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부터 본격적인 휴가철이라 인천공항이 북새통이라고 한다.
오늘 출근할 때 보니 자동차가 많지 않아 한산한 도로에서 휴가철임을 실감했고 콩나물 시루 같던 지하철 또한 헐렁하게 여유가 있었다.
예전 이맘 때쯤이면 각종 매체에서 납량(納凉) 특집을 선보였다.
극장에는 공포물, 추리물, 스릴러 영화들이 상영되고 TV에서도 전설의 고향 등이 방영되었다. 서점가 또한 추리소설이 잘 팔리는 시기가 휴가철이었다.
요즘엔 더위를 피해 서늘함을 맛본다는 뜻의 납량이라는 단어도 잘 쓰지 않거니와 문명이 발달해서 에어컨과 휴대폰이 더위를 잊게 하는 최고의 납량물이다.
며칠 전 지인에게서 문자가 왔다. 곧 휴가를 떠나는데 읽을 만한 책 하나 추천해 달란다.
떨어지는 출산율처럼 책을 읽는 사람도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인데 기특하단 생각이 들었다.
하긴 활자보다 영상이 먼저인 시대에 유튜브만 들어가도 볼거리, 흥미거리가 지천이지 않던가.
*파과/ 구병모 장편소설/ 위즈덤하우스/ 2018
예전에 감명 깊게 읽은 소설 파과를 지인에게 추천하고 나서 어제 모처럼 나도 소설을 다시 읽었다.
줄거리야 알고 있었지만 지나쳤던 문장을 다시 접하는 맛이 대단하다. 다소 호흡이 긴 문장임에도 다시 읽으니 쏙쏙 들어온다.
제목부터 특이한 이 소설은 <조각>이라는 이름을 가진 60대 중반 여성이 주인공이다.
직업은 방역업체 직원인데 쥐나 바퀴벌레를 소탕하는 일이 아니다. 명함에만 방역업자고 실제는 살인 청부를 실행하는 킬러다.
여자의 몸으로 남자도 하기 힘든 일을 조각은 40년 넘게 해왔다.
이제 나이가 들어 완벽한 일처리가 벅차서 은퇴를 생각하고 있는데 마지막 임무 수행을 앞두고 만감이 교차한다.
소설은 현재와 과거를 오가며 조각의 일생이 마치 무협지처럼 몰입감 있게 펼쳐진다.
조각은 자식이 일곱이나 되는 부모 밑에서 천덕꾸러기로 자랐다.
아홉 식구가 한 방에 누워 칼잠을 자야하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 딸은 운 좋게 먼 친척집으로 입양이 된다.
말이 입양이지 양식 축내는 입 하나 덜자는 심산으로 친척집 식모로 간 셈이다.
다행히 단출하게 남매만을 둔 친척집 양부모는 조각에게 친절했다.
그곳에서 청소, 빨래 등 잔심부름을 하면서 가족의 행복이 무엇인지도 알았다. 없던 행복을 누림에 대한 운명의 질투였을까.
조각은 결혼을 앞둔 친척집 언니의 패물을 호기심에 착용했다가 본의 아니게 도둑으로 몰리게 되고 결국 그 집을 나오게 된다.
돼지우리 같은 옛집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소녀는 직접 살 길을 찾아 나섰다.
어느 날 미군에게 끌려가 성폭행을 당할 위기에서 상대 급소를 찔러 죽이는 일이 생긴다.
이를 계기로 조각은 방역업자의 눈에 띄어 킬러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세상에는 남의 힘을 빌려 누군가를 죽여야만 하는 사람이 참으로 많았다.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여 자살 사건이나 사고사로 종결하게 만드는 것이 조각이 맡은 임무다.
인정사정 보지 말 것과 자신을 노출시키지 않을 것 등이 그동안 조각이 지켜온 신조다.
하루 일과에서도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기 마련인데 일생을 킬러로 살아오면서 왜 걸리는 일이 없겠는가.
조각은 자신을 임신 시킨 남자의 아이를 뱃속에 담고, 그 사람을 처리해야 했고 이후 출산한 아이를 해외로 입양시킨 아픔이 있다.
