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가야불교산악회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산사의 향기 스크랩 029_충남 공주시 사곡면 마곡사
無盡藏 추천 0 조회 52 12.03.15 12:0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지난 9일 성산과 강화에서 만나 집에 와서 같이 여행을 다니려 했으나 하늘이 시샘을 하는지 연일 비가 온다. 아마도 장마철도 이렇게 연이어 오는 경우는 없을 것이다. 월요일 날도 하루종일 비가내려 일산 호수공원에 가서 실내에서 꽃이나 찍으려 같이 갔으나 마침 전날 꽃 전시회가 끝이나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비를 맞아가며 꽃들을 찍었는데 비오는 날은 오히려 가까운데 것은 그림자가 없어 더 심플하게 나온다는 장점도 있으나 멀리 있는 사물은 정말 물에 빠진 사진같이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하루를 참고 쉬었던 우리는 오늘은 비가 오더라도 마곡사를 돌아보고 오기로 작정을 하였다. 아침이 되었는데 역시 비는 내리고 있었다.

약속대로 빗속을 뚫고 서해안 고속도로를 올라섰다. 천안지나 정안으로 가는 것이 편리하겠으나 고속도로까지 밀리는 것을 생각하면 서해안고속도로로 서평택까지간 후 아산만을 넘어 아산으로 가는 것이 훨씬 빠를 것 같아 그리도 향했다. 아산시내에서 약간의 서행을 빼고서는 아주 쾌적한 드라이브를 즐기며 마곡사를 향할 수 있었다. 아산을 빠져 나와 외암마을이라는 표지판을 보며 유구를 향해 39번 도로를 탔다. 조금 가니 39번 국도를 직선화 하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제는 모든 길 들이 직선화되어 빠르긴 하지만 그동네의 정취를 느끼기엔 부족해 우리는 국도를 많이 이용하는 편이다.

[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石造藥師如來立像)...]

직선으로 뻗은 좋은 길을 달리다 아산과 송악면의 경계인 외암교 건너기전 표지판에 또 눈이 번쩍 띄었다. 석조여래입상이 있다는 표지판이다. 자세히 보지도 않고 바로 우회전해 들어갔다. 이런 곳들은 항상 우리를 당황케 한다. 커다란 표지판만 있고 세부표지판들은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이곳엔 도로 벽에 스프레이로 글자를 써 놓았다. 고맙게도... 용담사 라고 화살표지와 함께 쓰여저 있어 산속으로 올라갔다. 조그마한 농로를 한참을 오르니 가옥한 채가 있다. 이곳에서 양봉을 하시는 분의 집인 것이다. 위쪽으로 입상이 보였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지 촛불들이 많이 봉양 되어있었다.

[아산 평촌리 석조약사여래입상(石造藥師如來立像)...]

[독립가옥의 창포꽃...]

[독립가옥의 쑥부쟁이...]

[독립가옥의 쑥부쟁이...]

다시 돌려 나와 외암교를 건너 유구를 향해 힘찬 출발을 하였다. 송악에서 유구까지 가는 길은 너무도 편안하다. 산세도 나즈막하고 또 답답한 곳 하나없이, 그리고 또 평평한 곳도 없이 그저 아늑하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유구를 지나 본격적으로 산길로 접어든다. 이곳은 차량고도계엔 250미터로 나오는데도 첩첩산중이고 또 길도 강원도 길을 방불케 한다. 계곡을 끼고 도는 길을 몇 번을 반복해 내려갔다 올라 갔다를 반복하니 운암리가 나온다. 이계곡에 마곡사가 있는 것이다.

반가운 마음으로 언덕을 내려섰으나 다시 돌아가는 삼거리 길이 나온다. 왼쪽길이 천안 쪽 정안에서 오는 604번 도로이고 마곡사는 우회전이다. 이제 또한 고개를 힘들게 넘어서니 마곡사입구라는 표지판이 맞이한다. 마곡사 주차장 못미처에는 많은 식당들이 즐비한데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집집마다 조각공원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입구에는 많은 통나무들이 장승이 되기 위해 들어 누워 때를 기다리고 있다.

[창포꽃잎을 커다랗게 한번...]

[마곡사 식당 공원의 솟대들...]

[마곡사 식당 공원의 장군장승들...]

[마곡사 식당 공원의 장군장승들...]

[마곡사 식당 공원의 장군장승들...]

[마곡사 식당 앞 공원의 장군장승들...]

