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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發心修行章> 발심수행장 芬皇寺沙門 元曉 述 분황사사문 원효 술 |
夫 諸佛諸佛이 莊嚴寂滅宮은 於多劫海에 捨欲苦行이요 부 제불제불 장엄 적멸궁 어 다겁해 사욕 고행
무릇 모든 부처님들이 적멸궁을 장엄하심은 여러 겁의 바다에 욕심을 버리고 고행을 하기 때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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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들은 욕심을 버리고 수행을 하셨답니다.
衆生衆生이 輪廻火宅門은 於無量世에 貪欲不捨니라 중생중생 윤회 화택문 어 무량세 탐욕불사
여러 중생들이 번뇌에 불타는 집에서 윤회를 거듭하는 것은 한없는 세상에서 탐욕을 버리지 않기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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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중생들이 윤회를 벗어나지 못하고 두레박처럼 오르내리는 것은 수많은 생에 거쳐 결국 탐욕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래요.
無防天堂에 少往至者는 三毒煩惱로 爲自家財요 무방천당 소왕지자 삼독번뇌 위자가재
(오지 말라고) 막지 않는 천당에 가는 사람이 적은 것은 삼독번뇌로 자기 집의 재물을 삼기 때문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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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말해서 오라고 하는데도 천당에 안 오는 이유는 계정혜가 아닌 삼독번뇌로 재물을 삼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無誘惡道에 多往入者는 四蛇五欲으로 爲妄心寶니라 무유악도 다왕입자 사사오욕 위망심보
(오라고) 유혹하지 않는 악도에 가는 사람이 많은 것은 네 가지 뱀과 다섯 가지 욕심으로 망령되이 마음의 보배를 삼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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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도에 오라고 꾀지 않아도 많이 간답니다. 그 이유는 ‘사사오욕’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을 드렸습니다. ‘사사’는 지수화풍의 사대(四大)를 말합니다. 없어질 몸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안으로는 썩어 없어질 몸에, 밖으로는 재색명리식수를 보배로 삼는 사람이 가는 곳은 악도입니다.
人誰不欲歸山修道리요마는 而爲不進은 愛欲所纏이니라 인수불욕 귀산수도 이위부진 애욕소전
어떤 사람인들 산에 들어가 도를 닦고 싶지 않겠는가마는 가지 못하는 것은 애욕에 얽혀있는 때문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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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산에 들어가 도를 닦고 싶어 한다, 즉 구도심이 있다는 것입니다. 서점에 가면 그런 책을 뒤적이는 사람들도 많고 법정스님도 인기가 많습니다. 그러나 애욕에 얽혀있어서 더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번 성지순례에 가지 않은 사람들도 이것입니다. 공부한다고 안 간 사람, 가기 싫다고 안 간 사람, 피곤하다고 안 간 사람, 어쩔 수 없이 가고 싶어도 못 간 사람, 가서도 괜히 왔다는 사람 등 다양합니다. 전생의 업력, 무지, 욕심, 가난으로 못 간 사람도 있습니다.
‘애욕’이라는 말에는 나태심, 대중과 함께하려는 마음 등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서원이 없다는 뜻도 됩니다. 먹고사는 일, 직장 등에 가치 우위를 두는 등 가치관이 다른 것입니다. 환자인데도, 잘 걷지도 못하는데도 가는 교도들이 있는 반면 인연관리, 박사학위를 따려고, 가족이 중요하다며 안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然而不歸山藪修心이나 隨自身力하여 不捨善行이어다 연이불귀 산수수심 수자신력 불사선행
산에 들어가 마음을 닦지는 못하나, 자신의 힘을 따라 선행을 버리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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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깊은 산에 들어가 수도를 하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이 있는 사람은 다를 것입니다. 마음만 있다면 핑계대거나 합리화하지 않고 오히려 못 가는 것을 미안해하며, 형편에 따라 희사를 할 수도 있고, 집에서 기도를 하거나 초기교사도 읽을 수 있습니다. 성지순례도 안가고 그런 것도 안했다는 것은 ‘사선행’, 선행을 놓아버린 것입니다.
시계가 꺼져서 아침좌선에 못 일어났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물었습니다. “그럼 눈 뜨자마자 했느냐?” 그게 아니라면 그 사람은 시계 탓을 삼은 것입니다. 그러나 눈뜨자마자 좌선을 했다면 ‘수자신력’ 마음의 뜻에 따라 수행을 놓지 않은 것입니다.
