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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9. 30(토) 곰배령
9월 마지막 날, 사상 초유라는 긴 연휴의 첫날, 고교 동기들 13명과 곰배령을 다녀왔습니다. 가을의 초입, 곰배령에는 단풍이 곱게 물들기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요즈음 산행기와 둘레길 트레킹, 그리고 가을의 정취에 취한 감상적인 신변잡기를 카페에 쓰고 일기에 쓰곤 하면서 나는 지나치게 삶을 가볍게 대하고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특히 카페 등에 올리는 글들에서 그런 느낌을 갖습니다. 하기야 원래 내가 진지하고 무겁게 온 몸으로 생을 대하는 게 두려워 일부러 피하며 살았는지도 모르지요. 여하간 일상에 대한, 또 삶에 대한, 안다는 것에 대한 진지한 성찰의 시간과 기회를 별로 가지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제 생계를 위한 짐이었던 소위 생업을 내려 놓은 지 벌써 5년, 휴식이라는 이름으로 즐겨온 여행과 등산, 각종의 사회활동과 일상이 지나치게 감성적이고 표피적이며 感傷에 치우친게 아닌가 싶어 지적 호기심이랄까 지적 갈증을 적셔줄 듯 싶은 곳을 여기저기 기웃거렸습니다. 교육청 직속 기관인 평생학습관의 인문학 강좌를 몇 번 가 보았지만 경주 최부자의 노블리스 오블리쥬 강의를 한 한국학 중앙연구원 문서실장인가 하는 분의 강의 말고는 영화 글쓰기나 공자 강의나 너무 빈약하고 가볍고 깊이가 적어 더 이상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동네 도서관에 괜찮은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원래는 자연과 정신건강 학교라는 수원시 자살예방센터의 강의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하는 노후설계에 대한 강의를 들으러 갔었는데 낮에 하는 강의라서 강의내용은 참 좋은데도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물론 실생활에 아주 유용한 강의 들이었구요, 자정학교의 한 강의는 동네 도서관 강의를 다른 일정 때문에 놓쳐 서수원 호매실 도서관에 가서 듣고 오기도 하였습니다. 노후 설계 내용도 정말 유익하고 충실한 내용이었는데 참으로 안타까웠습니다.
다시 내가 괜찮다고 한 프로그램. 2017년 인문독서아카데미 예술과 철학의 만남이라는 프로그램입니다. 이게 저녁 7시부터 2시간 하는 강의라서 알콜 중독에 가까운 나는 술 마시느라 강의 들으러 갈 수가 없었지요. 그런데 6월 초, 타의에 의해 당분간 술을 마시지 못하게 되자 이 강의에 가 보게 되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4개의 주제로 되어 있는데 한 주제에 다섯 강의씩 1주에 한 번 5주 동안 10시간입니다. 제1 주제, 영화로 읽는 철학, 제2주제 그림으로 읽는 철학, 제3주제 사진으로 읽는 철학, 제4주제 문학으로 읽는 철학입니다. 우선 먼저 영화로 읽는 철학 한 강의를 수강하였습니다. 정말 열정적인 강의였고 깊이 있는 강의였는데 영화를 보지 않고 듣는 철학 강의라서 한계가 있음을 느껴 제1 주제는 놓치고 맙니다. 그러나 그 후 이 도서관에서 9월에 보는 철학 영화 4편 중 두 편을 보곤 영화에 대한 나의 무지를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9월 15일 본, 토리노의 말이라는 영화는 이게 무슨 영화인지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 정말 모르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인터넷을 뒤져보고서야 이 영화가 나름 유명한 영화이며 어떤 의미를 가지는가를 장님 코끼리 만지듯 유추해 볼 수 있었습니다. 그 후에 본 노킹 헤븐스 도어라는 영화는 토리노의 말 보다는 훨씬 이해하기 나았고 나름 재미와 의미를 느낄 수가 있어서 기존의 상업 영화만을 알던 내게는 문화 충격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그 외 우작 이라는 영화와 한나 이렌트는 일정상 보지 못하여 아쉬웠습니다.
