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한의 「데사파레시도스」 평설 / 민병욱
데사파레시도스
강인한
어머니 새벽 안개에 옷깃을 적시며
부에노스 아이레스
오월의 광장에 와서 울고 있는 어머니
인제는 그만 우셔요
흰꽃들의 아침을 위하여
돌아오지 않는 우리들의 이름을랑 그만 부르셔요
사람은 한 번 죽는 것
비겁한 자는 여러 번 죽지만
용감한 이는 단 한 번 죽을 뿐이라고
누군가 그런 말을 했었지요 어머니
추악한 전쟁에 휘말려
다이너마이트로 산산조각 난 우리들의 꿈
온몸에 총알을 맞고
구멍 투성이로 쓰러진 우리들의 사랑
짓밟히고 짓이겨져도 우리들의
더운 피는 마냥 붉게 타올라
조국은 아름다웠습니다
아, 첫 번째 모음의 나라 아르헨티나
마취된 채로 발가벗겨지고
한꺼번에 몇 명씩 묶여 조국의 하늘 높이 떠서
대서양 깊은 바닷속으로 내던져진 생죽음
다시는 부르지 마셔요
어머니의 품을 벗어나온 우리들의 이름을
더 이상 눈물로 부르지 마셔요
비둘기는 오전의 정부 청사 지붕에 올라
햇살 속에 드러난 맨발이 뜨거워서
보다 먼 하늘을 바라보며 웁니다
우는 것이 어찌 비둘기뿐일까요
날지 못하는 우리들의 말
팔을 잘리고 다리를 잘린 우리들의 말도
입술을 잃고 허공에서 떠돌아
안개 속으로 밤의 어둠 속으로
희미하게 날며 웁니다
울긋불긋 저들의 가슴마다 빛나는 무공훈장
모진 독재의 군화에 채여
아기를 몸에 지닌 당신의 젊은 딸이 능욕을 당하고
건초처럼 시든 엉겅퀴처럼
스러지기도 했지요 어머니
울지 마셔요
한꺼번에 파헤쳐진 공동묘지
비록 우리가 뼈와 슬픔으로밖에 어머니를
대하지 못한다 하여도
아르헨티나는 우리들의 조국인 것을
용서해 주셔요
오늘의 역사는 어제의 것에 보태지는 것이 아니라고
역사는, 오늘의 역사는
처음부터 새로이 쓰여지는 것이라고
누군가 그런 말을 했었지요 어머니
갇힌 지하실에서 껴안은 불길도, 불길 속의 죽음도
두렵지 않았어요
역사를 위하여……아닙니다 아닙니다
이성이 가리키는 올바름을 위하여
영원한 사랑을 위하여
끝내는 지켜져야 할 인간의 순결한 자유를 위하여
단지 그뿐이었지요
겨울에 오히려 더운 피가 도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오월의 광장에 와서 울고 있는 어머니
산비둘기 빨갛게 울고 있는 맨발
우리들의 어머니
인제는 그만 우셔요
전나무 빽빽한 안데스의 이마를 스쳐가는
저녁 햇살이 곱고
어린 양치기들의 휘파람 소리 들려오거든
아르헨티나를 온몸으로 사랑하였던
불길 뜨거운 당신의 아들딸들을
기억해 주셔요
부르면 목이 메는 조국의 이름과 함께
기억해 주셔요 가장 아름다운 기억으로,
오 어머니.
*1976년부터 4년간은 아르헨티나 군사정부의 살인부대가 수천 명의 정치범을 잡아 학살했던 시기다. 민정이 들어선 이후 1984년 1월에 그 당시 실종된 희생자들의 시체 6백여 구가 암매장되었던 곳이 발견되기도 했다. 〈데사파레시도스〉는 실종자들이란 뜻. 그 무렵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있는 정부청사 앞 〈오월의 광장〉에는 실종자들의 어머니들이 통곡을 하며 자식들의 생사라도 알려달라고 호소하기도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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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세계와 그것에 대한 인간의 지각형태 및 그 세계를 변화시키려는 전망적인 삶을 고도로 매개하고 있다면, 그 매개범주들 가운데 특히 주목되는 것은 바로 현실성이다. 현실성(Wirklichkeit)은 가능성에 대립되는 것으로서 현재적 사실로 주어져 있는 현실의 존재성 혹은 양태를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주어져 있거나, 본질적인 과정의 표면에 진행되는 결과로서의 현상이 아니라, 참된 현실성은 가능성이 제거되고 지양되어 본질적•객관적인 발전과정에서 필연적인 사실로 구체화되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현실성은 인간의 사회적 활동의 결과나 사회의 표층구조에서 진행되는 외적 현상이 아니라 현상과 본질 사이의 변증법적 발전과정에 나타나는 구체성이다.
11월의 시편 가운데, 강인한 시집 『우리나라 날씨』(1986.10 나남)는 현실성에 의해서 구체적 총체성을 보여주는 뛰어난 시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인용 시편은, 그 주(註)에 따른다면, “아르헨티나 군사정부에 의해 희생된 실종자”들이 “생사라도 알려달라고 오월의 광장에 와서 울고 있는” 그들의 어머니에게 건네는 직접적인 발언이다. 그 발언은 “오월의 광장의 정경”과 “우리들의 생죽음” 및 “우리들의 사랑”을 연관시키면서 직접적으로 행해진다. “오월의 광장의 정경” 및 “우리들의 생죽음”이라는 사회의 표층구조에서 진행되는 외적 현상과 “우리들의 사랑”이라는 그 현상의 본질 사이에 변증법적 발전이 이루어진다. 이것은 “아르헨티나 군사정부에 의해 실종된 희생자”들의 희생의 의미가 “인간의 순결한 자유”이며, 그 자유는 “이성이 가리키는 올바름”으로 역사 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 “오늘의 역사는/어제의 것에 보태지는 것이 아니라고/역사는, 오늘의 역사는/처음부터 새로이 쓰여지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現代文學》 1986년 12월호, 「이달의 화제」에서
민병욱(문학평론가)
첫댓글 우리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어서 그런지 흡씬 젖어 들어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