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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시는 글은 스마트폰 📸 와이드(WIDE) 화면으로 볼 수 있게 조정하였습니다. 성경 맥 잡자(24)*박진호 목사 거룩한 주일 ⚑{안식일을 기념하라.} 주께서 하늘과 땅을 만드셨으니 너희가 창조에 관여 하지 말고 그날을 창조주를 인정하여 그날을 쉬며 기뻐하라. 주일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엣 아담의 육체를 죽이셔서 새로운 창조를 하시고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셔서 새로운 창조를 하신 날이다. 그것은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시니 우리가 구원에 관여하지 말고 그날을 기념하여 예배하며 쉼을 얻는 날이다. 하나님은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셨다고 한다. 이제 이날이 받은 직접적인 복인 ‘거룩함’의 의미에 대해 알아보자. 주일에는 죄를 짓지 말고 세속적인 활동마저 모두 끊고 오직 교회에서 섬기며 경건하게 보내라는 뜻인가? 틀린 뜻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거룩해진 결과이지 그 자체가 거룩함의 본질은 아니다. 그날은 주께서 새로운 창조하신 날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거룩함’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선하고, 의롭고, 경건한 모습들만 연상한다. 죄악과는 아예 담을 쌓아 더럽고 추한 면이 전혀 없는 것이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그래서 인자와 사랑이 흘러넘치며 도저히 그 앞에서 고개를 들 수조차 없는 의로운 분으로 인식한다. 이 설명이 틀린 것은 아니지만, 여전히 거룩한 결과이지 본질은 아니다. 거룩함이란 다른 모든 것과는 구별하여 따로 떼어 놓았다는 의미다. 주일을 그렇게 하나님이 만드셨다는 것이다. 하루 시간의 길이는 똑 같고 일하지 않고 휴식하며 교회 가는 것만 다른 날과 다른데 그럼 그렇게 쉬고 예배 보는 것이 거룩한 주일이라는 뜻인가? 이 또한 거룩해진 결과이지 본질이 아니다. 사실 거룩함(Holy)은 영광, 은혜 같은 단어처럼 오직 하나님에게만 적용되는 단어다. 하나님이 최고로 의롭고 선하다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다. 그분은 다른 피조물과는 전혀 다르다는 뜻이다. 그냥 다른 것이 아니라 아예 비교할 수조차 없다는 것이다. 그분은 창조주로서 세상 만물을 지으신 분이며 시간과 공간마저 초월해 계신다. 영원토록 스스로 자존하신다. 그 분외의 모든 것은 그분의 피조물일 뿐이다. 그분께 의존하지 않고는 번식, 활동, 생존은커녕 아예 이 땅에 존재조차 하지 못한다. 자동차를 만든 포드와 그가 만든 자동차를 비교할 수는 없다. 아무리 아름다운 자태와 신비한 색깔을 나타내는 도자기라도 도기장이와는 아예 그 차원이 다르지 않는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임재하신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모세는 동족을 이집트를 탈출 시키라는 소명을 받았다. 그는 동족들이 창조주의 이름을 물어볼 텐데 어떻게 대답해야 좋을지 물었다. 하나님의 대답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3:14)였지만 원어로는 단순히 주어와 be 동사를 합친 형태 즉, "I am."이라고 한 것뿐이다. 우리말로 바꾸면 “내다.”라고 한 셈이다. “나는 ~~다.”라고 하면 무엇으로 수식하든 그와 동일체가 되거나 비슷한 특성을 지닌다는 뜻이 된다. 세상의 어떤 것도 하나님과 같거나 비슷할 수도 없다. 인간의 어떤 정교한 논리적 설명도 그분에 대한 충분한 묘사가 되지 못한다. 심지어 그분은 이름도 없다. 이름이 상징하는 어떤 특정한 의미에 그분이 묶일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부모님의 [성함]을 남들 앞에서 함부로 부르지도 못한다. 글자 하나씩 떼어서 말한다. 물론 부모에 대한 최대한의 공경을 드러내는 뜻이지만 부모는 그만큼 자식에게 세상 어떤 사물이나 사람과도 비교할 수 없는 특별한 존재라는 뜻이다. 또 자식이 부모에게 이름을 묻는 법도 거의 없다. 무엇보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내다”라고만 하면 다 통하지 구태여 누구라고 이름을 밝힐 이유도 전혀 없다. 한 가정의 아버지도 자식에게 이런 존재일진대 천하를 지은 분과 인간 간의 관계는 아예 비교도 되지 않을 것 아닌가? 다시 말하지만 하나님은 다른 어떤 것과도 전혀 다른 분이다. 감히 비교도 되지 않는다. 