다시 인문독서 아카데미로 돌아가서 제2주제 그림으로 읽는 철학은 정말 신선한 감동을 주는 철학 강의였습니다. 철학자의 그림읽기를 통해서 난 새삼 내가 미술에 무지한 문외한임을 깨달을 뿐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세계의 그 심오한 일면을 엿볼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하였습니다. 그 강의에서 미국의 미술이론가 그린버그를 들어보고 마네의 그림이 갖는 의미라든가 화가 벨라스케스, 특히 폴 세잔 등에 대해 들을 수 있었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것들을 이해하기에는 미술사에 대한 소양이 너무도 부족하였습니다. 유럽 여행 몇 번에서 오르세 미술관이나 루브르, 대영 박물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미술관이나 이태리, 스페인 등 몇 군데의 미술관을 피상적으로 그야말로 구경(?)이나 한 나에겐, 그리고 체계적인 미술서적이나 미술사에 대한 천착이 없던 나에겐 개발의 편자 같은 강의였단 생각이 듭니다. 그래도 이런 세계를 맛볼 수 있었던 것은 아름다운 자연 승경을 즐기는 것 이상의 기쁨이기도 하였습니다. 물론 열정적이고 유능한 강사의 명강의도 한 몫 단단히 하였습니다. 아쉽게도 일정상 5강 중 3강밖엔 강의를 듣지 못하였습니다. 청중들의 열렬한 반응에 고무되어 연휴가 낀 주엔 도서관에서 아쉽다고 특별한 강의를 준비하여 공자를 통한 세상과 소통하는 법이라는 특강을 준비하였는데 강사의 강의 기법이 신통치 않자 대부분 청중이 도중 자리를 떠버리는 해프닝이 있었습니다. 기실 그 내용은 공자의 학설이 맹자, 주희로 이르는 일파와 한비자 등의 법가로 흐른 일파 등으로 우리의 현대사를 볼 때 우리가 따르려 했던 공자- 맹자 - 주희로 이르는 학파의 수용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나에게는 매우 훌륭한 내용이었으나 강의 기법이나 준비, 말 솜씨가 시원치 않아 급기야 강의를 준비한 담당자가 사과 문자를 보내는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만큼 청중의 지적 수준, 이해의 수준이 높다는 이야기이지요.
제3주제 사진으로 읽는 철학은 더욱 신세계였습니다. 사진이 예술 작품같다고 느낀 것이 부끄럽게도 제주도 김영갑 갤러리에서 그의 사진들을 한 네 번쯤 보고나서이니까요. 그림철학에서는 그래도 들어본 화가들의 이름들이 많았는데 이 강의에서의 사진 작가들은 내 생전 처음 들어 보는 이들이었으니까요. 사진 예술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조차 없는 나에게 다이안 아버스의 정상과 비정상, 신디 셔먼의 여성성, 로버트 프랭크의 미국인들이라는 사진집의 멜랑콜리 같은 주제 강의는 사실 장님 코끼리 만지기 보다 더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에 나같은 완전 생짜 무식쟁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참가한 청중의 많은 분들이 사진 작가들이었고 그들의 질의를 통한 토의는 강사를 긴장케 하기에 충분하였습니다.
아 정말 세상에 깊은 지식을 가진 이들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내가 내친 김에 이 도서관의 철학동아리에서 하는 특강을 한번 수강하러 갔습니다. 마침 동양철학 동아리였고 요즈음 주로 대학을 강독하다가 특강으로 맹자의 리더쉽에 관한 특강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나름 맹자에 관해서는 4서 강독을 통하여 맹자를 읽기도 하였고 직업이 직업인지라 단편적인 지식들을 꽤 접하기도 하였고 이것저것 보고 듣고 읽고 하였던 터라 그닥 낯설지 않으리라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에 대한 그저 그런 강의가 아니라 철학 동아리에 대한 강의이니만큼 강의 내용의 깊이와 스피디한 진행은 내가 따라가기 벅찬 것들이었습니다. 젊은 여자 강사의 거침없고 해박한 지식과 달변, 게다가 한문을 한글보다 더 능숙하게 판서하는 수준은 그냥 공부한 사람의 수준은 아니었습니다. 내가 수원 향교에 가서 강의들은 유학대학원장 지내신 노교수나 성균관 부관장을 지내신 분 등의 한문 쓰기 구사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하겠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 강의를 들으러 온 동아리 회원임직한 수강생입니다. 강의 중의 깊이 있는 철학적 질문에 한 차원 더 높은 대답을 하는 청중에 강사도 놀라 수강생에게 묻자 주역을 좀 공부하였다는 분은 꽤 젊은 여성이었습니다. 그 분 뿐 아니라 거의 대부분 청중이 나의 예상을 넘는 수준의 전공자들 같았습니다.
휴, 나는 알았습니다. 내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하여도 수박 겉핡기 식의 얼치기였다는 것을. 학문의 전반을 아우르는 깊이 있는 독서는 하지도 못한 채 다이제스트식의 독서로 지식의 주변만을 맴돌았다는 것을.
