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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흥주 별이 되다
유흥주 목사가 마침내 별이 되었다. 지난 여름 위암으로 수술을 받았는데, 끝내 회복하지 못했다. 병실에서 환하게 웃던 그의 표정이 떠오른다. 언제나처럼 약간 멋적은 듯 천진한, 미묘한 웃음이었다. 그는 번번이 표정 관리에 실패하였다. 정작 미안한 것은 비장애인인 우리들인데, 그는 자신이 우리와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것을 송구스러워했다.
침상에서 들은 이야기가 여운이 오래 남았다. 간병을 하던 가족이 “어머니는 늘 ‘내가 흥주보다 오래 살아야지, 내가 먼저 죽으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과연 자식을 앞세우는 것이 소원인 어머니의 심정은 어떤 것일까? 장례식장에서 처음 인사드린 어머니는 두 팔을 휘적거리면서 씩씩하게 말씀하셨다. 아들의 빈소에서 마지막을 지키는 모친은 슬픔보다, 오히려 안도하신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어머니에게 둘도 없는 아들이었다.
유흥주는 1965년생으로 12월 25일에 세상에 등장하였다. 아기 예수님과 생일이 같으니, 60번째 성탄절마다 생일축하를 받는 과분한 영광을 누렸을 것이다. 뇌성마비의 몸으로 난 까닭에, 성장 과정이 더뎠다. 예수님보다 더 낮은 자리에서 태어난 셈이다. 지팡이에 의지하던 그는 30대 중반에 들면서 몸이 심하게 틀어졌다고 한다. 무거운 휠체어와 각종 보조구를 장착했기에 늘 조심스러웠다. 눈빛은 신중하였고, 목소리는 가벼운 듯 무거웠다. 언제나 말보다 신음이 도드라졌다.
유흥주는 협성대학교 신학대학원 91학번이다. 세브란스 장례식장에서 만난 동기 황효덕 목사는 호상(護喪)으로서 내내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궁금한 것이 많았다. 중증장애를 지녔다지만, 평소 유 목사가 억울해했을 과소평가된 능력을 확인할 기회였다. 가장 먼저 친구가 된 동기생들도 몹시 서운해 하였다. “작년 말에 유 목사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병실에서 모두 만나자고 별렀는데, 끝내 못했어요.” 보통 사람 같으면 쉽게 털어낼 ‘겨우’ 위암 2기였지만, 근근이 연약한 몸을 흔들거리며 살았으니 이미 체력도, 면역도 다 소진해버렸기 때문이다.
2024년 감리회 선교국에서 낸 장애인선교주일 예배 자료집에는 유흥주를 간단히 소개한다. ‘뇌병변 1급, 청각장애 4급.’ 한 줄 이력에 그의 고단한 생애가 두루 담겨있다. 그런데 그가 쓴 설교문을 살펴보면서 당연시한 선입견을 지우기로 하였다. “인간은 다 다르게 창조되었습니다. 삼위일체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나만’ 생존(生存)하기 위한 ‘비교와 경쟁’이 아닌 ‘같이(together)’를 위한 ‘상호보완’적인 존재입니다.”(<2024 장애인선교주일을 지킵시다>, 10쪽).
나는 2018년에 처음 유흥주를 보았다. 그때는 활동보조인이 그림자처럼 동행하며 일거수 일투족을 지원했기에, 행동거지가 가능하였다. 만날 때마다 그가 어떻게 비장애인보다 밝은 얼굴과 똑똑한 자기주장을 할 수 있는지 궁금하였다. 그러나 관계는 더 발전하지 못했다. 우선 밥을 함께 먹지 못했고,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그가 어렵사리 하는 말에 집중하지 못했다. 우리는 서툴렀고, 불친절하였다. 답답하기는 그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수첩에 남아 있는 유흥주에 대한 인상기이다. “몇 번 봐도 현명한 유흥주 목사”(2019.11.28.). 그리고 마지막까지 경외심은 시들지 않았다. “용인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유흥주 목사를 심방하다. 평소 중증장애인으로서 그의 정의로운 의식과 논리적 주장에 존경심을 품었다”(2024.7.11.). 부고에도 댓글을 달았다. “유흥주 목사님의 안식을 빕니다. 평생 당당하고 지조있게 사신 모습이 귀감입니다”(2025.2.19.).
유흥주 목사는 서울연회 마포지방회 너와나의교회 담임목사이다. 발인(發靷)에서 소개한 고인의 이력을 보면 뇌성마비 장애인 관련이 대부분이었다. 1993년부터 뇌성마비 연구회인 바롬회 활동을 시작으로, 2005년에 한국뇌병변 장애인 인권협회 초대 회장을 지냈다. 자신의 이름 뒤에 언제나 장애, 차별, 인권, 복지라는 묵직한 이름을 줄줄이 달고 살았던 유흥주는 우리 시대의 아름다운 평화운동가였다. 자기 몸 하나 지탱하기 어려운 그에게 무거운 온생의 과업이었을 것이다.
덧붙이고 싶은 것은 그가 감리교 평화통일위원회 위원이라는 사실이다. 우리가 용인연세병원을 찾아간 것도 위원들이 모은 치료비를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2023년 회의록(11.23)에 유흥주 위원이 한 발언이 남아 있다. “한국전쟁에 대한 치유가 선행되어야 한다. 서로가 책임에 대해 사과하고 교회 안에서 회개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2024년 그가 참석한 마지막 위원회(3.22)에서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한국의 방위산업 성장이 기뻐할 일이 아니라”는 요지의 발제를 하였다. 그는 자신의 장애를 넘어 민족의 불구에 대해 더 크게 염려를 한 진실한 ‘예수쟁이’였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 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