오래전 조각이 방역을 했던 현장에서 그녀를 어렴풋이 기억한 소년과의 얽히고 설킨 인연은 과연 어떻게 마무리가 될 것인가.
소설은 <투우>라는 이 청년과 60대 조각과의 밀당이 마지막까지 아슬아슬하게 펼쳐지면서 독자의 눈을 사로 잡는다.
그럼 소설 제목 파과는 무슨 뜻일까. 작가의 후기로 짐작해 보면 破果이거나 破瓜다.
破果는 사다 놓은 과일을 깜박 잊었다가 나중 냉장고에서 뭉그러진 것을 발견한 것일 테고
破瓜는 여자 나이 16세를 말하거나 여자가 첫 경험을 할 때 처녀막이 터지는 것을 말한다고 한다.
한편, 남자 나이 64세를 파과라고도 한다니 이 소설 하나로 여러 가지 배운다.
특이한 제목만큼이나 파란만장한 한 여자의 일생을 독특한 형식과 세련된 문장으로 잘 묘사한 좋은 소설이다.
작가 구병모는 남자 이름 같지만 여성이다. 일독을 권한다.
첫댓글 예전에는 이맘때 TV에서 귀신영화 많이 방영했었죠
어제도 길거리가 한산하더군요
파과 읽을 만한 좋은 소설인데 이젠 눈도 침침해서
책읽기가 힘들어졌습니다
저는 어릴 때 귀신 영화 보고 난 후에는 한 며칠은 밤에 혼자 변소에도 못 가고는 했지요.
그산님은 닉으로 보나 댓글 내용으로 보나 궁금증이 참 많이 생기는 분입니다. 항상 건강한 날들 되시길요. 힘 내시구요.ㅎ
오십초반에 다촛점 안경 거금들여 맞추었다가 적응이 안돼 끼다말다 하다보니 없어졌더이다 지면의 활자를 한줄 한줄 읽으며 행간을 음미하는 재미를 나름 압니다만, 돋보기 끼고 보는활자는 또 쉬 피곤해지더군요 이런저런 이유로 독서를 못했네요 십년은 넘었지 싶은데...
시력도 시력이지만 마음이 건조해지니 책 읽어야겠다는 의지가 약해지는것 아닐까 싶습니다
책 가까이 하며 틈나는데로 읽고 생각하는 삶
고급진 삶이지요
유현덕님 부럽고 존경스럽습니다~^
ㅎ 저도 안경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장식품 눈을 가지고 있습니다.
다행히 돋보기 도움으로 책을 읽을 수 있는 힘은 남아 있네요. 예전처럼 길게 읽지를 못해서 자주 쉬지요.
그럼에도 소설 파과는 빼어난 문장력 때문에 단숨에 읽게 만들었습니다. 읽고 싶은 책은 많으나 읽을 시간은 없고 눈도 자주 침침해지지만 책을 읽을 때가 행복하네요.
이곳 카페에 함박산님이 제 글벗이라서 참 좋습니다.ㅎ
7.27~8.4 휴가 입니다
이번 휴가엔 낡은 몸뚱아리
재정비 합니다
오늘은 종아리 부정맥 수술하고
수요일은 치과
금요일은 지난번 허리 시술한거 체크하러 가고~~~
아우~ 골드훅님한테는 아주 유용한 휴가일 듯합니다. 날마다 휴가인 사람은 이런 휴가의 알뜰함과 소중함을 잘 모르지요.
몸과 마음을 재정비 재충전 하셔서 모쪼록 멋진 카페 활동하시기 바랍니다. 구수한 골드훅님의 알찬 일상을 응원합니다.ㅎ
가끔 내용이 만만치 않은 책을 보고 있는데..
무릎을 탁~치며..
"소설 책 처럼 말랑 말랑한 걸 왜 안 읽었을까"?하는 반성을 하게 됩니다.
지나가다 읽은 글이 소설 반은 읽을 것 같습니다.
가끔 회사에도..
집에도 방역업체 사람이 오는데..
잘 살펴 봐야겠어요.^^
저는 갈수록 두껍고 내용이 딱딱한 책은 잘 안 읽게 되고 말랑말랑한 산문이나 가볍게 읽을 시집을 주로 읽게 됩니다.