주차장에는 2000원의 주차비를 받고 있었다. 아마도 개인 땅인것 같다. 많은 사찰을 다녀 보았지만 몇군데의 커다란 사찰을 빼고는 주차비를 받는 곳은 드물다. 다시 돌려 식당으로 가 산채비빔밥으로 배를 불리고 차는 세워놓고 사찰로 걸어 들어갔다. 들어가는 길목에 노란 유채꽃밭이 조성되어있어 멋진 길이 연출되었다. 오르는 길 복판에 안내판이 조성되어있다. 한 바퀴 물도리동 모양 돌아들면 개울양쪽으로 마곡사가 자리하고 있다. 가는 길목에 여기저기 공원을 조성하느라 온산을 파놓았다. 완전히 조성이 되면 한결 멋진 꽃길을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겹동백이 주렁주렁...]

"이 절은 신라 선덕여왕 12년(642년)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여 고려보조국사(普照國師)가 중수하고 그후 범일, 도선, 각순대사가 중수한 내용이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세조가 행행하여 "영실전"(靈山殿)이란 3자를 특별히 하사하였다는 내용이 전하기도 한다. 이 사찰은 임진, 병자의 양란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에 목조건축물이 풍부하다. 마곡사의 연혁 및 건물의 역사를 밝혀 주는 태화산마곡사사적입안과 겸사입안원문의 내용이 전하고 있기도 한다. 그러나 그 처음 연원이 얼마나 신빙성이 있는 것인지는 확인되고 있지 않지만 전하는 연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고 서술되어있는 것을 염두에두고 떠난다.

이 사찰의 특징은 계곡 속에 사찰이 존재하며 사찰 가운데로 개울이 흐르고 있다. 그것도 태극선모양 S자로 가로지른다 한다. 안내도를 보면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정 중앙에 극락교가 가로지르고 있다. 처음 다리를 건너면 흥성루가 보인다. 현수막에 의하면 성효스님께서 연꽃전시회를 한다고 쓰여있다. 담으로 이루어지어 있어 입구를 찾지 못하던 중 처음으로 해탈문을 만나게 된다. 온갖 잡념을 버리고 해탈문을 들어간다. 앞에 보이는 것이 부도군이다. 의아심을 갖게 할 만큼 적은 숫자의 부도군이다.

[마곡사 흥성루...]

이어 천왕문이 보인다. 천왕문을 통과하니 극락교가 보인다. 그리고 좌측으로 요사채로 들어가는 문이 있다. 항상 요사채는 출입금지라는 팻말을 보아왔기에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니 굉장히 넓은 마당과 많은 건축물들이 보인다. 제일 위로 명부전이 자리하고 밑으로 매화당 그리고 연꽃사진 전시장으로 쓰이고 있는 흥성루 와 옆으로 수선사가 자리한다. 이곳만 보아도 좁은 땅을 멋지게 쪼개어 만든 듯한 건물들이 편안하게 자리잡고 있어 서로 간섭을 받지 않는 그런 조용한 사찰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마곡사 해탈문...]

천왕문과 더불어 마곡사의 입구에 해당하는 문으로 천왕문보다 앞서 위치하고 있다. 이 문을 통과하면 세속이 아닌 해탈의 세계에 들어가게 된다 하여 해탈문이라 부르며, 내부에 금강역사상을 모시고 있기 때문에 금강문이라 부르기도 한다. 도리통 3간, 양통 2간으로 어간을 개방해 출입을 할 수 있도록 해 산문의 전형적인 평면형을 이루고 있다. 개방된 어간을 제외한 나머지 벽을 모두 판벽으로 구성했음이 특이하며, 양 협간에는 금강역사와 함께 문수동자와 보현동자를 모셨다.

[의외로 수가 적은 마곡사 부도군...]

해탈문과 천왕문 사이 매화당 일곽을 감싼 담장의 축대 아래 5기의 부도가 있다. 그 중 2기는 부재가 소실된 상태이며, 중앙에 위치한 3기의 부도만이 비교적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 모두 탑신이 타원형을 이룬 조선시대에 많이 조영되었던 부도의 형식을 지니고 있다. 지붕은 모두 반곡된 처마를 지닌 모임지붕 형식으로 되어 있으며, 2기는 간단한 지대석만 지니고 있고, 중앙의 1기만 지대석 위에 복련과 앙련의 하대석을 지니고 있을 뿐이다. 중앙의 부도에는 탑신 정면에 세로로 긴 장방형으로 구획한 속에 ‘紅苑堂日禪之塔’이라는 탑명이 새겨져 있고, 그 바로 북쪽의 부도에는 역시 장방형으로 구획한 속에 ‘比丘尼斗行之塔’이라 쓴 탑명이 새겨져 있다. 이들 부도는 모두 조선시대 후기에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마곡사 천왕문...]

