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권 화엄경 보현보살의 행원
<운허스님 초역>
보살 마하살들이여! 비유하면 넓은 벌판에 큰 나무가 있다.
나무의 뿌리가 물을 만나면 잎과 꽃이 피고 열매가 무성히 열린다.
죽고 나는 일은 넓은 벌판에 서 있는 나무도 그와 같으니라.
그리하여 일체 중생은 나무와 뿌리는 같은 몸인 것처럼 부처님과 보살들은 잎과 꽃과 열매와 같으니라.
대자대비의 물로 중생을 요익하게 하여 부처님과 보살들의 지혜의 꽃과 열매를 이루게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보살들이 대자비의 물로 중생을 요익하게 하고 깨달음을 성취하게 하느니라.
그러므로 깨달음은 중생과 한 가지이니 만일 중생이 없으면 일체 보살이 마침내 정각을 이루지 못하느니라.
선남자 선여인들이여! 중생들의 마음은 본래 평등한 이치인 고로 원만한 대비심을 성취하는 것이며 대자비심을 이룬 고로 부처님께 공양함을 성취 하나니라. 보살의 대자비심이란 중생이 끝나고 중생의 업이 끝나더라고 중생을 수순하는 법은 끝나지 아니함이니라.
또 선남자 선여인이여! 내가 지은 선근(善根)을 모두 회향한다는 것은 처음 부처님께 예경하는 것으로부터 게으르거나 싫어하는 마음을 내지 않고 부지런히 닦으며 중생을 수순하는 것까지 모두 하나도 빠지지 않고 법계와 허공계 일체중생에게 회향하는 것이 빠짐이 없는 공덕을 이루는 것이니라.
백장야호
不落因果 不昧因果
백장회해스님(749~814)이란 대 선사가 있었습니다. 육조헤능. 남악회양. 마조도일. 백장회해 스님입니다.
그중에서 뛰어난 조사가 있는데 백장선사입니다.
일화 중에 “일일부작이면 일일 불식”이라는 말은 일반 사람들도 다 알고 있습니다.
오늘은 당나라 때 스님을 제가 이 자리에 모시겠습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우리들에게 소중한 법문을 하시었기 때문입니다.
스승인 마조도일(馬祖道一/709-788)은 늘 하시는 말씀이 '평상심시도(平常心是道)이니라 하시었습니다. 평상심이 무엇인가를 오늘 여러불자님들에게 문제를 드렸습니다.
평상심이 무엇일까요?
평상심이 무엇인가 하면 곧은 마음이며 본성을 잃지 않는 마음입니다.
마조도일은 평상심이 도라는 말씀을 하시었습니다.
도가 뭐냐하면 평상심이 도라 하였으니 진리입니다.
하루는 마조스님이 참선을 하고 있는데 회양선사가 물었습니다.
그대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좌선을 하고 있습니다.
회양 스님이 질문을 던졌습니다. 좌선해서 무엇하게?
“부처가 되려고 합니다.”
“좌선을 한다고 부처가 되겠는가?”
마조 스님이 그 말을 듣고도 아무 말이 없으니 남악회양 스님이 다시 말했습니다.
“그대는 좌선을 위하여 앉아있는가? 부처되기를 배우는가?”
“만일 선을 배운다면 앉아있는 가운데 있지 않다.”
“만일 앉아있는 부처를 배운다면 부처는 상이 아니다.”
“법에 머물지도 말고 취하지도 말라. 좌선도 부처 된다는 생각도 다 집착이니라.”
“스승님 그러면 어떻게 마음을 써야 무상삼매(無相三昧)에 합당하다 할 수 있습니까?”
이때 회양선사는 이렇게 법문을 하시었습니다.
“너는 평생 앉아있는 연습만 할 것인가?”
“이제 잘 들으라. 만일 네가 나의 심지법문(心地法門)을 듣는 것은 너의 마음의 땅에 반야지혜 종자를 땅에 심는 것과 같으며, 내가 법을 설하는 것은 하늘에서 비를 뿌리는 것과 같으니라. 인과 연이 서로 합하면 깨달음의 도를 보게 되리라.”
“도는 빛이나 형상이 아니거늘 어떻게 본다 하십니까?”
나의 게송을 잘 들어라.’