김포인 선배님 글에서 한국 중년 남성의 교양을 엿볼 수 있어 다행입니다. 언감생심이겠지만 제가 닮고 싶은,,
그리고 이 소설은 절반만 읽어도 아주 재밌다는 정보를 드립니다. ㅎ
참
공교롭게도 아침에 파과를 보고
몇 줄 적어 놓은 게 있는데 ㅎㅎ
멍든 사과
이리저리 굴러다니다가
멍든 사과
멍이 든 부분만 오려내고
먹으려니
다른 한 곳이 또 멍들어 있다
먹잣것도 없는 사과를
깎으면서
멍들 게 버려 둔 세월을
병원 앞에서 보았다
ㅎㅎ
많이 수정을 해야하는데
멍든 풋사과가 저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조각이란 여주인공이
파과라 해야 맞을 것같아요
배고플 때
그저 얻어 먹는 우유와 빵처럼
달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ㆍ
ㅎ 신기하군요. 저도 자주 메모를 하는 편인데 대부분 연필로 하거든요. 진화가 더딘 아날로그라서 그런지 휴대폰에 메모장 기능이 있음에도 웬만해선 사용하지 않게 됩니다.
연필로 써 내려간 윤슬님 필체에 묘한 끌림이 있습니다. 때론 얼굴보다 그 사람 손이 훨씬 정직하지요.
하여, 말보다 글이 더 호소력이 있는 것처럼 짧은 문장에서도 윤슬님의 세상 보는 눈을 느낄 수 있습니다.ㅎ
우선 글씨가 커서 좋습니다
여름이면 무서운 영화가 극장푸로. 하나씩은 차지 했었는데
난 절대로는 무서운 영화나. 책은 안보는편
왜ㅡㅡ
무서운. 내용이 꿈에서 똑. 같이 꿈으로 나오는걸 보고는 절대적 사절.
아직도 티뷰나 영화는 애정 영화가 존건
이 나이도 여자라서 ㅡㅎ
예전. 젊어서는 남편 후가만 기다리고 어디로 여행을 잡을까 그 여름에도 중국을 다녀온 기억이 추억으로 남아 있답니다
그때가 참 좋았지ㅡㅡ라고 추억을 되 씻는 그 나이가 되었답니다.
마야 선배님 오랜만에 뵙네요. 선배님 생각에 공감합니다. 선택할 장르가 많고 많은데 굳이 취향에 맞지 않는 공포물을 볼 필요는 없겠지요.
그래서 무서움 타는 사람을 위해 이런 글로 간접체험을 하게 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일종의 책 읽어주는 남자처럼요.ㅎ
모쪼록 남은 여름 건강하게 나시기 바랍니다.
츄리소설 좋아하는데
'파과 ' 제목부터
읽고 싶어집니다
감사합니다 ^^
아~ 꾸띠님이 추리소설을 좋아하시는군요. 저도 예전에는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을 즐겨 읽었더랬지요.
사건을 해결해가는 탐정과 한몸이 되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했던 읽던 기억이 있습니다. 파과도 단숨에 읽게 만드는 소설이데요.ㅎ
좋은 책을 뛰어난 필력으로 요약해주셔서 단숨에 읽었습니다.
유현덕님은 평론가를 하셨어도 아주 잘하셨을 분입니다.
깔끔 명쾌한 논리적 문장에다가 따뜻한 감성까지 담긴 멋진 평론을 잘하셨을 텐데요.
저는 책이든 영상이든 공포물에 취약한 정서를 가졌어요.
나이 드니 더 취약해져서 이젠 공포물 뿐아니라 스릴과 서스펜스 등등도 감당이 안 됩니다.
정조 독살설을 다룬 이인화 작가의 영원한 제국은 절대 공포물은 아닌데
그 소설을 심야의 안방에서 혼자 읽는데 어찌나 무섭던지요.
제가 이렇게 모지리입니다ㅎㅎ
유현덕님 언제나처럼 좋은 글 감사합니다!
永遠한 帝國
그거 공포 스릴러 맞습니다~
정조 역 안성기 아니었으면 진짜 더 horror ...
