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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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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무의 조선사 해설 병자호란(丙子胡亂)은, 재해설(再解說)되어야 한다 <No.2>
문 무 추천 2 조회 696 15.03.24 20:13 댓글 14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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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15.03.25 21:11

    첫댓글 위의 연행록(연도기행...)을 보니 당시의 상황이 눈에 보이는듯 애잔한 마음뿐이네요.....

    나는 홀로 임금을 모시고 서울로 돌아와서 북쪽으로 요동산을 바라보니....
    여기서도 북쪽이라 했으니 반도사관에의한 왜곡방향이라 생각할수도 있겠으나 제 판단은 사실일 것입니다. 즉 서안에서 바라보았을 때 대략적 방향은 북쪽이라는 것이죠...
    갈로(羯虜)의 남침(南(侵) ; 병자호란 (조선 내부 반란인데 여진족의 침입으로 덮어 씌웠다고 생각할수도 있으나 일단 여진족의 침입으로 보고...)은 분명 북에서 남으로 전개된 것은 사실일 것입니다.

  • 15.03.25 21:15

    <나랏일에 바빠 해마다 북쪽길을 가게되니 ...(年年北征)> ,< 북쪽으로 압록을 건넌 것이 열한번이나.....> <北使;북쪽사신>등등 ; 여기에도 北征으로 나옵니다.

  • 15.03.25 21:16

    무관(武關)에서의 볼모상태에서는 비록 풀려났으나 성사(星槎)의 행차는 오히려 빈번해젔다... 사신들이 타고다니는 선박이 빈번하다 하니 연도중 적어도 일부 구간은 수로가 있습니다. 이것도 중요하죠...

  • 15.03.25 21:18

    그런데 위 연도기행의 저자인 인평대군이 무관(武關 ; 현 섬서성 상현..?)에 볼모로 잡혀있었다는 것이 이상합니다. 반도사관이라면 지금의 심양 정도가 적절한데 그곳에 무관이 있을리 없고 1640~1656까지 압록강을 열한번 건넜다 하니 섬서성 상현까지 갔었을 시간적 여유도 없습니다. 현 서안이 북경(연경)이라면 또 모를일이나 역시 어려운 설정입니다. 따라서 지금의 관중주위에 있다는 사대관문의 명칭은 왜곡이동된 명칭으로 보아야 하고 본래는 연경 주위에 사대관문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 15.03.25 21:22

    특이한 것은 동관(潼關)입니다. 연행노정중에 동관역(東關)이 있는데 대부분의 연행록에는 東關으로 나오나 농암집, 목은시고, 삼탄집 등 개인문집에는 潼關으로 나옵니다. 물론 지금의 황하변의 동관을 읊은 것도 아니고 함경도 종성(반도사관)의 동관을 표현한것도 아닌 연행노정중의 영원성과 산해관 사이의 동관을 읊은 것입니다. 황하변의 동관과 지금의 함경도 종성의 동관은 왜곡 이동된 것이고 지금의 영원성(싱청시)와 산해관(친황땅오)사이의 동관도 본래의 위치에서 이동된 것으로 생각됩니다.

  • 15.03.25 21:23

    동관〔潼關〕
    한밤중에 동관역에 도달을 하매 / 夜到潼關驛
    성문 쉽게 열어주려 하지 않누나 / 城門不肯開
    말 세우고 오랫동안 서성이면서 / 徘徊立馬久
    고개 들어 삼태성을 바라보누나 / 擧首望三台<삼탄집 제8권>

  • 15.03.25 21:33

    환국한 여인, 즉 환향녀(還鄕女)이야기가 나오는데, 연행록에 보이는 환향하(還鄕河)와 별개의 일일까요..? 반도사관에 의하면 별개의 일입니다.
    <환향하는 ~~중략~~ 모든 물들이 모두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데 이 물만이 서쪽로 흐르기 때문에 세상에서 ‘고향에 돌아가는 물[還鄕河]’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송 휘종(宋徽宗)이 원(元)에 납북되어 갈 때 이 환향하 다리를 지나다가 말을 멈추고 사방을 슬픈 표정으로 돌아보며, ‘여기를 지나면 큰 사막이 가까워 오는데 나는 어떻게 이 물처럼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하고, 먹지도 않고 갔다 해서 ....<계산기정>