自樂能捨면 信敬如聖이요 자락능사 신경여성
자기 자신의 쾌락을 능히 버리면 믿고 공경하기를 마치 성인과 같이 할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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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의 어려움을 능히 버린다는 ‘자락능사’는 참 어려운 일입니다. 나만 생각하고 내 기쁨만을 생각하면 전체를 보거나 공적인 입장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기쁨, 이득, 편안함, 즐거움, 이것을 능히 버려야 합니다. 이기심을 놓고 공심을 발휘하면 대접을 받습니다.
그러나 중생은 자기 것을 놓지 못하고 자기를 챙깁니다. 누구는 죽어라 준비하고 누구는 아침에 갈까 말까 합니다. 사심의 극치입니다. 자기 국한을 넘어서지 못하는 것입니다. 나의 편안함, 나의 이득, 나의 즐거움, ‘귀찮겠다, 힘들겠다, 피곤하겠다’ 하는 생각을 놓아버리는 것은 자기의 국한을 넘어선 것입니다. 이것만 되면 성인과 같은 대접을 받습니다.
難行能行하면 尊重如佛이니라 난행능행 존중여불
어려운 행을 능히 할 것 같으면 부처님과 같이 존중받을 것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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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귀찮으니까, 누가 좀 시비하고 질투하니까 안한다? 흥, 나는 이런 소리들이 듣기 싫으니까 안한다? 어떤 일에도 ‘난행’이 없는 것은 없습니다. 산에다가 묘목을 심는다고 쳐요. 사람들이 거기에다 대고 “뭐해? 그런다고 밥이 나와, 떡이 나와?” 할 것입니다. 그러나 50년, 백 년이 지나면 무서워집니다. 장성에 가면 삼림을 심는 분이 많아요. 지금 자연림을 이루어 관광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에 조성할 때는 미친 데에 돈을 쓴다고 조소가 심했답니다. 하다못해 나무를 심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때 봐서는 웃겼습니다.
영산성지 영모전 앞에 소나무도 멋있죠? 대종사님이 “이것이 보물이 될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눈앞만 보던 사람은 당장의 편리와 달콤함만 바라보았겠죠.
慳貪於物은 是魔眷屬이요 慈悲布施는 是法王子니라. 간탐어물 시마권속 자비보시 시법왕자
물건에 간탐하는 것은 마구니의 자식이요, 자비 보시행은 법왕의 자식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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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니의 자식이냐 법왕의 자식이냐는 탐하느냐 혹은 주고 베푸느냐로 결정된답니다.
여기까지가 지난주에 한 내용입니다.
⇒ 높은 산 높은 바위는 지혜로운 사람이 있을 곳이요, 푸른 소나무 우거진 깊은 골짜기는 수행자가 살 곳이니라.
· 高嶽[고악] : 크고 높은 바위 산 · 峩巖[아암] : 큰 바위 · 所[소] : 동작이나 행위의 대상․장소․수단․원인 등을 나타낸다. ‘~하는 사람(일․물건․곳․건)’등으로 해석한다. · 行者[행자] : 불도를 닦는 사람. ‘수행자(修行者)’의 줄임말. |
‘고악아암’은 큰산 악, 바위 암입니다. 고, 아 자(字)는 모두 높다는 뜻입니다.
‘요산요수’라는 말도 있지요? 산과 물을 좋아하고 즐겨한다는 뜻입니다. 지자요수하고 인자요산한다는 말도 있습니다. 취향이 산과 물, 계곡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고 아니면 롯데월드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녁에 홍대 앞에 가면 난리라면서요?
석가모니불은 6년간 수행했습니다. 인도의 수행은 주로 산속이 아니라 큰 나무나 바위 아래입니다. 그곳은 10분쯤 올라가는 산의 동굴에서 수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깨달음은 큰 나무인 보리수 아래서 깨달았어요. 그러던 것이 중국으로 넘어가면서 변했습니다. 중국은 지형적으로 산이 많죠. 장가계, 곤륜산, 태산 많습니다. 한국이 그런 계통을 전해 받았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의 박해에 쫓겨서 가기도 했지만요.
산으로 가는 것은 인연이나, 여러 가지 욕심과 환경을 벗어나서 마음공부를 하기 위해 환경을 만든다는 의미였습니다. 참 마음을 뺏기지 않는 곳을 찾다 보니 산과 계곡이었습니다. 그런데 마치 일생을 산에서 보내는 것이 잘 사는 것처럼 되어버렸지만 그것은 잘못입니다. 석가모니불도 6년간의 수행으로 깨달음을 얻은 후에는 45년간 탁발하며 돌아다니셨어요.