절대적으로 진실하며 선하고 아름답다. 어떤 더럽고 추한 것과도 아예 공존조차 할 수 없다. 전지전능하시다. 은혜와 긍휼에 다함이 없다. 어떤 피조물도 그분의 완벽하고도 의로우신 주권에 따른 섭리와 통치를 벗어날 수 없다. 예컨대 선한 것은 인간과 공유할 수 있는 특성이다. 그러나 모든 피조물과 전혀 다르다는 점만은 그분만이 갖는 유일한 특성이다. 바로 이 “다름”이 거룩함의 본질이다. 아주 선하고 의롭고 경건한 모습 즉, 우리가 흔히 이해하는 거룩함의 의미도 그분의 다른 특성 중의 하나다. 요컨대 하나님은 일곱째 날을 다른 날과는 전혀 다르다는 의미로 따로 떼어서 안식일로 제정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따로 정하시면 거룩해진다. 그러나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안식일이라고 해서 일을 쉬고 교회 가서 예배드리는 것 빼고 다른 날과 특별히 다를 것이 없지 않는가? 그냥 주일에 예배드리라고 하면 되지 구태여 거룩하게 했다고 말할 이유가 없지 않는가? 거룩함이라는 단어도 오직 하나님에게만 적용된다고 했지 않는가? 다시 모세가 소명 받는 장면에서 거룩함의 의미를 더 추적해보자. 주인과 종 ➤“5. 그분께서 이르시되, 여기로 가까이 오지 말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시고 6. 또 이르시되, 나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하시니라. 모세가 [하나님] 뵙기를 두려워하였으므로 자기 얼굴을 숨기니라.”(출3:5-6) 모세가 서있는 곳은 광야 가운데 있는 호렙 산의 척박한 땅이었다. 전혀 아름답거나 기름진 땅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임재하신 떨기나무도 사막에 아주 흔한 마른 덤불 같은 나무였다. 아무리 그런 곳이라도 거룩한 하나님이 임재 하셔 있기에 거룩한 땅이 되었다. 인간은 주인이신 하나님 앞에 종이 신발을 신고 나갈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이라면 일단 거룩한 것이다. 그분은 더럽고 추한 것과는 절대 공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주 만물은 거룩하신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은 맞지만 그 사물 자체가 거룩하다고 말할 수 없다. 또 세상만사를 그분이 다스리지 않는 법도 없다. 말하자면 어느 사건, 장소, 시간이라도 그분의 거룩함은 함께 하는 법이다. 그러나 그 모두를 거룩한 일, 장소, 때라고는 칭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특별한 목적으로 다른 것과 특별하게 구분해서 분리시켜야 거룩해지는 것이다. 따로 구별된 그것에 하나님의 거룩함이 분리 될 때부터 강력히 임하는 것이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자. ➤“고린도에 있는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고전1:2)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을 예수 안에서 거룩해졌다고 한다. 아예 명칭마저 성도라고, 영어 표현으로는 성자라는 의미의 Saint, 부르고 있다. 천주교에선 생전에 위대한 업적을 올린 자 중에서 사후에 엄격한 기준으로 심사하여 성자라는 칭호를 따로 수여한다. 그러나 성경은 지금 그냥 평범한 교인을 성자라고 한다. ➤히브리서 3장 1-10절에 “1. 그러므로 거룩한 형제들 곧 하늘의 부르심에 참여한 자들아, 우리의 신앙 고백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라. 2. 그분께서는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신실했던 것 같이 자기를 세우신 분에게 신실하셨느니라. 3. 집을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 많은 존귀를 받으므로 이 사람이 모세보다 더 많은 영광을 받기에 합당한 자로 인정받았느니라. 4. 집마다 지은 사람이 있으되 모든 것을 지으신 분은 [하나님]이시니라. 5. 또 모세는 참으로 나중에 말하게 될 그것들을 증언하기 위해 그분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으되 6.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집을 다스리는 아들로서 신실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기쁨을 끝까지 굳게 붙들면 우리가 그분의 집이니라. 7. 그러므로 ([성령님]께서 이르시기를, 오늘 너희가 그분의 음성을 듣거든 8. 격노하게 하던 때와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 9. 