심지함제종(心地含諸種) 마음은 모든 종자를 머금어 있음이라
우택실개맹(遇澤悉皆萌) 마른 땅에 비를 만나면 모두 다 싹을 틔 우는 것과 같나니
삼매화무상(三昧花無相) 선정삼매란 형상이 없음이라.
하괴부하성(何壞復何成) 무엇을 이루지 못하고, 무엇이 이루어지랴.
*이 말씀은 부처님께서 이미 다 이루어 마치셨다는 말씀입니다.
백장 선사의 불락인과不落因果 불매인과不昧因果
후에 백장선사는 마음이 곧 부처라는 이치를 깨닫고 한 회상을 차리고는 만나는 사람마다 ‘평상심이 道’라 가르치셨습니다.
백장선사가 매번 법문을 할 때마다 한 노인이 법당 끝자락에 앉아서 법문을 듣고 가기를 여러 번 하는 것입니다.
그러더니 하루는 백장선사의 깨달으면 인과에 ‘昧하지 않는다’는 법문을 듣고는 찾아왔습니다. 방장실에 와서 묻는 것입니다. 저는 500생 전에 이 산중의 주인이었습니다. 즉 주지였다는 뜻입니다. 하루는 선객이 묻기를 “깨달은 도인도 인과를 받습니까?” 하고 물어와 내가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고 말을 하는 바람에 여우 몸을 받아 500생 동안 살아왔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백장선사가 “나에게 똑같은 질문을 하라” 하였는데 노인이 “깨달은 도인도 인과를 받습니까?” 하니 백장선사가 답하시기를 “인과에 昧하지 않습니다.” 하고 답하였습니다. 昧란 미혹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노인이 말합니다. 방장스님께서 내일 아침에 저 산위 골짜기 언덕 바위에 여우 한 마리가 죽어 있을 것입니다. 스님께서 비구승의 예로 저를 장례 지내 다비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하고 노인은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다음날 백장선사가 수좌들을 데리고 산골짜기에 가니 정말 바위위에 여우 한 마리가 죽어 있더랍니다. 그래서 스님의 예를 갖추어 다비했다고 합니다. 『전등록』에 있는 말입니다.
*설화 같은 이야기지만 이것은 사실이라 생각합니다. 깨달은 이의 눈에는 모든 것이 훠히 보이기 때문입니다.
하여간 백장 선는를 늘 선원 수좌들과 매일 오후에는 밭에 나가 밭을 일구고 콩도 심고 채소를 가꾸어 대중의 식량에 보태었습니다.
- 백장선사의 일일부작 일일불식
거슬러 올라가면 마조 선사는 바로 신라스님 정중무상(634~734) 선사의 후예였습니다. 정중무상 스님은 신라 성덕왕 셋째 아들입니다. 일찍이 출가하여 46세에 당나라로 건너 갑니다.
그리고 오조 홍인의 제자 지선 선사였는데 정중무상는 지선선사의 제자 처적에게 사사 하기를 바랐지만 받아 주지 않아 지선선사의 제자가 되는데 처적은 스승이면서 법형제 이기도 합니다.
후에 신해가 마조선사를 슬쩍 남악혜양 선사 아래에 끼워 너었다고 합니다. 마조는 무상 선사가 매일 일일부작이면 일일 불식이라는 것을 수행의 근본으로 삼아 수행하였다고 합니다. 후에 그의 제자 심행이 한 말입니다.
지금의 사천성 성도에는 당시의 시민들이 모두가 무상선를 따랐습니다.
<세상 이야기>
옛날 鄴이란 땅의 나라가 있었다.
중국 춘추 전국시대 서문표라는 정치가가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무당들과 사기꾼들이 판을 치던 때였습니다.
