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은 리버스 엔지니어링(reverse engineering, 역공학)과 디지털 컨버전스(digital convergence) 전략으로 전자분야의 핵심경쟁력을 탄탄히 다졌다. 애플(Apple)을 따라잡기 위해 당사를 철저히 벤치마킹한 삼성은 스마트폰 1인자로 등극하는 동시에 애플과의 여러 가지 특허소송에 말려들게 됐다.
지난 11월 23일 삼성의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당일 1.4% 오른 143만 7,000원(약 1,325달러)을 기록해 삼성의 주가는 올 들어 누적 36% 오르고 시가총액이 212조 원(약 1,950억 달러)에 달했다.
반면에 삼성의 주요 라이벌인 애플은 주가가 9월 21일 705달러 고점에서 현재 571달러로 2개월 사이 약 20% 내렸다.
올해 스마트폰분야에서 삼성이 눈부신 실적을 거두면서 이처럼 뚜렷한 대조를 보이게 됐다. 미국 IT분야 리서치 전문업체 가트너(Gartner)의 통계에 따르면 올 7~9월 세계 스마트폰 시장규모는 1억 6,920만 대에 달했고 그중 삼성전자가 판매한 스마트폰은 5,500만 대, 애플의 아이폰(iPhone) 판매량은 2,360만 대를 기록했다. 시장점유율에서 삼성은 32.5%로 세계 1위를 차지했고 애플은 14%에 그쳤다.
애플의 추종자였고 핵심부품 공급업체였던 삼성이 불과 수년 만에 스마트폰분야의 후발주자에서 세계 1인자로 우뚝 설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일까?
◆ 리버스 엔지니어링
전자분야에서 삼성은 처음 사업을 시작할 때마다 주요 라이벌보다 크게 뒤져있었다. 가전사업에서는 파나소닉(Panasonic)보다 51년 뒤졌으며 반도체사업에서는 인텔(Intell)보다 10년, 휴대전화 위주의 통신사업에서는 노키아(Nokia)보다 122년이나 뒤져있었다.
하지만 여러 리서치회사 데이터에 따르면 삼성의 메모리와 모니터분야 시장점유율이 세계 1위를 차지하고, TV부문도 5년 연속 세계 판매량 1위를 고수했으며, 휴대전화부문은 더더욱 올해 노키아를 제치고 세계 1위로 올라서는 동시에 급기야 애플까지 추월해 세계 1위 스마트폰 제조기업으로 부상했다.
삼성이 후발주자에서 업계 1인자로 부상할 수 있었던 것은 리버스 엔지니어링 전략 덕분이다. 일반적으로 첨단기술분야에 진입하면 모두 가장 기본적인 연구개발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시간이 너무 많이 들고 시행착오 대가가 너무 높다는 점을 감안해 삼성은 처음부터 동종업체들과 완전히 다른 전략을 택했다. 즉 로열티를 주고 특허기술을 도입해 모방으로 타인의 기술을 습득한 다음 이를 다시 자신에게 적합한 연구방향으로 개조했다.
초기에는 쓴 맛을 봐야 했다. DRAM 메모리 투자 초기 삼성은 시장 불경기로 3억 달러에 달하는 손실을 떠안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텔 등 미국기업들은 해당 분야에서 발을 빼고 일본기업들은 투자규모와 생산능력을 줄였다.
하지만 삼성은 퇴출은커녕 오히려 생산능력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더 큰 용량의 DRAM을 개발 하는 등 역주기적 투자전략을 감행했다. 그러다 1987년 반도체산업에 전환점이 나타났다. 미국정부가 일본 반도체기업을 상대로 반덤핑 제소를 걸어 미국정부와 일본기업이 자동수출제한협의를 체결했고 일본기업은 대미 수출을 감축했다. 이로써 DRAM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삼성은 수익을 올리기 시작했다.
LCD 패널 투자에서도 삼성은 남들과는 다른 카드를 내밀었다. 1996년 LCD 패널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졌으나 삼성은 그해 첫 번째 LCD패널 3세대 생산라인을 건설해 일본기업의 생산능력을 따라잡았다. 1997년 아시아 금융위기가 닥쳤을 때에도 삼성은 다시 한 번 역주기적인 투자전략을 취해 LCD 패널 생산라인을 확충하고 기술적으로 일본기업들을 완전히 압도했다.
