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미술관
즐거운 나의 집
Home, Where the Heart is
~ 2015. 2/15
대학로에 자주 가는 편이라서
아르코미술관 새 전시는 꼭 챙겨보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항상 멘붕을 주거나
너무 어렵게만 느껴졌던 아르코미술관 ㅜ
하지만! 간만에!
아기자기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전시를 기획했더군요.
제1전시실 - 살았던 집
제2전시실 / 아카이브 라운지 - 살고 있는 집
제3전시실 (스페이스 필룩스) - 살고 싶은 집
아르코미술관 전시실을 전부 사용한 큰 전시였습니다.
쉽게 느껴지는 주제여서 일까요?
아르코미술관에 이렇게 많은 관람객이 모이다니!
도슨트랑 둘이서 전시관을 돌던 기억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에는 관람객들이 떼지어 도슨트를 따라다니는 진풍경까지.
a: 요즘은 신보다 더 무서운 것이 전세금 올려달라는 집주인이래요.
b: 그러게요. 신은 내 마음에 안정을 주지만 집은 내 몸과 마음에 안정을 주니까요.
a: 신은 보이지 않지만 집은 보이니까요.
b: 집은 보이지만 마음은 보이지 않는 것과 같은 걸까요?
이런 이야기를 나누면서 대학로에 도착해서 전시 포스터를 보니..
이런 문구가 따악!
Home, Where the heart 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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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전시실 - 살았던 집
전시 동선이 우리의 생활과 같습니다.
집에 도착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거실이 있고
부엌이 있고
화장실이 있고
침실이 있고..
힘든 하루가 끝나고 집으로 가는 길
깜깜한 현관문
내가 현관문 앞에 서면
"어서 와~ 오늘도 수고했어."
현관 앞 전등 센서가 가장 먼저 위로해줍니다.
6월 삼청동 벙개쳤을 때
갤러리현대에서 보았던 정재호 작가의 작품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 때 함께 했던 우미갈들이 갑자기 보고 싶어졌습니다.
맛있는 식사 한 끼 함께 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지..
돈까스를 보면 돈까스를 좋아하던 사람이 생각나고
향긋한 커피향을 맡으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고
인사동 사과나무 레드락을 마시면 생각나는 얼굴들이 있고..
다들 지금 어디에서 2014년을 마무리하고 계신가요?
재떨이 위 꺼져가는 담뱃불의 연기
"건강을 생각하시라구요!!"
딸의 등쌀에 집에서 담배도 피우지 못하시던 아버지 생각에 갑자기 울컥 ㅜㅠ
옥상에 서서 건너편 집을 바라보듯이
삐걱거리는 철제 계단을 올라가면
칸막이 너머 옆 공간을 볼 수 있습니다.
잘~ 보라고 망원경까지.
아주 잘~ 보입니다. ㅎ
다양한 화장실들
변기 뚜껑이 닫혀있다가
사람이 지나가면 뚜껑이 저절로 열립니다.
물 내려가는 소리도 나구요. ㅎ
뭐 이런 럭셔리한 화장실이..
이런 화장실에서는 일부러 변기에 오래 앉아있을 듯 합니다.
화장실에서는 짧게 볼일을 보라면서 이렇게 좋게 만드시면 어찌합니까!
침실
에어 큐션이 빵빵한 침대에 누워서
바닷가 풍경도 동영상으로 보고
밤하늘도 동영상으로 보고
그냥 大字 누워서 좀 쉬고 싶습니다.
문성식 작가의 어린 시절 고향집
김천의 동네 풍경
이웃들 모습
낚시터 오른쪽 구석을 자세히 보시면 두 사람이 보입니다.
낚시하는 아버지와 아들
낚시하는 아버지와 옆에서 얌전히 서 있는 아들
서로 말은 없지만 같은 곳을 보면서 같은 생각을 하고 있겠지요.
아마도 동네 어른이 돌아가셨나 봅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문상왔습니다.
왼쪽 구석의 여자를 자세히 봐주세요.
제 기억과 겹치는 부분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씩씩하게 살아가지만
이렇게 돌아앉아서 많이 울었습니다.
빨래를 널다가
연못을 보다가
다리 힘이 풀려서 앉아서 멍하니 있던 기억들
울고싶은 마음으로 그림을 보다가
그림 속 여자랑 저랑 머리 모양이 같아서
훗 웃어버렸습니다.
그림 아랫부분은 닭 잡는 모습입니다.
문성식 작가처럼 김천이 고향인 제 친구는
어릴 때 닭을 잡으려고 목을 칼로 내리쳤는데
목이 잘린 닭이 날아갔다는
무서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
제2전시실로 올라가는 계단에
김승현 작가의 작품인 캐리어가 두 개 있습니다.
스무살부터 여기저기 이사다니면서 혼자 살아왔던 작가는
자신에게 가장 중요한 물건들을 두 개의 캐리어에 담고
나머지는 상자에 넣어서 옮겼다고 합니다.
자세히 보면 캐리어 안에 기차가 돌아다닙니다.