서문표는 장로(長老)들을 불러놓고 백성들의 괴로움이 무엇인가를 물었다. 한 장로가 말했습니다. "황하강의 신 하백(河伯)에게 신붓감을 바치는 일로 괴로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하백이란 강의 신으 말한 것입니다. 업의 삼로(三老·관리)와 아전(하급 관리)들은 해마다 백성에게 세금을 거두어갑니다. 거둔 수백만 전 중에서 하백에게 신붓감을 바치는데 20만~30만전을 쓰고, 그 나머지 돈은 무당들이 나누어 가집니다. 무당이 돌아다니면서 어려운 집안 딸 중에 아름다운 처녀가 있으면 ‘하백의 아내가 될 것’이라며 데려갑니다. 10여 일 뒤 여자의 이부자리와 방석을 만들어 여자를 그 위에 앉힌 뒤 물에 띄워 보냅니다. 처음에는 떠 있지만 수십 리를 가면 물에 가라앉고 맙니다. "
신 모신다며 백성 죽음으로 몰아가는 세상입니다. 사실 고령가야 무덤에 가면 순장한 흔적은 많이 있습니다. 그 시대에 사람의 지적 수준은 그정도 입니다. 괴롭히는 무당들이 하백을 모신다며 해마다 마을의 딸들을 희생시키고 있었다. 딸 가진 집들은 큰 무당 눈에 띌까 두려워 딸을 데리고 멀리 도망을 갔습니다. 갈수록 사람이 줄고 가난해 지고 있었지만, 무당들은 계속 "하백에게 신붓감을 바치지 않으면 물이 넘쳐 백성들이 죽을 것"이라고 겁박하였습니다.
서문표는 장로들에게 말했습니다.
“하백을 위해 신붓감을 바칠 때 나도 참석하여 처녀를 전송하겠소이다."
마침내 그날이 왔습니다. 삼로와 아전, 유지들과 마을의 원로(나이든 어른)가 모두 모였고, 구경하러 온 백성이 2000~3000여 명이었습니다. 두령 무당은 이미 일흔이 된 늙은이었습니다.
서문표가 말했습니다.
“하백의 신붓감을 불러오너라. 아름다운지 직접 확인하도록 하겠다.”
무당 제자들이 처녀를 장막에서 데리고 나왔는데, 서문표가 얼굴을 찌푸리며 무당과 삼로와 마을의 원로들에게 일렀습니다.
“이렇게 못생겨서야 하백이 기뻐하겠소? 수고스럽겠지만 큰 무당 할멈이 직접 하백에게 직접 가셔서 오늘은 안되니 다시 예쁜 처녀를 구해 보내드린다고 전하시오.”
서문표는 곧바로 군사를 시켜 큰 무당 할멈을 강물에 던져버렸다. 지켜보는 사람들이 모두 대경실색했지만 서문표는 개의치 않았다 “무당 할멈이 어째 오지 않고 이렇게 지체한단 말인가? 제자들이 대신 가서 소식을 전해야겠구나!” 군사를 시켜 제자인 새끼 무당 하나를 강물에 던졌다. 조금 있다가 또 말했다. “제자란 무당도 어찌 이리 시간을 허비하느냐 이렇게? 다시 제자 하나를 보내 하백에게 사정을 전하도록 하라!” 서문표가 입을 열 때마다 무당들이 한명씩 강으로 던져졌는데, 돌아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고 합니다.
서문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무당이 사정을 알아오기 어려운 것 같소, 삼로들께서 들어가 하백에게 알리라”며 이번엔 삼로를 강물 속에 던졌다. 그리고 다시 아전과 고을 유지들을 지목해 한 사람씩 강물에 던져버렸다. 겁에 질린 이들이 모두 머리를 조아려 저희들이 잘못했다고 비니 비로소 멈췄다고 합니다.
그 이후로 업 땅의 아전과 백성들은 다시는 백성을 괴롭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사마천의 사기 골계열전(滑稽列傳)에 실린 일화입니다.
아직도 이 땅에 사는 국민을 혹세무민하고 막무가네 인간들이 있습니다. 법이란 것을 만들어 국민을 옥죈다면 이것은 한강물이 요동칠 것 아닌지 생각해 봤습니다.
웃기는 법 하나 소개합니다.
기분 나쁘게 처다보면 안 되는 법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청와대 청원글로 기쁜 나쁘게 봐서 정말 기분 나빴다. 그 뒤로 35만 명이 옳소 하니까 법을 만들었습니다. 사람을 기분 나쁘게 처다보면 벌금을 물게 되었지요, 그래 지금 안경점에는 선글라스가 잘 팔린답니다.
불기2565년 8월 초하루
세존사 회주 장산스님의 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