그때에 너희 조상들이 나를 시험하여 입증하고 사십 년 동안 내가 행한 일들을 보았느니라. 10. 그러므로 내가 그 세대로 인해 근심하여 이르기를, 그들은 항상 마음속으로 잘못하며 내 길들을 알지 못하였다, 하였노라.“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다고 당장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다. 단지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믿었기에 하나님이 죄 없다고 칭(稱)해줄 뿐이다. 예수님의 의로움이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해 신자에게 덧입혀지는 것이다. 실질적으로는 전혀 의롭지 않고 수시로 죄를 짓는데도 거룩한 하나님이 거룩하다고 여겨주신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에서 따로 불러내어서 성령의 간섭으로 구원의 선물을 주시고 당신 자녀로 삼아주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의해 그분에게 불려 나와서 그분과 함께 하면, 다른 말로 세상에서 분리되면, 거룩한 것이다. 바로 안식일이 그러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다른 날과 구별해서 따로 떼어내었기에 거룩해진 것이다. 그분이 따로 떼어낸다는 것만으로도 완전히 달라진다. 물론 하나님이 세상을 통치하는 권능과 은총은 모든 날에 동일하다. 그러나 일주일 주에 구별한 특정한 날에, 특별히 따로 불러낸 당신의 백성과 함께, 당신께서 종일 같이 지내시기에 거룩한 것이다. 좀 더 실감나게 설명해보자. 불신자 시절에 주일마다 교회 가는 신자들을 보고 어떻게 비방했는가? “아니 일주일 중에 겨우 하루 쉬는 날에 등산이나 골프를 가서 피곤을 풀어야지 뭐 하러 하루 종일 교회에서 예배보고 봉사하는지 이해가 안 되네. 정 그러려면 새벽예배에 갔다 온 후에 쉬어야지. 오히려 종교적 열성으로 스트레스가 더 쌓이는 것 아니야?” 그들은 주일을 신체 리듬을 잘 유지하기 위해 푹 쉬는 날이라고만 여긴 것이다. 그럼에도 하나님이 생물에게 주신 창조의 첫째 복은 받았다. 자기 종의 생존과 번식만 도모하는 짐승들이 받은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 말이다. 말하자면 불신자의 주일은 사자가 며칠간 먹을거리 사냥을 끝내고선 한숨 자는 것과 그 수준과 내용에서 동일하다는 뜻이다. 하나님이 더 새롭고도 풍성하게 새 일주일을 준비해 놓았을 것이라고는 전혀 꿈도 꾸지 못한다. 새롭게 시작하는 일주일도 오직 자기 마음과 능력과 노력에 달렸을 뿐이다. 당연히 더 많은 노동으로 더 많은 것을 소유하는 것이 인생의 목표가 된다. 또 많이 쉴수록 힘이 더 난다. 그러니 많이 쉬기 위해서라도 많이 차지해야 한다. 결국 물질에 묶이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인생이 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주일이 거룩해지는가? 신자의 안식은 전혀 다르다. 우선 생체리듬은 어차피 하던 일을 멈추니까 자연히 되찾게 된다. 교회에서 정서적, 영적 안정을 얻으니까 회복이 더 빠르다. 지난주를 반성하는 마지막 날만도 아니다. 너무나 기대되는 새 일주일을 예비하는 데 초점이 더 맞춰진 날이다. 그래서 세상에서 받은 근심, 상처, 환난, 핍박 등을 주님의 십자가 아래 내려놓고 뒤에 있는 일은 잊어버려야 한다. 물론 주님 앞에 잘못한 일이나 죄도 씻어 달라고 함께 꺼내놓아야 한다. 또 세속적인 즐거움과 일들은 벗어버리고 오직 주님과 함께 하루 종일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 자기 존재와 삶과 인생에 부어주신 그분의 은혜와 권능만을 회상하면서 그분께 감사와 영광과 찬송과 경배를 돌려야 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과 소명을 다시 확인하는 날이어야 한다. 그래서 삶의 목적과 인생의 방향이 올바르게 가고 있는지 점검하고 수정해야 한다. 앞으로 일주일, 한 달, 아니 평생을 그분의 부르심의 상을 위해서 푯대를 향해 앞으로만 걸어갈 것을 재다짐, 헌신하고, 실천을 시작하는 날이어야 한다. 특별히 안식 후 첫날에 이뤄진 주님의 부활을 기억하는 날이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사랑하신 그 사랑 안에서 더 이상 끊어질 수 없는 신분, 소속, 위치, 특권을 누리고 있음을 정말로 확신해야 한다. 구원의 취소는 더 이상 없으며 이미 영생을 소유한 자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 신자가 가는 땅 끝까지, 세상 끝 날까지 주님이 동행해 주실 것이다. 이제는 세상의 사람과 죄악과 사단과 사망이 전혀 두려울 것이 없기에 그것들 앞에 당당히 맞서는 힘을 키우는 날이어야 한다. 