천왕문은 해탈문을 통과한 바로 다음에 위치하고 있다. 사천왕은 고대 인도의 신으로 석가모니께 귀의하여 수미산 중턱의 사방을 지키는 불법의 수호신이 되었다. 청정도량을 들어가는 정화의 의미를 지닌 문이다. 도리통 3간, 양통 2간으로 어간은 통로로 개방하고 협간에 방위에 맞추어 사천왕상을 모신 전형적인 사천왕문의 평면형식을 지니고 있다. 개방된 어간을 제외한 부분에는 모두 판벽을 두어 해탈문과 동일한 구성을 하고 있다. 막돌초석 위에 원주를 세웠고, 주심포식으로 주간에는 화반을 사용하였다. 공포는 외1출목(외3포)으로 2단의 살미와 첨차, 그리고 보머리로 구성되어 있다. 해탈문에 비해 사용된 살미의 수가 한 단 적어 간략화 되었다. 살미는 모두 앙서형인데, 그 끝에 연꽃을 조각하였으며, 앙서 아래 초각을 더하여 조선후기의 전형적인 초각 형식에서 벗어난 모습을 지니고 있다. 보머리는 봉취형으로 초각했다.

[마곡사 명부전...]

명부전은 원통전을 중심으로 하는 수행 영역인 남원의 북쪽 끝에 위치하고 있다. 명부전의 성격상 교화영역에 포함되어야 할 건물이나 이 건물을 지을 당시 북원 영역에 마땅한 터가 없었는지 북원 영역에 포함되어 있다. 명부전 주변으로 담장이 있는데, 원통전을 중심으로 하는 영역과는 별도로 담장 북쪽이 열려 있어서 명부전에 출입할 수 있도록 하였다. 명부전이 교화적 성격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 건물을 지을 당시 북원 영역에 마땅한 터가 없어서 이곳에 명부전을 지었던 것으로 보인다. 기단은 작은 크기의 막돌을 이용해 쌓아 옹색해 보인다. 평면은 도리통 3간, 양통 2간으로 조선 후기 명부전의 일반적인 규모를 따르고 있다. 정면 3간은 모두 띠살의 삼분합문을 달았으며, 양 측면과 후면에는 벽을 쳐서 감실형의 평면을 만들었다. 내부에는 후면과 양 측면 벽에 의지해 'ㄷ자'형으로 불단을 만들고 지장보살을 비롯한 시왕상을 모셨다.

[세조의 친필현판이 걸린 영산전...]

"일명 천불전(千佛殿)으로 불러 오기도 하는 이 영산전은 조선 효종 2년(1651) 각순대사(覺淳大師)가 중수한 바 있는 전각으로 마곡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축물이다." 라고 쓰여있는 영산전은 배홀림의 주심포 건물로 납작한 맛배지붕을 하고 있는데 현판에 쓰인 글씨가 세조의 친필이라 하고, 이를 확인이라도 시키듯 왼쪽에 '世祖大王御筆'이란 작은 글씨가 있다. 법당 안에는 영산회상도 밑에 천불이 모셔져 있다. 이로 인해 영산전은 천불전으로 불리기도 한다. 이렇듯 건물의 명칭과 내부에 모신 불상의 내용이 다른 것은 이 건물의 연혁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마곡사 매화당...]

영산전 앞마당 북쪽에 위치한 매화당은 스님들의 요사 겸 수행공간으로 사용하는 건물이다. 영산전 앞마당을 등지고 'ㄷ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다. 앞마당에 면해 5간 규모의 대방을 두었고, 그 앞쪽 영산전 앞마당 쪽에 툇마루를 두었다. 대방 북쪽으로는 동쪽과 서쪽에 각각 익사를 두고 여기에 작은 방들을 배열하여 스님들이 기거할 수 있도록 하였다. 굵은 원주를 사용하였으며, 이익공식으로 초익공은 앙서형의 쇠서 위에 연화를, 이익공은 복잡한 형태의 앙서형을 초각했다. 초각의 모습은 조선시대 후기 건축의 수법을 따르고 있으나 둔탁한 모습을 지니고 있다. 영산전 앞마당 쪽 대방이 있는 부분은 팔작지붕이며, 익사 끝은 맞배지붕으로 하고 박공에 풍판을 달았다.

[마곡사 흥성루 전경...]

