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이 언제였더라? 도서관에서 행사를 준비 하는데 도움이 많이 필요한 때였던 것 만 기억이 난다. 도서관 지킴이 단체톡에 보름달쌤이 다급한 말투로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네요”라고 했다. 유난히 그날 도움의 손길이 부족한 날이었다. 나 역시도 달려갈 수 없던 날이었다. 고양이 손을 빌리다니? 그런 속담이 있나? (그때는 몰랐지만, 나중에 찾아보니 일본 속담이었다)
<고양이 손을 빌려 드립니다> 초1 막내아들의 권장도서목록에서 이 제목을 봤을 때, 서둘러 책두레 신청을 했다. 집에 돌아와 빌려온 수많은 책들 중에서 제일 먼저 집어 들고는 엄마가 읽어 주겠다며 막내아들을 옆에 앉혔다.
책을 펼치니 헐레벌떡 장바구니를 들고 뛰는 엄마의 모습이 보였다. 평소 집안에서 한가로이 누워있는 고양이를 보며 고양이로 태어나면 좋았을 것이라며 종종 말하곤 했었다. 어느 날, 바쁘게 일하던 엄마가 무심코 한 말 “아,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에 노랭이는 “제 손이라도 빌려 드릴까요?”라고 묻고는 집안일을 시작했다.
[엄마는 오랜만에 산책을 나갔어요. 장을 볼 때마다 지났던 길을 천천히 걸으니, 알록달록한 단풍과 바스락거리는 낙엽 소리... ... 새삼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어요.] 이 부분을 너무도 잘 묘사한 그림에 난 그만 깜짝 놀랐다. 곧고 길게 뻗은 가로수길 낙엽을 밟으며, 한 손을 꺾어 뒷짐을 진 상태로 여유로이 걷는 엄마의 모습이 너무나도 행복해 보였다.
난 얼마 전 집에서 아이들이 온라인 수업하는 틈을 타 홀가분히 혼자 은행에 나갔었다. 오랜만에 결혼 전 좋아했던 가수의 노래를 이어폰으로 들으며 경쾌한 곡에선 아이처럼 발걸음 가볍게, 또 은은한 곡이 흐를땐 그림에서처럼 그런 팔과 그런 발걸음으로 충분히 가을을 음미했었다. 그 날의 내 마음이 생각나 나도 모르게 눈물이 슬쩍 나는 찰나, 내 목소리가 이상했는지 남편은 “니네 엄마 왜 우냐?”하고 묻는데 그만 머쓱해졌다. 책을 다 읽고 난 막내아들의 독서 한줄 쓰기엔 ‘고양이가 만든 주먹밥은 먹기 싫다’고 적혀 있었다.
노랭이가 그 뒤로 집안일을 더 능숙하게 잘 해 나가는 동안 엄마는 여유로움을 찾았지만 엄마의 몸은 점점 고양이처럼 변해갔고, 아빠는 바빠서 알아채지 못했다가 노력 끝에 엄마를 다시 사랑스럽던 예전의 모습으로 돌려놨다는 이야기로 끝이 난다.
이제 손을 빌려주지 않아도 되는 노랭이가 어떻게 됐는지, 엄마가 나갔던 산책길이 어떠 했는지, 엄마가 여유로워졌을 때 누렸던 소박한 것들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하다면 여러분도 이 책을 읽어 보시기 바란다.
벌써 입동이 지났다. 우리 곁으로 겨울이 더 다가오기 전에 동네 한 바퀴 천천히 돌아보셨으면 한다. 그리고 힘이 들땐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다고 외쳐봄도 좋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