르침을 이웃에게 나눠주는 존재이고,
자기가 받은 가르침을 이웃도 주님께 받으라고 이웃을 모으는 존재입니다.
이제 관건은 이것입니다.
제자입니까? 사도입니까?
내게 소명은 무엇입니까?
영광입니까? 부담입니까?
김찬선 레오나르도 신부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한국관구//
서울오류동공동체/서울신사동수도원분원//
평의원/여기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국가영적보조/재속프란치스코회 위원장"
(ofs/정릉 아타나시오 韓 옮김)
ㅡㅡTㅡ복 음ㅡTㅡㅡ
◈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0,1-7
그때에 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를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더러운 영들에 대한 권한을 주시어,
그것들을 쫓아내고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 주게 하셨다.
2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다.
베드로라고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3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토마스와 세리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4 열혈당원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5 예수님께서 이 열두 사람을 보내시며 이렇게 분부하셨다.
“다른 민족들에게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들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마라.
6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가라.
7 가서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하고 선포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영적독서 후에 잠시 묵상합니다>
<묵상 후 사도신경을 바치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