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 친구인 00의 할아버지는 대장장이이셨습니다. 같은 동네이긴 했지만 어릴 때 친구집에 가려면 동네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개울을 건너고, 친구 할아버지의 대장간을 지나서 가야 했습니다. 그 대장간은 주로 조선낫, 부엌칼, 호미 같은 것을 만들었는데, 어린 눈에도 대장간의 모습은 매우 인상적이었습니다. 먼저 뻐걱뻐걱 풍구질로 바람을 불어넣으면 불 속에 넣어진 쇳덩이는 더욱 벌겋게 달아올랐습니다. 그것을 꺼내어 드럼통을 반으로 잘라 만든 물통 속에 집어넣으면, 치이익 소리를 내며 열이 급속히 식습니다. 그 후 집게로 쇠받침대에 올려놓고 딱딱 딱딱 손망치로 내리치면, 점점 모양새가 나타납니다. 두세 번 이런 과정을 반복하면 뭉툭하던 쇠는 쇠똥을 떨어내고 형태를 갖추어 단단한 낫과 칼과 호미가 됩니다. 거의 60여 년 전에 보았던 이런 단련의 과정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우리는 환난 중에도 자랑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단련(approvedness)을,
단련은 소망을 낳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롬 5:3-4).
솔직히 위 본문을 읽기 전에는 ‘단련’이라는 말은 제게 다소 낯선 단어였습니다. 즉 오래 전에 어디선가 보았던 ‘체력 단련장’이란 문구가 생각날 뿐 평소에 자주 쓰는 말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이 단어를 깊이 묵상하고 추구하면서 단련은 성숙한 믿는 이가 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련의 정의: 이 단어의 원문은 도키매(1382)인데, 시련, 재판, 시험, 승인, 찬성, 허가(의 과정이나 결과)의 의미가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은 단련을 “쇠붙이를 불에 달군 후 두드려서 단단하게 함”, 혹은 “어려운 일에 시달림”이라고 정의했습니다. 대부분의 영어 성경은 이것을 character(혹은 experience)로, <미국표준역>(ASV)은 위 본문처럼 approvedness로 번역했습니다. 한편 엘리코트는 ‘experience’는 “approvedness”의 의미라고 주석을 달았습니다. 참고로 <회복역 성경> 해당 각주는 단련을 “환난과 시험을 견디고 체험한 결과로 인정된 자질이나 속성”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전후문맥에서의 의미: 사도 바울은 로마서 서두에서 자신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해 분별되었다고 말합니다(1:1). 이어서 그는 “로마에 있는 여러분에게도 복음 전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함으로써(15절). 그에게 복음은 소위 ‘이신칭의’(롬 1:17) 그 이상이고 사실은 로마서 전체가 그의 복음임을 암시합니다.
이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구속을 통해 죄인들이 의인이 되고, 하나님의 원수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음을 말한 후에, “더욱” “그분의 생명 안에서 구원받을 것”(we will be saved in His life)을 말한 것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롬 5:10). 즉 위 본문의 “환난”과 “인내”와 “단련”(과 소망)은 우리가 생명 안에서 구원받아 갈 때 필연적으로 경험해야 할 과정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구원을 말하는 로마서의 핵심 내용들인 “맏아들의 형상을 본받음”(롬 8:29)과 “그리스도의 몸의 생활”(12장)을 실제로 체험하려면, 우리는 위 ‘단련’ 혹은 ‘인정받음’의 과정을 언젠가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단련받은 예(디모데): 바울은 디모데에 관해, “여러분은 디모데의 입증된 성품(도키매, 1382)을 알고 있습니다. … 그는 복음을 위하여 나와 함께 섬겼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빌 2:22). 복음 여행 중에 자기 마음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버린 마가(요한)와 달리(행 15:38), 디모데는 “사도 바울과 같은 혼이 되어” 교회를 돌볼 만큼 바울에게는 입증된 성품을 가진 동역자였습니다. 즉 디모데는 성경의 기록 그 어디에서도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지 않은 채 바울의 사역을 신실하게 지원하고 도왔습니다(마가 역시 바울의 후기 사역에서는 그에게 “유익한 사람”으로 바뀌어 등장함. 딤후 4:11 참조).
주님의 노예의 자격: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교회에 보낸 첫 번째 서신에서 그와 그의 동료들이 “하나님께 인정받아서(1381) 복음을 위임받게 되었다”고 말합니다(살전 2:4).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오늘날에는 (저를 포함해서) 적지 않은 소위 주의 종들이 그들이 받은 빛과 은사로 하나님께 어느 정도 쓰임 받고 있지만, 동시에 단련받지 않고 시험을 거치지 않은 그들의 기질로 인해 주변 사람들에게 해를 입히거나 실망을 주기도 합니다.
따라서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께 인정받는 일꾼이 되고 싶은 모든 이들은 깊은 속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시편 기자의 간구를 자신의 간구로 취할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이것이 저 자신의 간구도 되어야 함을 깊이 통감합니다.
“오 여호와님, 저를 살피시고 단련하시며 저의 속부분과 마음을 시험하여 보십시오”(시 26:2).
오 주님, 우리 모두에게
단련이라는 미덕이 있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에게는 인내에서 나오는 단련이 너무나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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