담장으로 구획된 남원의 중심건물인 영산전 앞마당 앞을 가로막고 있는 건물이다. 강당으로 사용되는 건물로 누각 형식으로 만드는 것이 일반적이나 영산전 앞마당이 비교적 평지에 가까운 지형이고 그 앞의 한 단 낮게 조성된 대지는 해탈문으로 들어가는 진입로에 해당하므로 단층 형식으로 지었다. 도리통 5간, 양통 3간의 초익공식 맞배지붕의 건물로 무고주5량의 가구를 지니고 있다. 영산전 쪽 마당을 향해 개방시켰고, 전면에는 5간 모두 두 짝의 판문과 회벽으로 막았다. 양 측면은 심벽구조의 회벽으로 만들었다. 영산전 앞마당을 향해서는 개방적이고, 그 반대편 바깥쪽을 향해서는 폐쇄적으로 만듦으로서 담장과 함께 수행공간을 외부로부터 격리시키기 위한 고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곡사 흥성루 옆의...]

[마곡사 경내를 이어주는 다리 극락교...]

[극락교의 우아함...]

극락교를 건너면 바로 우측으로 커다란 범종각이 자리하고 있고 앞 쪽으로 종무소가 길 게 자리하고 있다.

[마곡사 범종각...]

[마곡사 범종각...]

극락교를 건너면 바로 오른 편에 범종각이 있다. 1996년에 건립한 '十자'형 평면의 건물이다. 누하(樓下)는 콘크리트 구조로 만들어 불교 용품과 서적을 판매하는 매점으로 활용하고 있다. 누 위에는 사방에 석조 난간을 돌렸고 원형초석을 놓은 위에 기둥을 세워 목조 건물을 올렸다. 내외3출목(내외7포)의 다포식 건축으로 살미의 쇠서는 앙서형으로 길게 뻗어있다.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十자'형 평면의 각 면에 합각부가 돌출해 있으며, 지붕의 정점에는 3단의 석재를 겹쳐 올린 절병통을 두었다. 조선시대 후기 건축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十자'형의 평면과 그에 따른 지붕형태의 변화, 3출목의 공포, 길게 뻗은 살미, 기둥과 창방 사이의 낙양각 등으로 범종각은 변화 있고 화려한 외관을 보여준다.

[극락교옆의 마곡사 범종각...]

[마곡사 요사채들 멀리 대웅보전이 보인다...]

[요사채 안에 연잎에 빗물이 고여...]

[요사채 밖의 문이 독특해서...]

[요사채 쪽문...]

[요사채 담너머에 대웅보전이...]

[요사채 안쪽의 멋진 굴뚝...]

[요사채의 모습과 멀리 범종각이...]

[마곡사 대웅보전...]

대웅전은 석가부처님을 봉안한 곳이다. "법화경"에 석가 부처님을 큰 영웅 즉 대웅이라 한 것에서 유래한 석가 부처님이 사는 집이라는 뜻이다. 현재 전각안에는 석가·약사·아미타여래의 삼세불이 봉안되어 있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4칸의 중층 팔작집이다. 기단은 막돌 허튼층 쌓기이며 민흘림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위 처마 밑으로는 처마 하중을 받으며 장식도 겸해 누무쪽을 짜맞춘 포를 여러 개 설치한 다포식으로 조선후기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대웅보전의 현판은 신라의 명필 김생의 글씨라고 전해 온다. 임진 왜란 때 병화로 소실된 것을 조선효종 2년 (1651)에 각순대사와 당시의 공주목사가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를 잇는 징검다리...]

[마곡사 경내의 까치수염꽃...]

[뒤로 대광보전이...]

[대광보전의 측면...]

[마곡사 경내의 붓꽃...]

[마곡사 5층석탑...]

이 오층서탑의 최정상부에는 라부식 보탑과 유사한 청동제의 장식물로된 상륜부가 있어 특이한 형태를 보이는 탑이다. 2층탑신부 4면에는 4방불인 아촉불·보상불·아미타불·묘성불이 조각되어 있다. 원나라 영향을 받은 고려 말의 작품으로 임진왜란때 무너져 그 속의 귀중품은 이미 없어졌다.

[보광대전앞 5층석탑과 김구선생기념수...]

[마곡사 5층석탑과 대광보전...]

대광보전은 비로자나불을 모신 곳이다. 비로자나르는 광명이 어디에나 두루 비친다는 뜻을 지며 이불상이 봉안된 불전을 대광명전 또는 대적광전 등으로도 부른다. 현재의 건물은 조선 순조13년(1813)에 다시지은 덧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이다. 기둥위 추녀 밑으로는 처마의 하중을 받고 또 장식도 겸해 짜맞춘 포가 많이 배치된다. 포형식은 팔작지붕이다. 내부에는 불단을 서쪽에 배치시켜 비로자나불을 동향으로 모셔져있다. 불상 위의 섬세한 조작 단집과 기둥위의 용머리 조각, 천장의 연화봉과 문학문 단청등 장식적 특성을 잘 살린 조선후기 건축의 걸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마곡사 심검당(尋劒堂)...]