아시아 금융위기 이후 삼성은 마치 미래를 내다본 듯 △컴퓨터, 휴대전화, CD플레이어 등 제품이 공유하는 핵심기술 △반도체 부품, 대형 LCD 모니터, 디스플레이 드라이브와 칩셋 △이동통신기술 등을 정조준했다.
1999년 삼성은 디지털 컨버전스 혁명을 주도하자는 삼성전자 ‘디지털 컨버전스’ 전략을 발표했다. 이 전략을 시행할 수 있었던 것은 삼성의 사업 다각화 노력 덕분이며 반도체에서 PC 모니터, TFT-LCD 모니터에서 TV 브라운관에 이르기까지 삼성은 많은 영역에서 업계 리더로 자리매김했다.
사실 삼성의 라이벌 애플의 제품군 iPod에서 iPhone에 이르기까지 그 핵심부품인 CPU, LCD 디스플레이 등 상당수는 모두 삼성이 공급한 것이다. 삼성전자가 공급하는 CPU는 iPhone 가격구성의 8.4%를 차지한다.
◆ 애플 ‘벤치마킹’
5년 전 애플이 iPhone을 출시할 당시만 해도 오늘날과 같은 성공을 거두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으며 스마트폰의 미래 발전추세를 정확히 예견한 사람도 많지 않았다. 당시 휴대전화업계 거두 노키아마저 iPhone을 홀대했었다.
처음 삼성은 애플의 납품업체로 iPad, iPhone의 LED 디스플레이와 프로세서 칩을 생산/공급함으로써 애플 플래시 메모리와 부품의 최대 공급기업이 되었다.
애플 경쟁사 중싱(中興, ZTE)에서 화웨이(華爲, Huawei), 모토롤라(Motorola), 삼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처음에는 ‘기해(機海)전술’로 iPhone과 경쟁했다.
그러나 삼성은 2010년 이후부터 전략을 바꿨다. 삼성 중국법인의 한 내부관계자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연구대상이 노키아였던 때는 폴더형, 바형, 슬라이드형에 온통 힘을 집중했는데 사용자 체험을 애플 iPhone과 비교한 결과 천지차이로 나왔다면서 여기서 위기감과 절박함을 느낀 삼성 디자이너와 엔지니어는 iPhone 외형과 감각에 가장 부합하는 이념을 채택했다고 밝혔다.
2010년 삼성은 구글(Google) 안드로이드(Android) 시스템과 삼성의 TouchWiz UI를 탑재한 첫 갤럭시S(Galaxy S)를 출시했다. 예전에 여러 모델을 동시에 출시하던 것과 달리 한 가지만 플래그십 제품으로 내세운 것은 애플의 전략과 흡사했다.
삼성은 1년 후 Galaxy S II를 출시하고 2012년에 다시 Galaxy S III를 내놓았다. 5월 말 출시된 Galaxy S III는 불과 100일 만에 2,000만 대가 팔리며 ‘사상 최단기간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다. 하루 평균 20만 대가 팔린 셈이다.
올 2분기 삼성 영업이익은 기록적인 58억 6,000만 달러에 달했는데, 그중 휴대전화사업 순이익이 무려 전체의 62.3%인 36억 5,000만 달러를 차지했다. 아울러 애플과 함께 세계 스마트폰시장 이익의 90%를 장악했다.
한 산에 주인 호랑이가 두 마리일 수 없듯 애플이 삼성의 급부상에 반격하고 나섰다. 2011년 4월 애플은 삼성전자가 애플 스마트폰의 여러 가지 특허를 침해했다고 제소했다. 1년여의 긴 법정 공방 끝에 삼성은 애플에 무려 10억 4,900만 달러 벌금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았다.
한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애플과의 특허전쟁에서 패한 삼성그룹은 삼성전자, 삼성생명, 삼성물산 등 계열사에 전 직원 출근시간을 종전보다 30분 빠른 6시 30분으로 앞당길 것을 지시하며 직원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삼성이 위기에 있다는 위기의식을 높이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삼성의 특허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현재 10개 국가에서 애플과의 특허소송이 벌어지고 있다.
출처: 2012-12-01, 남방주말(南方周末)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