대종사님도 변산에서 보림함축하며 인연을 모으고 하셨죠. 동정일여입니다. 그리고 그 후에 익산에 오셔서 얼마나 열심히 활동하셨나요.
초반에 공부할 때는 피경을 좀 해라는 것이에요. 원불교 공부하면서 영육쌍전이 빠지면 헛것입니다. 현대사회를 살아가려면 병진해야 합니다. 이것도 단계가 있어요. ‘도학과 과학 병진하라고 했으니 학교 시험 때는 화요공부방은 좀 빠지자.’ 또는 ‘방학에는 훈련보다는 해외봉사가 낫겠다.’ 하는 단계가 있어요. 세속의 가정과 사회에서 나에게 요구하는 것도 있다는 생각을 하며 달려들었다가는 참패합니다.
수행자가 살 곳은 푸른 소나무와 깊은 계곡입니다. 발심해서 견성하기 전까지는 에너지를 뺏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대학 1,2학년에는 해외봉사가 아니라 훈련을 나고, 3,4학년 때는 해외봉사나 연수가 좋겠죠. 그러나 해외 연수는 가고 훈련은 곁다리인 것은 선후와 주종이 바뀐 것입니다. 가치관에 따라서 그런 것입니다.
교무님들도 쉴 때 사가에 머무는 분들이 있고, 훈련원이나 교당에서 머무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엊그제 영산에서 보셨던 교무님들이 다 발령으로 거기서 근무중인 분들이 아닙니다. 거기서 쉬는 분들도 계셨어요. 광수교무님이 거기 있다가 치유가 돼서 이제 곧 일터로 돌아가신다고 합니다. 출가한 교무도 사가에 가면 마음이 약해집니다. 하물며 재가가 반연, 즉 한정 없는 인연의 얽힘 속에서 계속 끌려가게 되어 있습니다.
윤효근 예비교무가 휴학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아버지 농사도 도와드려야 하고, 교무로 나가기 전에 뭘 더 할 것이 있다길래 처음에는 제가 좋게 말했습니다. 그런데도 계속 고집을 부리길래 그러면 아예 나가라, 교무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출가한 사람은 집에 아무 걱정이 없고, 돈도 많고, 형제가 많아서 부모를 부양할 걱정이 없고 해서 출가합니까? 출가한 사람도 가정을 돌아보면 외동딸, 독자들이 많아요. 어떤 집은 자식이 넷인데 다 출가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교당 청년인 남궁부도 집안에 교무님들이 잔뜩 있어요. 남궁 성씨 교무님이 다섯입니다. 핑계를 잡자면 ‘집에 남자가 하나는 있어야지, 어머니가 아프다, 누군가는 벌어야 한다, 출재가 구분이 있나’하며 온갖 반연의 이치를 다 들먹입니다. ‘난 여자가 생겼다, 난 자신이 없다’고도 합니다. 저도 80이 넘은 부모님이 광주에 살고 계십니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일생을 출가하라는 것도 아닌 성지순례 가자는 것도 빠집니다. 대단해요.
이것이 처음에 나왔던 ‘자락불사’입니다. 간사가 엊그제 아버지 생신 때 옷을 가지러 집에 간대요. 저는 간사시절 20개월간 집에 한 번도 못 갔습니다. 이것이 오히려 은혜일 수도 있습니다. 집에 왜 별일이 없겠어요. 세상사 얼마나 일이 많습니까.
이번 성지순례도 ‘애가 아프다, 첫 애다, 잠을 못 잤다’하는 이게 다 반연입니다. 이것은 어떤 것을 가치관으로 삼느냐에 따라 다릅니다. 출가한 사문행자만을 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똑같습니다. 이틀간 여러분은 출가한 것입니다. 가서는 휴대폰도 좀 끄고 해야지, 가서도 ‘카카오 톡’을 하고 난리가 아니더군요.
그래서 초반에는 이렇게 경계를 피하고 수행을 통해 마음의 힘을 얻은 후에 이사병행해야 합니다. 공부를 위한 공부를 하는 것도 안 됩니다. 하안거, 동안거를 25번을 났다는 스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분은 지금도 안거에 들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일생 내내 안거만 할 것입니까? 그래서야 사은에 보은은 언제 합니까? 지금 저축은행 건으로 금감원장, 감사원장 줄줄이 난리죠. 가진 자들이 더 가지려고 눈이 뻘개져서 난리인데, 이게 뭐하자는 것입니까.
하긴 여러분들은 좀 산에 들어가셔야 합니다.