  • 15.03.25 21:35

    여기서는 모든 물은 동쪽으로 흐르는데 이 물은 서쪽으로 흐른다하고 물따라 내려가면 고향이라는 것인데 여기서의 동서 방향은 믿을수가 없습니다. 기존의 사관대로라면 동쪽에 큰 사막이 가까워 온다는데, 현 요동, 요서가 사막은 아니죠...그렇다고해서 현 천산 서쪽이 송 휘종(宋徽宗)의 나라라면 얼핏 맞는 듯 보이나 천산 동쪽이 금나라가 되니 모순됩니다.
    제 판단은 방향의 왜곡이란 것입니다. 즉 본래는 환향하가 남북으로 흐르는데 지금의 역사구도와 지형지리에 맞춰 동서로 바꿔놓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 15.03.25 21:38

    청음 김상헌의 글에 ....' 二年沙漠 二年灣' 은 그의 詩 ‘가노라 삼각산아...’ 와 관련하여 중요한 말이라 생각 됩니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져 하랴마는
    시절이 하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위의 시를 지은 곳이 어디일까.....?’ 를 생각해 봤습니다. 반도사관에 의하면 삼각산은 서울 북한산이니 당연히 지금의 서울에서 시를 짓고 의주인 용만까지 가서 그곳에서 2년을 보내다 압록을 건넜다 하겠죠...그런데 의주에서 2년을 보낸동안은 고국산천을 떠난 것은 아니니 위의 詩가 조금은 뻘쭘합니다.

  • 15.03.25 21:41

    그러나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에서 보듯이 떠나기 바로 직전에 한수 남기고 떠났다고 생각하는 것이 더 자연스럽습니다. 삼각산과 한강수가 한양에 있을것이란 생각은 고정관념일수 있지 않을까요... 제 생각은 삼각산과 한강수는 의주에 있으며 김상헌은 용만(의주)에서 약 2년 머무르다 드디어 북으로 떠나가려니 착찹한 심정에 위와같은 시를 남긴 것으로 생각됩니다.

  • 작성자 15.03.26 20:55

    예! 좋은 의견과 일부 주장에 동감합니다. 소소한 지명이나 하천, 산등에 너무 얽매이다 보면 큰 것을 놓칠 수 있다는 것에, 소소한 것들에 대해서는 일단 뒤로 미뤄 놓았습니다. 대략적인 조선의 그림을 그려 놓고, 그 안에서 소소한 지명들의 위치등을 고려 해 보려고 하는 것입니다. 많은 성원과 관심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며,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 15.03.29 12:35

    병자호란은 어떤 정치적인 사건을 근거로 조작된 이야기라고 봅니다. 이것또한 모두다 한반도 조선사를 만들기위한 것이죠. 원래 조선이 청인데 이것을 분리해내기위해서 만들어진 사료라고 생각합니다. 대표적으로 의복을 예로들면 쉽게 이해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즉 서북인들이 정권을 장악한 사건을 각색해서 병자호란 이라는 작품을 만든것으로 보입니다. 조선의 몇가지 회화나 그림을 근거로 유추해보면 대략 역사적인 사실이 드러납니다.

  • 작성자 15.03.29 12:55

    대부여님!
    좋은 의견같습니다. 조선역사의 진실을 알려 한다면, 발상전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1) "청"은 조선의 일개 제후의 나라였다 (2) "청"은 가공의 나라로 조선 서북계열의 정권 (3) 그러나 반도사관=식민사관으로 "청"은 황제국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식민사학의 주장에는 많은 모순이 있으며, 이러한 모순에 대한 상식적인 설명은 불가능합니다. 재야에서 묵묵히 조선사를 위해 수고하시는 분들이 있으므로 해서, 조선왕조의 정체가 드러 날 것이다라고 믿습니다. 성원과 관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길 빕니다.

  • 15.03.30 09:19

    압록강에서 한양이 지금 거리로 4-500 km 인데 무장한 겨울복장의 보병이 5일만에 주파를 할 수는 절대 없죠.
    잠실에서 임진각까지 65km 를 1월 맹추위에 극성맞은 300여 마라톤 동호인들과 빈 몸으로 달려는데도 10시간(아침 8시 -오후6시: 점심도 달리며 빵과 바나나 정도만, 관광버스로 돌아 오는 길에 모두 넉다운)이 걸렸는데,4-5일을 밥해 먹으며, 무기, 식량까지 지고 하루 100km 를 달린다는 것은 상상도 못하죠.그것도 10만대군이...???
    파발마 혼자라면 모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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