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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오는 거친 파도를 막아주는 화석 바위섬으로 동해안과 맞닿은 지리적 특성이 있다. 바다에서 보면 시루 같은 모양이라 시루섬이라 하기도 하고 곰보 바위로 덮여있어 곰보 섬이라고도 한다. 바람을 품은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면서 내는 소리가 거문고 연주처럼 들린다고 하여 슬도라 이름 붙여졌고 내가 내는 파도 소리를 슬도 명파라고 한다.
무인섬으로 예로부터 어업이 번성하여 어부들의 어로 활동이 활발했다. 1950년대, 무인 등대가 세워지면서 어두운 밤 바닷길을 오가는 배의 안전을 담당했다. 방파제를 따라 양쪽 끝에는 두 개의 등대가 있고 섬 일대에는 해당화가 덮여있다. 최근에는 이국적인 정취에다, 아름다운 경관의 섬을 둘러싼 해안 산책로가 조성되면서 많은 관광객이 모여들었다. 삶과 예술이 함께 하는 섬으로 알려지면서 그 사람들의 숫자가 해마다 늘고 있다.
예전엔 배를 타야만 드나들 수 있는 섬이었다. 그러던 것이 슬도교라는 다리가 놓이면서 사람들이 쉽게 건너다니게 되었다. 다양한 물고기가 서식해서 낚시꾼들이 많이 찾는 곳이며, 또한 해루질도 가능해서 입소문을 탔다. 그들이 웃는 소리에 나도 즐겁고 흐뭇했다.
인적이 드문 깊은 밤, 안타까움으로 조마조마한 날도 있었다. 파리한 얼굴의 중년 남성이 한 손에 검은 봉지를 들고 나를 찾아와 구석진 곳에 자리하더니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어찌 된 사연일까. 평생직장이라고만 생각했던 인근 대기업의 구조조정 한파를 만난 것일까. 아니면 치기 서린 투자 바람에 한 대 맞은 것일까. 그날 밤 나는 바람으로 말하였다. 다시 힘을 내어보자고.
올봄엔 나를 마주한 성끝마을 등성이에 낯선 식물들이 심어졌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연초록에서 붉은색, 갈색으로 변신하며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댑사리였다. 외래종 억새인 팜파스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는데 주말이면 놀랄 정도로 사람이 모였다. 그들은 여러 각도로 카메라 렌즈를 맞추며 가끔은 나를 사진 속에 담기도 했다.
언젠가부터 내 안에 이물질이 쌓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속이 매스껍고 두통이 일었다. 심장박동이 느려지고 숨이 가빴다. 바다 생물들이 기형으로 태어나기도 하고 수명을 다하지 못한 채 죽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한 해양 연구가의 발표가 있었다. 이것은 인간의 욕심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것이었다. 부표로 떠 있던 스티로폼과 오수로 내려온 작은 알갱이의 세정제는 어류의 입속에 플랑크톤처럼 들어가고 그것을 먹은 어패류들이 소화불량으로 죽음을 맞는다. 담배꽁초도 물고기의 생명을 위협하고, 함부로 내던진 플라스틱 음료수병 또한 무분별의 극치다.
그들을 향한 나의 외사랑은 쓸쓸하고 외롭다. 매일 저녁 무렵이면 자신이 흩어놓은 쓰레기를 수거해 가라는 마이크 소리가 방파제를 울린다. 일몰이 장관이라며 나를 찾은 이들이 황홀경에 취했을 때 분위기 깨는 금속성 소리는 쓸쓸함을 한층 더하게 한다.
뮤지컬 ‘슬도의 꿈’은 나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뮤지컬이다. 지역에 대한 애정을 돋우기 위한 지자체의 배려인 듯하다. 버블라디아의 버블이는 바위에 사는 노래하는 소녀이다. 그녀의 노래 속에는 이 지역인 슬도와 용왕의 나라 평화를 지켜내는 묘한 마력을 지녔다. 버블라디아 용궁에서는 작은 몸의 멸치 대왕이 이 천년 만에 용의 힘을 갖는 특별한 해로 성대한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랫소리가 끊겼다. 깊은 곳에 갇혀있던 흑룡이 되살아나 버블이를 감금하고 평화를 위협했다. 인간의 욕심과 환경오염이 그의 힘을 키워 위기를 맞게 한 것이다. 과연 버블이는 슬도를 지켜낼 수 있을까.
‘슬도아트’라는 복합문화 예술 공간이 만들어졌다. 사람들과 친숙해져 좀 더 아름다운 소통을 하라는 이유이리라. 지역 예술인들의 버스킹은 방문객들을 감성에 젖게 하는 시간을 선물하고 시각 예술가들의 여러 전시는 상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경험을 하게 한다. 야외 루프탑에서는 계절마다의 특색 있는 산과 바다 정취를 볼 수 있어 자연과 문화예술을 한눈에 담아보는 호사를 누리게 한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이 나의 소중함을 알아가는 것 같다.
꿈이 있다면 나를 찾는 이들에게 희망의 노래를 들려주는 것이다. 힘이 들 때 찾아드는 쉼의 장소로, 사람들의 삶이 섬에 핀 해당화처럼 아름답게 피기를. 오늘도 나는 사랑하는 그들을 위해 현을 뜯는다. 덩기덕 둥둥, 덩기덕 덩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