‘행자소서’는 행자가 살 곳을 뜻합니다. 행자라는 것은 영원한 구도자입니다. 젊을 때는 가능하면 수행을 위주로 하고, 청년기를 넘어가면 사은에 보은 즉 사업을 하고 베풀고 나눠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이 40, 50이 되어서도 수행을 한다면 사은에 빚은 언제 갚을 것입니까?
대각개교절을 생각해봅시다. 중생들은 “와, 원불교 열렸다!”합니다. 그러나 개교는 대각으로 비롯했습니다. 대각은 구도와 수행으로 비롯했고, 그것은 또한 부모님의 후원으로 말미암았습니다. 영광이라는 땅에서 수행하시고 옥녀봉, 상여봉, 마당바위, 중앙봉 등 사은의 은혜 속에서 당신이 수행하셨습니다. 어떤 마음인가요. 오직 구도심 하나를 비롯하여 효도가 되었고, 대각이 되었고, 원불교가 열리고, 구인선진의 합력으로 정관평을 일구고 지금의 원불교가 되고···. 이렇게 최종적으로 두루 사은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현상을 바라볼 때 현상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김혜심 교무님 같은 분이 50 분만 계시면 우리 교단은 난리가 날 것입니다.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 행동이 아니라 심법을 말하는 것입니다. 다 해외로 가시란 얘기가 아닙니다. 그래도 곤란합니다. 여튼 그런데 거기서 더 생각해야 합니다. 혜심 교무님을 길러준 스승은 누구일까, 누구를 통해 발심했을까, 약대를 넣고 박사과정을 하도록 후원한 사람은 누구일까···. 연기로 인과관계를 치고 들어갈 줄 알아야 합니다.
⇒ 배고프면 나무 열매를 먹어 그 주린 창자를 달래고, 목마르면 흐르는 물을 마셔 그 갈증나는 마음을 쉬게 할지니라.
· 飢腸[기장] : 굶주린 창자. · 渴情[갈정] :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한 집착이 심한 갈애(渴愛)의 마음. |
이제 먹고 마시는 의식주를 얘기합니다. 안분하라는 것이네요. 더 벌려고 눈이 뻘개져서 거짓말하고, 잠도 못 자고, 수행을 게을리 하는 것은 안 됩니다. 여러분들이 아침좌선을 안 하는 것도 같아요. 사회와 내 생활과 잘 대조하셔야 법문을 살려 쓸 수 있습니다.
목이 마르다는 것은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구해지지도 않는 것을 구하려고 계속 쫓아다니며 가족도 형제도 모르는 척하지 말고, 그냥 물이나 마시래요. 과도하게 더 먹으려, 더 편하려 하면 문제가 됩니다. 핵심은 ‘즐기라’는 것입니다. 편안함, 나태, 쾌락을 즐기라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 안분하라는 의미입니다. ‘내가 괜히 원불교 만나서 죽겠네’보다 ‘이야~ 대종사님은 어찌 이런 길을 가셨을까!’ 해야 합니다. 피곤하지만 즐거울 수 있습니다.
저는 몸살이 나서 앓으면서도 기쁨의 눈물을 흘려본 적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첫 부교무 때 위에 여교무님이 두 분 계셨습니다. 장지를 안 가시려고 해요. 그런데 당시 저는 장지를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는데 저 혼자 가라더군요. 초상이 나면 하루 세 번 독경을 갑니다. 장지가 안양 등으로 멀면 세 번 다닐 수 없이 근처에 사는 교도님 댁에서 지내고 합니다.
예전에는 영정안치식이라고 가족들이 영정을 들고 교당에 오고 그랬습니다. 그날 독경을 하고 돌아와 저녁에 누우면 몸살이 와서 부들부들 떨려요. 그래도 ‘감사합니다!’ 했습니다. 최대한 그 영가가 해탈천도하게 돕는 마음, 유가족이 저를 의지하는 그 마음(초상이 날 때는 교무들 말을 잘 듣거든요)을 냈습니다. 이 길을 걷지 않았다면 내가 어떻게 이런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싶어서 참 감사했습니다.