그런데 이것은 지식에 관한 것만은 아닙니다. 얼마 전부터 수원 향교에서 유학 강좌를 열고 있습니다. 일주일 두 번. 수요일과 토요일 한 번에 두 시간씩, 총 36강, 72시간으로 되어 있습니다. 사실 사계의 권위자들이 강의를 하십니다. 수강생들이 대부분 노인들이긴 합니다만 정말 깊이 있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차에 관한 강의, 유학사상 강의, 전통사상 중 항렬과 족보 이야기 등 유익한 내용이 많았는데 그 중 내가 어려서부터 보고 듣고 자라면서 지금도 남아 있는 것과 지금은 거의 사라진 것들에 대한 내용들이 있어 나를 반성케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 중 祝文 讀祝과 笏記 唱笏法, 喪葬禮등은 그 내용도 내용이려니와 그와 관련된 주변 지식들은 정말 알지도 못하고 습관적으로 쓰던 것들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하게 한 강의였습니다. 축관, 집례를 제관이라 한다든지 축문 독축은 泣訴怨慕로 한다든지 축판의 규격과 두는 법, 축 읽는 법. 喪葬禮에서의 명칭, 초혼법, 삼우제, 喪杖(대나무 상장과 버드나무 상장 그리고 그 길이 등) 등 여러 가지 내 어려서는 일상으로 행하던 것들이 이제는 까마득한 옛 일처럼 되어 버린 것들에 대한 새로운 일깨움을 받았으며 강의를 하시는 분 말씀처럼 꼭 과거의 일로 묵수하라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게 하되 원칙과 근거를 알고는 있어야 한다는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하였습니다. 다만 어른 들은 몰라도 나는 거의 잊고 있던 것들이라 너무 빠르게 진행되는 강의라 내게는 주마간산이며 확실히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많이 부족하였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그래도 꽤 많이 알고 있는 척 하였던 것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었던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다시 인문독서아카데미로 돌아갑니다. 9월 28일 목요일. 돌아가신 어머니 기제사 날입니다. 내가 어머니 제사를 모시는지라 오늘밤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며칠 전부터 제사 음식을 이것저것 틈틈이 마련해 왔기에 오늘 몰아서 할 일은 그닥 많지 않습니다. 전을 좀 붙여야 하는데 이건 집사람이 담당할 일. 오늘 저녁이 인문독서 아카데미 제4주제 문학으로 읽는 철학 첫 강의날입니다. 여러번 망설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준비는 거의 다 되었고 제사는 원래 밤 12시 넘어 지내야하지만 자시부터이니 11시 넘어 지내면 된다 하더라도 시간이 충분하다 생각되어 강의에 참석하기로 합니다. 문학강의이니만큼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모였습니다.
아, 여기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톨스토이의 이반일리치의 죽음을 읽으며 하이데거 철학이해하기라는 주제 강의는 깊이 있는 내용과 고금을 아우르는 방대한 지식, 창의적인 통찰 등이 빛나는 강의였습니다. 게다가 거침없는 인용과 철학과 출신 특유의 달변이 어우러져 참으로 인상 깊은 강의를 들었습니다. 역시 놀라운 것은 청중들입니다. 100여명이 넘는 청중 거의 모두는 철학 전공자들 같았습니다. 2시간 강의 중 1시간 15분 정도 강의 하고 질의 응답을 통한 토론은 이 강의의 수준을 알기에 나에겐 충분했습니다. 수학을 전공했다는 젊은 여성 청중은 강사의 수학 철학 설명에서의 부분적인 오류를 정정해 주었고 다양한 질의자들의 서로 다른 견해나 해석, 그리고 문학 작품에 대한 접근 등은 제대로 된 철학서 하나 정독하지 못하고 철학 개론이나 철학사에 체계적으로 접근해 보지 못한 내가 그저 무지한 하나의 일반 청중임을 자각케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이제 밥벌이의 숨가쁜 삶에서 이제 좀 한 숨 돌리며 나를 돌아보니 참으로 무식하게 늙어 가는 한 소시민을 보게 되는 것 같았습니다.
긴 사설 끝내고 곰배령으로 갑니다. 지난 주 청계산 과천 대공원 둘레길을 세명의 산우들이 걸을 때 길가에 거의 지천으로 떨어지던 토종밤들을 주우며 황 희 정승의 시조와 면앙정 송순의 시가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대쵸 볼 불근 골에 밤은 어이 뜻드르며,
벼 뷘 그르헤 게는 어이 나리는고.
