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푸드' 혁명
밥상을 안차리는 세대
먹고 살기 바쁘다는 핑계로 아예 집에서 식생활을 하지 않는 젊은이들이 늘고 있다. 부부는 매끼 식사를 외식이나 배달 음식 등으로 대충 때우고 자녀는 부모 집에 가서 먹게 하고….
먹을 것이라곤 텅 빈 냉장고 안에 3분 요리팩, 캔음식만이 덩그러니 들어있다. ‘같은 집에서 끼니를 함께 하며 사는 사람’을 뜻한다는 식구(食口)라는 용어가 무색하게 느껴진다.
식사를 하더라도 속전속결로 해치운다. 3초만에 군대시절 ‘짬밥’비우듯 빨리 먹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기는가 하면 10분이상 식탁에 남아 있으면 눈총받기 십상이다. 가능한 한 식사 시간을 아껴야겠기에 신문이나 TV 등을 보며 먹는다. 맛을 음미하기는커녕, 무슨 음식을 먹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조미료 맛, 강하고 자극적인 음식에만 길들여져갈 뿐이다. 뇌가 미처 포만감을 느끼기도 전에 그릇을 비운다. 비만이 될 수밖에 없다. 먹어도 먹어도 뭔가 부족감을 느낀다. 문득 어린시절 먹어 본 할머니의 손맛을 기억 속에 아련히 떠올리며 영양제를 한움큼씩 입안에 털어넣는다.
식사를 기다리는 것도 오래 하기도 싫어하다 보니 생활 패턴 전체가 그런 식으로 돌아간다. 자녀들도 부모와 대화하거나 남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무엇이든 3초 이상 기다릴 줄 모르고 툭하면 짜증과 신경질을 낸다. 남을 배려하거나 더불어 사는 문화가 못되고, 따로 따로의 이기적인 ‘자폐 문화’에 익숙해져 간다. 결국 건강하지 못한 개인의 식생활이 다른 생명과 환경까지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밥상 안차리는 삭막한 음식문화에 반기를 들고자 하는 것이 ‘슬로푸드(Slow Food)운동’이다. 이탈리아 음식 칼럼니스트인 카를로 패트리니가 몇년 전 대량생산, 규격화, 산업화, 기계화된, 속도와 효율 위주의 ‘패스트 푸드(Fast Food)’문화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처음 전개했다. 북미와 같은 방식의 식문화가 결국 농약과 화학비료에 오염된 땅과 대량생산된 유해 패스트푸드의 범람을 가져온 것에 대해 뼈아픈 반성을 촉구했다.
대신 자국의 전통적인 느린 음식문화에 대한 열정을 되살리고 삶의 질과 건강을 위해서는 자연친화적인 음식을 자연의 순리에 따라 천천히 음미하고 감사하며 먹을 것을 촉구하는 사회운동으로 전세계에 번져갔다.
국내에서도 이미 가공된 음식은 사먹지 말고 방부제나 화학조미료, 식품첨가물이 들어가지 않은 유기농 식재료, 제철에 나는 신선한 자연식품을 시장에서 직접 사다가 시간이 걸려도 집에서 가족을 위해 정성 들여 만들어 먹자는 취지의 새로운 식문화 혁명으로 뿌리를 내리고 있다.
*자연식으로 음미하며 먹고 마시자
음료수를 물로 바꾼다
사이다, 콜라 등 탄산음료는 지나치게 달고 칼슘, 무기질 등을 함께 배출시키며 카페인 중독성이 있다. 가공된 천연과일 주스도 달아 비만의 원인이 된다. 대신 깨끗한 물을 마시고, 가끔씩 토마토나 딸기 등 계절 과일을 깨끗이 씻어서 갈아 마신다.
고춧가루는 직접 만든다
매일 매끼 식사 때마다 먹는 고춧가루는 고추를 직접 사다가 말린 후 먼지를 닦아낸 다음, 방앗간에서 빻아 냉동실에 넣어 두고 조금씩 사용한다. 김치도 직접 담가 먹어야 조미료를 덜 먹게 된다.
전자렌지로 음식을 조리하지 않는다
고구마, 오징어, 밤, 감자 등은 전자레인지에 넣어 급히 익힌 것보다 솥이나 슬로쿠커에서 예열을 가한 후 서서히 익힌 것이 훨씬 부드럽고 맛있다. 은근한 화롯불의 원리를 이용한 것. 닭고기, 수육, 사골 탕, 홍삼, 대추 등을 우려낼 때도 마찬가지다. 레인지로는 데우기만 하고 사기 뚜껑을 이용한다.
가공된 양념류를 사먹지 않는다
육류의 누린내를 제거하기 위해 만들어놓고 파는 양념류는 간편하지만 맛과 향, 저장성을 높이기 위한 각종 향신료나 화학조미료등 인공첨가물이 포함돼 있다. 대신 집에서 배 등 천연 과일과 야채 양념을 갈아서 고기를 재운다.
천연재료로 감칠 맛을 낸다
화학조미료 대신 다시마와 멸치, 가다랭이포(가쓰오부시)를 이용해도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다. 해물누룽지탕 등 중국음식에 많이 사용되는 굴소스에는 화학조미료가 많이 들어있다. 굴소스 대신 고기에 야채를 넣어 푹 끓인 진한 육수와 간장만으로도 감칠 맛을 낼 수 있다.
가공된 인스턴트 음식은 삼간다
가공된 시리얼, 끼워 주는 각종 소스, 시럽에 저민 통조림과일 등은 되도록 먹지 않는다. 이들 식품은 설탕 함량이 높다. 대신 소스나 야채 드레싱에 홍시나 파인애플, 키위, 딸기 등 과일즙을 사용하면 설탕 대신 단맛을 낼 수 있다. 라면에도 소금, 화학조미료등이 과다하게 첨가된다.
유기농 식재료를 선택한다
반듯하고 잘 생긴 야채보다는 휘고 꼬부라지는 등 못생기고 벌레먹고 금방 시드는 야채가 농약을 치지 않은 것이므로 더 안전하다. 며칠씩 지나도 곰팡이가 피지 않는 빵은 화학처리를 한 것이다. 유기농식품은 생활협동조합에서 구입하는 게 비교적 저렴하다.
야채는 흙이 묻어 있는 것을 산다
대량으로 세척해서 파는 야채에는 유해 세제가 남아있을 수 있다. 농약 함유량이 높은 파나 깻잎 등 야채나 과일은 주방세제나 식초에 담가 농약을 빼고 살균한 다음, 흐르는 물에 여러번 정성 들여 깨끗이 씻어 먹는다. 오이는 소금에 싹싹 비벼 씻는다.
길거리표 음식은 삼간다
포장마차에서 파는 튀김은 여러번 튀기다 보니 산폐된 기름을 사용하기 쉽고 떡볶이는 유통기간이 지나 곰팡이가 핀 떡이나 색소가 첨가된 고추장을 사용할 수 있다. 팝콘, 프라이드 치킨, 감자튀김도 역시 지방 중 가장 해로운 중성(트렌스)지방인 마가린으로 튀기므로 해롭다.
고기는 물로 조리한다
직접 불에 구워 시꺼멓게 탄 고기를 자주 먹으면 암 등을 유발할 수 있다. 고기는 가능하면 굽거나 튀기기보다는 수육이나 편육등 삶거나 조림, 찜 등을 해서 먹는다.
윤성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