정말 온전한 평안을 주님의 십자가 안에서 누릴 수 있어야 한다. 천국의 보장된 영광이 기다리고 있으니까 환난 가운데도 그 소망을 가꾸며 오히려 기뻐해야 한다. 주일을 생체리듬을 회복하는 정도로만 생각하면 불신자와 하등 다를 바 없다. 하나님의 창조의 뜻 안에선 짐승과 같을 뿐이다. 기독교라는 종교가 정해 놓은 예배드리는 날이니까 교회 간다는 정도로만 그치면 안식교나 유대교와 같은 수준이다. 극단적으로 교회 일 말고는 아무 일도 하지 말아야 한다면 바리새인의 위선으로 돌아간다. 그리스도를 믿어야 열리는 세계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믿는 신자라면 예수 구세주 안에서 정말로 참 안식을 누려야 한다. 단순히 구원 받았다는 안도감만으로는 참 안식에서 많이 부족하다. 창조부터 주일을 따로 떼어 거룩하게 만드신 뜻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거룩한 하나님이 주일을 거룩하게 만드셨다는 그 뜻이 얼마나 귀한지 확신해야 한다. 그래서 정말 주님과 함께 전혀 다르게 주일을 보내는 자에게는 정말 전혀 다른 그분의 복이 넘치게 된다. 요컨대 주일을 따로 떼어서 온전히 지키는 것이 신자의 의무로만 여겨선 결코 안 된다. 정말로 너무나 큰 복이자 특권이다. 세상 사람은 도무지 알 수 없는 은혜와 평강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흘러넘친다. 특별히 하나님이 자기로 그리스도의 영광의 빛을 세상 앞에 드러내는 동역자로 삼았음을 확신하고 수행하고 있는 자에겐 더더욱 그러하다. 결국 신자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첫째 기준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느냐에 달렸다. 아니 인간이 정말로 인간답게 살고 있는지도 점검하고 또 그렇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도다. 주일 예배를 통해 창조주 하나님, 십자가 예수님, 두 분의 권능과 은혜를 깨달아 그 가운데서 살게 하는 성령님의 품 안으로 돌아오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참 안식은 단언컨대 절대로 없다. 말하자면 하나님은 창조 당시에 이미 교회와 예수님의 십자가를 다 작정하였고 그 은혜 안에 들어와 누릴 사람만 기다리고 계셨던 것이다. ➤“14. 그런즉 우리에게, 위대하신 대제사장 곧 하늘들로 들어가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 계신 줄 알므로 우리가 우리의 신앙 고백을 굳게 붙들자. 15. 우리에게 계신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의 감정을 몸소 느끼지 못하시는 분이 아니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니 죄는 없으신 분이시니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갈 것이니라.”(히4:14-16) 이 진리를 믿는 우리에게 주시 것은? ➤“3. 이미 믿은 우리는 안식에 들어가나니 이것은 세상의 창건 이후로 그 일들이 완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분께서 이르시기를, 내가 진노하여 맹세한 것 같이 그들이 내 안식에 들어오려면 [믿어야] 하리라, 함과 같으니라.”(히4:3) 거룩하신 하나님은 정말로 주일을 따로 떼어서 거룩하게 하셨다. 아무리 평일과 똑같이 해가 뜨고 지는 하루라도 진짜로 거룩한 날이다. 거룩함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신자라면 이 날에는 거룩하신 성삼위 하나님 앞에 정말 겸비한 모습으로 신을 벗고 엎드리게 된다. 단순히 그분께 예배드리는 정도가 아니다. 주님의 십자가 안에서 진정한 감사와 기쁨과 평안과 안식이 넘치게 된다. 나아가 주님의 뜻대로 자기가 속한 모든 공동체에 그분의 빛을 비춰서 거룩하게 바꾸려는 열정으로 가득 차게 된다. 다시 말하지만 모든 신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거룩한 성도가 되었다. 주님의 거룩함에 걸맞게 신자도 거룩해져야 하고 거룩하게 행해야 한다. 특별히 새로운 일주일의 삶 가운데 거룩함을 실천하기 위해 준비하며 주일을 보내야 한다. 그분이 아담으로 오셔서 육체를 죽이시고 영적인 길을 열어 놓으셨기 때문이다. 그것을 믿어야 한다. 여러분은 거룩하게 주일을 지내는가? 또 이미 거룩해진 성도라는 확신은 있는가? 그전에 주일이 얼마나 거룩한지 확신하는가? 십자가를 믿어야 다음으로 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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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