천주교에서는 신자가 상을 당하면 신부님이 뭐 시간을 내서 옵니까? 장지도 안 따라가는 사람들이 동지라고 할 수 있나요? 내 먹고 살기 바쁘죠. 우리가 가난을 대치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저도 집에 처자식이 있습니다. 연휴에 가족들은 뭐하냐고 옆에서 묻더군요. 전 생각도 안나요. 바빠서요. 이번에도 성지순례 때 이것저것 챙기느라고 정작 제 약을 못 챙겼습니다. 가난하고 바쁘고 힘들지만 진리에 대한 사랑, 스승에 대한 존경과 흠모가 있어서 가난하고 가족과 함께하지 못해도 기쁨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도가 구해지고 은혜가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순간순간을 장소를 떠나 수다나 떨고 넘기고 때우는 식으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순간순간을 목적으로 즐기고 살아야 합니다. 최선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순간순간 나를 놓아야 합니다. 나를 놓지 못하면 공적인 일을 하면서도 대충, 내 편한 대로 합니다. 내가 불편해도 대중을 위해서 하면 그 안에 존경, 환영, 은혜, 보은, 위력이 올 텐데요. 내가 맡은 단, 부서, 업무 하나에도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이 정도면 됐지”하는 마음? 천만에요. 그 정도론 안 됩니다.
<금강경>에 보살이 보살이라는 상을 내면 이미 보살이 아니라고 합니다. 이 정도면 됐지 하는 생각을 가진다면 그건 이미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장으로서 이 정도면 되잖아’, ‘공적인 일 하고 있는데, 이 이상은 내가 어떻게 해’하는 이건 아닙니다. 최선을 다하고 일심을 다해서 기쁘게 즐기라는 그것입니다.
직장, 학교, 교당에서 귀찮아 마지못해 하고 힘들다고 놔버리는 것은 이미 가난한 자가 가난하다고 한탄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 일 그 일에 일심을 놓아버리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는 대상 대상에 즐기면서 일심을 다하는가, 아니면 돈 때문에 한다, 지겨워죽겠다 하는가, 어느 쪽입니까.
사람이 완전히 만족할 수 있는 환경이 어디에 있나요. 그러나 인과를 받아들이면 힘들다는 생각 대신에 주어진 그 환경과 그 순간에 일심을 들이댈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 좋은 음식을 먹어 애틋하게 기를지라도 이 몸은 반드시 무너질 것이요, 부드러운 옷을 입어 지키고 보호하여도 목숨은 반드시 마칠 때 가 있나니라.
· 喫甘[끽감] : 감칠맛 나는 좋은 음식. · 着柔[착유] : 촉감이 부드러운 좋은 옷. |
단 것을 먹는다는 것은 호의호식입니다. 호의호식으로 이 몸을 건강하게 챙기고 챙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몸은 무너지는 것이 정해져 있습니다. 몸은 배신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애지중지해도 이 몸은 배신하고 나를 떠나게 되어있습니다. 가죽포대기라고 하잖아요. 지수화풍의 사대가 엮인 것일 뿐입니다. 대종사님은 몸을 ‘만사만리의 근본’이라고 했어요. 몸을 사은에 보은하고 수행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고 혹은 애지중지 돈을 들여 성형하거나 미모를 가꾸는 데에 열을 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은 그러나 명예, 재산, 학식을 애지중지하는 것과 똑같은 것입니다. 그래봤자 이것들 역시 모두 무너지니까요.
제가 완도에서 근무할 때 금니를 했습니다. 대학원 시절에 무엇을 잘못 씹어서 이가 깨져버렸거든요. 저는 몇 년을 아파 죽겠는데 원인을 모르겠는 거에요. 사진을 찍어도 안 나왔습니다. 옆으로 깨져서 사진에도 잡히지 않았거든요. 그것을 뽑고 나서야 잘못됐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원남교당에서 3년 근무할 때도 이를 해 넣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가 점차 밀리기 시작했습니다. 완도는 시골이니까 완도에서 하면 싸겠지 하는 마음에 손을 보았습니다. 깨진 이는 제일 안쪽이었는데, 가장 이에 가까운 것이 금이라길래 금니로 했습니다. 예전에는 양쪽이 전부 금이어서 보기에 이상했는데, 지금은 우리 황은창 교도가 치아색으로 다시 예쁘게 해주었습니다. 고마워요. 십년 이상은 못 쓴다 해서 바꾸었어요.
말이 좀 샜는데, 그때 금니를 하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학사를 위해 독경 CD를 냈지만, 저는 이 CD를 저도 죽고 나서 듣겠다는 생각으로 녹음했습니다. 저는 죽으면 화장합니다. 금니를 하면서도 ‘나중에 이 금니는 교단을 위해 남겠네’ 생각했습니다. 은혜심기운동으로 기증한 것들 등등을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몸이 무너진다는 것을 압니다.
그러니 결국 떠날 것, 거기에 공을 들여야 하겠습니까?