같은 길을 같은 시간에 같은 속도로
정해진 대로 움직여야만 하는 기차의 운명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시간표에 따라서 일을 하고 퇴근하는 저와 같습니다.
이렇게 삶은 계속 됩니다.
내년에도 그렇겠지요..
나에게 두 개의 캐리어가 있다면
이사갈 때 무엇을 넣을 것인가?
잃어버리면 안되는 소중한 물건은 무엇인가?
한 번쯤 생각해 보면 좋을 듯 합니다.
제2전시실 - 살고 싶은 집
문과생인 제가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그래프 입니다.
세상에서 수학이 가장 싫었던 학생이 접니다.
좌표. 수식. 통계. 계산. 소득. 이자율. 소득수준...&&
복잡한 계산식을 도슨트가 설명하기 시작할 때 슬쩍 옆방으로 =3=3
이런 숫자들을 수학과 나온 지코님은 이해하겠지..
수학 잘하는 디아인님이랑 히싸님은 재미있어라 하겠지..
나는 수학 못해도 직장 생활 잘하고 있거든!!
못난이처럼 혼자 중얼중얼 툴툴툴툴..
아카이브 라운지
헤드폰을 쓰고 짧은 비디오 작품을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작은 부스가 몇 개 있는데
딸이 태어나고 자라는 모습을
Over the rainbow 배경음악으로 보여주는 비디오가 가장 좋았습니다.
故 전몽각 교수의 사진집 '윤미네 집'
어릴 때 어머니가 머리를 빗겨주시는데
자꾸 꼼지락거린다고
등판을 따악 맞았던 기억
아파서 눈물이 쏘옥 났던 기억이 불쑥.. ㅎ
제3전시실 - 살고싶은 집
집을 주제로 한 많은 책들이 전시
슬라이드, 비디오 작품들
볼 것이 다양합니다.
'월든' 부터 '빨강머리 앤'까지.
전시가 정말 마음에 들어서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전시실 출구 앞 설문지를 작성했습니다.
전부 '매우 만족'
별 다섯 개 만점 ^^
ps)
전시장 구석구석에 있는 메모지를 꼭 읽어보시길.
한 장씩 뜯어오셔도 됩니다.
이런 글들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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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감정이라 부르던 어떤 것.
우리의 취향이라 부르던 모든 것.
일일이 나열하지 않아도 되었던 모든 것.
일일이 말하지 않아도 되었던 어떤 것.
거실에는 어떤 모든 것이 있다.
거실의 모든 것
이제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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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이보다 더 하는 일 없이 더 오래 머물러 있는-
그나마 하는 일조차도 대개 조용하고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 뿐인-
장소가 집 안에 또 있을까?
거의 모든 사생활의 역사
빌 브라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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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부엌이다.
그것이 어디에 있든,
어떤 모양이든,
부엌이기만 하면,
음식을 만들 수 있는 장소이기만 하면
나는 고통스럽지 않다.
키친
요시모토 바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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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집에는 늘 불안한 바람이 삐걱이고
기억의 집에는 늘 불요불급한
슬픔의 세간살이들이 넘치고.
살아있음의 내 나날 위에 무엇을 쓸 것인가.
무엇을 더 보내고 무엇을 더 빼야 할 것 인가.
자세히 보면 고요히 흔들리는 벽,
더 자세히 보면 고요히 갈라지는 벽,
그 속에서 소리없이 살고 있는 이들의 그림자,
혹은 긴 한숨소리
기억의 집
최승자
첫댓글 리뷰를 너무 잘써주셔서 꼭 다녀온것같은 기분이.. @@ 2월까지네요 가까우니까 한번 다녀와야겠어요^^ 아 그리고 중간에 수학얘기 나오면 툴툴거리는 아니타님 모습 너무 상상되서 혼자 피식ㅋ
우리는 강북사람들~ 아르코 꼭 가보세요~
히싸님은 2층 전시를 이해하면서 재미있게 볼거라고 믿습니다! ^^
아르코미술관도 정말 큰맘 먹구 가야되는데.. 아니타님 후기 너무 좋네요ㅎㅎ 가고싶게ㅋㅋ 저는 아니타님 훨씬 부러워요ㅋㅋㅋㅋ
대학로 오면 연락주세요. 대학로 맛집 지도는 전부 내 머릿속에. ㅎ
수학만 잘했으면 인생이 바뀌었을거라고 지금도 믿는 문과생이 바로 나.
수학을 전공하다니 믿을 수 없는! 상상할 수 없는 능력의 소유자 지코님. ^^b
메모지 박완서 글
밥 짓는 냄새라... 글 정말 좋습니다. 역시 문과계의 거성 이십니다. 따뜻하고 잔잔한게~ ^^
@창희 잔잔하고 편하면서 힘이 있는 글. ^^b
이문재 글
이오덕 글
역쉬 멋진 후기! 토욜에 급하게 약속있어서 대학로 갔었는데요 아르코 못 들린 게 속상하네요.ㅜㅠ담번에 꼭 시간내서 가겠다고 이 연사 소리높여 외칩니다!!!!^^**캄사♥
정말 맘에 드실거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