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경 선수가 챔스리그를 우승과 최우수선수, 공격상으로 마치고 다음은 올림픽이라고 말했을 때 가능성도 있겠구나라고 생각은 했지만 사실 별 믿음이 가지는 않았다. 배구는 혼자서 하는 경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데 올림픽 예선전은 완전히 김연경을 위한 무대였다. 열화와 같은 응원에 뒤덮인 일본에서 대 일본전 22연패의 사슬을 끊고 올림픽 출전을 결정지었을 때 정말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그러나 올림픽 조편성이 발표되자 어이가 없었다. 승부조작으로 구설수에 올랐던 일본은 완전한 행복무드, 우리는 죽음의 조에 먹잇감으로 던져진 신세...
김연경이 다시 말했다. 매도 일찍 맞는 게 낫다고... 목표인 메달을 따려면 대진운만 가지고는 안되고, 어차피 붙어야 할 팀들이라면 차라리 먼저 붙는게 낫고, 이길 자신이 있다고... 뭐 완전히 믿지는 않았지만 워낙 대단한 김연경의 말이라 무조건 믿어봐야지 이렇게 생각하고 열심히 배구 일정과 경기를 찾아서 밤을 새웠다.
첫경기 미국전은 역시나였다. 비록 3세트에서 놀라운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어이없이 무너지는 4세트를 보면서 실력의 차이를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세르비아를 넘고, 브라질전은 정말 충격적인 즐거움이었다. 김연경만 잘하고 나머진 그저그런 우리 여자배구팀이 경기를 치러가면서 모두가 최고의 선수로 변신해갔다. 쉽게 이긴 경기도 없었지만, 쉽게 진 경기도 없었다. 우리 팀에 대한 나름대로의 처방과 대비책을 상대팀들이 제시했지만 우리 팀은 항상 그 이상으로 발전하고 변신해갔다. 세계랭킹 1위, 2위, 5위가 속한 죽음의 조에서 15위의 우리팀이 살아남았다.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대단한 업적이었다.
8강에서 만난 이탈리아. 배구의 인프라가 가장 잘 갖춰져 있는 나라, 언제나 강력한 우승후보, 힘만 앞세운 유렵배구에서 한단계 엎그레이드된 힘과, 기술과, 수비를 모두 갖춘 팀. 그 절망적인 상대를 아주 확실하게 우리가 이겨버렸다. 김연경 뿐만 아니라 모두가 놀랍게 뛰고 때리고 몸을 날리고 막아내면서...
나는 욕심을 버렸다. 이정도만 해도 충분하다. 미국에게 지고, 동메달 결정전에서도 져서 4위에 그친다하더라도 이정도면 정말 환상적이다. 김연경은 계속 발전할 것이고, 이번을 계기로 우리 배구계도 비약적으로 성장할테니 다음 올림픽 금은 우리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며 날을 새운 피로도 잊고 기쁨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여자배구팀 기사 구석구석에서 배구협회의 놀라운 대응을 보면서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올림픽 기간동안 유일하게 협회직원을 한 명도 파견하지 않은 배구협회!
대표팀 훈련비가 부족해서 훈련에도 애를 먹었다는 대표팀!
2미터가 다 되는 그 커다란 애들을 이코노미석에 쪼그리고 앉아서 런던으로 데려갔다는 기사!
모든 메달에, 심지어는 메달도 따지 못할 것같은 축구 4강에도 버글거리는 격려금과 포상금마저 준비하지 못했다는 글에서는 더 할말이 없었다.