밍크코트와 명품을 걸쳐도 결국은 다 마침이 있습니다. 목숨을 마치는데 그 밍크코트를 관에 입고 갈 것입니까? 죽으면 수의를 입는데 거기에는 주머니가 없습니다. 제가 지금 입고 있는 법복에도 주머니가 없어 수의와 같습니다.
살아있을 때는 지갑이 필요하지만 죽으면 필요가 없습니다. 육신은 반드시 마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이 추구하는 재산, 부귀, 명예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 석사, 박사, 고시 한다고 교당에 안 나오는 사람 있죠. 죽어서 명패 넣어줄 수 있을까요. 무엇을 위해서 하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보은하기 위해서인지, 자신의 명예와 욕심을 위한 것인지요.
⇒ 메아리 울리는 바윗굴로 염불당을 삼고, 슬피 우는 새들로 마음 기쁘게 하는 벗을 삼으리.
· 巖穴[암혈] : 바위로 된 굴. · 念佛堂[염불당] : 염불하는 법당. 기도처. 수행처. · 鴨鳥[압조] : 오리와 새. 오리새. |
엊그제 영산에서 들어갔던 굴 속에 소리가 울렸죠? 그걸 말합니다. 변산에 가면 개암사가 있습니다. 그 뒷산을 오르면 꼭대기에 큰 바위가 둘 있습니다. 왼쪽 바위를 사람들이 깎아서 백 명 정도가 들어갈 공간이 있습니다. 신라가 백제를 쳐들어왔을 때 끝까지 항전한 곳입니다. 오른쪽 바위는 가기 어려운데 그곳이 ‘원효방’입니다. 원효는 통일신라 시절 백제 땅에 가서 바위굴을 깎았습니다. 시자가 쓰는 조그만 굴도 있습니다. 거기서 선도 해봤는데요, 이 구절을 보니 딱 그 광경입니다. 함께했던 시곡선생님은 나이가 드셔서 못 들어갔습니다. 위험하기도 하거든요.
언제 봄에 같이 선을 하자고 해서 거길 갔습니다. 마침 조현기자가 갖다놓은 것도 있었고요. 30분 이상 둘이 앉아있는데 정말 좋았어요. 새가 지저귀고 나비가 날고 새순이 파릇파릇. 개암사 주지한테 말해 나 좀 여기서 살면 안 되냐 하고 싶을 정도였습니다. 동굴 안에 물이 한 방울씩 희한하게 떨어집니다. 거기서 원효가 차도 마시고 했대요. 개구리도 살고 있더군요.
거기서 염불을 하면 소리가 울립니다. 여기서 말하는 메아리는 그것입니다.
기러기도 납니다. 기러기는 높이 날죠. 당신이 동굴에서 울리는 소리로 정진을 하니 기러기가 떼를 지어 날아가는 모습입니다. 그것을 기쁘게 벗을 삼는다는 것이에요.
원효가 수행한 동굴이 세 개인데 아마 제가 갔던 그것인 모양입니다. ‘천의무봉’이라는 말 들어보셨죠. 꿰맬 봉입니다. 하늘의 옷은 자연과 하나가 되어 꿰맬 것도, 꿰맨 자국도 없습니다. 동창회에 갔다 오면 입이 나오는 여자들이 많아요. 누구 남편은, 누구 아들은, 하면서 원망합니다. 다녀오면 자신이 가진 것이 작게 보입니다. 하지만 동굴 안에서 그런 것들은 아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 절하는 무릎이 얼음장 같아도 불을 그리워하는 마음이 없으며, 굶주린 창자가 끊어질 것 같아도 음식을 구하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
· 餓膓[아장] : 굶주린 창자. |
‘배슬’은 무릎을 굽혀 절하는 우리의 헌배 같은 것입니다. 우리는 좌복, 요가매트, 이불이 있어요. 그러나 얼음에서 한 대요. 환경이 안 좋은 곳에서 그것도 천배, 삼천배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편한 것을 찾는 마음이 없답니다. 이것이 정말 중요한데요. <채근담>에 배가 따뜻해지면 도심이 사라진다고 합니다. 기독교에서도 부자가 천국에 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과 같다고 하죠. 생활이 풍족하고 여유가 생기면 사심이 나고 나태해집니다. 묘합니다. 이게 공식이에요. 그래서 명예와 부귀가 있는 사람은 도가에 오기가 힘듭니다. 큰 도인들은 다음 생에 인물과 재산이 없이 태어나기를 서원하며 정진합니다. 도심을 잃어버리는 환경을 만들지 않는 것입니다. 안양 한마음선원의 대행스님은 확실히 힘을 얻은 분입니다. 정말 못났어요. 지금 도를 얻어서 외모가 그 정돈데 아닐 때는 정말 못났겠죠. 산에서 자고 길에서 자도 여자인 자기를 건드리는 사람이 없었대요. 오히려 그분은 그걸 감사해합니다.