심검당은 대광보전 앞마당 남쪽에 자리 잡고 있는 'ㄷ자'형 평면의 요사이다. 승려들의 생활공간으로 대광보전의 노전(爐殿)이면서 대방(大房)의 역할을 하는 건물이다.대광보전 앞마당으로 '一자'형의 평면을 이루면서 대방이 있다. 대방의 전면, 즉 대광보전 앞마당 쪽에는 툇마루가 있었으나 현재는 툇마루를 없앴다. 대방 북쪽에는 불단을 조성하고 불화를 모신 1간의 인법당(因法堂)이 있으며, 남쪽 끝에는 넓은 부엌을 두었다. 이 '一자'형의 건물 동편으로 남쪽과 북쪽에 각각 익사를 두어 전체가 'ㄷ자'형을 이루도록 했는데, 생활공간의 마당이 대광보전 앞마당에서는 가려지도록 하기 위한 배려이다. 양 익사에는 각각 크고 작은 방을 두었다. 마당 쪽 정면만 몰익공식의 초각을 한 초익공식으로 하여 격을 높였고, 나머지 부분은 민도리집 구조이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며, 북쪽 익사 끝은 맞배, 남쪽 익사 끝은 팔작지붕으로 처리했다.

[응진전 옆에 새로지은 듯한 ...]

[마곡사 응진전...]

중앙에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는 석가모니불이 안치되어 있고 좌측에는 선정인을 한 가약과 우측에는 현존불을 협시하고 있는데 이 응진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이 다포팔작집이다. 부처님의 제자인 16나한을 모신 전각이다. 이건물은 조선 철종3년(1852)에 중수하였다. 낮은 자연석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사용였고 추녀 밑에는 처마의 하중을 받고 장식도 겸해 나무쪽을 짜맞춘 도구를 여러개 배치한 다포계의 팔작집이다. 이건물은 석가모니를 주불로 봉안하고 좌우 불단에는 석가의 제자인 나한상을 봉안하였다.

[대광보전의 문살과 란꽃...]

[대광보전앞뜰의 쾌불지주석?...]

[마곡사5층석탑 중앙부분의 섬세한 조각...]

[마곡사 5층석탑 상부의 아름다움...]

꼭대기의 기단이 다른 탑들과는 딴판이다. 바로 라마식 탑모양이다. 꼭대기에 금색의 호리병 모양까지 얹어 있어 더욱 색다르다. 고려 말기 원나라의 영향을 받아 만든 것으로 전세계 3개밖에 없다는 탑이다.

[종무소 문고리...]

[김구선생 은거지라 쓰인 비석과 김구선생이 심으신 향나무...]

"이곳은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이며 우리민족 독립운동의 지도자인 백범 김구(1836-1949)선생이 1896년 명성황후 민씨시해에 대한 분노로 안악군 치하포에서 일본군 특무장교를 처단 후 은거하여 도를 닦던 곳이다. 조국 광복 후 선생이 이곳을 찾아 대웅전 주련에 却來觀座間猶如夢中事(돌아와 세상을 보니 흡사 꿈속의 일 같구나)를 보시고 더욱 감개무량하여 그 때를 회상하며 향나무 한 그루를 심어 놓았다. 고 쓰여있다.

[마곡사 약수(돌샘이라 쓰여있다)...]

[마곡사 극락교 반대편에서...]

[극락교옆의 고목의 자태...]

[요사채로 가시는 스님들...]

[보리사촌이라는 ...]

[돌속 뿌리를 둔 이름모를 나무의 강인함...]

마곡사의 이야기는 여기서 접을까 한다. 너무도 유명한 절이라 언급할 것도 없거니와 비오는 가운데 쫓기듯 돌아다닌 기분이라 무어라 표현을 할 수가 없는 것 같다. 그리도 또 한편으로는 너무나도 잘 알려진 사찰을 아름답게 표현할 자신도 없다 해야 맞을 것이다. 정말 아름다운 사찰이라고 하는 말 밖에는 ....꼭 맑은 날 다시한번 찾아올 것을 약속을 해본다. 어떤 곳에서 본 책이름에 죽기 전에 꼭 가 보아야 할곳 이라며 마곡사를 꼽은 그런 책자를 본 것같다. 아마도 죽기 전에 한번 와본 것만 해도 행운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며 마곡 사의 여행을 마친다. 자료 : 코리아템플에서 인용-<끝>-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