저도 스릴러물이나 공포물 영상을 볼 때면 비명도 지르고 힘들어하는 겁쟁이랍니다.^^ 특히 잔인한 장면이 나오면 진저리를 치면서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게 되데요.
반면 책은 웬만한 무서움도 무난히 읽어내는 편입니다. 활자에 친숙한 편이라 훨씬 몰입감이 생기더군요.
달항아리님께서 언급한 이인화 선생의 영원한 제국도 영화로 봤을 때보다 제겐 소설이 훨씬 더 쫄깃하고 몰입도 있게 읽혔습니다.
암튼 달항아리님이 제 글벗으로 오래 함께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ㅎ
@향적 저는 소설만 읽었고 영화는 못 봤어요.
소설도 스릴 만점이었는데
영화가 그리도 무서웠군요. 후덜덜~~^^
전설따라 삼천리 달걀귀신 잡아 찜질방에서
맥반석구이로 만들어먹으며 읽으면 끝내주는
휴가가 될 듯 싶은데...ㅎ~
ㅎ 반가운 적토마 선배님,,
안 그래도 요즘 열대야 피해 모두 찜질방으로 몰리는 통에 그곳이 호황이랍니다.
에어컨 빵빵하게 틀어주는 찜질방에서 올림픽 경기도 보고 맥반석 구운계란도 먹을 수 있으니 그만한 피서가 있을까 싶네요. 요즘 당근은 계란보다 비싸요.ㅎ
@유현덕
귀신은 잡지말고 같이 놀자고라~
등골이 시원해질테니...ㅋㅋ~
내일 이책도 주문해 봐야겠어요.
올 여름 휴가는 책속에 풍덩 빠져봐야겠습니다.
유현덕님 독후감 쓰라곤 않겠지요.
책 속에 빠지겠다는 커쇼님 말에 반가움이 앞섭니다.
지난 봄 설악산 정기산행에서 만났을 때 산과 야구에 관심이 많은 줄만 알았는데 필력까지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산벗이든 글벗이든 커쇼님을 자주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ㅎ
@유현덕 아,그때 그.. 기억나요 저랑 사진도 찍으셨죠? 반가워요,
내일 서점에 갈 예정인데 골라 오겠습니다.
여러가지 의미로 쓰였네요
파과...인증샷 올릴께요^^
고맙습니다~
와우~ 몽연님은 역시 활자 친근자이십니다. 파격적인 구성과 미려한 문체가 김용의 무협지와 백석의 시가 결합된 문장처럼 느껴졌습니다.
말씀대로 파과는 중의적인 의미를 포함한 제목입니다. 모쪼록 몽연님께 멋진 여름날이 되시길 바랍니다.ㅎ
저도 인증샷.올릴게요. ㅎ
@유현덕
@커쇼 아...전 서점엘 못 갔어요.
인터넷을 이용하기는 문제가 있어서요.
요즘 타로공부를 하고 있는데 비교하고 골라보려
하는데 감기가 심해서 지금 두문불출중예요.
목록엔 있으니...언젠간....^^
커쇼님...응원합니다~
@몽연1 에고고. 얼른얼른 나으세요.
응원 감사합니다.
@커쇼 와~ 우와~~~ (내 입 벌어지는 소리)
먹는 음식으로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도 있지만 저는 읽는 책을 보고 그 사람을 가늠할 수 있답니다. 커쇼님 책 고르는 안목이 대단합니다.
다섯 권 다 빼어난 양서로 손색이 없네요. 저는 김사인 읽기와 최진석 선생의 건너가는 자는 읽지 못한 책입니다. 덕분에 또 공부합니다. 멋진 커쇼님을 응원합니다.ㅎ
구병모 작가라면 믿고 봅니다 파과 주인공 조각 사 봐야겠습니다 현덕님 오시니까 할일이 생깁니다 헐~
저도 구병모 작가의 글을 좋아합니다. 문체가 독특해서 몇 줄 읽어보면 이 사람 글이구나 싶지요.
제가 운선님께 받은 거에 비하면 이런 정보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운선님 삶에서 자주 동지의식을 느꼈다가 때론 죽비처럼 번쩍 자극을 받는 각성제가 되기도 하네요.
연일 이어지는 열대야에 건강 잘 챙기시길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