배부른 돼지가 될 것이냐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될 것이냐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원합니까. 배부른 소크라테스가 되겠다고요? 허허, 그것이 바로 도둑님 심보입니다. 절대 둘 다 가질 수 없습니다. 상산 박장식 종사님은 99칸 집에서 태어났지만 특별한 경우입니다.
잘 사는 사람의 98%는 가진 것을 쓰느라 바쁩니다. 저는 대통령보다 별장이 더 많은 사람도 알고 있는데 그 분은 도심이 있습니다. 하지만 어정쩡한 부자들은 노느라 바쁩니다. TV에서 굶어죽는 사람이나 수행자들은 안보이고 자기 편안한 것, 해외여행이 좋다는 것 등 욕심을 채우는 것들만 보입니다. 그것이 배부른 돼지가 되기를 선택한 사람들입니다. 풍족한 방탕심으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마음이 부자인 불보살이 될 것인가, 마음의 가난한 중생이 될 것인가. 스스로 한번 생각을 해봐야 합니다.
단식을 하면 건강이 정상인 사람은 30일 산답니다. 행려자들은 2, 3일이면 죽는대요. 왜인지 아세요? 마음의 문제입니다. 우리 구인선진님은 창생을 구원하고자 하는 사무여한의 신성이 있어 법계, 음계의 인증을 받으셨습니다. 아파도 ‘아파 죽겠네’냐 ‘내가 아프다고 느끼느냐’ 한다고 아까 강연자가 잘 말씀해주셨죠. 마음이 주가 되어 이걸 보느냐, 아니면 그것에 빠져서 ‘아프다, 죽겠다’ 하느냐는 것입니다. 이것이 마음공부입니다.
⇒ 문득 백년이 이르거늘 어찌 배우지 아니하며, 한 생이 얼마나 된다고 수행하지 않고 놀기만 할꼬.
· 云何[운하] : 어찌, 어떻게, 무엇. · 幾何[기하] : 수량을 묻거나 정확하지 않은 수. 몇이나, 얼마나. · 放逸[방일] : 제멋대로 거리낌 없이 방탕하게 놂. |
홀연히 백년입니다. 긴 것 같아도 금방 가버립니다. 금방 가버리는데 왜 배우지 않습니까. 일생이 얼마나 된다고 닦지 않고 놀고 다닙니까. 도가 아니라 육신의 낙을 위해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사교형들은 원불교 다 떠나요. 출가위 오른 분들 중 사교형은 딱 한 명입니다. 법강항마위도 행정상의 법강항마위 말고 진짜 법강항마위는 거의 없습니다. 너는 출가해라 나는 놀아야지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죠.
하루를 사는 하루살이를 보고 매미는 웃습니다. 매미는 21일을 살거든요. 하루살이는 아침에 결혼하고 오후에 환갑하고 저녁에는 장례식 합니다. 매미는 7년간 땅속에 있다가 21일간 “아이고, 나 너무 힘들었어” 하면서 실컷 울고 죽어요. 사람은 많이 살아봤자 백년입니다. 사천왕은 하루가 오십년입니다. 사천왕의 이틀은 인간의 일생입니다. 무슨 뜻일까요. 정말 짧다는 것입니다.
노인을 보면 나도 언젠가는 늙을까 싶죠? 금방입니다. 예전에 유태인 학살장에 가봤는데요, 거기 수용된 사람들 사진을 보니 단 몇 년 사이에 수십 년이나 늙은 얼굴이 되어버렸더군요. 진시황제, 의자왕, 노무현, 김대중, 법정스님, 김수한 추기경 다 가셨잖아요. 언제 공부할 것입니까.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 이것도 맞습니다. 그런데 수행하며 베풀며 놀아야 합니다. 거기서 즐거움을 찾으며 놀아야 합니다. 개인의 사적인 낙, 게으름으로 빠져있어서는 안됩니다. 가치관이 중요합니다. 가치관과 서원이 있는 사람은 어디다 돈과 에너지를 쓸 것인지, 어떤 사람들과 만나서 시간을 보낼 것인지를 가치관과 서원으로 결정합니다. 제가 아까부터 성지순례 이야기를 자꾸 하게 되는데요, 이번에 가지 않은 어떤 개인을 놓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 않는 선택을 한 사람들의 가치관이 안타까워서 그럽니다. 그런 훈련, 법회, 순례 등의 기회가 왔을 때 그 선택에는 애착과 가치관의 문제가 크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것입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금방입니다. 백년도 홀지, 금방 가버립니다.