술 닉쟈 체 장수 도라가니 아니 먹고 어이리
인간(人間)을 떠나와도 내 몸이 겨를 업다. 니것도 보려 하고 져것도 드르려코, 바람도 혀려 하고 달도 마즈려코. 밤으란 언제 줍고 고기란 언제 낙고, 시비(柴扉)란 뉘 다드며 딘 곳츠란 뉘 쓸려뇨. 아참이 낫브거니 나조해라 슬흘소냐. 오날리 부족(不足)커니 내일이라 유여(有餘)하랴. 이 뫼해 안자 보고 뎌 뫼해 거러 보니, 번로(煩勞)한 마암의 바릴 일이 아조 업다. 쉴 사이 업거든 길히나 젼하리야. 다만 한 청려장(靑藜杖)이 다 므듸어 가노매라.
그렇습니다. 가을철 벼를 벨 때쯤에는 집게발에 털이 숭숭난 커다란 민물게들이 벼논으로 슬금슬금 올라오지요. 내 치기어린 중학교 시절, 지금은 세종 특별자치시가 된 당시 궁벽한 시골의 한 중학교를 다닐 때 그것도 3학년이랍시고 학교 근처 하숙집에서 하숙을 할 때 같은 곳에서 하숙을 하시던 선생님들이 솜방망이에 기름 묻혀 불붙여서 금강변 모래밭, 볏논으로 게 잡으러 가는 것을 따라 갔었지요. 난 게잡이는 뒷전이고 달은 왜 그리 환장하게 휘영청 밝고 금강변 백사장 모래는 달빛에 어찌 그리 휘황하던지. 뜬금없이 맘속으로 그리던 단발머리 그 여학생이 생각나 일행과 동떨어져 달빛 철렁이던 백사장을 혼자서 하염없이 걷던 생각이 납니다. 에라이 빙신.
얘기가 또 옆길로 흘렀네. 동기모임 카톡방에 9월 30일 곰배령 공지가 떴습니다. 이제 될 수 있으면 떼산행은 민폐가 될까봐 피하기도 하거니와 홀로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져야겠다는 생각에 산행도, 둘레길도 혼자가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번 곰배령은 욕심이 생겼습니다. 한주일 전 오지중의 오지 경북 봉화의 안동권씨 세거지인 봉화읍 닭실마을에서 자고 V트레인, 분천역에서 승주역까지 협곡열차를 탄 감동이 아직 남아 있기도 했구요. 사실 아직 현직일 땐 이렇게 황금 같은 긴 연휴를 미리 여행 계획 세우지 않고 맞이하진 않았겠지요. 하지만 이제는 굳이 연휴가 아니라도 얼마든지 휴가처럼 쓸 수 있는 시간들이 있는 백수처지엔 반가운 일정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내 대간길에 스쳐 본 곰배령은 그닥 어려운 코스도 아니고요. 청정한 자연은 어느 곳보다 괜찮을 것이기도 해서요. 월드 관광여행사 버스를 복정역에서 승차. 동기들 13명과 갑니다. 아침을 먹고 왔지만 여행사에서 준비해준 시루떡이 너무 따끈따끈하여 좀 먹습니다. 조침령 터널지나 곰배령 주차장. 백두대간 할 때 한계령에서 내려오다 단목령까지 오지 못하고 오색으로 하산하여 나중 조침령에서 단목령까지 땜빵 산행하고서 내려 왔던 그곳입니다.
10시 30분 출발, 곰배령엔 어느덧 단풍이 들었습니다. 12시 곰배령 정상. 조망이 좋습니다. 고개 정상이니 바람이 시원합니다. 천상의 화원은 과장된 수사이고요 특히 가을이라 야생화가 그리 많진 않습니다. 바람이 좀 세서 쟈켓을 입고 인증샷을 합니다.
문득 김수영의 풀이 생각납니다.
풀이 눕는다.
비를 모아 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람보다 늦게 울어도
바람보다 먼저 웃는다
날이 흐리고 풀뿌리가 눕는다
이게 전문이 맞나 모르겠네. 전망대 조금 지나 각자 싸온 음식을 펼치니 성대한 오찬장이 마련됩니다. 오후 1시 출발하여 2시 40분 곰배령 주차장. 3시간 반 남짓한 즐거운 산행이었습니다. 3시 좀 넘어 주차장에서 10여분 내려온 나무꾼과 선녀라는 식당에서 산채 비빔밥을 먹습니다. 싸온 음식 먹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또 밥을 먹으려니 좀 부담스럽지만 맛이 좋습니다. 게다가 맛있는 도토리 묵과 감자전. 돌아오는 길은 하나도 막히지 않았습니다. 산악회 총무도 이렇게 안 막히고 일찍 와 보기는 처음이랍니다. 복정역 하차 지하철로 집에 오니 7시 좀 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