상대팀 언론 뿐만 아니라 전혀 상관이 없는 나라들에서도 김연경을 계속 이슈로 다루고 있는데... 심지어는 국제배구협회가 김연경을 배구여왕으로 배구홍보의 간판으로 삼아서 난리를 치는데 정작 당사국인 우리 언론에서 배구 기사는 언제나 찬밥이었다. 스타가 나오면 그 종목이 살고, 그 종목의 저변이 확대되는 것이 거의 공식이라는 것을 협회는 그동안의 경험으로 충분히 알텐데 아무런 노력은커녕 아예 올림픽 자체를 외면하는 것같았다. 이번 8강전이 잘리지 않고 유일하게 방송된 경기였다는 것을 협회는 알까? 수많은 배구매니아들이 우리팀 경기중계를 찾아서 인터넷을 뒤지고, 메달매치에 잘리고, 심지어는 탈락이 확정된 어떤 종목에도 밀려나는 현실을 협회는 알까?
배구협회 회장이 새누리당 대권경선에 나섰고, 그 인간이 훈련비도 제대로 못준 그 인간이 자기가 뉴스메이커가 되고 화면에 나온다는 이유로 환송식에 6천만원을 썼다는 웃기지도 않은 사실. 올림픽 기간동안 협회임원 한사람도 파견하지 못할만큼 바쁘고 급한 속사정이 무엇인가는 그냥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협회는 돈줄인 기업들이 장악하고 있고, 경선자금때문에 그 기업들 눈치보느라 김연경 이적동의서 하나도 못 써주는 상황도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셰계가 주목하는 김연경이 실제로는 무적선수가 되어있다. 전 소속팀 흥국생명이 어깃장을 놓아서 계약발표까지 난 팀으로 가지 못하고 임의탈퇴된 상태이다. 공격에 수비에 서브에 블로킹에 우리팀 절반을 해주는 핵심선수가 몸의 피로보다 더한 마음고생에 시달리게 하고 있다. 환송식에선 잘 해결되었으면 좋겠다. 순리로 풀자. 이렇게 말해놓고 실제론 갔다와서 보자이다. 올림픽 끝나고 대중들 관심이 물러나면 그때 흥국 뜻대로 해주겠다는 뜻이다.
중계방송하는 해설자나 실제로 메달을 딴 선수들이 회장님 이야기를 참 많이 한다. 듣기 싫으면서도 그들의 말이 이해가 간다. 비인기 종목, 그래서 모두가 외면하는 그 종목에 자신의 사비를 들여 선수들이 마음놓고 훈련을 할수 있게 해주니 그들은 참으로 고마울 것이다. 그 회장이란 자들이 기업활동을 어떻게 하고, 인간성이 어떻고를 떠나 그들에게는 참으로 고맙고 틈나는대로 감사를 표하고 싶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 멘트를 이해하기로 했다.
그런데 정말 어이없는 것은 그래도 비교적 대중적인 배구가 핸드볼이나 양궁 심지어는 사이클보다도 더 어려운 처지에서 훈련하고 올림픽에 참가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그 속에서 날마다 기적을 연출하고 부상당한 몸을 이끌고 웃고 화이팅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배구인들도 참 대단하다. 모두가 알텐데... 그래서는 안된다는 것도 느낄텐데... 어린 후배들 보기가 참으로 부끄럽고 미안한텐데... 아무도 자기 생각을 터뜨리거나 협회에 불만을 말하지 않다니... 사비를 털어 76년 동메달의 주역들이 후배들을 격려하기 위해서 런던을 찾아간 것도 그저 잠깐의 화면으로 끝이지 기사거리도 되지 못했다는 것도 슬프다.
너무 분통터져서 이 글을 쓴다. 배구협회는 지금이라도 선수들 뒷바라지에 힘을 쓰고, 관심을 가지길 바란다. 아무리 돈이 없어도 돌아오는 비행기 좌석은 제대로 준비하길 바란다. 돌아온 뒤에도 자기 얼굴 알리는 쓸데없는 행사는 자제하고 김연경 이적동의서 써주고 고생한 감독 코치진과 선수들에게 따뜻한 말이라도 제대로 해주길 바란다. 뭐 웬만히 비정상적인 협회라야 요구할 걸 요구하지... 그저 분통이 터진다 터져!!!
첫댓글 우리나라 협회는 양궁 말고는 다 썩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