⇒ 마음 가운데 애착을 여의면 이를 사문이라 이름하고, 세속을 그리워하지 않으면 이를 출가라 이름한다.
· 是[시] : ~이다. · 沙門[사문] : 불문에 들어가서 도를 닦는 사람. · 世俗[세속] : 불가에서 일반 사회를 이르는 말. · 出家[출가] : 번뇌에 얽매인 세속의 인연을 버리고 수행 생활에 들어감. |
‘애’는 집착입니다. ‘이심중애’는 마음속에 집착을 버린다는 것입니다. ‘사문’은 수행자입니다. 여러분도 사문입니다. 그러나 집착을 버려야 수행자입니다. 나는 연휴에 무엇을 할 것인가? 신심과 서원이 있는 이는 가치관이 뚜렷하고, 공심이 있는 사람은 대중과 합력할 줄을 압니다. 공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스승님과 선진님들이 계신 곳은 어떤 곳일까를 궁금해 합니다. 당연히 성지순례를 택하겠지만 만일 이런 것들이 약하면 빠지는 것입니다.
‘불련세속’은 ‘세속을 떠나지 못하면’입니다. 세속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놓아버려야 그것이 출가입니다. 성지순례 가서도 계속 문자하고, 법회 때도 전화를 받으러 나갔다가 돌아갑니다. 생사문제가 있으면 그럴 수도 있지만 일단 법회에 오면 다 놓는 마음이어야 합니다.
출가는 힘든 일입니다. 누구는 몸만, 누구는 마음만 출가합니다. 여러분은 몸은 출가하지 않았지만 마음은 출가해야 합니다. 성지순례도 잠깐이지만 그때는 ‘몸 출가 마음도 출가’입니다. 너무 정에 의지하지 말고 법에 의지하라고 석가모니도 마지막에 말씀하셨습니다.
⇒ 수행자가 비단옷을 걸치는 것은 개가 코끼리 가죽을 입는 것이요, 도인이 연정을 품는 것은 고슴도치가 쥐 구멍에 들어가는 꼴이다.
· 羅網[나망] : 비단 옷, 새그물. · 象皮[상피] : 코끼리 가죽. · 鼠宮[서궁] : 쥐구멍. |
이 표현은 비유입니다. 수행자가 사치하는 것은 마치 개가 코끼리 가죽을 입는 것과 같답니다. 이 얼마나 무겁고 비웃음을 살 일입니까. 우리나라의 유명한 목사님이 페라리를 몰고 다닙니다. 2억 넘는 이탈리아 수공예 자동차래요. 그 훌륭한 목사가 왜 그럴까 싶습니다. 저는 그 차가 뭔지도 몰랐는데 누가 알려줘서 알았습니다.
그것은 아니지요. 그 돈이 어디서 나왔습니까? 인과를 생각해야 합니다.
‘도인련회’ 도인이 그리워한다는 것은 집착을 품는다는 것입니다. 고슴도치가 쥐구멍에 들어간다는 것은 이루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괜찮겠지, 이 정도면 되겠지’ 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명품에 손대면 블랙홀에 빠진다고 합니다. 명품을 많이 알아도 블랙홀에 빠지려고 대기하는 것입니다. 사지는 못해도 그것들을 쫙 꿰는 사람도 교당에 있습니다. 저도 대충은 압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것은 어떤 교도가 얼마나 어떤 생활을 하는지 알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강원랜드에 가보는 것과 중생들이 강원랜드에 가는 것은 다르죠. 제가 가는 것은 중생들이 대체 어디에 정신이 빠져 있는지 알고자 하는 것입니다.
피곤한 성지순례 후에도 공부하려는 마음으로 오늘 공부방에 오신 여러분, 우리 서로 박수 한 번 크게 칩시다. 여기 계신 여러분들을 사은님이 “아이고 참 예쁘다!” 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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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싸~드디어 올라왔따~ㅋ정말 감사합니다!바쁘실텐데ㅠ
내용을 화명에 바로 올리고 그리고 첨부로 하심이 더 은혜가 되겠습니다.
생각이 짧았습니다. 전부 수정했습니다. ^-^
감사합니다. 산본에서 항심.
교무님 법문 말씀 잘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